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3(수정)
사해 체험을 하기 위해서 걀리야 해변으로 갔지만, 개장을 하지 않아서
꿈란 유적지 순례를 먼저 하기로 한다.
※사해
최장 길이 85 km, 최장 폭 17km 표면적 약 1,015 평방km 인 사해는 그 수면이 지중해보다 398m나 더 낮다. 즉 지구 표면 중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곳이다.
구약에는 염해(Yam Hamelach = Salt Sea 창14:3)
1 시날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료,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 왕 티드알의 시대였다.
2 이 왕들은 소돔 왕 베라, 고모라 왕 비르사, 아드마 왕 시납, 스보임 왕 세메벨, 벨라 왕
곧 소알 왕과 싸움을 벌였다.
3 이들 다섯 왕은 동맹을 맺고 이띰 골짜기에 집결하였다. 시띰 골짜기는 지금 짠물호수가 있는 곳이다)
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생물이 전혀 살지 않기 때문에 사해(死海)라고 불리며 염도가 약 33%로서 세계적으로 염분이 가장 많은 물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해에 들어가면 손발을 휘젓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둥둥 떠 있게 된다. 혹시 손발을 휘젓다가 물방울이라도 튀어 눈에 들어간다면 눈이 쓰라려서 그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 정도이다. 보통 바닷물이 4-6 퍼센트의 염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해 물은 그 5배나 되는 것이다.
사해가 그렇게 많은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그 물이 흘러 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요단강 등 주변에서 유황과 질산 성분의 물질들이 함유된 약 7백만 톤의 물이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데 빠져 나갈 구멍은 없고 요르단 계곡의 뜨거운 열기는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화학물질 등 고체성분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사해의 포타슘 매장량은 전 세계가 이곳에서 나는 것만 쓰더라도 100년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포타슘은 비누, 비료들을 만드는데 쓰인다. 사해 주변에는 사해 물을 분석해서 광물질을 추출해 내는 공장 들이 있다. 사해의 물은 피부병에 특수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또한 이곳의 검은 흙은 신경통 등에 특효라고 전해진다.
세계 각국에서 치료차 사해에 오는 사람들이 있고, 이 근처에는 이들을 위한 특수 병원도 있다.
사해 지역에 위치하였던 도시로는 소돔, 고모라, 아마드, 스보임(창 10:191 가나안 지방의 경계선은 시돈에서 시작하여 그랄 쪽으로 내려 가다가 가자에 이르고, 거기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 쪽으로 라사에 이르렀다.) 이 있으며, 이 도시의 왕의 목록도 이어 기록되어 있다.
(창14:2) 이 왕들은 소돔 왕 베라, 고모라 왕 비르사, 아드마 왕 시납, 스보임 왕 세메벨, 벨라 왕
곧 소알 왕과 싸움을 벌였다.
3 이들 다섯 왕은 동맹을 맺고 이띰 골짜기에 집결하였다. 시띰 골짜기는 지금 짠물호수가 있는 곳이다.
소알 (창13:10 롯이 멀리 요르단 분지를 다 둘러 보니, 소알에 이르기까지 마치 야훼의 동산같이, 에집트의 땅같이 물이 넉넉하였다. 그것은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의 모습이었다.) 또한 이 지역의 도시였다.
성경의 보도에 의하면 이 지역은 "물이 넉넉하여 ..... 여호와의 동산" 같았으며, 이는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다" 고해석하고 있다. (창 13:10, 사 1:10, 마11:23~24) 고대에 이곳에 많은 물이 있었음은 고고학적으로도 확인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적어도 사해의 물이 해발 -225 m 까지 채워져 있었으며, 19세기 영국인들에 의해 탐험되었을 때에도 현재의 수위보다 12 m 나 높았었다. 오늘날에는 갈릴리 호수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요단강과 요르단으로부터 내려오는 야르묵 강의 물을 차단하여 조정하고 있기 때문에 수면이 자꾸만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여름철 하루 평균 수분 증발률 (25 ㎜)도 수면이 낮아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 사해에는 보통 바다의 염분 농도보다 무려 10배가 넘는 26 ~ 33 % 의 소금이 녹아,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러 여름철에는 바다 위에 결정 (結晶)으로 떠있는 많은 소금은 마치 바다에 핀 꽃이나 얼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불의 부력이 매우 커 사람이 물에 들어가 누우면 몸의 절반가량이 저절로 물 위에 떠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꿈란 유적지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산 뒤..
들어가면 꿈란 유적지에 관한 짧은 영화를 보고
※꿈란(Qumran)
사해 사본을 발견한 장소이다.
사해의 북서쪽에 있는 꿈란은 사해 사본을 기록한 엣세네파 사람들의 주거지역이 있었던 곳이다.
이 지역의 발견은 1951-1956년의 최근 일이며 폐허 속의 주건물은 폭 27m 길이 44m정도로서 석고가 거칠게 발라져 있는 큰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북쪽에는 수비탑이 있으며 부엌과 붙어있는 식당에서는 1,000여점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주 건물주변에는 옹기장이집, 방앗간, 염색집, 7개의 저수탱크 등이 발견되었으며, 의자, 책, 말라버린 잉크가 담겨진 잉크스탠드가 있는 기록실이 발견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꿈란 주변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이며 나머지는 수없이 많은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이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주석, 신학서, 쿰란공동체의 규율집들로써 대부분 양피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놓은 것들이다.
사해구약사본은 현존하는 구약사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에스델서 만을 제외하고는
구약의 모든 책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에세네파
브오 신부의 탐험으로 밝혀진 사해 동굴의 옛 유적에 얽힌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예수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이 사해 바닷가를 거닐기 전에 이미 이곳 동굴들에서는 에세네 (Essenes)파로 불리는 한 무리가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와 마찬가지로 유태교의 한 갈래였다.
이 무리는 '정의의 스승'(Teacher of Righteousness) 이라 불리는 사람이 이끌었으며,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율법과 제사 등 형식과 권위에 치우친데 비해, 신비주의와 금욕 생활을 내세웠다.
에세네파 신자들은 재산과 예배, 독서와 식사 따위를 모두 함께 했다. 결혼은 거의 하지 않았고, 오로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하여 하나님과 한 몸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들은 세상이 마지막에 이르면, 그들 '빛의 아들들'이 '어두움의 아들들'을 물리치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울 꿈을 가지고 있었다. 200년 동안 에세네파 교인들은 금욕, 기도, 하느님의 말씀 읽기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던 세상의 종말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서기 68년이 되자 그들은 '어두움의 아들들' 이 아닌 로마군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무참히 짓밟고, 끝까지 항거하는 마사다 요새를 무너뜨린 뒤 유태인들을 수천 년 방랑의 길로 내몰았다. 사해동굴의 문서들은 이때 로마 10군단을 피해 동굴 속에 감추어진 듯하다.
'쿰란 공동체'에서 찾아낸 두루마리들에는 '에스더서 (Esther)를 뺀 구약성서가 모두 들어 있다. (에스더서에는 야훼 하느님에 대한 말이 한 마디도 없다).
또 에세네파가 지켜야 할 '공동체 계율' 같은 기록들도 많이 있다.
이곳에서 나온 구약성서는 오늘날의 구약과 거의 다름이 없다.
단 '쿰란 공동체'를 처음 만든 '정의의 스승'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다.
어떤 이는 그가 예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가 인류 전체의 구원을 바랐던 데 비해 에세네파는 자기들만의 구원을 빌었으므로, 정의의 스승을 예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은 '정의의 스승'은 세례 요한일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꽤 설득력 있는 말이지만 뚜렷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 광야에서 선교하던 세례 요한이나 근처의 요단강에서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기도했던 예수도 이 공동체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는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뿐이며 나머지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은 구약 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서, 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등으로써,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사해 두루마리'는 그 뒤로 수케닉 박사의 아들이자 1963년에 마사다 요새를 찾아낸 야딘(Yadin)이 사무엘 대사교의 두루마리를 25만 달러에 사들여, 모두를 이스라엘 정부에 기증했다
재현해 놓은 세례소.
재현해 놓은 유물들.
재현해 놓은 사본
원본은 예루살렘 박물관에 있다고.
꿈란 유적지이다.
앞에 사진에서 본 세례소의 본 모습.
토기를 굽는 장소이다.
제분소.
수로
정결예식에 쓰는 물.
꿈란 유적지에서 본 사해.
이런 곳에 자연 동굴이 많이 있다고.
그래서 사해 사본이 보관될 수 있다고 한다.
허듯레 물.
유적지에는 이렇게 천막을 쳐놓았는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햇볕아래는 햇살이 따가울 정도이다.
그늘에 들어가면 금방 서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