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8(수정)
▶ 성 카랄람보스(St. Charalambos)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 벽에 표시되어 있다.
▶곱트 교회의 입구에 있는 기둥에 표시되어 있다.
십자가의 길을 하는 도중에 왠 트랙터가 등장을 하여서 잠시 중단을 하고 있는데
계단길로 되어 있는 이길을 트랙터가 뒤에 화물을 끌고 자유롭게 올라가고 있다.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미사를 봉헌.
※ 제10지점 에서 제14지점까지는 처형의 목적지인 골고다 언덕 위로써
지금의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안에 있다.
골고타와 예수님의 무덤이 위치했던 곳에 오늘날 기념 대성전이 세워져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곳이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흔적 이 담긴 곳이라고 하겠다.
마태 28장
59 그래서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고운 베로 싸서
60 바위를 파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신 다음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 놓고 갔다.
61 그 때에 무덤 맞은편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62 그 날은 명절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그 다음 날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빌라도에게 몰려 와서
63 이렇게 말하였다. "각하, 그 거짓말장이가 살아 있을 때에
사흘 만에 자기는 다시 살아난다고 말한 것을 저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64 그러니 사흘이 되는 날까지는 그 무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십시오. 혹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다 감추어 놓고 백성들에게는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떠들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 속임수는 처음 것보다 더 심한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65 빌라도는 그들에게 "경비병을 내어 줄 터이니 가서 너희 생각대로 잘 지켜 보아라" 하고 말하였다.
66 그들은 물러가서 그돌을 봉인하고 경비병을 세워 무덤을 단단히 지키게 하였다.
▶골고타 예수님의 무덤
골고타란 말은 '해골' 또는 '머리털이 없는 두개골'을 의미하는 아라메아어 '골골타'나 히브리어 '굴골레트'가 희랍어 식으로 와전된 발음이다.
그러나 라틴어로는 동일한 의미로 갈바리아라고 말한다.
'갈바리아' 또는 '골고타'라고 칭하고 있는 이 곳이 오늘날에는 성벽 안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예수시대에는 성벽 밖의 불모지였고, 주로 무덤들이 즐비해 있었다고 한다.
이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골고타는 대략 40m 가량 높은 언덕이었으리라고 지형학자들은 추측한다.
예루살렘이 해발 720m 가량 되니 그 언덕의 높이는 해발 760m 가량 된다고 하겠다.
이 언덕은 바윗돌로 메워진 채석장으로서 마치 해골처럼 보였기 때문에 골고타란 명칭이 붙여지지 않았나 여겨진다.
지금은 골고타와 예수님 무덤의 원래 모습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다만 그 자리에 기념 성전만 볼 수 있다.
성전이 위치한 지대는 서쪽지대에 비해서 상당히 낮기 때문에 '과연 이곳에 골고타가 자리해 있었을까'하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역사적 신빙성은 크다. 예루살렘을 로마의 군사 식민지로 만들어 버린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골고타 언덕은 깎이게 되었고, 예수의 무덤이 위치한 정원 부분은 돌로 메워지게 되었다(135년).
그 위에는 신전과 더불어 쥬피터와 비너스 상이 세워졌다.
어쨌든, 불행 중 다행으로 신전이 세워짐으로 인해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기념 성전이 세워질 때까지 그 자리에 유보된 것만은 사실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순례하고 참배하는 예수 무덤과 골고타의 위치는 비교적 정확하다고 하겠다.
기념대성전 안에는 여섯 종파들이 운집해 살고 있다. 라틴교회(프란치스꼬 수도회가 대표 역할),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화가 주로 특권과 우선권을 기지고 있다. 시리아 정교회, 곱트 교회, 그리고 에디오피아 정교회는 사실상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여섯 종파들의 관계는 정치, 종교적으로 서로 얽혀 있어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1757년 법률상으로 확정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수님 시대의 옛 길 cardo라고 부른다.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카르도를 구경하고, 성모 영보성당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