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성지터키,그리스

트로이,국경,그리스 카발라

월요일은자유인 2007. 4. 2. 16:45
 

▶7일째

        아이발릭에서 휴식을 취하고 조식 후 트로이로 이동을 한다.


☞아이발릭에서 트로이까지는 직선거리로 75km 이지만, 해안선을 끼고 올라가기 때문에 더 멀것이다. 트로이 지역을 관람 한후 국경 통과를 위해서 먼저 해협 통과를 위하여 직선 거리로 35km 떨어진 Qanakkale로 이동을 하여 페리로 해협을 통과 한 뒤, 국경 검문소가 있는 Ipsala로 이동을 한다. Ipsala까지는 직선 거리로 100km에 이르고 국경 통과를 하는데 시간을 소요한 뒤, 그리스 카발라까지 이르는 여정이다. 카발라까지는 직선 거리로 140km이다. 이동하는 거리가 만만치 않다. 터키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하니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직선거리로는 75km 정도 이지만, 해안을 끼고 돌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멀것이다.ոոҦɸꘘζ

☞아이발릭에서 트로이까지의 여정이다.

☞화살표 끝이 트로이이다.

☞직선거리로는 75km 정도 이지만, 해안을 끼고 돌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멀것이다.


♣트로이(여행사)

        <일리아드>의 배경 트로이(Troy)트로이 유적은 에게해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스카만드로스강과 시모이스강이 있는 평야를 내려다 보는 ♣히살리크 언덕위에 있다. 이러한 지리학적 위치는 바다와 너무 근접하여 침입의 위협을 받지도 않으며 너무 멀지도 않아 교역의 어려움도 없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기에는 매우 적합하다. 그래서 트로이는 기원전 4000년전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했다.

        지금의 트로이는 호머의 일리아드로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는 과거 여러 문명이 거쳐갔던 중요한 도시였던 것이다. 이는 독일의 백만장자이자 고고학자였던 슐리만에 의해 파해쳐진 9개층에 이르는 유적에 의해서 증명된다. 슐리만은 독일에서 목사 아들로 태어나 빈곤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어릴적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일리아드 이야기를 믿으며 언젠간 꼭 트로이를 찾겠다는 신념을 다지며 자수성가 하여 중년에 이르러서는 백만장자가 된다. 돈이 모이자 슐리만은 바로 트로이를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1870년에 발굴에 들어가 슐리만은 1871년에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게 된다. 3년에 걸친 발굴로 인해 슐리만은 엄청난 양의 유물을 발견한다. 그 때 보물상자도 발견하게 되는데(이 때 발견

한 보물상자는 트로이보다 1000년전의 유물이다.) 이 상자에는 16000여개의 금붙이로 만든 왕관까지 있었다. 이 유물들은 슐리만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독일로 가져와 그의 사후에 박물관에 기증하나 1945년 독일로 진주한 소련이 탈취하여 지금은 러시아에 있다.

        초기 발굴에서 슐리만은 자신이 발견한 9개층에 달하는 유적 중 2번째 층이 트로이 유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후에 밝혀지듯이 트로이 유적은 6번째 층이다. 밝혀진 트로이성은 일리아드에 나와 있듯이 견고하고 튼튼한 성이었다. 비록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그 당시의 무기체계로는 쉽게 공략 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트로이 유적들은 발굴해 본 결과 대규모 지진으로 뒤틀려 있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추론하길 트로이의 10년 전쟁은 지진으로 인한 성벽의 붕괴와 도시의 파괴에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한다.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지진의 신인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것이 말인 연유에서 비롯된 전설일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트로이를 받치고 있는 평야에 서서 메넬라우스 군이 되보기도 하고 트로이 성곽 위에 서서 헬렌을 차지하기 위해 10년 전쟁을 한 파리스 왕자가 되보기도 할 수 있는 트로이는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트로이의 목마 전설과 트로이목마 바이러스
        컴퓨터 바이러스중 트로이 목마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있는데 과연 트로이 목마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트로이 목마는 트로이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트로이의 성밖에 만든 큰 목마이다. 전쟁은 두 나라사이의 비슷한 전투력과 트로이의 강력한 요새로 인해서 끝나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즈음하여 그리스는 선물이나 되는 듯 큰 목마를 성문앞에 만들고 마치 후퇴하는 것처럼 트로이를 떠난다.
        트로이사람들은 이런 그리스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목마를 만든 이유를 알기위해 점술사를 불러 물어본 결과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으면 그리스에 재앙이 임하고 성밖에 방치해 두면 트로이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해석때문에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군이 배를 철수한 후, 견고한 요새의 문을 열고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는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그리스의 작전이었다. 큰 목마 안에 그들의 군사를 잠입시켜두고 점술

☞원안이 트로이 목마가 있는 곳이다.

사를 매수하여 난공불락의 트로이의 성벽을 넘고자 하는 전술이었던 것이다.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승전의 축제를 벌이고 곤히 잠든 트로이 주민들에게 목마속에 잠입해 있던 그리스 군인들이 나와 성문을 모두 열고, 후퇴하던 그리스 군사들이 모두 돌아와 결국 트로이는 점령당하고 만다.
        마치 무슨 선물이라도 되는듯이 보이는 메일을 열어보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그래서 그런 종류의 바이러스를 우리는 이 전설에 빗대어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7일째 일정은 계속된다.

▶트로이 유적지 관람 후 Qanakala에서 페리로 바다를 건너(?)

국경에서 그리스로 입국을 한다.

☞트로이 유적지에서 Qanakala까지는 직선거리로 35km정도


☞트로이에서 그리스까지의 여정이 궁금해서 바오로회수녀님의 글을 인용했다.

        터키 마르마라 해협을 배를 타고 건넜다. 자동차들도 함께 타고 가는 거대한 여객선. 배를 타기 전에 잠깐 시간이 있어 항구에 있는 자그마한 재래시장을 잠시 둘러보았다. 시간만 좀더 있었으면 이것저것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냥 한 귀퉁이만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곳 가까이에 트로이가 있어서인지 조잡하게 만든 트로이 목마를 가게마다 팔고 있었다.  이곳 명물은 말린 살구와 무화과.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는데는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배가 커서 그런지 아무런 느낌이 없다. 갑판에는 바람이 어찌나 불고 추운지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어 배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는 조그만 매점이 있어 여러 가지 과자와 차를 팔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담배들을 피워대는지 오소리라도 잡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추운 것보다 나은걸. 한참을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나도 구경거리가 되었지만) 지루해서 다시 밖으로 나가 보니 세상에, 바로 맞은편 방이 금연실이 아닌가! 모르면 그저 여기저기 둘러보기라도 해야 하는 건데... 공기가 맑은 방에 들어가 있으니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니다.
        밖에서 몇몇 자매들은 사진 찍느라 바쁘고, 그렇게 바람이 부는데도 갑판에서 구경을 하는 용감한(?) 자매들도 있다.
        
배에서 내려 버스는 한참을 달려 압살라 국경에 가 닿았다. 육지 국경인지라 도로를 제외한 양옆 비무장지대는 지뢰밭이라고 한다. 어디에고 국경은 이렇게 지뢰를 묻어 놓아야 하는 걸까? 압살라 국경은 사무소와 술을 파는 면세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자 스탬프를 찍고 나와 보니 우리를 그리스로 실어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실었는데 조금 있더니 뚱뚱한 버스 운전기사가 씩씩거리며 와서 실었던 짐을 모두 내리더니 혼자만 타고 쌩 그리스 쪽으로 가버린다. 사정을 모르는 우리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 터키 쪽 가이드가 왔다갔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리스 쪽 가이드한테 전화를 해보니
버스 운전기사가 터키 국경을 들어오라는 허락도 받지 않고 왔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해서 도로 갔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없었던 규정이라는데...... 우린 길거리에 서서 가이드끼리 해결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걸어가면 안 되나? 저 다리만 넘으면 그리스라는데. 그런데 그게 웃기는 소리인 것이 국경지대이기 때문에 그러다간 어디서 총알이 날아와 죽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하, 그게 또 그런가? 한 시간 이상을 멍청하게 서서 기다리는데(정말 땡볕인데다 앉을 데도 없었다) 마침내 그리스 쪽 가이드한테 전화가 왔다.(이럴 땐 정말 휴대전화가 구세주다.그게 없었다면 어찌했을까?) 택시를 두 대 보낼 테니 분승해서 오라는 것. 전화가 오고도 한참을 기다리니 택시 두 대가 왔다.
        일차 팀이 먼저 가고 나중에 차가 다시 오면 나머지가 타고 가기로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마도 터키 국경 수비대 사람들과 그리스 택시 운전사와의 모종의 거래가 있은 듯하다고 했다. 주머니에 돈께나 집어넣어 주는 모양이었다. 부정이 심하고 덜 심하고 일 뿐 세상 어디에나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할밖에. 어쨌든 국경에서 양쪽 가이드만 진땀을 뺀 셈이다.
        그런데 그리스 국경 검문소에 와서 버스를 갈아탔는데도 영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온 앞의 관광버스도 마찬가지다. 국경 검문이 꽤나 삼엄한가 보다. 내다보니 앞차에 탔던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짐까지 다시 끌어 내린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국경이라 마약 밀수가 성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사를 하는데, 더구나 앞 버스는 그리스 터키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가는 버스라서 더 엄격하게 하는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은 아직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저 차만 끝나면 바로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루하게 기다리다 가이드의 말대로 우리는 무사통과. 우리가 오늘 하룻밤 묵을 카발라(Kavala)라는 항구도시는 사도 바오로께서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디딘 곳으로, 옛 이름은 네아폴리스(Neapolis)라고 했다

 


▶트로이에서 그리스까지의 여정이 지도상으로 엄청난 거리가 되는데,

  배편으로 건너서, 다시 차로 건너가는 것인지???

☞트로이에서 그리스 국경을 넘기 위해서 아마 화살표 끝부분 지역에서 페리로 넘어가지 않을까?

☞트로이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서 국경초소까지 이어지는 여정.

☞직선 거리로 약 100km 정도.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구글 검색을 할 경우 이곳말고는 코스가 없다.





☞터키 국경지대 초소의 위성사진이다.

☞원 안의 표지가 위의 사진이다.

☞터키 국경을 지나서 카발라까지의 여정이다. 국경에서 카발라까지는 직선거리로 140km이다.

※그리스


☞화살표가 그리스 kabala이다.

  

유럽 동남부 발칸 반도의 최남단을 차지하고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딸려 있는 지중해연안의 여러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에게해를 중심으로 그리스 문명은 현재의 서구 문명을 낳았다. 하늘색 바다에 태양은 눈부셔 그리스 신화의 나라다운 운치를 만들어 내며, 푸른 올리브 나무, 하얀 건물을 연상하게 만든다. 밝은 북쪽 국경을 따라서 서쪽부터 동쪽으로 알바니아ㆍ유고슬라비아ㆍ불가리아가 있으며 동쪽에는 터키가 있다. 그리스 본토의 남서쪽에는 이오니아 해, 남쪽은 지중해, 동쪽으로는 에게 해로 둘러싸여 있다. 지중해의 짙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으로 지중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그리스에서 그리스만의 특별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zeus),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 사랑의 신 에로스(eros) 등 고대 그리스 신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곳, 지중해의 짙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으로 지중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그리스에서 그리스만의 특별한 문화를 경험해 보자.

        그리스어를 말하지만, 많은 그리스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벽촌에 가서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독일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독일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리스어는 4000년 동안 구전되었고, 3000년의 문자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대 유럽어이다.

        그리스는 종교국가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국민의 98%가 그리스정교 (Eastern Orthodox Church of Christ)를 신봉하고 있음. 헌법에는 그리스정교를 Prevailing Relegion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사실상 국교와 다름 없다.

◈ 수도 : 아테네(Athens/인구의 약 4백만명이 거주)
◈ 정치 : 의회주의, UN, NATO, EU 가맹국
◈ 인구 : 약 1100만명
◈ 면적 : 131,986㎢ (한반도의 3/5)
◈ 주요도시 : 아테네, 테살로니케, 피레우스, 델포이
◈ 주요민족 : 희랍인(97%), 터키인 등 기타(3%)
◈ 주요언어 : 그리스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 종교 : 그리스정교(Greek Orthodox : 98%), 이슬람교(1.3%)

◆ 지리
        유럽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2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지리적 형태를 띄고 있다. 현재 도시화로 인하여 삼림자원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여전히 섬들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 기후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3-5월은 쾌적하고 온화하며, 6-10월은 덥고 건조하나 밤낮으로는 차가운 바람이 분다. 걸칠 수 있는 옷가지를 준비하면 좋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햇빛이 뜨겁지만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그 열기를 식혀준다.하지만 건조한 날씨로 여름의 습기로 인한 불쾌지수의 영향은 없으며 저녁에는 시원한 편이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보통 저녁 늦게까지 많은 활동을 한다.
        여행시에는 가벼운 옷차림이라고 할지라도 저녁때 입을 스웨터나 잠바가 필요하며 가을은 우기이므로 우의를 준비해야 한다.


■ 일반 정보

◆ 통화
        공중전화는 청색과 오렌지색으로 2종류가 있는데 청색은 국내, 오렌지색은 국제 통화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장난 전화기가 많기 때문에 키오스크의 전화나 그리스 전신 전화 공사 OTE로 직접 가서 전화를 사용하면 된다. 00+82(국가번호)+0을 뺀 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 수신자 부담을 이용할 경우 00800-82-11000을 이용한다.

        통화단위는 유로(Euro)로 2002년 01월부터 사용되었다. 주화는 1, 2, 5, 10, 20, 50 유로센트 그리고 1 ,2 유로 8종이며, 지폐는 5, 10, 20, 50, 100, 200, 500, 유로 7가지가 있으며 구분을 편하게 하기 위해 지폐의 종류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고 있다.

        100유로 이상의 고액 지폐는 사용을 거절당할 수 있으니 최고 100유로짜리로 환전을 하는 것이 좋다. 일반 가게에서는 USD를 받지 않는 곳도 있으니 유로로 환전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 은행 근무시간 : 월-목 : 08:00-14:30, 금요일 : 08:00-13:30

◆ 전압
        전압은 220V가 표준이며, 주파수는 50Hz이다. 플러그는 둥근 구멍이 두 개인 C-2 형을 사용한다. 220V, 50Hz로서 한국의 220V, 60Hz와 차이가 있다.(TV, Video System은 PAL System)

◆ 전화
☞ 한국으로의 일반전화
공중전화는 카드식이며 전화국이나 담배가게 등에서 구입
-그리스에서 서울 720-1234 으로 전화시(0082+2(서울코드)+720-1234)
-한국에서 주 그리스 대사관으로 전화시(0030+210(아테네 코드)+698-4080)
☞ 한국으로의 수신자부담 이용전화 008-0012-6653 + 1111 + # 를 누르면 한국교환원 연결

◆ 우편
- 일반 업무시간 : 08:00-14:00
- 중앙우체국(시내 중심 산티그마에 위치) 업무시간:07:30-20:00(월-금),08:30-13:30(토)

◆ 현지 연락처
- 주그리스 한국대사관
115 26, 124 Kifissias Ave, Athens, Greece
(신타그마 광장에서 출발하는 전차 3번, 13번,지하철 Panormou 역에서 하차, 도보로 5분)
전화:(30-210) 698 4080-2, 팩스:(30-210) 698 4083
-데살로니키 명예영사관
154, N. Egnatias Ave., 54621, Thessaloniki, Greece 231-029-1770, 팩스 : 231-029-1721
ㅇ 경찰 : 100
ㅇ 화재시 : 199
ㅇ 한인회 : 210-323-3330

■ 그리스 약사

[그리스 문명의 기원]
        그리스 문명의 기원인 에게(Aegea) 문명은 전기 크레타문명(혹은 미노스문명, B.C 3000 ∼ 1400)과 후기 미케네문명(B.C 1400 ∼ 1200)으로 구분되며, 이 문명의 주인공은 아케아인, 이오니아인, 에올리아인, 도리아인다.
        고대 그리스인은 B.C 1000년경까지 씨족공동체를 유지하다가 B.C 8∼9세기에 폴리스 (Polis)를 형성하였고 스스로를 "헬레네"인이라고 지칭하면서 선민의식을 갖게된다.

[고대 국가시대]
        고대 폴리스(Polis)가 발전하여 형성된 도시국가들 중 가장 일찍 성장한 것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로서 각각 독자적 정부형태를 발전시켰고, 대외적으로 식민도시 건설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였다. 페르시아전쟁(B.C 492∼479)후 아테네는 Pericles (B.C 495∼429) 황금기를 맞이하였으며 펠로폰네소스전쟁 (B.C 431∼404)등 내란이 이어졌으나, 연극, 철학, 역사, 수사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게 된다.
        알렉산더 사후 마케도니아가 삼분되면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출신의 "안티고노스" 가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이 시기와 로마 지배 기간의 일부에 해당하는 헬레니즘 시대(B.C. 323∼30)에는 폐쇄적, 자기 만족적 폴리스(Polis) 문명에 동방적 요소를 가미시켜 개방적이고 보편성있는 문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민족 지배 시대]

-로마 비잔티움 지배기간 (B.C. 2세기∼A.D. 1453)
        ㅇ B.C. 2세기경부터 로마제국의 침략을 받아 그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로마제국 분열(A.D. 295)후에는 비잔티움(동로마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감. 당시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 문명을 보존, 전파시키는 중심지 역할을 함.

-오토만 제국 지배기간 (1453∼1830)
        ㅇ오토만 제국의 지배하에서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원칙적으로 자유였음. 그러나 이슬람교도가 되면 지배계층의 특권을 누릴 수도 있었던데 반해, 개종을 거부한 기독교도들은 비잔티움 시대의 농민이나 봉건제하의 농노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감수해야 하였음.
        ㅇ18세기 후반 불란서혁명 이후 유럽에 팽배하였던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1821∼27년간 Ypsilantis 형제의 거병으로 시작된 독립 항쟁이 확산되었고 마침내 영국, 불란서, 러시아의 지원하에 1830.2 런던의정서에 의해 독립이 보장되어 3.25 독립왕국이 수립됨.

[근대국가 형성기간 (1830 ∼ 1913)]
        독립왕국이긴 했으나 영국, 불란서, 러시아에 의한 내정간섭이 지속되었고 Otto 국왕 치하기간(1830∼1863)중 3명의 섭정에 의한 개혁도 실패하였다. 1843년 영국, 러시아의 조종에 의한 군부쿠데타 발생 등 정국불안이 계속되었으며,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 회복을 목표로 한 "Megali Idea(위대한 계획)"도 주변 강대국에 의해 좌절되었다.
        George 1세 치하(1863∼1913)인 1863년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며, 1872년부터는 대외지향적인 Heodoros Deliyiannes와 국내우선주의자인 Charilaso Tricoupes가 주도하는 양당에 의해 정국이 주도되었다.
        1878년 사이프러스가 오토만 제국 지배로부터 영국지배로 넘어갔으며 그리스는 1912∼13년 에 발생한 제1,2차 발칸전쟁에서 승리하여 마케도니아의 일부지역을 회복하였다.

[양차 세계대전기간(1914∼1949)]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국왕 Constantine 1세와 수상 Venizelos의 의견 대립으로 1916년 동 국왕이 국외로 추방되었고, 불가리아와는 뉘이 (Neuilly)조약을, 터키와는 세브르(Sevres) 조약을 맺어 인근국가와 국경을 확정하였다. 그러나 세브르 조약은 터키의 Mustafa Kemal에 의해 무효화되었고 이에 따른
터키와의 전쟁 결과 1923년 로잔느(Lausanne) 조약이 체결되어 양국 간에 현재와 같은 영토경계가 확정됨. 로잔느조약에 의거 해외로부터 130만의 그리스인들이 입국하게 됨으로써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다.
        1923년이후 국내정치 최대 현안은 왕정의 존속여부였으며, 1924년에 공화정이 선포되었으나 1935년 왕당파의 승리로 왕정이 부활되는 등 정치 불안이 계속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인접국가 와의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한편 영국, 불란서와의 협력관계를 긴밀히 유지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1∼1944.10월간에는 독일, 이태리, 불가리아 등 기축국에 의해 점령당하였으며, 동 기간 중 좌익인 민족해방전선 (National Liberation Front)과 좌익 공화파인 민족민주연맹(National Democratic League)이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한다. 이들은 국왕의 전후 귀국에 반대하는 동시에 망명 정부와도 대립하였고 1944.10. 망명정부 수반인 George Papandreou는 소수의 영국군과 함께 아테네로 돌아와 민족해방전선에 대한 무장해제와 해산을 시도하자 내란이 전국적으로 확산 되었는 바, 1947년 트루만 독트린에 따른 미국의 군사재정 지원으로 동 내란은 1949년에 종식된다.

[입헌군주제기간 (1949 ∼ 1967)]
        입헌군주제로 복귀한 후 내각의 잦은 교체로 정정이 불안해지고 1964년 Paul국왕의 서거로 왕위를 계승한 Constantine 국왕이 1965.7 당시 George Papandreou 수상과의 반목을 기화로 내각을 일방적으로 해산함에 따라 국내정정이 극도로 불안해졌으며 1967.4 George Papadopoulos 육군대령을 중심으로한 우익군부에 의한 무혈 쿠데타가 발생하여 유럽 역사상 최초의 군사정권이 수립되었고 Constantine 국왕은 국외로 추방당하게 된다.
        이후 그리스는 Papadopoulos 군사정권 기간 (1967.4 ∼ 1973.11),

Ioannides 군사정권 기간 (1973.11 ∼ 1974.11),

Karamanlis 신민당 집권기간 (1974.11 ∼ 1981.10),

Papandreou 사회당 집권기간 (1981.10 ∼ 1989.6),

신민당 주도 과도연립정부 기간(1989.7 ∼ 1990.4),

Mitsotakis의 신민당 집권 (1990.4 ∼ 1993.10),

Konstantin Simitis 사회당 집권 (1996.1. ∼ 2004.3.)에 이르고 있다.

■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파라칼로(죄송하지만, 부탁합니다.)
현지어 : 에프하리스토(고맙습니다.)
현지어 : 야수 시스(안녕하세요.)
현지어 : 포소 카니 아프토?(이것은 얼마입니까?)
현지어 : 네, 오히(예, 아니오.)

■ 현지 교통
▶버스 :  그리스에서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버스이다.
-전동차(트롤레이)와 일반버스 2 종류(요금 : 0.45 Euro)
        장거리 버스를 통하여 터키도 쉽게 접근 할 수 있다.매일 아테네와 이스탄불을 운행하는 버스가 있고(22시간 소요), 소피아까지는 일주일에 여섯 번(15시간), 벨그라데도 일주일에 여섯 번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18시간 30분이 걸린다. 또한 테살로니키(Thesaloniki)까지도 운행을 한다.

▶철도  : 그리스는 유레일패스가 통용은 되지만 주요 관광지로 이동시는 이용가치가 떨어진다. 기차로 갈 수 있는 관광지는 북부의 테살로니키 정도이다. 따라서 국내 이동은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수니온 곶, 미케네, 델피, 올림피아, 스파르타 등을 갈 때에도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올림피아에는 기차가 운행되기는 하지만 편수가 너무 적어 불편하다. 그리스 철도국(OSE)에서 운영하는 철도는 느리고, 노선도 제한적이어서 여행자들에게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교통수단이다.

▶선박 :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폭넓은 페리의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있고, 많은 섬들이 유람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배들은 아테네의 피레우스(Piraeus) 항구에서 출발한다. 여행 안내소에서 노선도를 구입하여 출발 1시간 전까지는 표를 구입해 둔다.

▶지하철 : 아테네 시내에서는 편리하게 이용되고 있지만 관광객들에게 있어서 명소를 잇는 편리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신티그마 광장의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보면 아테네의 지하철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자율승차제로 이루어져 있어 여행객들을 유혹하지만 항상 검문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택시 : 합승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시간, 거리 병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 기본요금 : 1.50 Euro

[교통 참고사항]
        그리스에는 국제운전면허증이 통용되므로 차량운전이 필요할 경우, 사전에 한국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 소지함이 바람직하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여 도심지에 올 경우, 택시를 이용하면 요금이 약 30 유로이고, 공항버스를 이용하면 약 3 유로면 충분하다.

■ 주의사항
        스트라이크와 데모가 일반적으로 일어나기는 하나, 비교적 질서정연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관광객 대상의 범죄(핸드백 날치기, 소매치기)등은 아테네의 관광명소, 사람들이 붐비는 대중교통 시설, 에서 비일비재하므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소지품 분실 유의]
        ㅇ 치안사정은 전반적으로 양호하나, 동구 및 중동 난민들에 의한 절도, 들치기, 소매치기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음을 감안, 각별한 주의가 요망됨.
- 아테네 중심지인 신타그마, 옴모니아 광장 주변 및 해변가에서 범죄행위가 수시로 발생함.
        ㅇ 여권, 현금, 신용카드 보관에 유의가 요망됨.
- 특히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 또는 취침중 소지품을 도난당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함.(뷔페 식사를 위해 이석 중 의자에 걸어놓은 가방/핸드백이 사라짐)
-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분실할 경우, 여행에 상당한 차질이 생기므로, 현금은 나누어 보관함이 바람직함.
        ㅇ 소지품 분실시 대사관이 협조 가능한 내용
- 여권을 분실했을 경우, 신원을 확인하여 여행증명서를 발급함.(사진 2매, 수수료 8 US$ 지참 요망)
- 현지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을 안내해 줌
- 그러나, 금전적 대부, 항공권 재발급 수속 대행, 현지경찰에 피해 신고서 제출 대행, 분실물 수색, 범인 체포 등은 어려우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람.

[낯선 사람 경계 요망]
ㅇ 현지에서 친해졌거나, 낮선 사람들이 음료수나 음식을 권할 경우 신변안전에 유의해야 함.
- 이들은 한두마디의 한국말을 구사하거나, 한국전 참전용사가족, 또는 한국에 많은 호감이 있는것처럼 친근감을 표시하며 접근함.
- 이들은 수면제가 든 음료수등을 마시게 하여 절도행위를 자행하며, 이들이 준 음료수를 호의로 잘못 알고 마신후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함.
ㅇ 경찰관을 사칭, 신분증 조사 또는 위조지폐 검색한다며 소지품을 강탈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으니 주의가 요망됨.

[건강 유의사항]
ㅇ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고온 건조하고, 겨울은 저온다습하며, 봄. 가을은 한국기후와 유사하나 기간이 짧음.
- 여름 온도가 39-40도까지 가끔 상승하므로, 탈수, 일사병에 주의가 요망됨.
ㅇ 풍토병은 없고, 특별한 전염병 예방주사는 필요하지 않음.
ㅇ 수돗물보다는 가급적 생수 이용(수돗물에는 석회성분 함유)
ㅇ 의약분업으로 의사 처방제를 첨부해야 약 구입이 가능하므로 구급약등 상비약 사전 준비 요망
ㅇ 야간의사 문의나 긴급의료기관 전화번호 : 131번

▶참고 자료 : 그리스에서의 사도 바오로의 행적

1. 네아폴리스(현재는 카발라) : 사도행전 16;11 바오로께서 터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에 왔을 때의 첫 항구도시. 바오로가 2차 전교 여행 중인 기원 49~50년대에 이곳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짐 물론 3차여행(53~58) 기간 중에도 이곳으로 들어왔고 이곳을 통하여 터키 지방으로 갔음.


2. 필리피 (현재 지명은 필리피) : 사도행전 16;12 이곳에서 바오로는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웠고 리디아라는 여성도에게 세례를 베풀고 현재는 그 여성도의 이름을 기념 하여 기념 교회가 설립되었는데 필리피에서 1킬로 지점에 있다. 여기에서 바오로 사도는 옥에 갇히고 심한 매를 맞았는데 그 감옥터를 오늘날도 볼수 잇다. (사도행전 16장 12절이후 전체)

3. 암피폴리스(현재도 암피폴리스) : 사도행전 17;1 이곳은 카발라에서 약 67킬로 지점이고 데살로니카에서 102킬로 지점인데 바오로 사도가 지난 간 것을 기념하여 교회를 세웠다.

4. 아폴로니아 : 사도행전 17:1 암피폴리스에서 데살로니카 쪽으로 40여킬로 지점, 이곳도 기념교회만 존재한다.

5. 데살로니카 : 사도행전 17:1 아폴로니아에서 내륙쪽으로 62킬로 지점인데 당시에 가장 번창한 상업과 자유무역의 중심지였고 바오로 사도가 이곳에서 3주일간 하느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큰 결실을 얻었고 오늘날 3세기의 교회당 (당시의 유대인 회당자리)인 디미트리우스 교회는 그 크기와 내부 구조에 있어서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의 하나이다.

6. 베레아(현재는 베리아) : 사도행전 17:1 데살로니카에서 남쪽 대륙으로 78킬로 지점으로서 성경말씀을 받는 태도에 있어서 데살로니카 교인보다 신사적이고 날마다 상고하므로 (사도행전7:11)칭찬을 많이 받는 교회이다.

7. 아테네(아텐) : 사도행전 17:15 바오로는 베레아에서 배를 타고 아테네에 들어왔는데(7;14절) 베레아에 실라와 디모테오를 남겨 두고 이곳으로 왔다.이곳에서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희랍의 철학자들과 변론을 했는데 많은 결실을 얻었지만 대단한 의미가 있었고 현재 언덕 밑에는 비잔틴 스타일의 바오로 기념 교회가 있다.

8. 고린토 (현재 고린토) :사도행전 18:1 아테네에서 필로폰네소스반도 쪽으로 84킬로 지점으로 당시 상업도시로서 성적 타락이 문란했었는데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18개월 즉 6개월동안 복음을 전했고 회당장 크리스보의 가장을 주께로 인도한 사건이다.

9. 겐크레아(현재 겐크리아) : 사도행전 18;18 구 고린토에서 약7.8킬로 항구로서 바오로는 이곳에서 머리를 깎고 선교의 재다짐을 한곳으로 에페소를 향하여 출발 하였다


▶성서상의 네아 폴리스 카발라 도착(여행사:지역)


♣네아폴리스(여행사)

사도행전

16: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네압볼리(네아폴리스·Neapolis)는 바오로가 제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거쳐 도착했던 곳으로 유럽 전도를 시작한 항구이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필리피에 이르니”(사도행전 16:11∼12)

        네압볼리는 드로아 항구에서 바닷길로 185㎞쯤 떨어진 곳이며 필리피까지는 16㎞ 떨어진,오늘날 그리스의 카발라(Kavalla)라고 하는 항구이다. 바오로 당시 이곳은 동서양을 뱃길을 잇는 교통 요지였고 육로 역시 로마로 향하는 에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가 이곳을 지난다. 네압볼리에서 필리피로 넘어가는 에그나티아 대로는 도로 건설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로마인들이 만든 로마로 통하는 길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돌을 깔아 마차가 다닐 수 있게 한 포장도로이다.

        네압볼리는 비잔틴 시대에 크리스토우폴리스(Christoupolis)로 불리웠으며 터키 통치시대부터 카발라로 바뀌어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이곳에는 바오로의 도착을 기리는 바오로기념교회가 두 곳이나 세워져 있다. 한 곳은 항구 가까이에 있고 다른 곳은 항구의 언덕 위에 있다. 항구 가까이에 있는 교회 앞에는 바오로의 도착 장면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항구 위 요새화된 된 성채는 16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바다에서 이곳을 공격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항구에서 바오로기념교회를 지나 요새를 향해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로마시대 때 새워진 수도교가 있다.

 ☞카발라전경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정복지를 다스리기 위해 가장 먼저 도로를 닦았다. 그리고 대도시에는 야외극장와 목욕탕이 거의 빠지지 않고 건설되었다. 오죽하면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멸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을까. 또한 로마인들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도교를 건설했는데 이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건축기술이다. 네압볼리에는 2단으로 된 당시의 수도교의 일부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다.

        네압볼리는 BC 5세기 아테네에 조공을 바친 도시 목록에는 트라키아에 있는 한 도시로 언급되었다. BC 188년 로마 집정관이 이곳을 통치하였으며 BC 42년에는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필리피에 주둔할 때 이곳에 전함이 기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유명한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데 특히 근처 필리피에서 발굴된 유물이 많이 소장돼 있다. 카발라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 중에는 네압볼리의 주신으로도 알려지고 파르테노스 여신의 신전으로도 확인된 BC 4∼5세기의 한 건축물과 함께 그리스풍 마을들의 유적도 포함되어 있다.

        라틴 시대의 비문에 따르면 이 항구는 로마 시대의 필리피에 속해 있었다. 또한 필리피를 점령한 로마군의 지도자들의 거처가 이곳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카발라는 인구 10만여명 정도의 활기찬 항구도시로 현재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데살로니키(성경의 데살로니가) 다음 가는 큰 도시이다.

        네압볼리는 바오로가 유럽 전도여행의 첫발을 내디딘 그리스도교 역사상 중요한 곳 중의 하나이다.

▶memo

 

 

 


♣바오로 도착 기념 교회 순례(여행사)


▶memo

 

 

 

▶바오로 도착 기념 교회 순례로 하루 일정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다.






☞화살표부분이 바오로도착교회이다.


▶memo 7일차 : 트로이 - 암피폴리스 - 그리스 - 네아폴리스(카발라) - 바오로도착기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