터키/성지터키,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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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자유인 2007. 4. 2. 16:23
 

▶터키의 문화

        에르한씨는 양국의 공통점으로 “정이 많다”는 것을 꼽았다. 터키인들은 우리나라 사람처럼 개인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사람들간의 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터키인의 가장 큰 특징은 ‘열린 마음’이라고 할 만큼 개방적이고 친화력이 강해 낯선 사람과도 쉽게 어울린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음만 맞으면 거리낌 없이 집으로 초대할 정도.

        “유학생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중국인과 친구가 되려면 10년, 일본인은 1년, 한국인은 6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터키인과 친구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10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이면 충분하죠.”

        터키인들의 놀라운 친화력은 다양한 문화를 품었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터키는 그리스, 로마 문화의 발생지이며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문명을 낳은 곳.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바울의 고향이자 이슬람 문명을 꽃피운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면서 자연스럽게 타 문화나 이방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

        “터키 문화와 터키인의 성향은 아시아, 이슬람, 유럽 문명이 뒤섞여 만들어진 ‘컬처 수프(culture soup)’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특정 문화에 대한 집착도 없고 새로운 문화나 상황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에르한씨는 터키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말한다. 가족 중심의 문화는 핏줄을 중시하는 동양적인 사고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과 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가족이 함께하는 취미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친구와의 약속은 물론이고 회사 동료들과의 회식 등 사교활동도 대부분 집에서 한다. 모임은 부인과 아이들을 동반하는 가족 모임 형태가 대부분이다.

        터키에서는 버스나 관광지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객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손님을 초대하고 사람을 사귀는 일 자체가 터키인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터키에서 손님은 ‘하느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손님이 오는 것을 ‘하느님이 보낸 사람이 왔다’라고 표현하죠. 터키인들은 손님에게 준 것은 나중에 10배를 돌려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대접합니다.”

        2백여 종류의 케밥, 5천여 가지의 디저트 등 터키 요리는 프랑스, 중국 요리와 더불어 세계 3대 요리로 꼽힐 만큼 유명하다. 초대 요리 역시 그 명성에 걸맞게 무척 푸짐하다고 한다. 손님이 방문하면 닭고기 등 고기요리를 중심으로 2~3가지의 야채 요리와 샐러드, 피클을 대접한다. 식사를 마치면 터키의 대표적 차인 ‘차이’와 쿠키를 내놓는데, 이때 쿠키는 반드시 집에서 직접 구운 것으로 준비한다고. 마지막으로 갖가지 과일과 진한 터키식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즐긴다.

        터키인의 여유롭고 소소한 행복을 중시하는 특성은 교육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터키인은 자녀가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고. 아이가 행복해한다면 의사나 박사가 되는 것보다 기술자로 공장에 취직하거나 가게에서 일을 배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 터키의 대학 진학률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 터키의 전통 문양인 '이블 아이'. 악귀를 쫓아내기 위한 부적이다.

2 터키 전통 주전자와 고뿔.


터키는요~

아시아 대륙 서쪽 끝에 있는 터키는 면적 77만4천8백15㎢로 동쪽으로 이란·아르메니아, 남쪽으로 이라크·시리아, 북서쪽으로 불가리아·그리스와 접해 있다. 공용어는 터키어.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히타이트, 이슬람 문명의 발생지로 앙카라의 히타이트 유적, 이스탄불의 비잔틴·이슬람 유적 등 곳곳에 고대 문화의 유적이 남아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온천을 갖고 있어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수도는 앙카라이며, 대표 도시로 파묵칼레, 안탈리아, 이즈미르 등이 꼽힌다.


▶터키 문화와 아름다운 풍경 볼 수 있는 책·영화

▶터키의 문화와 일상을 보여주는 책

        ‘인류 문명의 박물관 이스탄불 기행’(예담)은 터키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좇아 그 시대 생생한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소개하고 있는 인문 기행서. 모스크로 대표되는 이스탄불의 다양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감상할 수 있다.

        ‘터키의 기독교 성지’(크리스천헤럴드)는 터키의 성지를 직접 순례하고 기록한 성지순례 연구서로 연구원들의 경험담과 생생한 사진을 통해 터키 성지의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

        ‘터키 :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리수)은 주 터키 한국대사관의 외교관으로 재직한 이희철씨가 터키의 문화와 정서를 알기 쉽게 풀어낸 책. 터키의 역사와 신화, 터키인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만날 수 있다.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즐거운 상상)은 방송작가인 저자 미노가 240박 241일 동안 터키를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과 터키 문화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길 위의 천국 : 이지상 터키 여행기’(북하우스)는 여행 전문가인 저자가 터키를 3번에 걸쳐 다녀온 후 직접 겪은 체험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책. 트로이, 에페스, 앙카라 문명 박물관 등의 유적지에 얽힌 역사, 종교 이야기도 알기 쉽게 정리했다.


▶터키의 역사와 풍광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일마즈 귀니 감독의 ‘욜’(1982)은 악명 높은 터키 감옥에서 휴가를 받은 모범수 5명의 사회생활을 그린 영화. 과거 터키 군사독재 시절의 정치적인 폭력을 현실감 있게 그려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할렘 슈어’(1999)는 터키의 마지막 후궁이었던 사피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금지된 유혹의 공간 할렘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의 사랑과 질투를 다루고 있다. 터키의 오스만 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재현된 궁중의 모습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미치고 싶을 때’(2004)는 터키계 독일인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을 그린 멜로 드라마로 터키계 2세 독일 감독 파티 아킨의 작품이다. 독일과 터키를 넘나드는 이국적인 풍경과 영화 속에 흐르는 터키의 전통 음악, 강렬한 록 음악 등이 인상적이다. 베를린영화제 그랑프리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이스탄불의 이혼한 중년 사진사의 황폐한 삶을 그린 영화 ‘우작’(2002)은 사소한 사건들을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좌절감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영화 내내 우울하고 정적인 이스탄불의 풍경을 롱테이크로 볼 수 있다. 200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감독 무자페르가 전원의 매력을 영화에 담기 위해 고향의 작은 마을로 돌아가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엮은 영화 ‘5월의 구름’(1999)을 통해서는 터키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이스탄불문화원 요리 강좌

        이스탄불문화원은 터키와 관련된 각종 도서, 영상 자료,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문화역사 강좌, 어학 강좌, 여행 상담은 물론 티파티, 전시회, 터키 영화·음악 감상 등 다양한 행사가 수시로 열리고 있다. 특히 한 달에 4회, 2시간 과정으로 터키 레스토랑 요리사에게 터키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강좌가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 3대 요리로 꼽히는 터키 음식 &대표 요리

        요리·제부텍‘터키 요리 전문점 메르하바’

불에 구운 요리가 많은 터키 음식은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 곡물 요리, 야채 요리, 육류 요리 등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며, 식사를 마친 후에는 반드시 ‘타틀리(tatli)’라고 부르는 디저트를 먹는다. 평상시에는 요구르트에 물과 소금을 섞은 ‘아이란’이라는 음료를 즐겨 마신다.

        터키인들은 아침과 점심은 아이란과 빵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은 갖가지 정성을 들여 푸짐하게 먹는다. 특히 손님을 극진히 모시는 전통이 있어서 손님을 초대한 날이면 저녁 준비로 평소보다 몇 배 이상 분주해진다고. 손님이 음식을 맛본 후에야 음식을 먹을 정도. 단, 터키인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는 음식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거나 음식을 식히기 위해 입으로 불거나 숟가락 혹은 포크를 빵 위에 올리면 안된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음식을 준비한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예의다.


발롬빵

준·비·재·료

이스트 8g, 설탕 20g, 물 72g, 밀가루 100g, 소금 2g, 올리브오일 20g, 개량제 적당량

만·들·기

① 이스트와 설탕을 물에 섞어 거품이 생기도록 둔다.

② 체에 친 밀가루에 소금을 뿌리고 올리브오일을 섞는다.

③ ②에 ①을 섞어 부드럽고 탄력 있는 반죽을 만든다. 30분 정도 반죽을 숙성시킨 뒤 공 모양으로 빚은 다음 밀대로 민다

④ 개량제를 물에 섞어 반죽 위에 바른다.

⑤ 230~280℃의 오븐에 넣고 10분 정도 굽는다.


큐네페

준·비·재·료

카다이프(잘게 부순 밀을 가는 국수처럼 만든 터키식 과자) 80g, 버터 1큰술, 시럽(설탕 45g, 레몬즙 15g), 호두 1개

만·들·기

① 버터를 두른 프라이팬에 카다이프를 올려놓는다.

② ①을 210℃의 화덕에 올려 굽는다. 10분 정도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0분간 굽는다.

③ 노릇노릇해진 카다이프 위에 시럽을 붓는다.

④ 호두를 잘게 다져 ③ 위에 뿌린다.


아다나케밥

준·비·재·료

양고기 600g,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토마토 1개, 고추 4개, 양파 1개, 터키 향신료 약간, 쉬쉬(꼬챙이) 4개

만·들·기

① 양고기는 소금과 후춧가루로 밑간을 한다. 적당하게 다진 뒤 꼬챙이에 꽂는다.

② 토마토는 8등분하고, 고추는 2등분한 다음 꼬챙이에 꽂는다.

③ ① ②를 230℃의 숯불에서 타지 않게 돌려가며 5~8분 동안 굽는다.

④ 다진 양파를 접시에 담고 ③을 올린 뒤 향신료를 뿌린다.


불에 직접 구운 이색 요리 가득~ 터키 요리 전문점

▼ 메르하바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메르하바. 터키인 요리사들이 터키에서 직접 건너온 화덕을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양고기는 이슬람식 도살법으로 공수돼 현지 맛이 그대로 살아 있고 육질이 부드럽다.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11시
찾아가는 길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이태원 길로 1백m 문의 02-794-3182
베스트메뉴
쿠쉬바슐르 피데 고기와 야채에 향신료를 가미한 터키식 피자. 이탈리아 피자와는 달리 치즈를 사용하지 않고 소금간을 한 밀가루로 만들어 담백하다. 1만3천원.


▼ 살람
        이국적인 소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살람. 터키인 요리사가 직접 만든 쇠고기, 양고기를 꼬치에 끼워 만든 케밥, 야채를 곁들인 양고기 요리 등을 맛볼 수 있다. 디저트로 나오는 바클라, 세케르파레 등 달콤한 터키식 파이와 쿠키가 별미.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1시
찾아가는 길 한남동 이슬람교 중앙회 골목에 위치 문의 02-793-4323
베스트메뉴
아나돌루 샐러드 토마토, 양파 등의 신선한 야채에 레몬즙과 올리브오일을 뿌린 상큼한 맛의 샐러드. 6천원.


▼ 욜
        ‘길’이라는 뜻의 ‘욜’은 터키 아디야만 지방에서 요리를 배운 한인 요리사 김호종씨가 운영하는 케밥 전문 음식점. 소스가 일품인 닭가슴살 꼬치 케밥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쇠고기 꼬치 케밥이 특히 인기. 터키에서도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고등어 케밥도 맛볼 수 있다.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찾아가는 길 숙명여대 올라가는 길 마을금고 맞은편 문의 02-717-1962
베스트메뉴
닭가슴살 꼬치 케밥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인 케밥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3천원.


▼ 이스탄불
        터키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쫄깃한 빵인 에크맥을 매일 3회 이상 직접 구워낸다. 닭가슴살과 새우를 토마토, 야채와 함께 프라이팬과 오븐에서 각각 요리한 귀외치는 토마토 요리의 깊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메뉴.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11시
찾아가는 길 대학로 혜화역 3번 출구 도보로 5분 문의 02-744-9790
베스트메뉴!
1 닭고기 피데 야채와 쇠고기, 닭고기를 이용해 만드는 기름기 없고 담백한 터키식 피자. 신선한 토마토가 많이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다. 7천원.
2 에크맥 터키에서 피데와 더불어 주식으로 먹는 전통 빵으로 프랑스의 바게트와 비슷하다.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3천원.


▼ 하맘(hammam)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우리나라와 문화나 민족성이 비슷하다. 그중 특히 흡사한 것은 바로 대중목욕 문화. 전 국민의 98%가 모슬렘인 터키에서는 목욕이 중요한 의식 중 하나다. ‘정화는 신앙의 절반’이라고 말한 마호메트의 가르침 때문. 이로 인해 터키에서는 자연스럽게 목욕문화가 발달하게 됐고, 곳곳에 ‘하맘(hammam)’이라고 불리는 대중목욕탕이 있다.
둥근 반구형의 건물에 있는 하맘은 남탕과 여탕이 엄격히 분리돼 있고, 사교와 친목의 장소로 사용된다. 우선 개인용 작은 방에서 옷을 벗은 뒤 ‘페스테말(pestemal)’이라는 수건을 걸치고 ‘날린(nalin)’이라는 나막신을 신는다. 욕실에서 가볍게 몸을 씻고 중앙에 있는 ‘고벡타시(gobektasi)’ 위에 눕는다. 고벡타시는 우리나라의 온돌과 같이 뜨겁게 달궈진 대리석을 말한다. 고벡타시에 누워 몸을 불린 뒤 때를 밀거나 거품 마사지, 지압 등을 받는다. 그후 비누칠을 하고 찬물로 몸을 헹궈 마무리하면 터키식 목욕 끝.


▼ 콜로냐(kolonya)
콜로냐는 레몬향이 나는 샤워코롱으로 터키인의 필수품이다. 터키인들은 틈날 때마다 손과 얼굴은 물론 머리까지 콜로냐를 바른다.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손님의 손바닥에 콜로냐를 뿌려주고, 식사 후나 화장실에 갔다온 다음에도 콜로냐를 뿌린다. 사무실이나 장거리 버스 등에도 항상 콜로냐가 구비되어 있을 만큼 대중적이다. 콜로냐를 뿌리면 땀 냄새가 사라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며, 콜로냐에 함유된 알코올 성분은 살균소염 효과가 있다.


▼이슬람 복장 공식적 금지▼

        일부 대학에선 아직 이슬람식 복장을 용인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론 금지다. 영어로 모든 수업을 진행하는 수도 앙카라의 중동공과대학은 이슬람식 복장을 한 학생은 아예 뽑지도 않는다. 입학 후라도 그런 복장을 한 학생은 수업을 들을 수도, 시험을 치를 수도 없게 한다.

        이처럼 옷차림에서부터 터키는 다른 이슬람 국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거리에서 차도르 차림의 여성이 간혹 눈에 띄지만 유럽의 여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일반 여성의 옷차림은 서양 여성들과 별 차이가 없다. 이스탄불 북쪽 흑해 연안의 킬리요스 해변은 비키니 차림의 터키 여성들로 넘쳐난다.

        이슬람 국가에서 금기하는 술에 관해서도 자유롭다. 술집이나 카페에서 술을 마실 수 있고 일반 가게에서도 얼마든지 술을 살 수 있다. 호텔 객실의 미니 냉장고엔 항상 술이 비치돼 있다.

        하루 다섯 번씩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긴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하고 싶으면 하고, 내키지 않으면 안해도 그만이다. 건축회사에 다닌다는 아뎀(35)이란 회사원은 “성직자나 독실한 신자만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하고 나머지는 하루 1, 2번 하거나 성일(聖日)인 금요일에만 기도를 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아다나

터키 중남부에 있는 도시.

        고대에 사루스 강으로 알려졌던 세이한 강변 실리지아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농업과 공업의 중심지이자 터키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서 BC 1400년경부터 있었던 히타이트 정착지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시리아 평원으로 이어지는 타우루스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는 입지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BC 335~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당했으며 7세기말 아바스 왕조의 아랍인들에게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후 600년 동안 통치자가 바뀌다가 1378년에 투르크멘족의 라마잔 왕조가 들어섰다.         

        라마잔 통치자들은 1516년 오스만 제국의 군주 셀림 1세에게 정복당한 이후까지도 이 지역을 지배했다. 1608년 아다나는 오스만 제국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서 주로 다시 바뀌었으며 아다나 시는 1867년에 주도가 되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옛 기념물 가운데 하나는 세이한 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200m의 돌다리로서 유스티니아누스 재위기간에 건설되었고 8~9세기의 여러 아랍 통치자들이 복구했다. 강 오른쪽 기슭에는 나중에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가 된 후란 알 라시드가 782년에 건설한 성채의 유적이 있다. 주요 모스크인 울루카미는 1542년에 지은 것이다.

        뒤쪽으로 펼쳐져 있는 비옥한 골짜기들을 기반으로 번영했으며 아나톨리아와 아라비아를 잇는 교역로들이 지나는 교두보라는 사실 또한 발전에 한몫을 했다. 터키 면직공업 중심지이며 직물·시멘트·농기계·식물성기름을 제조한다. 이스탄불과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철도가 지나며, 지선으로 남서쪽으로 51㎞ 떨어진 지중해 항구 메르신까지 이어져 이 항구를 통해 산물을 선적한다. 1973년에 세워진 추쿠로바대학교가 있으며 농업지대의 중심지로서 목화·쌀·참깨·귀리·감귤류가 재배된다. 인구 916,150(1990).

▶아다나

☞1999,8,17 : 터키에서는 작년 6월27일 남부의 아다나시에서 리히터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 144명이 사망하고 1500여명이 부상했다.

☞1999,07,06 : 터키 남부 아다나 지역 경찰본부 정문에서 5일 낮 4시 20분께(현지시간) 쿠르드 여자 게릴라가 자살폭탄 공격을 가해 14명이 부상했다고 아나톨리아 통신이 보도했다.

아타톨리아 통신은 자살 폭탄 공격을 가한 여자 게릴라는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경찰본부 현관이 크게 파손됐다고 전했다.

☞2006,03,10: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계열 철도 차량 생산 업체인 로템은 최근 터키 철도청으로부터 전동차 96량을 1억4000만 달러(약 1400억 원)에 수주했다고 9일 밝혔다. 로템은 터키 시장에서 2000년 아다나 시 경전철 36량을 납품한 이후 지난해 7월 이스탄불 시 경전철 34량 사업, 12월 터키 철도청 디젤동차 24량 사업 등을 수주했다.

☞2006,08,29 : 지난 25일에도 터키 남부 아다나시(市) 쿠추카트 지역의 한 은행 앞과 인근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도 PKK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가 발생, 4명이 부상했다.


▶아다나

        발행일 : 2003.03.26 / 경제 B1 면

        24일 터키 아다나 시(市)의 빵가게 앞에서 시민들이 빵을 사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최근 터키 정부가 미군주둔 연장 여부를 놓고 미국 정부와 마찰을 빚은 뒤 터키 경제는 금리가 70%를 넘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로이터

▶아다나 케밥

        알리 초나씨는 “처음 터키 요리를 맛보는 이들은 ‘양고기 쉬쉬 케밥’이나 ‘양고기 아다나 케밥(다진 양고기에 여러가지 향신료를 넣어구운 것으로 매콤한 맛이 일품)’을 먹어보라”고 권하며 “양고기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에 초보자가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는 ‘할랄(HALAL)’ 의식을 거친 소고기와 양고기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할랄이란 이슬람교의 목사가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의 주문을 외우면서 소나 양, 닭을 잡는 종교의식이다.


▶타루수스 

        요한의 샘물을 보았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 남아 있는 기독교 유적중의 하나. 실제로 요한이 팠다는 샘물이 있었고 경비인듯한 아저씨는 새벽 불청객에도 귀찮아 하지 않고 직접 우물물을 길어 주셨다. 아직 물이 나오며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의 샘물과 클레오파트라의 문이 같은 위치에 있다(?)

사도 바오로가 태어난 집이 있던 터-현재는 유리로 덮어 놓아 보존하는 중이다.

사도 바오로 생가 터 근처에 있는 작은 성당이다.

이 성당에서 순례객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터키 남부 해안에는 기독교를 이방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파한 사도 바울의 고향인 타르수스도 있다. 신약 성서에 나오는 다르소가 바로 이곳으로, 아다나에서 서쪽으로 약 40㎞ 정도 떨어져 있다. 국내선 항공기가 있어서 이스탄불에서 1시간 20분 정도 비행하고, 가격은 70달러 부터 시작. 밤버스로 가면 20 시간 걸린다고 한다. 도시 한가운데에 하반신은 뱀이고 상반신은 사람인 뱀의 왕 ‘샤흐메란’의 동상과 못이 있다. 옛날 이곳을 통치하던 왕이 병들자 샤흐메란을 잡 아 먹었는데, 아직도 그들의 왕이 죽었는지 모르는 이곳의 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 타르수스를 공격하게 되며, 지금도 샤흐메란의 피가 욕조의 대리석 밑으로 흐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클레오파트라의 문도 있다. 바울의 고향에 있다고 해서 언제부턴가 ‘바울의 문’으로 불려 왔다고 한다.

        바울의 집은 그곳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인 ‘예니 자미’란 모스크 근처에 있다. 철문 안에 매표소가 있고 40∼50평쯤 되어 보이는 정원이 깔끔하게 가꿔져 있는데, 집 안에는 바울이 사용했다는 조그만 우물과 하얀 수염이 그려진 바울의 초상화도 보인다. 바울 우물가 옆의 마을은  전혀 변하지 않은 듯한  옛날 마을 그대로  민속촌이고 우물은  입장료를 받으며  울타리 속에 들어 있다. 2.000.000리라



▶카파도키아

        우리는 규모가 작은 카이마크르 지하도시를 구경하였는데 좁은 통로를 허리를 구부리고 움직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수시로 “머리 조심”하고 경고를 발하여도 쿵쿵 머리를 천정에 들이받는 소리와 “아이쿠”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40분의 짧은 시간동안의 견학이 빨리 끝났음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 일대는 현재에도 동굴을 이용한 레스토랑, 커피 숍, 호텔 등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도 "Yem eni"라는 이름의 동굴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항아리 케밥」이다. 항아리 케밥은 토기로 된 항아리에 밥과 고기, 야채와 향신료 등을 넣고 불가마에서 고온으로 익힌 것인데 이 지역 특식의 하나라고 한다. 스프와 빵이 먼저 나오고 항아리 케밥이 나왔는데 일행들 모두 맛있게 먹었다. S.O.S. 레스토랑의 명물 항아리케밥입니다. 주인아저씨가 망치로 톡 깨서 주는건데요, 제껀 완전 잘못깨지는 바람에 먹는 중간에 도자기 파편이 '아지직~' 그래도 너무너무 맛있었답니다. 특히 쉬림프 케밥이 최고, 가격은 10리라(8000원 정도)였는데요 저희는 깎아서 9리라.


        이 지역에는 포도재배에 적합한 토양과 기후 때문에 포도재배가 성행하고 따라서 「카파도키아 와인」이 유명하다고 한다. 카파도키아 와인 두병을 시켜 맛보았는데 역시 맛있었다.


        아이들이 몰려와서 인형을 파는데, 한명도 팔아주지 않았는데도, 떠날 때 아이들이 웃음을 띤 얼굴로 환송을 해준다.


<우치히사르 아래의 카페>

        커다란 성채모양의 뾰족한 바위인 우치히사르를 바라보면서 그 아래에 있는 동굴 카페를 찾아 갔다. 우리가 올라가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벌써 커피를 마시고 내려오고 있다. 유명한 카페인 모양이다. 우리도 카페의 한 방을 차지하고 앉았다. 동굴속의 방임은 물론이다.

        모두들 커피를 시켰다. 에스프레소보다는 좀 연하지만 역시 찐득찐득한 느낌이 드는 커피이다. 맛도 에스프레소보다는 약하나 맛은 괜찮다. 터키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커피 잔에 남은 커피의 흔적을 보고 점을 친다고 한다.

▼ 기암괴석 밑의 별천지 ‘카파도키아’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11시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카파도키아. 용암에 덮인 계곡이 침식작용을 거치며 만들어낸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는 종교 탄압을 피해 형성된 곳으로 최근에는 숙박시설로 운영되고 있는데 3인실이 1만5천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열기구를 타고 보는 일출도 카파도키아에서 맛볼 수 있는 장관이다


☞2005,08,05:3일 터키 중부 카파도키아에서 관광객 20명이 탑승한 열기구가 강풍으로 추락해 한국인 탑승객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4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3일 오전 9시(한국 시간 오후 4시) 수도 앙카라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에 있는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가 추락해 탑승객 정모(31·여) 씨와 장모(27·여) 씨가 각각 내장 출혈 및 골절상 등 중상을 입었다. 나머지 한국인 6명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한국인 중상자 2명은 현재 인근 에르지에스 국립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0만 년 전 세 개의 화산이 폭발해 그 화산재로 응회암지대의 거대한 고원(평균고도 1000m)이 형성됐다는데 지구상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버섯모양의 바위 ‘투파’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기후대가 있지만 그래도 3000m급 고산지대 외에는 대체로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기상이변으로 카파도키아가 있는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해발 1000m 고원에도 눈 내리는 날이 늘고 있다. 2003년 2월에는 40년 만의 폭설이 내렸고 내가 도착한 날에도 카이세리 공항 주변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투파를 보기 위해 찾은 곳은 네브셰히르의 파샤바 계곡. 잔설 성성한 황무지 구릉에 그림책에나 등장할 만큼 엉뚱하게 생긴 굴뚝모양의 바위기둥들이 가득했다. 원뿔형의 머리를 원기둥이 받치는 형상인데 높이가 20∼30m는 족히 돼보였다. 뾰족한 바위꼭대기에 투파 세 개가 선 곳을 지나다 희한한 것을 보았다. 바위를 파내어 만든 작은 방이었다. 사다리로 올라가 보니 거주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다. 어떤 곳은 여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투파의 재질은 화산재가 오랜 세월 응축되어 생성된 부드러운 응회암이다. 연약질이다 보니 비바람 등으로 침식돼 이렇게 빚어진 것이다. 원뿔형의 머리는 겉에 박힌 호박돌 덕분에 침식이 중단된 결과다.

        파샤바 계곡을 나서 이번에는 괴레메 마을의 ‘야외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투파의 바위벽을 파내어 지은 암굴교회가 언덕과 계곡에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곳. 암굴 안에 들어서니 프레스코(회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넣어 굳힌 벽화) 성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로마인의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했던 초기 기독교인들. 그들의 신앙적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고 순수했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네브셰히르를 떠나 니제 가는 길에는 지하도시를 지났다. 암굴교회나 버섯모양 투파와 달리 지하에 조성한 대규모의 거주공간인데 그 유래는 기원전 4000년 전(히타이트왕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 데린구유라는 마을에 들렀다. 출입 굴은 허리를 펼 수 없을 만큼 낮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니 높이 3m에 수십 명이 들어갈 큰 공간도 있었다. 한마디로 개미굴을 연상시켰다. 좌우상하로 파들어간 미로로 연결된 이 지하도시는 무려 8개 층이나 됐다. 이곳은 이 마을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됐는데 환기구까지 갖춰 최장 6개월까지 거주가 가능한 시설과 규모라고 했다.

▶카파도키아

        카바도키아는 네브세히르와 위르굽을 잇는 도로를 경계로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는데, 북쪽에는 버서 바위등의 독특한 지형화 괴로메 야외 박물관, 프레스크화, 우치히사르, 비둘기 계곡, 도예의 아바노스 같은 볼거리가 몰려 있다. 남쪽에는 프레스크화가 남아 있는 교회 유적과 지하도시가 흩어져 있다.

        ☞처음 들른 곳은 레몬 저장고. 저장고 앞에 오늘의 투어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16인승 짚, 우리 차, 작은 미니 짚이 두대. 같이 다니면서 물싸움도 하고 그런다는 소문. 호오라 물싸움! 싸움이라면 질 수 없지! 레몬 저장고는 국가 시설이라는데 동굴 깊숙히 레몬이 상자 가득 쌓여있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레몬을 담느라 분주하다. 바깥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날씨이건만 저장고 안은 너무너무 시원하다. 아이고 좋구나 좋아. 신기하기도 하지.

        ☞처음 간 곳은 우치히사르 성이었다. 내릴려고 하니까 내리지 말란다.
        응? 우치히사르 성은 성이라기보다 거대한 불개미의 집처럼 생긴 곳이었다. 꼭대기에서 보는 전망이 정말 죽여줄 것만 같았는데 안타깝게도 외국인은 출입금지. 이유를 물어보니 위험한 곳이라 외국인 두명이 사망사고를 당했단다. 외교문제로 비화되자 결국 당국에서는 외국인 출입금지를 시켜버렸다고... 쩝,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성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으로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역시나 파랗고 또 파란 하늘이 너무 멋지다.

        ☞얼마 안가 멈춰선 우치히사르 밸리는 가슴이 탁 트이는 곳. 카파도키아의 풍광은 어디나 그렇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만났을 때의 놀라움을 전해준다. 한참을 사진에 버닝하고 가만히 앉아 마음의 포커스를 잡고있는데 갑자기 강한 모래바람이 불었다.

        ☞다음 목적지는 그리스인 마을이었다. 산토리니 사진에서 많이 봤던 하얀 집들이 즐비하다. 창문이 파랗게 칠해진 집은 그리스인의 집이고, 녹색으로 칠해진 집은 투르크인의 집이란다. 사이좋게 살았던 마을은 너무나 정겹고 아름다웠다. 터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스크 대신 이 마을에는 교회가 있다. 날근한 교회의 문이 참으로 아기자기하다. 오래된 때가 묻은 골목길이 예쁘다.

        ☞차는 피죤밸리로 향한다. 왠 비둘기 계곡이냐 하고 생각했지만 밸리를 내려다보는 순간 이곳이 왜 피죤밸리인지 알게된다. 정말 직관적인 이름.
뾰족한 사암 산에 비둘기집처럼 촘촘한 구멍들이 잔뜩. 인구밀집 동굴아파트였다고나 할까. 감탄밖에 안나온다. 한 10분간 아무것도 안하고 다만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다음 장소는 괴레메 파노라마. 카파도키아의 축약형이라고나 할까. 정말 정말 멋진 곳.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단, 너무 뜨거워서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해는 정점에 달해 내 머리위로 똑바로 직사광선을 내려준다. 두피까지 뜨거운 기분. 그러나 풍경만은 시원하다.

        ☞화이트밸리를 지나 차는 시원스레 쭉쭉 달린다. 화이트 밸리, 역시나 하얀색 때문에 붙은 이름. 화이트 밸리를 지나 차가 멈춘 곳은 러브밸리다. 왜 러브밸리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삼손이 어눌한 한국말로 얘기한다. 'Love Vally, Korean...Umm..고추밸리'

        ☞러브밸리를 지나 레드밸리를 차를 타고 시원스럽게 달린다. 레드밸리는 붉은 색을 띄고 있어서 레드밸리다. 평소에는 핑크색으로 보이지만 석양빛을 받으면 정말 붉게 타오르는 색을 보여준다. 어제 그린투어에서 들렸던 버섯바위에 다시 한번 들렀다. 유일하게 그린투어랑 겹치는 일정. 어제 봤던 곳과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려 버섯바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등성이로 올라간다. 이 곳이 훨씬 조망이 좋군. 그 능선은 하얀 사암으로 된 돌들이라 굉장히 낯설고 멋진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투어는 낙타를 비롯한 각종 동물모양의 바위들이 있는 곳으로 계속되었다.

        ☞마지막 코스는 역시나 오늘도 공장. 또 도자기 공장을 가면 어케하나 걱정했는데 오늘은 오닉스 공장이다. 터키는 터키석이 유명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터키에는 터키석보다 오닉스가 많다. 이제까지 오닉스는 까만색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까만 오닉스는 가장 질이 낮은 4등급이란다. 제일 질이 좋은 것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색을 띄고있는 것이고 하얀 오닉스가 그 다음, 갈색 오닉스가 3등급이라고. 오닉스 세공과정을 구경하고 - 우리의 삼손은 알고보니 오닉스 세공 기술자였다! - 각종 보석들이 즐비한 상점을 구경. 다들 너무나 휘황찬란하여 감히 손을 못대겠더라만 굉장히 독특한 은 세공품을 파는 코너가 있어 신나게 구경.

        ▶카파도키아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옛 실크 로드길에 대상들이 묵었던 “캬라반 사라이”가 있고, 그곳에서 콘야까지는 2시간이 걸린다.

        ▶시야에는 산하나 보이지 않고 수평선 같은 지평성의 콘야 평야다. 4시간을 달려도 산하나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야다. 그 넓은 평야에 집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가끔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들이 보인다. 이 평야의 중심에 있는 콘야는 3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 잊지 못할 로즈밸리의 일몰

        해가 저물 무렵, 차를 달려 젤브로 향했다. 암석이 갈라져 생긴 커다란 바위들이 버섯을 연상케 하는 젤브의 풍경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로즈밸리에서 보는 노을은 황홀함 그 자체다. 끝없이 펼쳐진 기암괴석들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 해는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일몰을 잊지 못하는지 알게 해주었다. 천 마디 만 마디 설명보다 강한 한 순간의 빛. 카파도키아는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왜소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곳이다.


▶콘야

 에피소드 하나

        콘야에 들러 안딸리아 가는 날 난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해야했다. 이슬람사원은 민소매와 짧은 바지는 입장불가이기에. 알리딘자미에서는 검은 차도르 시아파로, 메블라나사원에서는 수니파로. 터키는 터키인구의 98%가 이슬람교도이나 국교가 이슬람교는 아니다.(초대대통령 아타투르크의 정교분리원칙에 의해)

        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는 데 수니파는 창시자 무하메드와 코란을 추종하는 전통종파이고(이슬람교의 90%), 시아파는 무하메드의 사위를 추종하는 일종의 신비주의종파로 이슬람교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들이 화려한 꽃무늬스카프나 흰색스카프를 머리에 두르면 수니파이고 검은색 차도를 입고 있으면 시아파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타종교까지 너그러이 인정하는 포용력으로 서로의 사원에 자유로이 왕래한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종교적 차이가 아닌 정치적 차이로 인해 분리되었다고 보면 된다.

       콘야는 확실히 이제껏 우리가 있었던 곳보다 추웠다. 여기서 처음으로 ‘터키 눈’을 봤다. 추웠다는 어제는 영하 20도 까지 내려가 카파도키아보다 콘야가 더 추웠다고 한다. 

        콘야는 이슬람 성지이다. 이슬람교 종파중 하나인 메블라나 교의 발상지. 창시자인 메블라나가 살았던 곳이고 무덤도 콘야의 메블라나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그래서인지 관광객들 보다는 각지에서 온 이슬람교인들로 도시가 북적인다.  성지인만큼 도시 자체가 경건하다. 여자들은 거의가 히잡을 쓰고 있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슬람교라고 반드시 여자가 히잡을 써야 되는 것은 아니다. 종파에 따라서 다르다고 한다. 메블라나교는 히잡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미를 출입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이곳의 볼거리도 역시 오래된 자미들. 그리고 메블라나의 무덤이 모셔져 있는 박물관.  터키어로 기도가 ‘에잔’이라고 하던가. 이 자미는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그 곳은 관광지라 관광객이 여기저기서 사진 찍고 하는데 이곳은 창문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다였다. 너무 신성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사진은 찍을 생각조차 못했었다. (우리는 콘야에서 다른 자미도 가 보았는데 이곳은 감히 들어갈 수 조차 없었다. 관리하는 아저씨가 들어와도 괜찮대서 겨우 들어갔는데, 남자와 여자가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었다. 처음에 모르니까 무턱대고 들어갔는데 앞에서 기도하던 남자애가 우릴 엄청 이상하게 쳐다보더라. 역시 사진기는 꺼낼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사진찍어도 된다고 그래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콘야

☞2004,02,03 : 터키 중부 도시 콘야에서 2일 10층짜리 아파트 건물이 붕괴, 적어도 1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관리들과 방송이 전했다. 구조대원들은 아직 약 50명이 매몰돼 있다고 말했으나 CNN-투르트 TV는 매몰자가 아이들을 포함해 150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 주간동아2003,10,30 : 건국대 건축대학 안형준 교수(46)는 10월16일 터키 콘야시 에레일리구 구의원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터키 구의원들이 굳이 한국에까지 와 감사패를 전한 까닭은 안교수가 지난해 설계, 시공한 ‘광진정’이란 한국형 정자가 터키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았기 때문. 광진정은 서울 광진구청이 자매도시인 터키 에레일리구와 함께 조성한 ‘광진자매공원’ 내에 세워진 팔각형 정자. 규모는 6.4평밖에 되지 않지만 터키에 지어진 최초의, 또 유일한 한국 전통 건축물이다. 안교수는 설계비와 시공 지도비를 아예 받지 않았다.



▶라오디게이아 교회

1.주님이 나타난 모습

1) 아멘이신 주님

        “아멘이시오.” 아멘은 히브리어다. 그 뜻은 ‘진실로’라는 것이다. ‘아멘이시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멘'(ο̒ α̕μήν)은 문자적으로 '아멘인 자'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칭호로 나타난다. 이것은 70인역에서 '진리의 하느님'(the God of the truth, RSV) 으로 번역되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진리이시며, 진실하심을 시사한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진실하지 못함에 대한 그리스도의 진실성이 부각되고 있다


2)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신 주님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계시하시고 또 하느님의 진실을 증거하시려고, 구약의 예언들을 모두 다 성취하신 업적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히3:2).


3)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

        “하느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하느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의 헬라어에서 '아르케'는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의 최고(最高)의 근원을 나타낸다.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칭호 즉 '알파와 오메가'에서 '알파'에 해당되는 것으로(Beasley-Murray) 그리스도께서 피조물 가운데 처음이란 의미가 아니라 창조자이며 창조의 근본이심을 나타낸다(잠8:22ff.; 요한1:1-3; 1코1:30; 콜로 1:15; 히브 1:2,3). 또한 이 칭호는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시사한다.


2.주님의 책망

1) 미온적 신앙을 책망하심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열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음을 책망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차다'는 것은 라오디게아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약 16km 떨어진 골로새로부터 냉수를 공급받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그들이 불신의 상태로 세상에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더웁다'는 것은 인접한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신앙을 위한 열정을 비유한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차지도 덥지도' 즉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세상과 타협하지도, 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소유하지도 않은 상태로 미지근하였다(16절). 즉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만하는 자들이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차든지 덥든지'하라는 요구는 양자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미라기보다 '차든지'와 '덥든지'의 중간 상태를 택하는 그들의 '미지근한 상태'에 대한 신랄한 책망이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미지근하여'라는 언급은 '차다', '더웁다'는 말과 관련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무익하고 무력함을 나타낸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히에라볼리로부터 끌어온 온천수와 골로새로부터 수로를 통해 가져온 찬물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물이 미지근하게 됨으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여 마시는 자마다 토하여 버렸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미지근한 물을 토해 버리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미지근한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거부하고 버리겠다고 책망하신다.


2) 그들의 교만을 책망하셨다. 그들은 자기들의 영적인 병을 발견하지 못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부요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루테카'(πεπλούτηκα)는 현재 완료형으로 이제 완전히 부요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가 부요하여 더 이상 바랄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상당히 부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고 비참하다. 이러한 모습은 스미르나 교회와 대조를 이룬다. 스미르나 교회는 외적으로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였던 반면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반대였다.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상을 묘사한 것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1)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 '비참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약탈되거나 파괴당했을 경우를 묘사하는 것으로(시137:8; 로마7:24) 그 어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물질적 부와 정반대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2)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 '가난'은 라오디게아인들이 금융업이 발달할 정도로 물질적인 부를 축척한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상태 곧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며(2:9), '눈먼 것'은 라오디게아에 특수한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영적 시각 장애자로 분별력을 잃은 것을 의미하고, '벌거벗은 것'은 라오디게아의 검정색 양모가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이 영적으로 벗은 모습임을 시사한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여 전혀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3.주님의 권고

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앞절과 동일한 방법으로 라오디게아에서 유명하고 풍부했던 것을 예로 들어 그들의 영적 무관심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과 되고, ”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으로 가난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 곧 시련을 통한 믿음을 사서 영적으로 부요해지라고 권면한다(사55:1,.). 불로 정련된 금은 ‘믿음’을 가리킨다(1베드로1:7).

        “흰 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라오디게아는 광택있는 검은 양모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양모가 아닌 '흰 옷' 곧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영적으로 수치스럽게 벌거벗은 것을 가리라고 권면하신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역의 특산물인 안약을 사서 치유하라고 권면함으로 그들의 영적 시각 장애를 치유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라고 권면하신다(콜로1:27;2:3). 안약은‘성령’의 은혜를 말한다(콜로1:27,2:3)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주로 '아가파오'(사랑하다)로 표현되는데 본절의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필로'(φιλω̂)로 되어있다. 이러한 문자적인 차이로 인해서 혹자는 '아가파오'가 하느님께서 은혜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반면에 '필로'는 그리스도의 판단으로 사랑하심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로는 '아가파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도 자주 '필로'와 '아가파오'가 같은 뜻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요한5:20;16:27). 한편 '책망'의 헬라어 '엘렝코'(ε̕λέγχω)는 원래 '낮춤'을 의미하는 말로 '말로써 교훈하고 다스리는 것'을 나타내며(루카3:19; 1티모5:20), '징계'는 책망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행위를 의미한다(히브리12:5,7).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의 잘못을 방관(傍觀)하지 않으시며 사랑어린 책망과 징계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라.” '열성을 다하고'의 헬라어 '젤로손'(ζήλωσον)는 현재 명령형이며,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μετανόησον)은 부정 과거 시상이다. 이 두 개의 명령문의 시상 변화는 '단번에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지속적으로 열성을 내라'는 의미를 갖는다.


4.약속

1) 회개자에 대한 약속(19-20)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는 것은 주님과 신자간의 깊은 친교를 가리킨다.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동작 a.문 밖에 서서 b.두드리노니 c.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d.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로 되어 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서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스테카'(ε̋στηκα)는 현재 완료 시상으로 이미 오셔서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의미하며 '두드리노니'의 헬라어 '크루오'( κρούω) 는 현재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두드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죄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을 알리시는 모습으로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초청과 약속의 말씀이다. 한편 '문'에 대한 견해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앞절에서 현재 회개하고 열성을 내라고 권면하였기 때문에 본문의 '문'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지칭한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회개 촉구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의 결과를 나타낸다. '먹고'의 헬라어 '데이프네소'(δειπνήσω)는 교제를 나누며 즐기는 식사를 가리킨다(Morris, , ., .).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경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안에 거하셔서 그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시며 친밀한 관계를 이루신다. 그리스도와 하느님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과 성령을 통해 교제하신다(요14:23).


2)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21)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게 하여”준다고 하셨다.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은 그들을 위해 주님의 우편과 좌편의 자리를 요구했다(마태20:20-21). 12제자는 12보좌 위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할 것을 약속받았다(마태19:28).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기는 자에게 어좌를 약속했다. 어좌는 내세에서 주와 함께 왕노릇 하는 것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 어좌에 앉으심은 그의 왕적 지위를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의 어좌에 앉음으로 왕적인 지위를 누리시는 것처럼 승리자에게도 그와 동일하게 권세를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것에 대한 약속이다(1:6,9;2:26,27;5:10;20:4-6; 루카22:28-30; 로마8:17; 2티모 2:12). 한편 '어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드로노'(ε̕ν τω̖̂ θρόνω̖)에는 '위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에피'가 아니라, '안에'를 의미하는 '엔'(ε̕ν)이 사용되어 단순히 어좌에 앉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의 명예와 권세를 주시며 참여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시사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권면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적인 통치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묵시목3:22 

        이제 전반적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씀과 함께 모든 말씀이 끝을 맺게 되었다(22절). 그 말씀은 곧 이 편지서를 받아 볼 사람들이 그 내용을 사사로이 풀거나 또는 어떤 특정한 교회를 위해 가르치거나 책망하거나 시정시키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온 세상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에 해당되는 말씀임을 생각하게 하여 주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집에서 심판이 먼저 시작된다면, 하느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겠는가?"(1베드로 4:17). 이렇게 해서 이 책의 서신 부분인, 아세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끝났다.



▶파묵칼레(이즈미르에서 남동쪽으로 약 280km 떨어진 곳)

        밤차를 10시간 넘게 타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찌뿌둥 했는데 이곳에 발을 담그니 피로가 날아갔다. 밤차 타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발이 퉁퉁 붓는 그 느낌. 이곳에서 맨발로 다니며 찬물에 물 담그고 나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이곳은 자연보호를 위해 누구나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녀야 한다.

        호텔 지하1층에 수영장과 목욕탕이 있으나, 대표로 사전점검을 하고 온 K사장부인 이 여사(그녀는 현직 약사이다.)가 수영장 물에서 온천수냄새 아닌 소독약 냄새가 심하게 나니 수영은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모두들 온천장에서의 수영은 그만 두기로 하였다.

        최근에는 무분별한 개발과 상업화로 물이 고갈되어 제한된 지역에 한해 일정시간에만 사람의 출입을 허용하고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 간 시기는 여름철 성수기가 지난 때라 별 제약 없이 석회층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더웠으면 수영복차림으로 들어가 보았겠지만 날씨가 추워(가는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신발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치켜 올리고 석회층의 물 고인 웅덩이에 들어 가보는 데 그쳐야했다.

        그러나 이 희귀한 경치를 현지에 와서 구경하고 발까지 담글 수 있음에 모두들 만족하였다. 웅덩이에 고인 물과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은 아주 따뜻했고 걱정과는 달리 바닥은 전혀 미끄럽지 않았다.

        버스로 돌아 와 발을 말리고  J씨가 아테네 공항 면세점에서 사 갖고 온 와인 두 병을 따서 마시는 것으로 아직 남아있는 추위를 이겨냈다. 점심식사를 한 뒤 콘야(Konya)를 향해 4시간이 넘는 버스이동을 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저 멀리 목화성에 환하게 조명이 비춰진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목화성은 밤새 개방되어 있고, 오늘 산 티켓으로 내일도 입장할 수가 있다.
        조명 아래 하얗게 빛나는 목화성. 졸졸졸 석회암 돌위로 흐르는 물. 하얗게 반들반들 미끄러워 보이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발 밑이 꺼끌꺼끌 미끄러지지가 않는다. 신발을 벗고 발등위로 간질간질 흐르는 물살이 기분 좋게 한다.
        밤이 되자, 저쪽편 멀리 여기저기 올라온 사람들도 많고, 하얀 벽에 그림자 놀이하는 사람들


        셀축을 출발한지 3시간 쯤, 데니즐리에 도착한다. 세르비스(서비스 버스)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타야 하는지 찾질 못하겠다. 버스를 찾는데 그 유명한 데니즐리의 삐끼를 만났다. 있는 버스도 없다고 하고, 초행길인 사람에게 숙소를 강요하다시피 한다고 익히 들은 삐끼에게 내가 걸린거다. 보여주는 숙소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래? (아직은 못 믿겠다.)

        근데 그냥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얘들이 그냥 데려다 주는거나 그게 그거일거 같아 이 젊은 친구를 따라가기로 했다. 돌무쉬로 20여 분. 시내를 벗어나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저편으로 하얀 목화성이 보이고,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펜션이다. 다른 아들인 '알리'가 마중을 나왔다.


▼ 자연이 만든 목욕탕 ‘파묵칼레’
        터키를 대표하는 온천 휴양지. 석탄 성분이 함유된 온천수가 나오는 자연산 수영장이 곳곳에 있다. 파묵칼레의 온천수는 심장병, 순환기 질환, 고혈압, 신경성 장애, 류머티즘, 피부병, 소화기 질환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온천수가 넘쳐서 형성된 크림색의 종유석도 장관을 연출한다.


▶터키의 명물 ‘마도’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우유로 만들지 않고 모유와 가장 비슷한 성분을 지녔다는 영양 높고 향이 풍부한 산양유와 터키의 공기 좋은 아흐르 산기슭에서 재배되는 야생난의 뿌리인 ‘살렙’이 첨가돼 맛과 향을 깊게 한다고, 마도라는 이름은 터키 지명 ‘마라쉬’와 아이스크림이라는 ‘돈도르마’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접시에 올려놓고 나이프로 고기처럼 썰어서 포크로 찍어먹는 아이스크림...그만큼 단단하다고 하니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밖에... 아이스크림의 맛은 기대만큼 좋았고 질감은 찹쌀떡 + 아이스크림 이다.


우리 네 명은 호텔 안에 맛사지를 받는 곳에서 맛사지를 받기로 했다.

        프로그램이 다양해 우리는 꼼꼼히 살펴보니 Feeling + Bubble massage + Oil Massage 상품이 40$인 상품이 있었다. 얼굴도 맛사지하고 거품목욕도 하고 오일마사지도 하고 우리 돈으로 4만원이 안되니 전부 좋다하고 식사 후 좀 쉬다가 내려갔다.  그런데 이 상품에 대해 실망한 것은 한 시간도 안 돼서 였다.

        우리의 대중 목욕탕과는 약간 다른 곳에 우리 네 명이 큰 타올을 두루고 들어가니 탕 가운데 우리는 물이 있지만 여기는 한 평 넘는 크기의 대리석 마루 같은 것이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야 여기서 우리처럼 때를 불리나봐!” 하면서 수다를 떨며 누워 있었다. 15분 쯤 후 두 명의 여자가 들어오더니 각각 한사람씩 붙잡고 간단히 이태리타올 비슷한 것으로 때를 미는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나와 미숙이는 “어머 여기도 우리처럼 때를 미나봐!” 간단히 때를 밀고 대야에 행주같은 것으로 거품을 크게 만들더니 누워있는 성란이와 종실이에게 입히고 또 조금 마사지를 하더니 머리를 감겨주고 데리고 나갔다. 그 과정이 불과 20분 정도 밖에 안 걸린 것 같았다.잠시 후 그 두 여자가 들어오더니  방금 전에 했던 것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간 것이 휴게실 같은 곳, 또 두 여자는 성란이와 종실이를 다른 방에 데리고 가더니 10분 정도 후 데리고 나왔고, 미숙이와 내가 또 그 방에 들어가니 오일 맛사지였다. 등 만, 그게 전부였다.


▶히에라 폴리스(파묵칼레)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점령하기 전까지 파묵칼레는 페르가몬 왕국을 건립한 텔레포스 왕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따서 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렸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답게 넓은 지역 곳곳에 유적지가 흩어져 있었지만,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아폴론신전의 일부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개선문 등 성벽 유적지, 남북을 연결하는 대로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곳은 한국식 무덤과 흡사하게 생긴 묘지와 훌륭하게 보존된 원형극장이다.

        유럽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의 파묵칼레 무덤은 원래 1만5000기가 넘었으나, 지진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1200기 정도만이 남아 있다. 로마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초대형 무덤이 있는가 하면 동양식 봉분의 무덤도 발견할 수 있다. 최고권력자와 부호들의 안식처인 이 봉분형 무덤은 경주에 있는 김유신 장군 묘와도 매우 비슷하다. 학계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분묘 양식이 한곳에 모여 있어 양쪽의 장례문화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며 이 무덤유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덤 유적지 건너편에는 히에라폴리스가 가장 번영을 누리던 시기에 건설된 원형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도시 전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건설된 이 극장은 1만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 로마제국의 황제와 귀족들이 온천지역에서 장기간 휴식을 취하며 연극 등을 관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남아 있는 로마극장 유적지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뛰어나다는 파묵칼레 원형극장의 중앙에는 황제를 위한 귀빈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에페소

        요한 교회의 입구 문은 박해의 문이라고 부른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의해서 공인되기 전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원형극장에서 야수의 먹이로 던져져 처형당한 한을 잊지 않도록 원형경기장에서 석재를 떼어내 와 이곳에 박해의 문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교회의 본 건물은 전부 파괴되고 군데군데 기둥과 벽들만 남아있는 황량함 속에 박해의 문과 그 주변 성곽만 그런대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교회 입구에 ‘박해의 문’이라고 불리는 웅장한 돌문이 있는데 에페소에서 순교한 성도들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문을 들어서니 십자가 형태로 된 ‘요한 교회’와 ‘성모 마리아 교회’의 유적이 있다.
요한 교회 중심에 요한의 무덤이 있으며 그가 세례를 주던 곳도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에페소를 방문했을 때 에페소 사람들은 말하기를, 요한은 죽지 않았다면서 요한의 무덤이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는 벽돌과 돌을 섞어 쌓아올린 사각형 기둥 네 개의 폭이 4m 정도인 것이 특이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정문은 그러한 기둥들을 아치형으로 세워 만들었다. 아마 지진을 대비해 그런 방법으로 건립한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므로 지반은 매몰되었고 터의 기초는 약 3m 아래로 주저앉았다.

        교회의 심장부였던 십자가 모양의 본당 자리에 요한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지금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데 이슬람국인 터키에서의 교회 복원사업이라 진도가 매우 더딘 듯하다. 터키의 유적 중 복원을 기다리는 것이 어디 요한 교회 한 곳뿐이겠는가?

        교회 내부에는 신자들이 세례를 받던 세례터가 있다. 초대교회의 세례는 온몸을 다 물에 담그는 침례였으며, 가운데 통로에 물을 채워놓고 세례 받는 사람은 한쪽으로 들어와 가운데 고개를 숙이고 앉아 온 몸을 담근 후 일어나 다른쪽으로 걸어 나갔다.

        언덕위에 있는 요한 교회 아래 쪽 벌판에 커다란 흰 대리석 기둥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세계7대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이라고 한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풍요와 多産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지중해연안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언덕에서 내다보면 바로 아래에는 근사한 이슬람 사원이 있고, 조금 더 멀리 보면 덜렁 기둥하나만 남은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다. 고대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워낙 웅장하고 아름다워 세계 몇대 불가사의에 속했다는데, 차츰 그리스도교가 융성하게 되면서 의미를 잃어가다가 결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신전을 허물고 콘스탄티노플에 소피아 성당을 짓는 재료로 대부분 가져다 썼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기둥 하나뿐.

        에페소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신전을 재건하면서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욱 웅대한 규모로 건립했다. 신전 전면의 폭은 70m였고 길이가 130m였으며 높이는 20m나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네 배나 되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127개의 이오니아 양식의 돌기둥들로 인해 우아했다.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힌다. 지금은 여덟 개의 청색 돌기둥만 남아 있지만 기둥의 굵기만 해도 장정의 다섯 아름 정도나 된다.
        ‘아르테미스 신전’ 서쪽으로는 에페소 항구의 유적이 있다. 웅장했던 대도시의 면모를 아직도 뽐내는 것 같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도로가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고, 도로 양옆에는 둥근 돌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수처럼 정렬되어 있다. 기둥 위는 가로등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접시처럼 조각되어 있다.
        우리는 ‘에페소 성’에도 갔는데 안내원의 말로는 에페소가 기원전 11세기부터 있었던 도시라고 한다.  성은 원래 가이스텔 강 하구에 있었다는데 오랫동안 강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점토가 침적되어 지금은 10km 가량 내륙으로 들어와 있어 항구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길 양편에는 대리석으로 된 귀족저택의 잔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웅장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과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는 2층으로 된 도서관이 보인다. 로마는 목욕탕 문화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있듯이 에페소에도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문란했던 생활상을 알려주는 공중목욕탕, 연회장, 화장실, 오락실, 창녀촌 등의 유적이 있어 그들이 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판단되었다.      

        에페소에는 큰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과 운동 경기장도 있었다.


        성 요한 교회 아래쪽 마을의 "Anatolian Taste"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건물 안 가운데 마당에 차일을 처 놓은 곳에 테이블을 세팅해 놓았는데 화창한 날씨에 일행이 전부 함께 앉을 수 있어 좋았다.

        메뉴는 쉬쉬 케밥이다. 나는 이제까지 고기를 꼬치에 끼워 요리한 것이 케밥인 줄 알고 있었는데 터키에서의 케밥은 육류요리 전반을 칭하며 그중 꼬치구이 케밥은 쉬쉬케밥이라 부르고 그 외에 “도네르케밥”(회전식 케밥),“쿠유케밥”(진흙 통구이), 항아리 케밥 등 수많은 종류의 케밥이 있다고 한다.

        케밥을 먹는 김에 터키인들이 즐겨 먹는 양고기 케밥을 먹고 싶었으나 패키지여행 손님의 경우 소고기는 대체로 거부감 없이 잘 들드시지만 양고기에 대해서는 잘 안 드시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아예 소고기 쉬쉬케밥으로 예약을 해 놓았다고 한다.

        식당이 있는 마을에서 에페소 유적지로 가는 도중에 산길로 접어든다.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대관령 같은 꾸불꾸불한 길을 한 참 달려가니 울창한 숲속 ,넓은 주차장을 갖춘 광장 뒤에 성모 마리아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예수님으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보살 펴 달라는 말씀을 들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 승천 후 성모 마리아를 이곳으로 모시고 와 지냈다는 곳이다.

        성모의 집 앞에는 청동으로 된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어 찾는 이들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해 준다.  집은 외벽이 돌로 되어 있는 작지만 아담한 집이다. 성모 마리아께서 승천할 때까지 이 집에서 기거하셨다고 하니 안에 들어 설 때에는 절로 마음이 엄숙해 진다. 천주교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 상 앞에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린다.

        집 밖 조금 아래쪽에 성모께서 사용하던 샘이 있다. 샘에 금속으로 된 수도꼭지를 설치해 놓아 참배객들이 물을 마시고 물을 떠 갈수 있게 되어 있다. 이용자들에게는 편리하겠지만 이천년 된 성스러운 샘에 금속제 수도꼭지는 어쩐지 생경한 느낌이다. 어쨌든 아내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인 올케에게 가져다준다며 성수를 두 병 받아 챙긴다.

        샘 옆 벽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붙여 놓은 손수건과 쪽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에페소 교회(묵시록 2장

1.주님이 나타나신 모습1절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본문은 에페소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에서 '쥐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톤'(κρατω̂ν)은 단순히 '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동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이사야 42:1)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한다(1:13,16,20). 즉 교회에 대한 주님의 절대적 주권을 의미한다.

        한편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는 제사장이 등불을 간검(看儉:출27:21) 하기 위해 촛대 앞을 왕래하는 것처럼 주님이 교회를 감시하시며 은혜를 공급하시며 사랑하고, 능력 가운데 교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한다.


2.칭찬 2-3절

        그는 먼저 좋은 점을 들어 칭찬하시고(2-3,6), 다음으로 나쁜 점을 들어 책망하신다(4-5). 이 교회는 세가지 칭찬과 한 가지 책망을 들었다. 주님은 에페소 교회의 장,단점을 다 아신다고 하셨다(요21:17). 여기서 자녀 훈계의 지침을 찾을 수 있다(콜로새 3:21; 에페소6:4).


1) 수고와 인내를 안다 2

        “네가 한 일 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노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ε̋ργα)는 포괄적인 의미로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며(요한 3:19,20;5:36; 1요한3:8), '수고'의 헬라어 '코폰'(κόπον)은 단순한 노력의 차원이 아니라 고통스런 노동을 동반할 최선의 삶을 가리키고(로마16:12; 1코15:10), '인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모넨'(υ̒πομονήν)은 '아래'를 의미하는 '휘포'와 '머물다'를 의미하는 '메노'의 합성어로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확보 부동함을 나타낸다(야고버 1:3. 이런한 '행위'와 '수고'와 '인내'의 항목에 대해 혹자는 테살로니카 전서 1장과 연결시켜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해석하여 각각 독립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하며(Rist), 혹자는 '수고'와 '인내'를 '행위'의 내용으로 해석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헬라어 구문상 후자가 더 타당하다. 한편 '알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다'(οιδα)는 단순히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나타내는 '기노스코'(알다)와는 달리 직관적으로 아는 생득적(生得的) 지식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행하는 수고와 인내를 모두 알고 계심을 나타내므로 그리스도의 전능성을 시사한다(9,13;3:1,8,15)


2) 이단배격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졌다.” 본문은 에페소 교회가 가졌던 높은 영적 분별력을 말한다.

        여기서 '악한 자들'(카쿠스,κακούς)은 관사 없는 복수 명사로 문자적으로 '악한 것들'을 뜻한다. 이 말이 정확하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대체적으로 에페소에 있던 거짓 사도 혹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들은 자칭 사도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니콜라오스파'로 본다, 왜냐하면 6절에 에페소 교회가 미워하던 거짓된 자들인 니콜라오스파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사도행전 20:28-30; 2코린11:13; 갈라1:8,9).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은 예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확신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였다(고후11:13,15;12:11).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는 이런한 거짓된 자들의 거짓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었고, 에페소 교회는 훌륭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열매'를 통해(마7:20) 거짓을 분별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그들의 거짓을 드러냈다(고전14:29; 1테살5:21; 1요한 4:1). 에페소 교회는 고린도 교회와 같이 용납하거나 방임하지 않았다(고전5:3-6). 거짓 예언자에 대한 경계는 예수님도(마태24:11), 베드로도(1베드로2:1), 바울도(필립피3:18), 요한도(1요4:1;2요1:10), 유다도(유3) 말하고 있다.


3) 신앙의 정절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고 하셨다. 본절은 앞절에 나타난 사실을 반복하여 더욱 강조함과 동시에 에페소 교회의 신앙의 정절을 나타낸다. 당시 교회는 황제 숭배 강요 때문에 심한 박해 가운데 있었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단들의 내적 도전들이 많았으나 에페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복음에 확고히 서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지켰다.


3.책망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본절은 에페소 교회에 대한 책망을 나타낸다. '처음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 이다. (1)혹자는 에페소 교인들이 가졌던 기독교적인 사랑 즉 형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사도행전 20:35; 에페소1:15) (2) 혹자는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그리스도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에페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고 형제를 의심하고 엄격하게 구별함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형제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마르12:29).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을 동반하기 때문에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은 어느 하나라도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두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저버린 것'에 해당하는 '아페카스'(α̕φη̂κας)는 부정 과거로 단회적 행동을 나타내어 에페소 교인들이 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과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문은 에페소 교회가 교리적(敎理的)으로 칭찬할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없는 형식주의로 전락하여 사랑을 상실했음을 단호하게 책망하고 있다. 고로 본문을 통해서 성도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근거하지 않은 신앙의 열심과 충성의 헛됨을 깨닫게 된다.


4.권면

        에페소 교회에 대한 권면은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는 것이다. 즉 회개의 권면이다. 본문은 에페소 교회의 책망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명령어를 사용하여 제시한다. 탕자의 회개(루카15:17-22)에도 이 세 가지 과정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명령은 에페소 교인들을 보호하시려는 그리스도의 단호한 명령이며 권고이다.

①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이것은 죄의 원인을 깊이 생각하되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생각하라는 명령이다. 여기서 '생각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모뉴에'(μνημόνευε)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계속하여 생각하고 회상하라'는 의미이다(루카15:17-22). 에페소 교인들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그것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인해서 상실하게 되었는가를 상고해야만 한다. ② “회개하여.”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손'(μετανόησον)은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다(마3:2; 루카15:20). ③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에페소 교인들은 특별히 회개하여 돌아가되 무분별한 사랑이 아닌 그들이 가졌던 처음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가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손'(ποίησον)은 '행하다'는 의미를 가진 '포이에오'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지금 즉시 행하라'는 말이다(마태3:8). 에페소 교인들은 지금 즉시 처음에 그리스도에 대해 가졌던 사랑으로 형제들에게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중대한 결과가 초래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주님이 이 교회에서 떠난다는 뜻이며, 이것은 가지가 본체인 포도나무에서 베임을 당하는 것을 뜻한다(요15:6). 이 주님의 경고는 역사 가운데서 실제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에페소 교회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그 지역도 황폐하여 옛날에 화려하였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니콜라오스파’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니콜라오스파의 헬라어 어원은 구약성경에 기록된(민22:12) '발람'(백성을 이긴)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발람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하느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로 추측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니콜라오스파은 발람의 교훈을 따른 자들로 이해된다(14,15절). 이 파는 묵시록2:14-15절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고 또 행음하게’하였다. 즉 무율법주의이며 무도덕주의였다. 율법의 때는 지났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 육신은 악이요, 영만은 선하므로 육신으로 무슨 일을 하든 관계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행하든 해 받음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5.약속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본절은 예수께서 지상 사역 중 반복해서 내리신 명령이며(마11:15;13:9,43; 마르4:9,23; 루카 8:8;14:35), 본서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 반복된다(11,17,29;3:6,13,22),

        '귀 있는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에콘 우스'(ὁ ε̋χων ου̉ς)는 교회 전체에 속한 청중들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11,17,29;3:6,13,22) 여기서 '귀'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통역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요, 예언의 영인 성령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나타낸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신령한 귀의 소유자를 가리킨다(마태13:18,23).

        한편 '교회들에게'(타이스 에클레시아이스,ται̂ς ε̕κκλησίαις)는 복수로 각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 맨 끝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문구이다. 이는 이 편지들이 특정한 한 지역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편적인 교회를 향해 보내진 것임을 시사한다.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본문은 그리스도의 권면대로 행하여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이기는 그에게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니콘티'(τω̩̂ νικω̂ντι)는 관사가 있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이기는 자를 가리키며 본서와 복음서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문구이다(17,26;3:5,12,21;5:5;12:11;15:2;17:14; 요한16:33; 1요한 2:13). 또한 이 말은 군사적인 용어로 그리스도와 사단의 타협없는 대결상을 잘 묘사한다. 즉 사단과 대결하여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자를 나타낸다.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겠다.’” ” '낙원'의 헬라어 '토우 파라데이손'(του̂ παραδείσου)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말로 일차적으로는 인류 최초의 거주지였던 에덴 동산을 암시하며(창2:8-10)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하느님 나라 자체를 의미한다(22:1-4,14; 루카23:43). 즉 ‘하느님의 낙원’은 의인이 별세한 후 그 영혼이 가는 곳이다(루카 23:43). 바울이 그 곳에 가 본 일이 있으니, 곧 3층천과 동일시 된다(고후12:4). 이 낙원에 대하여 예수님은 간접적으로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말씀을 하셨다(루카16:22).

        ‘생명나무의 열매’은 구약 창세기(창2:9;3:22)에 처음 나온 말인데,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먹는 과일이다(묵시록22:2). 성경은 천국에서 몸이 영생하여 있으면서 식물을 섭취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담은 이기지 못하여 이 과일을 먹지 못했으나 이기는 자들은 이것을 먹게된다.

        이 과실은 내세에서 성도들의 분깃이 된다. 또한 생명과를 먹는 것을 영생(永生)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학설도 있다.


▶에페소 유적지

        높이가 37m나 되며 24,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3단 구조로 각단은 22계단으로 되어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로마시대에 원형극장의 규모는 그 도시의 인구의 1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이 극장건립 당시의 에페소 인구는 약 24만 명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가이드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상업광고라고 설명해 주는 것을 보았다. 길거리 네모난 대리석 판에 여자의 모습과 사람 발바닥모양 그리고 네모를 새겨 놓았는데 여자의 모습은 매춘을 의미하고, 발바닥모양은 미성년자 여부를 가리는 것으로 발바닥모양보다 발이 작은 사람은 미성년자이니 출입을 삼가라는 표시이고, 작은 네모가 새겨진 것은“카드도 됨”의 표시라고 우리 가이드가 재치 있게 설명한다.(여행기를 쓰며 다른 자료를 보니 네모는 지갑모양으로 돈을 가지고 오라는 표시라는 설명도 있다. 우리가이드의 설명이 더 재미있다.)


▶에페소

1000년만의 화해

터키 방문 교황, 그리스 정교회 총주교 만나

입력 : 2006.11.30 00:29 / 수정 : 2006.11.30 00:29

터키를 방문 중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방문 이틀째인 29일 기독교의 대화합을 위해 하루를 보냈다. 교황은 터키의 서부 도시 에페소 인근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250명의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미사를 집전하면서 둘째 날 일정을 시작했다. 성경에 ‘에베소’라고 나와 있는 이곳은 성모 마리아가 말년을 보내다가 승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에페소의 유적지. 잠든 7인의 교회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이루어지던 로마시대, 도시에서 추방된 7명의 그리스도인이 동굴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났더니 300여년이 흘러버려 박해가 끝나고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인정이 되어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이지만 흥미롭다. 하지만 성모 성당처럼 위치가 애매하여 그냥 지나쳤다.

        피데 전문점이라 종류가 다양해서, 계란이 들어간 것을 처음시켜 보았는데 맛이 괜찮았다. 터키에서 음식먹을 때 모험을 하기 싫은 분은 피데만 끼니때마다 종류별로 바꿔 드셔도 무난한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쿠샤다시

        믿음직한 우리의 Lonely Planet을 펼쳐 적당한 곳을 물색하다 Szlm 레스토랑을 찾아냈는데, 입구에서 올빽 머리를 한 아저씨가 Lonely Planet을 손에 들고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자기네 식당이 Lonely Planet에 나왔으니 안심하고 들어오라는 뜻.

        앉아서 식사하고 있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 아주머니, 자기가 여기 며칠째 묵는 중인데 여기만한 식당이 없어 계속 여기서만 식사중이라네. 그래도 망설여져 식당 입구에서 메뉴를 보고 있으니 올빽머리 사장은 나에게 제안을 한다. 우리 여섯명이 들어와서 식사를 하면 특별히 와인 한병을 서비스로 주겠단다.

        터키에서 생산되는 유일한(내가 알기론) 맥주인 Efes Pilsen. 고대 도시 에페스의 이름을 따온 듯 하다. 많은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절대 술을 먹지 않는 것에 비해, 터키도 이슬람 신자가 90%가 넘는 국가이지만 맥주를 직접 생산할 정도로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맥주 맛은? 아주 훌륭하다!


▶이즈미르

        Izmir시 복잡한 도심지에 우뚝 서있는 십자가 탑을 보면서 경이로웠다. 어쩌면 내가 터키서 본 유일한(?) 십자가 탑이였기 때문이리라 회교국가로서 이슬람사원의 첨탑만(동네마다-산골에도 공식적으로 있다) 보다가 유일하게 보았으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겠는가? 한국에는 십자가가 너무 많아 무질서 하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망치고 있는 지경인데...
        7대교회중 유일하게 완전한 교회의 건물로 남아있다. 비록 현대식 건물이기는 하지만, 폴리캅 순교기념교회로 교파는 천주교(가톨릭)이다. 성당 내에 폴리캅의 생애도 있다. 프랑스의 화가 레이몽 페레는 성화와 폴리캅의 생애를 그리면서 자신도 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려 넣었다.

▶이즈미르

☞2007,03,20 : 모두 500억 원을 투자하는 KT&G 터키 공장은 이즈미르 동남쪽 80km에 세워지며 ‘에쎄’를 비롯해 연간 2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하게 된다. KT&G는 미국과 몽골에 현지 법인, 중국에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해외에 담배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터키가 처음이다.

이 관계자는 “첫 해외 공장 설립지로 터키를 선택하게 된 것은 터키가 연간 1100억 개비를 소비하는 세계 7위의 담배 소비국이라는 점, 터키 전매청의 민영화에 따라 터키 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쉬워졌다는 점, 또 시장 조사 결과 현지 소비자들에게 에쎄에 대한 인지도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터키 공장을 설립한 뒤 5년 후부터는 투자 금액을 모두 회수하고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터키를 비롯한 중동과 러시아 등에서 인지도가 높은 에쎄를 KT&G의 대표적인 해외 브랜드로 키워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005,10,17 : 리히터 규모 6의 강진이 17일 에게해 부근 터키서부지역과 인접 그리스 섬들을 엄습해 주민들이 놀라 깨어났다고 터키 아나톨리아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지진은 오전 8시45분(현지시간) 터키 제3의 도시인 에게해 연안 이즈미르시와 인접지역에서 감지됐으며 아직 인명이나 재산 피해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1.이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 8

        이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두 가지로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마지막이고 살아있는 자다."라는 것인데 이 칭호는 1장 17,18절(17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에서 온 것이다. 그 하나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주님’이다. 이는 만물의 창조자와 그 만물의 완성자라는 뜻으로 영생의 주요, 모든 인류 역사를 통하여 언제나 계시며 섭리하시는 주라는 뜻이다. 다음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이다. 주님은 이 교회에 부활의 주로 나타나셨다. 순교에 직면한 스미르나 교회를 위해 적절한 모습이었다. 주님은 스미르나 교회가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약속하는 것이다(고전 15:13).


2.칭 찬

(1) 주님을 위하여 환난 당하는 것을 칭찬하였다.

        스미르나 교회가 당하는 환난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환난이었다. 스미르나 교회는 정치적으로 황제숭배 강요 속에서 심한 어려움을 당하였다. 즉 이는 신앙적 핍박이었다. 이 교회 감독 폴리갑은 주후 168년에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하느님은 왜 교회가 환난을 당하도록(1베드4:12) 허락하시는가?(로마5:3; 2코린1:8-9;마5:11-12; 2티모2:11-12)


(2) 주님을 위해 궁핍 당하는 것을 칭찬하다.

        '궁핍'의 헬라어 '프토케이안'(πτωχείαν)은 '외적 핍박으로 생긴 물질적인 빈곤'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절함으로 당한 경제적 제재나 적대 감정을 가진 유대인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가리킨다. 스미르나 교회 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생활 수준이 부유한 편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이 궁핍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예수를 믿는 까닭에 심한 박해를 받아서 직장을 뺏기고 가산을 약탈 당했기 때문이다(히10:34).


(3) 그들의 영적 부요를 칭찬하셨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스미르나 도시 자체는 부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스미르나 교회는 온갖 핍박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궁핍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스미르나 교회를 향해 부요하다고 인정하신다. 즉 외적 환난과 궁핍이 내적 정결과 부요를 가져왔던 것이다(루카12:21; 2코린6:10; 1티모 6:17,18; 야고버2:5). 이는 외적으로는 부요하나 내적, 영적으로 궁핍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정반대이다(3:17). 결국 영육은 반비례한다(루카12:21).


(4) 사단의 회가 있는 교회였다.

        “유다인이라고 자처나는 자들에게서 중상을 받는 것도 나는 안다.” 스미르나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스미르나의 유력한 위치에 오른 자들이 많아서 기독교를 박해하고 방해하였다. 예를 들면 황제 숭배를 이용하여 거짓된 말로 로마 제국을 충동해서 스미르나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을 처형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인 것을 천국 시민권으로 오해함으로 더욱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다. 실제로 초대 교회 여러 이단들과 잘못된 사상들 가운데 유대주의는 가장 포괄적이며 무서운 기독교 진리의 훼방자였다.

        “그들은 유다인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여 하느님의 선민임을 자랑했던 스미르나의 유대인들은 사실상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유대인은 혈통(血統)에 의한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에 의한 이면적 유대인이기 때문이다(로마2:28,29). 스미르나의 유대인은 도리어 사탄의 무리였다. '사탄의 무리'는 자칭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여호와의 무리'라 했으나(민수14:27,35) 그들의 실체는 사탄의 자식이며,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적대자임을 시사한다(요8;31-47). 그들은 교회와 복음을 방해하며 교인들을 핍박하였다. 이들에 대한 언급은 본서 전체에서 자주 나타난다(13;3: 9;9: 11;12: 9,10,12;13:4; 20:7,10 ).


3. 권 면

        스미르나 교회에 대한 서신에서는 책망과 심판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고 곧 바로 권면 즉, 곧 있게 될 고난을 상기시키며 두려워 말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의 신자들이 장차 임할 핍박과 고난을 생각하고 두려워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1)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① 그들이 앞으로 또 받을 환란이 마귀로 부터 오는데, 이 마귀의 시험이 하느님의 허락하에 있기 때문에 두려워말라고 하신 것이다. 마귀는 하느님이 부리는 종이다(욥1:12,2:6;고12:7). ② “보라, 이제 악마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너희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본문은 장차 스미르나 교인들이 받게 될 핍박의 내용이다. 몇 사람만 환난을 당하니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이는 스미르나 교인들 전체가 아니라 몇 사람만 옥에 들어가서 환란을 당하니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스미르나 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유대인이든 당시 정부이든 간에 그 핍박의 주체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마귀'였다. 마귀는 스미르나 교인들을 시험하기 위해 몇몇 사람을 감옥에 넣을 것이었다. 한편 '시험을 받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데테'(πειρασθη̂τε)는 '유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련을 통해서 '시험하다'는 뜻으로 감옥에서 받을 온갖 고난이나 핍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그리스도인들은 감수해야 하며 심지어 순교로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증명해야 한다. ③ “너희는 열흘동안 환난을 겪을 것이다.” 본문은 환난의 기간을 나타낸다. '열흘 동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열흘은 짧은 기간을 가리키거나 실제로 열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창24:55; 민11:19; 다니엘1:12,14; 사도행전25:6,)


(2) 혹자는 십일은 극단적이면서도 완전한 환난을 상징하고 긴 기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민14:22;욥19:3).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십일은 짧은 기간을 나타내는 셈어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0일간 환난을 받으니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10일간의 환난은 한정된 즉, 짧은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다(시30:5;롬8:18).


(2)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다.

“네가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 '네가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뜻은 명령형으로 과거의 순교자들이 순교하기까지 충성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드러냈던 것처럼 스미르나 교인들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야 함을 시사한다. 이것은 당시 극심한 황제 숭배 강요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던 교인들을 향한 단호한 명령이다.


4. 약 속

(1)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셨다.

        죽음에 반대 개념이 ‘생명’이다. 바로 그 생명으로 ‘면류관’를 만들어서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는 ‘영생’을 뜻하는 것이다. '생명의 화관'은 죽기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에게 주어진 상급이다. ‘화관'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1) '디아데마'로 '왕관'을 의미한다. (2) '스테파논'(στέφανον)로 운동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진 '승리의 관'을 의미한다. 두 가지 중 본문에 사용된 면류관은 후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듯이 온갖 핍박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을 가리킨다. 성도들이 천국에 가서 받을 상이 여러 종류가 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어지나 상급은 늘 행함에 관련되어 있다.성경은 '생명의 화관'(묵시록2:10, 야고버1:12) 외에도 '썩지 않는 화관'(1코린 9:25), '자랑의 화관'(1테살 2:19), '의의 화관'(2티모4:8), '영광의 화관'(1베드로5:4), 기쁨과 자랑의 화관(1테살 2:19)등을 그리스도인이 받을 상급으로 진술하고 있다.


(2)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하느님 우편에 계신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 스미르나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 주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은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성경책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을 읽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자이다. 우리가 정말 하느님을 믿는 자라면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승리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는 또한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이기는 자는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며 순종하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이다. 이기는 자는 두번째 죽음의 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죽음의 화는 지옥 형벌을 말한다. 묵시록21:8 “그러나 비겁한 자들과 불충한 자들, 역겨운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 마술쟁이들과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뿐이다. 이것이 두 번째 죽음이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하느님께 대해 충성치 않고 순종치 않는 자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반드시 믿음과 인내와 충성과 순종의 삶을 수반한다.


▶사르디스교회

        Sardes라고도 씀. 고대 리디아의 수도였던 도시. 지금의 터키 마니사 주 이즈미르 가까이에 폐허가 된 채로 남아 있다. 트몰루스 산 기슭에서 갈라져나온 한 지맥에 자리잡고 있던 전략적 요충지로 헤르무스 강 유역의 중앙평원이 내려다보이는 페르시아 왕도의 서쪽 종점이었다. BC 7세기 당시 번성했던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금·은 화폐를 주조한 최초의 도시이기도 했다(→ 주화).

▶마이더스왕의 전설이 깃든 트믈루스산.

        난공불낙의 요새라 하며, 그 곳을 발원지로 흐르는 '황금천'은 마이더스왕이 손을 씻었다는 전설이 있듯이 사금이 체취되어, 최초의 금화를 만들었다고

        사르디스는 허무스(Hermus)강 계곡 평야의 한 복판에 있다. 그 평야 북쪽으로는 트몰루스(Tmolus)의 긴 산맥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산맥에서 여러 구릉과 작은 산들이 톱니바퀴살 같이 뻗어나가고 있다. 그 산 줄기들은 각기 좁은 고원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의 사르디스는 이들 산줄기 중 하나의 위에 있었다. 고도는 450m였다. 그런 위치 때문에 사르디스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산맥의 양측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벼랑과 트몰루스 산맥이 만나는 그 곳에만 사르디스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그것 마저도 경사가 급하고 험준하였다.고레스왕은 사르디스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크로이수스와 사르디스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트몰루스산에 숨어있기만 하면 문제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트몰루스산에 숨어있기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르디스사람들을 가리키며 고레스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살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목숨이다.”고레스는 14일간을 포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에“사르디스성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특별상을 주겠다고 했다. 어느 날 히에로에데스(Hyeroeddes)라고 불리는 한 군인이 사르디스성의 발포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사르디스 군병의 한 명이 실수하여 자기 철모를 성벽 총구 너머로 떨어뜨리고는 그것을 찾으려고 절벽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히에로에데스는 그 곳에는 몸집이 작은 사람이면 기어 올라갈 수 있는 틈바구니가 바위 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날 밤 일단의 페르샤 군인들이 그 바위의 갈라진 틈바구니를 통해 사르디스성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발포대 위에 도달했을 때 그 곳에는 보초병 하나 없었다. 사르디스 사람들은 발포대에 보초가 깨어서 경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다 잠자고 있다가 사르디스는 함락된 것이다

        BC 546년경 페르시아에 정복당했으며 아테네, 셀레우코스 왕조, 아탈리아에 차례로 지배를 받다가 BC 133년 로마로 넘어갔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대도시권의 중심지이자 로마령 리디아 지방의 사법권 집행 중심지였다. AD 17년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재건되어 비잔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나톨리아의 대도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었다. 고대 리디아의 성채와 리디아인 무덤 유적이 약 1,000개 정도가 남아 있다. 사르디스를 발굴한 결과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기술했던 리디아 시대의 도시 유적보다 헬레니즘과 비잔틴 시대의 유적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B.C 330년대 알렉산더대왕의 명령으로 건축이 시작된 이 신전은 ‘다산(多産)과 풍요의 여신’을 위한 것이었다. 전면의 폭이 50m, 길이가 100m, 78개의 석주가 늘어선 웅장한 규모이다. 지금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석주들이 도열해 있고 특별히 이오니아식의 석주 두 개가 18m나 되는 높이로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채 남쪽 끝 부분에 남아 있다

        사르디스교회(아르데미스 신전 오른 쪽 귀퉁이에 있는 비잔틴 시대에 세운 작은 성당이 있다. 사르디스 주교로 가장 잘 알려진 주교는 부활론을 집필한 엘리토(AD 190년경 사망) 주교이다.)

        사르디스는 현재명은 살리히리이다. 사르디스 교회는 1세기 중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사도 바울의 제자이며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던 클레멘트가 사르디스 교회의 첫 주교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사르디스 교회는 이 도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크게 부흥 하였다가 나중에는 쇠퇴하는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사도 요한이 사르디스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의 교회지도자는 누구였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처음에는 아르테미스신전을 빼앗아 예배드리다가(4세기경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권세를 얻었을 때쯤)후에 신도의 숫자가 작아져 아르테미스 신전 담 밖에 돌담을 싸놓고 예배드린 것 같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 당시 신도 수는 매우 많았으나 영적으로는 미약하였다. 때문에 "너는 살아있다고 말하나 실은 죽어가고 있다!"란 책망을 받았다. 사르디스 지역은 황금이 많은 지역으로 재물의 유혹이 있었고 또한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1.주님이 나타나신 모습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사르디스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자로 나타나셨다. ‘일곱 영’은 성령을 뜻한다(1:4,16,20), 그가 ‘일곱 영’을 가지심은, 그가 성령님의 일을 주관하신다는 의미를 포함한다(요14:16,15:26,16:7).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를 뜻한다(1:20). 주님은 교회의 천사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주님의 손에 붙잡힌 자가 되어야 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하시는 주된 일은 내적인 생명을 주어 하느님의 사람으로 구원을 확증케 하는 일이다(요14:16).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시는 성령과 교회를 지키는 사자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제로는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사르디스 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죽은 사르디스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며,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는 소수의 사르디스 교인을 지키고 계심을 시사한다(4절)


2.주님의 책망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사르디스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은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는 외형으로는 빛나지만 내적으로는 신령한 생명이 빈핍(貧乏)한 것을 가리킨다. 이런 교회는 현대에도 많이 있다.

        사르디스 교회의 '행위'가 사르디스 교회의 과거 업적을 말하는지 아니면 현재는 생명을 상실한 모습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다음 절에서 '온전한 것이 없다'는 선언으로 보아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이 교회에 필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그래서 이 교회가 회개하면 성령을 주실려고 성령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셨다. 실지로 사르디스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교적 문화나 주변 환경과 타합함으로 생명력을 잃어 버렸다. 사르디스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한 사실을 단적으로 묘사한 '죽었다'는 표현은   사르디스에서 약 11km 떨어진 언덕같은 수많은 묘지를 암시한다. 이러한 표현이 종종 전통만을 고집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사르디스 교회가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갖추었으나 신령한 모습은 상실했음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3.주님의 권고

        사르디스교회에 대한 주님의 권고는 두 가지다. 1) 그 하나는 빈사상태에 놓여있는 자들에 대한 권고이고 2) 또 하나는 사르디스에 있는 소수의 경건한 성도들에 대한 권고이다

        1) 먼저, 거의 죽게된 빈사상태에 놓여있는 자들에 대한 주님의 권고는 세 가지 명령으로 말씀하셨다.

① 첫째 명령은 ‘깨어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자를 일깨우는 말씀으로 ‘영적각성’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성경은 영적각성을 ‘기도하는 상태’를 말한다(마26:41). “너는 일깨워.” '일깨워'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 그레고논'(γίνου γρηγορω̂ν )은 현재 미완료 시상과 현재 능동태 분사가 결합되어 계속적인 경성(警醒)을 시사한다(, Beck, Robertson).

        이는 사르디스 지역이 난공 불락의 천연 요새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안일에 빠져 세번씩이나 점령을 당했던 사르디스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이. 그리스도께서는 '일깨워'라는 권면을 사르디스 교회에 하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함과(3절) 동시에 사르디스 교회가 비록 죽음 직전에 있으나 완전한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② 둘째 명령이 ‘튼튼하게 하라’는 것이다.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죽어가는 것들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멜레스 아포발레인'(ε̋μελλες α̕ποβαλλει̂ν)은 미완료 능동태 시상으로 사르디스 교회가 부분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굳게 하라'의 헬라어 '스테리손'(στήρισον)은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아직 남아있는 영적 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시사한다. ‘굳게 하라’는 말씀은, 말하자면 100분의 1정도 밖에 남은 것이 없는데 주님은 그것이라도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마12:20).

        “나는 네가 한 일들이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 말씀 중 ‘완전한’이라는 말은 ‘충만한’, ‘가득 채워진’의 뜻이다. 그러니까 사르디스교회는 주님이 보시기에 모자라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믿음도 모자라고, 사랑도 은혜도 열심도 모자른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비록 사르디스 교회가 외적으로 보기에 풍성하며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기준에서 보시기에 허망하였음을 시사한다.


        ③ 셋째 명령이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복음을 들은 때를 생각하고 복음대로 살고 복음대로 살지 못한 것은 회개하라는 것이다. 본문은 사르디스 교회를 향한 세 가지 명령이다. (1) 되새기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므네모뉴에'(μνημόνευε)는 '염두에 두다'란 의미의 '므네모뉴오'의 현재 명령형으로 '항상 상태를 되돌아 보라'는 뜻이다(12:5). (2) 지키어.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이'(τήρει) 역시 '유지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테레오'의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이미 받았고 들었던 복음을 굳게 붙잡아야 함을 시사한다. (3) 회개하라. 이것의 헬라어 '메타노에손'(μετανόησον)은 '돌이키다'는 의미를 가진 '메타노에오'의 부정 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단번에 결정적으로 죄에서 돌이킬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단회적이며 시급한 돌이킴에 대한 명령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심판을 내다보며 죄로 부패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함을 나타낸다.

        “네가 깨어 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본문은 마태24:34과 1테살 5:2을 반영한다.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권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죄 속에 머물러 생명력을 상실한다면 마치 도적이 밤에 들이닥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예기치 못할 때에 오셔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한편 '알지 못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 메 그노스'(ου̕ μὴ γνω̖̂ς)는 제2부정 과거 능동태 가정법을 동반한 이중 부정으로 강조적이다.


2) 다음, 사르디스교회의 소수의 깨끗한 성도에 대하여 주께서 권고하시는 말씀을 살펴보자.

        주님은 이 교회안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의 뜻은 세속주의와 타협함으로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르디스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본문은 대부분의 사르디스 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으나 그 가운데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음을 나타낸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단순한 도덕적 순결로 해석한다. (2) 혹자는 성적인 불결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3) 혹자는 구원받은 자가 사회적인 풍조와 혼합에 물들지 않는 그리스도교적 성결로 해석한다(2코린7:1, ).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당시의 사르디스 교회가 처한 입장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이나 성적인 범죄와 같은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내적이고 기독교적인 문제였으며, '옷이 더럽다'는 것은 기독교적 순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고전8:7; 고후11:2; 유다1:23). 이러한 옷에 대한 예는 양모 산업이 발달하여 옷에 대해 관심이 많던 사르디스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한편 '몇 명'의 헬라어는 '올리가 오노마타'(ο̕λίγα ο̕νόματα)로 문자적으로 몇 이름들'이다(사도행전1:15; 묵시록11:13). 이는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하느님께 기억된 바 됨을 시사한다.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흰 옷'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최후에 그리스도인이 하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 성결'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3) 혹자는 '죄나 이교도적인 혼합에서 분리시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사르디스 교회의 교인들은 외적인 겉모습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정결과 이교(異敎)와의 분리된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함께 다니리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그와 함께 교제함을 표현하는 것으로(창5:22; 요:6,7) 단순히 현재적인 교제는 물론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교제를 시사한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자격'은 종말에 있게 될 심판의 기준에 타당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2:7,17,27,28) 하느님의 은혜로 선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누리는것을 시사한다.


4.이기는 자에 대한 주님의 약속

        본절은 사르디스 교인들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약속이다.

1)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는다고 하였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승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르디스 교회의 경우 다른 소아시아의 교회와는 달리 외적 핍박이나 특별한 이단 그리고 신비주의가 언급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문맥과 사르디스 교회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세상의 부패나 타협, 안일함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한편 승리자에게 주어질 첫번째 약속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희게 되었으며(7:14) 교제를 통해 하느님의 거룩함과의, 영광을 닮아(18절; 6:11; 7:9,13; 19:14) 하느님 나라에서의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받음을 시사한다.


2)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루카10:20).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생명의 책'은 신,구약 성경에서 자주 언급된다(13:8; 17:8; 20:12,15; 21:27; 출32:32; 시69:28; 루카10:20; 필립피4:3). '생명의 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의미하였으며(출32:32,33), 신약성경에서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여 그리스도의 피로 의로워진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하느님 나라에 속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13:8 ;17:8; 20:12,15; 21:27; 루카10:20; 필립피 4:3).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승리자를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로마8:38,39)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시민권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3) 그 이름을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신 것이다(마태 10:32; 루카12:8-9; 마태 7:23).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세번째 약속으로 마태10:32을 반영한다(마르8:38; 루카9:26; 12:8).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공적(公的)으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증언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게소'는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자신을 의지하여 승리한 자들의 이름을 하느님과 천사들 앞에서 증언하심으로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시민임을 확인하실 것을 시사한다.

        6절 “귀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온 우주적인 경각심을 촉구하는 명령의 말씀으로써 이 메시지는 끝나고 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주목해서 들어야 한다. 비록 한두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말씀인 것같이 보이지만, 그 말씀은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말씀이시다.


▶필라델피아교회

        로마 제국의 도미시아누스 황제(81-96년 재위)는 말년에 자신을 '주님이요 하느님'(Dominus et Deus)이라 자처하며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유대교인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에페소 일대 아시아 속주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 신앙을 굳건히 지킬 것을 촉구한다. 성서에서 '일곱'이란 전부를 가르키는 충만한 숫자이기 때문에 묵시록의 일곱 교회는 세상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에페소 일대 아시아 지방은 사도 바오로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지만 1세기 말엽 요한계 문헌이 씌어질 당시 이 지역은 사도 요한의 영향력이 컸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거의 모든 성당들이 요한 성당으로 명명되었지만 바오로 성당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사르디스(지금의 샤르트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옛날의 필라델피아(현재 알라쉐히르 읍내)가 있다. 요한 묵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스미르나 교회와 함께 꾸중이 아닌 칭찬을 받은 곳이다(요한 묵시록 3,7-13).

        14세기 주변 모든 곳이 오스만 투르크군에게 점령당했을 때에도 필라델피아만은 그리스도교 도시로 자체 방어를 하다가 1379년 비잔틴 황제 요한 5세와 오스만 투르크 술탄 무라트 1세 간의 정치적 거래로 오스만 제국에 편입된 곳이다. 위의 사진은 현재 남아 있는 비잔틴 시대에 지은 사도 요한 성당 길 건너편으로, 원래는 이곳까지 모두 성당터였으나 현재 개인집들이 들어서 있는 상태이다.

        사르디스에서 동남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옛날의 필라델피아, 지금의 아라쉐히르가 있다. 이 곳은 사르디스와 페르가몬, 그리고 라오디케이아와 히에라폴리스 사이에 위치하여 중요한 교통요지 이었으며, 농업과 가죽제품, 직조업이 주요 산업이라고 한다.

        칭찬받은 교회터도 알 수 없이 사라졌다.지금의 유적도 기원은 알 수 없다.거대한 "성전의 기둥"두 개만이 상징적으로 남아서 순례자들을 맞는다. 이곳은 농업과 가죽제품, 직조업이 주요 산업이며 농산물로는 포도를 재배 하였는데 소아시아 내의 300여 교회에서 쓰는 성찬식 포도주를 무료로 공급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고한다
        지금도 이 곳에 수십km의 포토밭이 펼쳐져 있다. 또 필라델피아는 아랍인들의 침략속에서도 끝까지 남아있었던 기독교의 마지막 보루였었다.


1. 이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


1) ‘거룩한 이, 진실한 이로 나타났다.

        “거룩하고 진실하자.”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하기오스, 호 알레디노스'(ο̒ α̋γιος ο̒ α̕ληθινός)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 진실한 자'를 의미한다. '호 하기오스'(ο αγιος)는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으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그의 신성과 메시야성을 나타내고 있다(마르1:24; 요한6:39; 사도행전 2:27; 13:35; 히브리7:26) 또한 '호 알레디노스'(ο̒ α̕ληθινός)의 의미는 진실한 자이다. 이것은 구약에서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나(이사야65:16)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메시야로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는 분이시므로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언급되었다.


2)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로 나타나셨다.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이사야서 22:15-25을 반영한다. 이사야서에서 국고를 맡고 있는 셉나 대신에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다윗의 집 전체를 관리하는 권세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서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집 즉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서 하느님 나라의 특성인 영생의 수여권을 시사한다.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을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신다.

        한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해석으로 당시 필라델피아의 정황을 반영한다. 당시 필라델피아에 많이 거주하였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 살던 필라델피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이'라고 계시한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선민 의식에 대한 반론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천국의 주권을 가진 메시야이심을 강조함으로 필라델피아 교인들을 위로하신 것이다(1:18; 마태28:18; 에페소1:22; 히브리3:6). 하여튼 열쇠는 주권의 싱징이다. 주님은 천지와(마28:18), 만물과(에페소1:22), 교회와(마태16:18), 음부와 사망(1:18)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2.주님의 칭찬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보라,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 너는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필라델피아 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힘이 약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μικρὰν ε̋χεις δύναμιν)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필라델피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등의 외적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낸다. 한편 '지키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에테레사스'(καὶ ε̕τήρησάς)는 반의적인 강조 표현으로 문자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를 의미한다. 이는 필라델피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9절)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았음을 시사한다.


3.권면

1) 내가 곧 간다.

“내가 곧 간다 .” 본문은 본서의 중심 사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1) 심판의 측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한 자들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목적으로 한다(마24:48-51; 살후 1:7-9). 이는 에페소(2:5), 페르가모(2:16) 및 사르디스 교회(3절)에 임하신 모습이다. (2) 축복의 측면. 본문에서는 심판의 경고가 아닌 충성된 필라델피아 교인들을 향한 축복의 재림의 약속을 나타낸다(2:16; 22:7,12,20).


2) 아무에게나 화관을 빼앗기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굳게 지켜'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κράτει)는 현재 명령형 시제로 이제까지 필라델피아 교회가 지켜온 믿음을 더욱 지속적으로 공고히 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화관'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선수가 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히12:1-4) 필라델피아 교인들도 지속적으로 영적 무장을 통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의 말씀을 지켜 승리해야 함을 시사한다.


4.약속


1)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

“보라, 나는 아무도 닫을 수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 ” '열린 문'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남북으로 로마와 소아시아의 수도 에페소를 연결하는 필라델피아의 지리적위치 때문에 이를 '선교의 문'으로 해석한다. (2) 혹자는 '그리스도의 문'이나, '기도나 순교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직집나아가는 길'로 해석한다. (3) 혹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으로 해석한다.     이 가운데서 세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2절과 본서의 종말론적(終末論的) 성격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구원의 문을 닫을 사람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하여튼 성경는 여러가지 문에 대한 기록이 있다. 마음의 문(3:20), 의의 문(시118:19), 전도의 문(1코린16:9),  천국문(4:1)등이 있다. 본문에서는 ‘천국문’을 말한다.


2) 유대인들이 굴복하리라는 것이다.

        “보라, 나는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이렇게 하겠다. 그들은 유다인이라고 자처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필라델피아 교회가 처한 문제는 외적인 황제 숭배나 핍박같은 것도 아니었고 부도덕하게 혼합주의로 이끌어 가는 이제벨주의나 니콜라오스파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이 처한 위기는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혈통적인 면에서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자신들만이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나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함으로 사탄을 추종하는 자들 즉 '사탄의 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혈통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이면적(裏面的)인 것임을 망각하였다(로마2:28,29).

        “보라 나는 그들이 와서 네 발에 앞에 엎드리게 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너를 사랑하나든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다(이사야 45:14; 60:14).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믿는 바와는 반대로 유대인들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와 굴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에 대해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회심이라고 해석하나(로마9-11장) 문맥상 본문은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인하는 '사탄의 무리'인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심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는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인한 혈통적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이면적이고 영적인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굴복케 하심으로 메시야이신 당신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내신다.


3) 시험을 면케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네가 인내하다는 나의 말을 지켰으니,”'나의 인내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인내함으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라'는 명령으로 해석한다(루카21:19; 히브리10:36). (2) 혹자는 '인내로써 죄많은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2테살3:5;히12:3)

“땅의주민들을 내가 시험하려고 온 세계에 시련이 닥쳐올 때에 나도 너를 지켜 주겠다.” '시험의 때'에 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혹자는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개인이 혹은 교회 공동체가 겪는 고통으로 해석한다. (2) 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느님의 진노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시험의 때'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면하게 하리니'와 상관 관계를 형성하여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면하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소 에크'(τηρήσω ε̕κ )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요한 17:15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중에서 밖으로)가 사용된 것은 환난 가운데서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본문은 필라델피아 교인들이 현재 처하고 있는 고통에서 보호받게 될 것을 말한다고 해석한다. (2) 혹자는 야고버 1:27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ε̕κ)를 '아포'(로부터)의 의미로 보아 환난에서 떠나 보호를 받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는 장차 필라델피아 교인들이 환난 그 자체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으로 해석한다.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시험의 때'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임할 하느님의 진노 또는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순종하며 그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사단의 역사로 인한 고난은 받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임할 하느님의 진노는 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장차 온 세상이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본문은 앞서 언급된 '시험의 때'에 대한 보충문이다. 본서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교회를 대적한 비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6:10; 8:13; 11:10; 13:8,14; 17:8). 그러기에 본절의 '시험할 때'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가 당하는 일반적인 환난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느님의 진노의 때를 가리킨다.


4) 성전의 기둥에 그 위에 이름을 기록한다고 하였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 하느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아 다시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 ” 본문은 당시 필라델피아 교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성전 기둥'을 비유로 하고 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잦은 지진으로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파괴된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 기둥뿐이었다.

        지진과 폐허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전 기둥을 본 필라델피아 교인들에게 하느님이 거주하시는 하느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승리자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내가...이름을 그 사람 위에 새겨 주겠다.” 본문은 필라델피아 교인들 중 승리자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 종류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름을 부여받는 것은 당시 필라델피아 교인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다. 필라델피아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네오가이사랴'(Neocaesare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후에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다(A.D.70-79). 이러한 경험을 한 필라델피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여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 하느님의 이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느님의 이름이 주어졌다(민6:27).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리한 필라델피아 교인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낸다(22:4)

        (2) 하느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하느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이 하느님의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소유함을 시사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것으로(필리피3:20) 그때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할 것임을 암시한다.

        (3) 나의 새 이름.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새 이름, 곧 다른 모든 권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과 인격 그리고 성품을 나타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이긴자들에게 주어짐을 의미한다(19:12) 다른 하나는 구속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낸다(사62:6;65:15).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이 말씀을 보면, 묵시록의 말씀은 택함을 받은 성도에게 국한하여 주신 말씀이다. "귀 있는 자"는, 영적(靈的) 청취력(聽取力)이 있는 자니 이는 곧, 택함을 받은 자이다. 누구든지 영리(靈理)를 식별(識別)하는 자는 그 자신이 택함을 받은 자라는 신념(信念)을 가질 수 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란 말을 보니, 이 개체 교회에 보낸 서신이 실상은 모든 교회들을 목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티아디라교회

        티아디라라는 도시는 별 보잘 것 없는 도시였다.

        페르가모에서 남동쪽으로 60km가게 되면 아키사르(Akhisar)라는 현대 도시가 있다.
이곳이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그 규모나 중요도에 있어서 가장 보잘것없는 도시인 티아디라(Thyateira)이다. 이 도시는 B.C290년에 셀류코스 니카토르가 그 도시를 재건립하고 실제로 그곳에 일단의 마케도니아 군대를 주둔 시켰을 때부터 중요성을 띠고 등장하게 되었다.

        티아디라는 결코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리쿠스 계곡의 주요 도시였다. 아시아의 수도 페르가모를 가기 위해서는 티아디라를 거쳐야 했는데, 티아디라 도시 자체보다는 오히려 더 큰 도시인 페르가모를 지키기 위한 초병의 임무를 가진 전략적인 요충지가 바로 이 티아디라 지방인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역사적인 기능은 페르가모가 저항하기 위해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침략 행위를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아데미(Artemisa)와 아폴로(Apollo) 신전이 있었지만 특별히 유명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황제 숭배의 중심지도 없었다.

        그러나 티아디라는 다른 여느 도시들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그 근처에서 발견되었던 비문에서 나타났다. 티아디라는 양모 산업의 중심지였으며 염색 산업으로도 유명했다. 자주빛 염색은 엄청나게 비싼 품목이었다.

        그래서 티아디라에는 아시아의 여느 도시들보다도 무역 조합들이 많았다. 어떠한 장사나 업자도 상업 조합의 일원이 되지 않고서는 번창하거나 돈을 벌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상업 조합을 하는 사회적인 활동들은 이교의 신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 무역 조합원들은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이 식사는 신들에게 바쳐지고 남은 술잔과 함께 식사하고 끝을 맺는다. 더구나 이 상업 조합 축제는 먹고 떠드는 모임이었으며 술 취함과 부도덕한 행위가 그 날 중에 벌어졌다.
        티아디라 사람들은 트림나스 신을 철저히 숭배했고, 그들의 활동은 계조직을 단위로 주로 이루어졌으므로 티아디라에서 계조직은 트림나스 신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신전에 재정을 헌납해야 했기 때문에 계조직원들은 계돈의 일부를 트림나스 신전에 바쳐야 했다. 그들이 트림나스 신전에 제사를 드리는 날은 곧 곗날이 되었다. 그들이 트림나스 신전에 모여 제사를 드릴때면, 술을 마시고,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고 즐긴다. 제사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 신전에서 일하는 승려들과 음행으로 들어간다.

        티아디라의 계조직이 트림나드 신전의 음란한 제사와 관련되기 때문에, 당시 티아디라 교인들 중에는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없이 신전의 제사와 이어지는 음란을 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티아디라 교회에 대한“이제벨을 용납하고 행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는 책망이 바로 이것이다.(요한묵시록 2장 20절)

        그런데 빌립보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은 자주 장사 루디아는 바로 이 티아디라에서 왔다(사도행전16:14). 자주빛 염색은 엄청나게 비싼 품목이었다. 그렇다면 루디아는 고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물건을 팔고 있었던 귀부인이었음에 틀림없다. 역시 상업 조합 조합원이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그는 이 조합을 탈퇴하여 부와 명예를 버렸을까?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였을까?

        만약 후자라면 이제벨과 루디아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제벨은 자칭 예언자라고 하면서 이교의 상업 조합 모임에 참가해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가르쳤다. 그녀는 기독교인에게 자유를 얻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막심한 악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교회에 입교했을 때 금지했던(사도행전15:20) 행음과 우상의 제물을 허락하였다(묵시록2:20). 또 이제벨이 유명한 무당 삼바데와 연관이 있다는 설과 이 여인이 교회 감독의 부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녀는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을 주시겠다(묵시록2:26~28)"고 약속하셨다.


1.주님이 나타나신 모습

        “불꽃 같은 눈과 놋쇠 같은 발을 가진 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불꽃 같은 눈”은 주님의 전지성을 말한다(창4:9;사도행전5:3). ‘놋쇠같은 발’은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뜻한다(묵시록19:15).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습은 티아디라에서 숭배하던 태양신 '아폴로'와 거짓 예언자 '이제벨'(20절)을 염두에 두고 경고하시는 것으로 그들의 우상 숭배와 행음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당시 청동업이 발달한 티아디라에 사는 교인들에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생생한 화면처럼 느껴지는 계시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1:14,15). 한편 '하느님의 아들'이란 언급은 일곱 교회 서신의 서두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 중에서 본절에만 나타난다. 이는 시2:7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위엄을 강조하며, 티아디라 지방의 우상이면서 제우스의 아들로 여겼던 아폴로나 황제와 대조를 이루어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시사한다.


2.칭찬 

        1) 그들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있음을 칭찬하였다.

        페르가모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은 페르가모 교회가 지닌 성숙함에 대한 것이었다. 본절에는 다섯 가지 칭찬 덕목이 나타난다. “사업”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ε̋ργα)는 에페소 교회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연이어 언급되는 '사랑', '믿음', '섬김', '인내' 등의 제반 덕목을 포괄한다. “사랑”은 에페소 교회가 부족했던 덕목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규범이다(마태22:37-40; 1코린 12:31-13:3). “믿음”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중심되는 삶을 가리킨다. 그런데 '믿음'보다 '사랑'의 덕목이 먼저 언급된 것은 티아디라 교회가 믿음보다 '사랑'을 강조한 듯하다. 그래서 말씀과 믿음의 바탕이 없는 사람들이 '이제벨'같은 이단을 수용한 듯하다. “섬김과 인내” 이는 '사랑'의 외적 표현으로 섬김은 가난한 자의 구제하는 일을 말한다. 이는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덕목이다(로마15:25; 1코린16:15).


2)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나음을 칭찬하셨다.

        “처음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도 안다” 이것은 에페소 교회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으로(4절) 신앙의 진보가 있다는 말이다. 많다는 것은 양적인 결실을 가리킨다. 티아디라 교회의 신앙 상태가 현저하게 진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에페소 교회가 믿는 도리를 강조하다 사랑을 잃었으나 티아디라는 사랑이 식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사랑의 사업이 처음보다 더 많아졌음을 나타낸다.


3.책망 20-21

1) 자칭 예언자라 하는 이제벨을 용납함을 책망하셨다 20

“그러나 너에게 나무말 것이 있다. 너는 이제벨이라는 여자를 용인하고 있다. 그여자는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잘못가르치고 속여 불륜을 저지르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한다” 역사적 이제벨은 시돈의 왕녀이며 아합왕의 왕비였다(왕상16:31;왕하9:7). 바알신을 이스라엘에 도입하여 엘리야와 결투한 악녀의 대표였다. 그의 성격은 우상 경배와 음행이었으며 이 점이 페르가모 교회의 발람의 교훈과 같았다.

        여기 이제벨은 누구냐? 상징적 이름으로 이제벨과 같은 성격의 어떤 여인 또는 모임으로 본다. 그는 예언자로 자칭하던 티아디라의 유력한 사도였을 것이다. 당시 티아디라는 성적 부도덕 상태에 있었다. 어떤 모임에 가입하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관례였고 또 그런 모임에는 성적 부정행위가 동반하였다. 티아디라 교회의 잘못은 이런 여인을 용납하고 경계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이제벨의 행위는 에페소와 페르가모 교회의 니콜라오스파나 발람의 가르침과 유사하다(14,15절).


2)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내가 그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었지만, 그는 자기 불륜을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주었으되.~ 하지 않는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도카...우 델레이'에서 '에도카'(ε̋δωκα)는 부정 과거형으로 결정적인 경고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나타내며, '우 델레이'(ου̕ θέλει)는 현재의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하여 회개하기를 원치 않음을 나타낸다. 거짓 예언자인 이제벨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주어졌다. 그러나 '이제벨'은 주어진 회개의 기회조차도 거부함으로 하느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22,23절). 하느님께서는 죄인이 그 죄 값으로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시므로 아무리 악한 죄인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로마2:4).


4.주님의 징계 22-23

티아디라 교회는 하느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회개를 안하니 징계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1) 병상에 던짐

        “보라,내가 그를 병상에 던져 버리겠다.” '보라'는 감탄사로 단호한 심판적 경고에 앞서 티아디라 교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한편 '병상'의 헬라어 '클리넨'(κλίνην)은 '잠자는 침상', '잔치용 상', '환자용 침상'의 병상을 가리킨다(출21:18). 본문에서의 '클리넨'는 죄로 인한 심판과 관련되어 우상 숭배를 위한 상이나 음행을 위한 침상이 병상으로 바뀌어짐을 암시한다. 실지로 소아시아의 비문들은 음행의 결과로 질병에 걸려 죽은 사실들을 전하고 있다. 성병은 눈에 보이는 심판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2) 환난에 던짐

“그와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 함께 저지르는 소행을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속으로 던져버리겠다.” '그로 더불어'는 이제벨과 짝한 것을 가리킨다. 이제벨과 뜻을 같이하여 음행하거나 우상 숭배한 모든 자들이 회개치 않는다면 이제벨과 동일하게 심판을 당할 것이다. 한편 '큰 환난 가운데'는 이제벨에게 주어진 심판, 즉 병상에 던져버림을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는 티아디라 교인들을 유혹하여 행음케 하고 우상을 숭배케 했던 이제벨은 물론 이제벨과 마음을 같이하여 회개치 않는 범죄한 교인들에게도 동일한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3) 자녀에게 징계하심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겠다. '그의 자녀'에 대한 견해는 실제로 음행한 자들의 자녀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심판은 엘리야를 통해 이제벨에게 경고되고 성취되었던 형벌과 일치한다(1열왕 21:21; 2열왕9:6-37). 이제벨의 자녀들을 치심과 같은 것이다(1열왕21:29; 2열왕10:7,8). 따라서 본문은 이제벨을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의 형벌을 받는 것이 엄연한 사실임을 보여 준다.


        “내가 사람의 속과 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것을 모든 교회가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교회'라는 언급은 본 서신이 특수한 상황 아래 있는 교회에 보내졌지만 보편적인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는 시편7:9의 말씀을 반영한 것으로 하느님만의 신적 속성을 그리스도도 소유하심을 시사한다. '뜻'(네프루스,νεφροὺς)은 문자적으로 '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의 가장 깊은 생각과 감정의 총체'를 말하며, '마음'(카르디아스,καρδίας)은 '감정'(롬9:2)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내적 생각과 사상과 감정 모두를 알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자기 계시를 통해 티아디라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하게 하고 회개케 하고자 하신다.


        “나는 너희가한 일에 따라 각자에게 갚아 주겠다.” 본문은 하느님의 공의의 속성을 엄격히 드러낸 말로서 하느님이 인간의 중심을 살피실 뿐 아니라 그 행위에 따른 남김 없는 보응을 행하실 것을 가리킨다(마태16:27; 로마2:6; 갈라6:7). 그러나 하느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21절).


5.남은 성도에게 대한 언약 24-29

“티아디라에 있는 너희 나머지 사람들, 곧 그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사탄의 깊은 비밀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이들에게 나는 말한다. ”

        '사탄의 깊은 비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구원을 얻으려면 신비한 지식을 터득해야 하며 자신들만이 그러한 지식을 가졌다고 하는 영지주의자들의 학설을 말한다고 해석한다. (2) 혹자는 이제벨이 직접 '사단의 깊은 비밀'이란 말을 사용하였으며 마땅히 우상 숭배나, 음행, 또는 이교도들의 깊은 생활을 알아야 더 철저한 영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해석한다. 위의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티아디라 교인들은 죄가 풍성한 곳에 은혜가 더하다는 말씀을 이용하여 죄를 실제로 체험함으로 은혜를 더욱 값지게 느낄 수 있다는 이제벨의 유혹을 당하였다.

        “너희에게는 다름 짐을 지우지 않겠다.” '다른 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이제벨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는 25절의 명령을 제외한 다른 것으로 본다. (2) 혹자는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난 음행이나 우상 숭배에 관한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이외의 것으로 보기도 한다(사도행전 15:28,29).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티아디라 교회는 이제벨의 가르침을 따라 음행과 우상 숭배를 함으로 책망받았다(20절). 그러므로 '다른 짐'은 음행과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제외한 다른 교훈을 가리키는 듯하다.

        “다만 내가 갈 때까지 너희가 가진 것을굳게 지켜라” '너희가 가진 것'은 티아디라 교인들이 처음에 가졌던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진리와 소망과 특권을 가리키며, '내가 갈 때까지'라는 말은 성도들의 궁극적인 승리의 날인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의 날을 의미한다. 한편 '굳게 잡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사테'(κρατήσατε)는 단순 과거 명령형으로 단번에 진리라 굳게 붙잡고 변치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티아디라 교인들은 이제벨의 유혹에 의해서 음행과 우상 숭배 그리고 혼합주의의 위험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이제벨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기독교의 진리를 굳게 변치 말 것을 권고하신다.


        “승리하는 사람, 내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는 ”라는 언급은 일곱 교회에 보내진 서신의 공통적인 형식으로 진리를 굳게 붙잡으며 그리스도의 권면을 듣고 순종하는 승리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또한 '끝까지'는 온전한 승리자가 되는 시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25절).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연속되는 사단과의 투쟁이며 그 가운데 인내해야 함을 암시한다. 한편 '내 일'(에르가무)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는 말씀과 연관된 것으로(23절) 이제벨주의자들의 교훈과 가르침에 정반대되며(22절) 이미 티아디라 교회가 시행하여 칭찬받는 것의 내용을 의미한다(19절).


1)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줌

        “민족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겠다.”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첫번째 약속으로 시2:8,9을 반영한다. 시2편은 메시야의 주권 사상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부터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것처럼 세상 끝에 그리스도인들도 그 권세에 참여함을 시사한다(1:6; 3:21; 9:10; 11:6;20: 6;22:14; 마태28:18).

        “옹기그릇들을 바수듯이 그는 쇠 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듯이”본절은 시2:9의 인용으로 철저하게 정복하시는 메시야 그리스도의 권세의 실체를 나타낸다. '다스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마네이'(ποιμανει̂)는 '양을 치다'라는 의미를 가진 '포이마이노'의 미래 능동태로 뒤이어 언급되는 '깨뜨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쉰트리베데타이,συντρίβησεται'(산산 조각이 나다')와 대조를 이룬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재림 시에 행하실 권세가 한편으로는 '양을 치듯'하며,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깨뜨리는 심판으로서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셔서 악에 대해 심판함과 동시에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 승리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임을 나타낸다. 한편 '받은 것이'의 헬라어 '에일레파'(ει̕ληφα)는 완료형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만국을 다스리는 절대적 왕권을 부여받았음을 암시한다(시2:1-5; 필리피2:9-1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능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기인한 것임을 자신이 소유한 권세의 신성(神性)을 강조하고 있다(22:29 ;요한17:18).


2) tot별을 주심

        “내가 또 그에게 샛별을 주겠다.”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주신 두번째 약속이다. 여기서 '샛별'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이를 왕의 지배권을 상징한다고 보아(민24:17;마2:2)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인내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영광스런 승리로 해석한다. (2) 혹자는 영광의 상징이거나, 구원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3) 혹자는 22:16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자신으로 해석한다(루카23:43).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본문은 시2편을 반영하며, 그 의미 역시 시2편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동행하심으로 어두움에 대한 온전한 승리를 획득할 것이다.

        “귀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본문은 일곱 교회에 보내진 서신의 결론적 어구로서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권면과 인도에 귀기울여 청종해야 함을 강조하는 명령이다.


▶페르가몬교회

        악히살에서 페르가몬(Bergamo)로 가는 길은 소나무가 울창한 산길이다. 그곳에만 소나무가 많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산을 넘어서 약 한 시간 동안 차로 광막한 평야를 달렸는데 지하에서 물을 공급하는 농토가 펼쳐져 있다.  야산에는 양떼들이 보였고 소떼를 먹이는 목장도 군데군데 보였다. 페르가몬은 손으로 짜는 카페트 산지로 유명하므로 우리는 카페트 공장에도 가보았다. 그들의 카페트 짜는 방법은 우리 조상들이 명주나 베를 짰던 것과 같은 방법이며 또한 우리 조상과 마찬가지로 풀뿌리와 잎을 염색원료로 사용했다. 그렇게 염색하여 얻은 색은 변하거나 퇴색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100% 면이나 실크, 또는 혼방으로 짜는데, 한 사람이 하나를 제작하는 데에 크기에 따라 2년에서 4년이 걸린다고 한다. 카페트 생산은 주로 여자들이 담당하였다.

        페르가모는 에페소나 스미르나처럼 상업이나 무역의 주심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으며, 문화와 학문의 도시였다.

        페르가모에는 20만 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다. 당시의 책은 모두 양피지에 손으로 필사한 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규모의 방대함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양피지(parchment)라는 말은 Pergamos(페르가모) = (페르가모)라는 이 도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만을 봐도 이 도시가 문화의 도시요, 학문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르가모는 뱀의 신을 숭배, 이 뱀신의 신전에는 병원과 의사 수련생들이 있어서 각처로부터 많은 환자들이 병 치료를 위해 모였다고 한다.

        산언덕에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이 있었고, 또한 로마 황제 숭배의 주심지이기도 했다.

        페르가모는 스미르나 북방 100Km 지점에 있다. 페르가모의 마지막 왕인 아달루스 3세는 그의 영토를 로마에 헌납하였다. 그러자 페르가모는 소아시아의 수도가 되었다(주전 130년 경). 이곳은 에페소와 스미르나가 상업적으로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한 반면에 문화적인 측면에서 아시아의 중심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의학교가 있었으며 장서 20여 만권(양피 두루마리)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으며 책을 만드는 종이인 양피지의 생산지였다. 종교적으로 치료의 신으로 이해되었던 '아에스쿨라피스'(Asclepius)라 불리는 뱀신과 주신인 '제우스'(Zeus), 그리고 아테네 신전 지도자 '디오니소스'(Dionysos) 등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지였다.


▶페르가모 신전 및 병원

        세계 최초로 정신치료를 실시한 아스크레피온(ASKLEPION) 병원이다. Asklepions은 아폴론의 아들로 건강과 약의 신이었다. 버가마에 있는 Asklepion는 이 신의 이름의 딴 의료센터를 말하며 초기 에게문명을 꽃 피웠던 페르가몬의 중요한 의료센터였다. 이 곳은 다른 병원들과는 치료방법이 다르다. 물과,진흙,스포츠,연극 그리고 도서관 등으로 병을 고쳤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현재도 매년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입구 근처의 좌측 건물은 Asklepions 사원이다. 이 사원은 AD 150년에 건강의 신의 이름으로 기증되었다. 지붕은 돔으로 되어있으며 신전의 벽은 무려 3M나 될 정도로 두텁다. 내부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BC 4세기에서 AD 세기까지 번성한 이 병원은 대지진으로 파괴되었으며 아직도 유적이 남아 있다. 166년경 전염병이 이 페르가뭄을 휩쓸었을 때 제우스 제단 근처에서 발견된 한 비문에는 "오, 위대한 제우스 신이여, 아스클레피우스(건강의 신)를 섬기는 우리 도시를 파괴하는 이 재난을 쫓아 주옵소서"라고 써있었다. 발굴과정에서 발견된 많은 비문들은 당시의 치료법을 자세히 적고 있다. 하드리안 황제시대 만들어진 양쪽에 기둥이 늘어선 화려한 대리석 도로가 있는데 폭 20m, 길이 820m로 길 양편에는 15m의 석주(石柱)가 세워져 있다.

        이 길은 소위 "성스러운 길"이라 불렀다. 환자들은 아스클레피온에 들어오면 우선 맨발로 성스러운 길의 대리석 바닥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이 과정이 벌써 치료의 시작이다. 죽음의 신인 하데스로부터 멀어지고 건강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신에게 가까이 간다는 믿음 때문에 안도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정원 한 가운데서 흘러나오는 샘물로 목욕을 한다.

        지금도 흐르고 있는 이 물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사능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이 판명되었다. 목욕이 끝나면 환자는 지하터널을 통해 치료실로 들어 가는데 80m 길이의 이 지하터널은 매우 조용하고 어두우며, 샘물에서 물이 지하터널의 입구 계단을 따라 흘러 들어 오면서 작은 소리를 냄으로써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게다가 천정에 나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의사들이 작은 소리로 환자들에게 속삭인다. 즉, 환자들에게 생의 의욕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다. 또 의사들은 환자들의 꿈을 해몽해 주기까지 하는데 이 경우도 역시 치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말한다. 사티로스나 갈레누스와 같이 유명한 의사들이 이곳에서 활약했으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ypocrates)도 이곳에서 출생했다 한다


▶세라피스 신전

        페르가모 시내에 있는 세라피스 신전은 원래 이집트 신이기 때문에 "이집트신전"이라 불리기도하며 신전 건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붉은 궁전(The Red Hall)"이라고도 한다. 나중에 기독교가 공인된 후 요한 묵시록의 페르가모 교회에 바쳐지기 위해 바닥을 높여 교회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붉은 교회(The Red Basilica)" 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신전의 26m x 60m 로 되어 있으며 오늘날 건물의 상층부가 붕괴되어 있지만 남아있는 벽의 높이가 19 m에 이르는 대형 신전이었다. 신전의 동쪽 끝에 남아있는 2개의 도움양식은 로마시대에는 보기 드문 건축 양식으로써 오늘날한 쪽은 이슬람 서원으로, 다른 한 쪽은 박물관의 창고로 사용하고있다.

        이 신전의 가장 중요 부분은 3면이 기둥으로 둘러 싸여 있는 데, 이색적인 것은 이 기둥이 당시에 흔했던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이 아니라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기둥으로 되어 있는 점이다. 이 조각 중 하나는 남성의 모습 하나는 여성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집트의 신인 이시스와 세라피스 신으로 추측된다. 또 한가지 특징은 강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즉 이 신전 밑에는 대각선으로 셀리누스 강이 흐르고 있는데 직경 9m의 토관 2개를 묻어 강물이 흐를 수 있도록 했고 그 위에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평평하게 했다.  이 건물은 기독교 공인 후 바닥을 높여 페르가모 교회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약 1~2m 높이의 벽만이 옛날의 교회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세라피스(Serapis)

세라피스는 마케도니아 통치시기(BC.305-30)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국가신이다. 그는 머리 위에 바구니를 얹은 곱슬 머리에 턱수염이 있는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멤피스의 아피스 수소에 대한 예배에서 유래한 세라피스 숭배의 주된 중심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의 학문과 상업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였다. 그곳에 있었던 세라페움(Serapeum : 세라피스의 신전)은 세계의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으며, 기적적인 치료법을 찾아나선 순례자들을 먼 지역으로부터 끌어들였다.세라피스는 첫째로 질병의 치유자이며, 운명을 초월하는 신이고, 오시리스로부터 지하세계의 신격을 계승한 신이다


1.주님이 나타나신 모습

        “날카로운 쌍날칼을 가진 이가 이렇게 말한다.”주님은 ‘쌍날칼’을 가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이는 주님이 이 교회와 싸우려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페르가모 교회가 발람의 교훈을 용납하였고 그것은, 곧 하느님을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페르가모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과 니콜라오스파를  대적하여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한다(16절)


2.칭찬

        “나는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안다. 곧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은 단순히 페르가모 교인들이 페르가모에 살고 있는 것을 안다는 의미보다 페르가모 교인들이 지금 처하여 있는 어려움을 안다는 의미이다.

        페르가모가 황제 숭배와 온갖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기에 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고난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심으로 위로하신다.

        페르가모 교회는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에 있었다. ‘사탄의 왕좌’라는 말은 페르가모가 우상의 중심지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페르가모에는 제우스, 다오니우스, 아데나, 에이스클레피우스의 네 개의 우상의 전각들이 있었고, 또 로마 황제 숭배를 위한 두 개의 전각이 있었다. 이렇게 페르가모는 요한의 때에 아시아에서 우상 숭배의 본부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우상숭배가 심한 페르가모에 무서운 기독교 박해가 있었다.

        “너는 내 이름을 굳게 지키고 있다. 나의 충실한 증인 안티파스가 사탄이 사는 너희 고을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너는 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굳게 지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스'(κρατει̂ς)는 '크라테오'(붙잡다)의 현재 능동태 시상으로 '계속해서 굳게 잡았음을 의미한다(25;3:11). 따라서 이것은 여러 가지 우상과 황제 숭배의 강요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에는 고난과 순교 가운데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한 사람 안디바를 제시한다. '안디바'(안티파스)는 '모든 것에 대적하는 자'란 뜻이다. 터툴리안은 '안디바'가 페르가모 교회의 명성 높은 감독으로 황제 숭배 거절로 인해 불에 타 순교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안디바는 소의 형상으로 만든 구리 우상속에서 화형당했다고 한다. 그때 페르가모 교인들은 겁을 먹고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주님은 그 믿음을 칭찬하셨다.


3.책망

        페르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용납한 교회였다. 그래서 주님께 책망을 받았다. 발람의 교훈이란? 발람은 모세시대의 이방 예언자였다. 그는 모압왕 발락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많은 재물과 높은 지위를 주겠다는 사신의 전갈을 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하느님이 허락지 않으셨으므로 저주하지 못했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에게 모압 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시켰다. 이때 이스라엘이 싯딤에서 모압 여자들에게 유혹되어 우상의 재물을 먹었으며 간음하게 되었다(민25장). 이 범죄로 이스라엘이 하루에 2만 3천명이 죽임을 당했다(고전10:8). 이것이 발람의 방법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페르가모 교인 가운데 바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주는 이를 엄히 책망하신 것이다. 니콜라오스파의 교훈은 발람의 교훈과 같은 것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신약의 큰 제목의 하나로 예루살렘 총회에서 금지했다(사도행전15:29). 이러한 '발람의 교훈'은 신약성경에서(2베드로 2:15;유1:11), 혹은 유대 역사에서 늘 경계의 표적으로 언급되었다.


4.권면

        “그러므로 회개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곧 거에게 가서, 내 입에 나오는 칼로 그들과 싸우겠다”본절은 발람의 교훈과 동일한 니콜라오스파의 교훈에 빠져있는 페르가모 교인들에 대한 권면과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생겨날 일에 대한 경고이다. 그 권면은 '회개하라'는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회복할 것을 의미한다. 만약 회개하여 신앙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심판이 임하게 된다.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에서 '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코마이'(ε̋ρχομαί )는 미래적인 현재 중간태 시상으로 지금 그리스도께서 임하고 있다는 현재성과 김급함을 나타낸다(5; 3:11; 11:14; 22:7,12,20,.). 한편 '내 입의 검'은 '심판의 말씀'을 의미한다(19:15). 마치 하느님이 발람의 추종자들을 칼로 심판하셨던 것처럼(민31:8) 우상이나 황제 숭배와 타협하는 자들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한다(에페소6:17; 히브리4:12).


5.약속

주님은 승리자에게 다음을 약속했다.

        1)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던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으로써(출16:11-15), 이는 예수님을(요6:35) 통해 신령한 만나를 받을 것을 가르친다. 마이어(Meyer)는 여기 "감추었던"이란 말을, 이 세상에는 없고 하늘에만 있다는 의미로, "만나"는 천계(天界)에서 먹는 양식이라고 하였으니, 적당한 해석인 듯하다. 클다더도 역시 이와 비슷한 해석을 취하여 말하기를, "감추었던 만나는 신령하고 놀랍고 영화롭고 참된 양식이라"고 하였다.


        2) “흰돌을 주겠다. 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 승리한 페르가모 교인들에게 두번째로 주어질 것은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이다. 여기서 '흰'것과 '새'것은 장차 천국에서 맞게 될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서에서 중요한 개념 중하나이다. 이 '흰 돌'에 대한 해석은 (1) 혹자는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우승의 기념으로 새겨 주었던 흰 돌로 본다. (2) 혹자는 연회장에서 초대의 표시로 사용한 흰 돌로 본다. 하여튼 '흰 돌'은 하느님 나라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는 상급이며, 영광스런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케하는 상급이다.

        한편 '새 이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그리스도'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해석한다. (2) 혹자는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상태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즉 세상에 감추어져 있으나 장차 드러나게 될 그리스도 자신의 이름이든지(3:12; 14:1), 아니면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이름을 나타낸다. 주님은 시몬을 베드로로, 사울을 바울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새 이름을 주셨다. 장차 성도들은 천국에 가면 주님으로부터 새 이름을 받을 것이다.

▶트로이

        트로이 유적은 아홉 층의 성지가 퇴적된 것인데 트로이 전쟁은 7층의 성지(城趾) 때 일어난 듯하며, 트로이 성 함락은 기원전 1183년으로 짐작한다. 트로이 성 근처에 로마 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하는 아테나 신전의 잔해가 남아 있고, 성채 입구에는 최근에 제작된 트로이 목마의 모형이 세워져 있다.
        목마는 높게 건립되어 꼭대기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목마 안 양편에 벤치가 놓여 있어 60명 정도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500m 고지에 위치한 성채에서는 서쪽으로 말마라해, 남쪽으로는 에게해가 보이고, 서쪽 말마라해 건너로 마케도니아가 보인다.  에게해의 섬들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트로이 전쟁 때 아마 그 섬들 뒤에 그리스 연합군이 숨어 있었을 거라고 안내인이 설명해주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한 사건을 꼽으면서, 그리스 연합군이 헬레네를 구출하기 위해 트로이 군대와 10년 동안 어리석은 전쟁을 벌였다고 썼다. 그리스 연합군은 아르고스의 왕 아가메논,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최강의 용사 아킬레우스, 지장(智將) 오디세우스 등이 사령관을 맡았고, 트로이 측은 트로이의 왕 부리아모스, 무적을 자랑하는 제일 왕자 헥토르, 제이 왕자 파리스가 사령관이었다.
        그리스 군대는 에게해를 건너 공격을 시작했고, 트로이 군대는 트로이 성을 방어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전쟁은 10년이 지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무적을 자랑하는 트로이의 용장 헥토르는 매일 진중에 나와 싸움을 걸었는데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그리스 군대에 헥토르와 대적할 만한 최강의 용사 아킬레우스가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애인을 뺏어간 사령관 아가메논과의 불화로 인해 군령에 불복하고 막사에 칩거한 채 두문불출하였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메논의 독선을 비난하면서 명분이 없는 전쟁이라고 불평했다. 그리스군의 전사자 수는 매일 늘어갔다. 아킬레우스의 여러 친구들이 그의 출전을 권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 바돌로크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갑옷만 빌려주면 나아가서 헥토르와 대전하겠다고 말했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그의 어머니인 여신 데디스가 제우스의 아들이자 올림푸스의 철공의 명인 헤바이스투스에게 의뢰해 만들어준 것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완벽한 무구였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아끼는 갑옷과 투구를 바돌로크로스에게 내주었다. 바돌로크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 입고 그의 창과 방패를 들고 전쟁터로 나아갔지만 헥토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바돌로크로스는 얼마 싸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으며 뿐만 아니라 아킬레우스가 생명처럼 아끼던 갑옷과 투구까지 빼앗겼다.  아킬레우스는 대단히 화가 났다.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것만으로도 원통한데 하나밖에 없는 갑옷까지 빼앗겼으니 그는 이젠 전쟁의 명분보다도 우선 설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킬레우스는 바돌로크로스의 시체 앞에서 애도하며 조사를 읊었다.
        친구여, 인간이란 얼마나 무정한가.
        우리가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무훈을 세워 개선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겠다고 부모님께 맹세했는데 자네가 먼저 쓰러지다니!
        나도 자네의 뒤를 쫓으리라.
        그 전에 너의 원수 헥토르를 쓰러뜨리고 그의 머리와 무구를 되찾기 전에는 자네의 장례식도 하지 않겠다.

        아킬레우스는 어머니 데디스 여신에게 부탁하여 헤바이스투스로부터 새로 갑옷을 맞추어 입고 헥토르와 대전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했다. 출전에 앞서 상심한 얼굴로 아킬레우스를 찾아온 총사령관 아가메논에게 그는 여태까지의 분쟁은 서로에게 근심만을 초래했을 뿐이니 지난날의 일은 모두 물에 흘려버리고 화해하자고 제안했다. 아가메논도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승리를 기원하였다.
        천하무적을 자랑하는 두 용사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하루 종일 사자처럼 싸웠지만 싸움은 막상막하 끝나지 않았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당할 수 없음을 알고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려고 했는데, 아킬레우스가 비호같이 달려와서 그의 앞을 막고 창으로 헥토르의 목을 찔렀다. 헥토르는 쓰러지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승리를 자랑하는 아킬레우스여! 나의 시체를 나의 부모에게 돌려드리고 보상금을 받아라.”“너의 부친 부리아모스가 황금을 산과 같이 쌓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너의 시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지는 않으리라. 너의 시체는 독수리의 밥이 될 것이다.”
        “아킬레우스여, 지금이야말로 너의 마음이 철통같음을 알았다. 그러나 신들의 노하심을 받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의 동생 파리스와 아폴론 신이 너를 쓰러뜨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여 설욕했지만 친구를 잃은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헥토르에게서 피 묻은 무구를 벗기고 그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고 전장을 몇 바퀴 돈 후 진중으로 달렸다. 아름답던 헥토르의 모습이 모래먼지와 피로 물든 진흙으로 뒤덮였다. 성벽 위에서 헥토르의 노부모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헥토르의 시체는 12일 동안이나 진중에 버려진 채로 있었다.
        헥토르이 죽은 지 12일째 되던 날 아버지 부리아모스 왕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을 죽인 원수 아킬레우스의 진영을 찾았다. 만류하는 신하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킬레우스에게도 늙으신 아버지가 계실 것이다. 그도 인간이 아니겠느냐.” 노왕은 아킬레우스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자기 아들을 죽인 무서운 손이었다.  뜻밖에 나타난 노왕을 보자 아킬레우스는 당황했다.
부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말했다. “오오!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부친을 생각해보시오.  그분도 나와 같이 늙으신 몸으로 가슴아파하시면서 아마도 고향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실 것이오.
그렇지만 그대가 살아 있음을 전해 들으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행복해 하시겠지요.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구려.  많은 자식들이 전사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헥토르마저 그대의 손에 쓰러지고 말았소. 지금 내가 온 것은 그대에게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함이니 원컨대 나의 청을 들어주기 바라오.” 노왕의 말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그를 붙들고 함께 흐느껴 울었다. 노왕은 자신의 죽은 아들 헥토르를 생각하고 울었으며, 아킬레우스는 늙으신 부모와 죽은 친구 바돌로크로스를 생각하며 울었다.
        아킬레우스는 노왕에게 말했다. “부리아모스여, 나는 이미 나의 모친으로부터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라는 말씀을 듣고 벌써부터 그의 시신을 돌려보내려고 하던 참이었소.” 아킬레우스는 방에서 나와 시녀에게 명하여 헥토르의 시신을 목욕시키고 아름다운 옷을 입힌 후 시신을 어깨에 메고 나가 노왕의 마차에 실어주었다.

        그리고는 노왕에게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노왕은 아킬레우스의 친절함에 슬픔도 잊고 그의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았다. 향연이 끝나자 아킬레우스는 노왕을 위하여 침실을 제공했고, 헥토르의 장례를 치루는 동안 휴전할 것을 약속했다. 노왕은 아킬레우스의 친절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노왕은 모두 잠든 후에 종복을 이끌고 아들의 시신을 싣고 아가이아 진영을 탈출했다.
        아킬레우스는 온몸의 피부가 가죽처럼 단단하여 화살도 그를 상처 입힐 수 없었지만, 단 하나 발뒤꿈치에 약점이 있었다. 그의 약점을 안 파리스는 다음 전투에서 활을 당겨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쏘아 그를 쓰러뜨려버렸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인간의 약점을 가리켜 ‘아킬레우스의 건(腱)’이라고 하는 것이다.
        트로이 군대는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최후의 전략은 지장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트로이 목마였다. 그리스 군대는 나무로 말을 만들고 그 속에 특공대 300명을 넣어 트로이 성 밖에 놓고 병선을 타고 후퇴하여 근해의 섬 뒤에 숨었다. 트로이 군대는 그리스군이 후퇴하자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성 밖에는 목마가 있었고 목마에는 “아테나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목마 앞에는 그리스의 낙오병 한 사람이 살려달라면서 울고 있었다. 트로이 병사가 그에게 연유를 물으니 자기가 어젯밤 해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뽑혀 바다에 던져졌는데 헤엄을 쳐서 다행히 살아났다고 했다. 트로이 병사들이 목마를 부숴버리려 하자 그리스 병사는 목마를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목마는 아테나 여신을 모신 것으로 만일 부순다면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큰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트로이 병사들은 목마를 성 안에 끌어들여 잘 모시고 그날 밤 승전을 자축하는 향연을 열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트로이 병사들이 만취하자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 유격대원들이 밖으로 나와 성 안에 불을 놓았다. 불을 신호로 그리스 군대는 진격을 개시하여 트로이 성을 함락시켰다. 목마가 높아서 트로이 병사들은 성문을 헐고 목마를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그것도 성문을 헐기 위한 그리스의 술책이었다.

▶트로이

● 신화와 전설이 현실로 돌아온 곳, 트로이

        트로이전쟁은 기원전 13세기경 미케네 시대 말기의 그리스인이 소아시아의 트로야를 공격한 전쟁이다. 호메로스가 쓴 그리스 최고의 서사시인 ‘일리아스’는 이 전쟁이 세 명의 여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읊는다.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가 황금사과 한 알을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지혜의 여신 아테네, 그리고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 사이에 던져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가지라고 충동질했다. 루벤스가 그린 ‘파리스의 심판’에서 그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여신들은 서로 미모를 뽐냈고 저마다 자신들을 선택하면 아름다운 여인, 지혜, 그리고 권력을 주겠다고 했다. 시험에 든 사람은 파리스. 바로 트로이의 왕자였다. 그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줬고 그 덕분에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절세 미녀, 헬레네를 빼앗게 되었다. 전쟁이 뒤따른 것은 당연했고 10년 동안 계속된 이 전쟁에서 그리스군은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 트로이전쟁에서 죽을 운명을 지닌 아킬레우스, 냉정하고 침착한 영웅 오디세우스가 중심을 이루어 아가멤논의 인솔하에 활약하게 된다. 그리스군은 오디세우스가 생각해낸 독특한 책략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를 이용한 전략이다.

        슐리만이 트로이의 유적을 발견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신화나 전설 쯤으로 여겼다.  트루바에 촌락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년경으로 추정된다.

        한때 에게해 교역 중심지로 번영하기도 했지만 멸망을 거듭해서 모두 9개층에 이르는 도시 유적을 형성하게 되었다. 좁은 면적에 시대를 달리하는 9개의 도시가 포개져 있는 형국이다. 어느 층이 트로이전쟁의 무대가 된 도시인지를 정확히 밝히려면 다른 모든 도시층을 걷어내야하는 유적 파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발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트로이 유적의 입구는 약 5㎞에 달하는 진입로에서 시작된다. 입구에서 50m 정도 들어가면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350년까지 시대를 달리하는 대규모 유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유적은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중심지는 히사를리크 언덕.

        언덕은 한쪽 면의 길이가 233m이며 높이 50m인 사각형의 모양이다. 언덕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했다고 전해지는 아테네 신전의 장방형 비석이 남아있다. 약 5㎞ 정도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면으로는 다시 황색의 평원이 펼쳐져 다르다넬스 해협과 맞닿아 있다.

        히사를리크 언덕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신전과 주거지, 지하 저장고와 소극장 오디온 등이 일부 복원되어 있다.

        전문 가이드의 안내가 아니라면 어디가 로마시대에 형성된 층이고 어디가 트로이로 추정되는 층인지 알 수 없는 돌담 투성이이기도 하다. 각기의 성채엔 로마자로 층을 표시해 놓았고 ‘왕궁으로 오르는 길’이라고 명명된 곳을 지나도 왕궁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돌담 사이에 난 푸른 잔디만 이방인을 맞을 뿐이다.

        그나마 찾기 쉬운 흔적들은 고대의 신전 기둥을 받쳤던 태고석(太鼓石)이나 기단부 정도. 하지만 이 흔적만 남은 도시, 트로이를 탈출한 아이네이아스는 훗날 이탈리아 반도에 안착하면서 로마제국의 기틀을 닦게 된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유연한 연결도 트로이 유적에서 그 궤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셈이다.

        트로이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슐리만에 의해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탄불의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는 아직도 그 찬란했던 문명의 일부를 더듬어볼 수 있다

▶트로이

        "트로이 멸망은 침략아닌 지진 탓"

        트로이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 소아시아의 도시국가들이 기원전 12세 기경에 갑자기 멸망해버린 것은 지금까지 고고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처 럼 해양 이민족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지질학자 아모스 누르 박사는 최근 미국 샌프 란시스코에서 열린 미 지질학동맹 추계학술대회에서 이들 도시국가들은 지진 때문에 멸망했다고 주장했다. 지진이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을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진의 영향으로 쇠퇴해져 이민족의 침략 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원전 13세기까지 소아시아 지중해 연안에는 트로이를 비롯, 미케 네, 크노소스, 타르수스, 아쉬도드, 제리코 등 50여개의 도시국가들이 번창했다. 청동기시대의 문화-정치-경제 강대국이던 이들은 이후 50여 년 사이에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이들의 흔적은 고고학 문헌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을 침략한 해양민족이 이 들을 철저히 약탈했기 때문으로 해석해 왔다. 누르박사는 이 강력한 해양전사들이 자기들의 도시를 건설하지도 않고 아무런 유물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이는 지진의 영향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그는 이 지역의 지진역사 조사에 착수했다. 1910년 이후 지중해 동부를 강타한 지진 가운데 규모 6.5 이상인 것의 진앙지를 찾은 결과, 거의 모든 고대도시들이 활발한 지진대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누르박사에 따르면 여러 판구조들이 부딪치고 있는 이 지역은 지진 이 잦은 편이다. 연이은 지진들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문명들을 하나씩 붕괴시켰을 것이란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