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성지이스라엘사진

이스라엘11(수정)

월요일은자유인 2007. 10. 10. 11:51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 호수로향한다.

갈릴리에서 1박을 하고 다시 돌아 오기 때문에

짐을 간편하게 해서 가고 짐을 나두고 갔다 오려고 했는데,

절차가 복잡해서 그냥 다 끌고 갔다 오기로 한다.

 

 

우리 차 옆을 지나는 다른 순례차량.

수녀님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아침기도를 하는 중인 것 같은데...

수녀님들이 마이크를 잡으시면 기도가 길어진다...

 

이스라엘을 다니다 보면

위의표지가 자주 나온다. 이곳은 해발 200미터라는 표지이고

사해나 갈릴리 호수쪽으로 가면 마이너스 표지가 나온다.

 

 

 

 

 

농부들의 모습이다.

이스라엘도 농촌의 일손이 부족해서

거의 대부분 동남아인들이 와서 농사를 짓는 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동남아인들이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일으킨 타불산의 모습이다.

 

나자렛 거리의 모습.

 ▶예수, 마리아 & 요셉의 성가정이 살던 고향 땅이다.  중앙 왼쪽에 새로 지은 성모영보성당(the New  Basilica of the Annunciation)이 보인다.  지금은 큰 도시가 되었지만 2000년 전에는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예수께서는 유년시절을  보내셨다.  사진에 보이는 언덕 부분은 (구)나자렛인데 이곳   주민은 회교와 그리스도교(가톨릭과 정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언덕 위 오른편 (신)나자렛은 사진에 보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산다.

 나자렛이란 마을 이름은 복음서에서 역사상 처음 언급 되었다. 그 작은 마을은 분명

    고대 즈불룬 영토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이사야 9,1을 인용한 마태오 4, 13∼16)

         13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15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고고학적 근거에 의하면 철기시대, 즉 기원전 천년 경에, 후에 나자렛이라 불리우게 된 그곳에 작은 농경마을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헬레니즘시대 말기에서부터 로마시대까지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묘석을 보면 작은 유다 마을이 A.D 1세기에 나자렛에 분명히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도시를 맨 먼저 방문하는 것은 이 도시가 이스라엘 여러 성지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작고 아담한 이 마을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91km,  갈릴래아 호수 남서쪽으로 약 19km, 지중해로부터 약 32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375m의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이다. 기원 전 2,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기는 하지만, 사실 나자렛은 세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인물이나 사건이 없었던 곳이다. 그래서 나자렛은 구약성서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탈무드나 유대 역사학자 요셉 플라비오의 기록에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나자렛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도시였던가 하는 것은 요한복음의 다음과 같은 예화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예수께서는 첫 번째 제자들을(베드로, 안드레아, 요한등) 뽑으신 후에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한 고향 사람인 필립보도 제자로 뽑으셨다. 필립보는 그분의 제자로 발탁된 것이 너무나 신이났다. 그 큰 기쁨을 감출 수 없어 그는 그의 친구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자랑을 늘어 놓았다. “자네, 내 말좀 들어보게. 나는 오늘 대단한 분을 만났어. 그런데 그분이 나를 그분의 제자로 삼으시겠다는거야. 그분은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그분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 그분이 누구신가 하면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신데 나자렛 사람이지”. 그러나 나타나엘은 “나자렛 사람”이라는 필립보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말하기를 “나자렛 출신이라구?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나?”(요한 1,46)라고 했다. 이 말을 한 나타나엘은 가나 출신이었다(요한 21,2).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가나는 그리 대단한 도시가 아니었다. 이런 가나 출신의 나타나엘의 말로써도 나자렛의 역사적인 가치가 어떠했던가하는 것을 가늠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 나타나엘도 예수를 만나자마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는 예수를 뵙자 이렇게 고백했다: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베틀레헴이 그자체로 빛을 발한 도시라면 나자렛의 역사는 복음사가들의 업적 덕분에 그 빛을 발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께서 베틀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전하면서도 예수를 나자렛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 예를 보면, 나자렛의 예수(마태 26,71; 루가 18,37), 나자렛 예수님(마르 1,24), 나자렛 사람 예수(요한 18,5-7),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요한 19,19)등이다. 특별히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는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죄목으로 씌여진 십자가의 명패이다(Iesus Nazarenus Rex Iudaeorum=INRI).

 

 

 

수태고지 성당 올라가는 길.

 

 

이 성당이 성모 마리아가 살던 집터로  알려져 있다.  수태고지기념성당 정면 1969년 건축가 G. Muzio 에 의해 건립되었다. 십자군 시대의 성당과 규모를 같게 지었다. 

 

 

 

 

 

 

수태고지 성당에 한국교회가 봉헌가 그림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