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15(수정)
이어 오병의 기적 성당인데
이곳에서는 그런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어디나 이런 곳은 있다.
성지이니까 우리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 이스라엘 관광객들이 버렸을 것이다.
이어 오병 성당 순례를 마치고 숙소를 향해서 가는 중
요르단 강에 핀 갈대의 모습이다.
요르단강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개울 정도이다.
그래도 겨울 우기라서 수량이 많은 편이라고
길이 360km. 안티레바논 산맥의 남단 부근, 레바논 ·시리아 영내에서 발원한 몇몇 하천이 이스라엘 영내에서 합류하여 요르단강이 된다. 그 후 요르단 지구대를 남류하여 일단 갈릴리호(湖)에 들어간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나와 요르단령에서 고르 저지를 곡류하고는 해면하(海面下) 394m의 사해(死海)로 들어간다. 유역인 요르단 지구대는 대규모의 함몰지대로서, 대부분이 해면하의 저지이며, 여름에는 몹시 무덥다.
상류 연안의 이스라엘령에서 연간 600mm 정도의 비가 내리며, 전에 습지대였던 후라호(湖)의 간척이 완성되어 배수이용이 잘된 농업지대이다. 하류일수록 기후가 건조하며, 요르단령 지역에서는 경지도 적고 정주자가 별로 없다. 요르단강은 전체적으로 건조한 이 지역 일대의 귀중한 수자원이며, 그 이용을 둘러싸고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이 항상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시리아는 수원에서부터 남부의 골란 고지까지 이르는 관개수로를 계획하고 있고, 요르단은 동쪽에서 흘러드는 지류 야르무크강에 댐을 건설하여 하류 유역을 관개할 계획이며, 이스라엘은 갈릴리호(湖)를 이용하여 대규모의 상수도망을 건설하여 요르단 강물을 이스라엘 중부와 남부지역으로 공급하고 있다. 요르단강은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은 강이라고 전해져 있는데, 그 밖에도 유역에는 그리스도교 및 유대교와 관계가 깊은 성적(聖蹟)이 많다
요르단강(I)
강(물)과 인간의 삶은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강을 중심으로해서 모여 살면서 그 물을 마셨고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강을 가리켜 ‘삶의 터전이요, 생명의 젖줄’이라고 한다.
요르단강은 성서에 몇군데서 언급되긴하지만 그렇게 큰 관심을 끈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에집트의 나일강이나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이나 유프라테스강과 비교해 볼 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강이었다. 그렇다고 농업용수에 쓰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 강 근처에는 아무런 도시도 생기지 않았다.
요르단”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많은 이견(異見)이 있다. ‘영원한 강’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단 지방으로 흐르는 강’, ‘내려오는 강’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주장도 있다. 어쨋든 이 강은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크고 긴 강이다.
요르단강의 수원(水源)은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최고봉 2,874m) 근처에 있다. 수원은 넷이 있는데 주된 것은 둘이다. 하나는 단 지방에 있는 ‘나흐르 엘 렛단’이고, 다른 하나는 앞에서 이미 보았던 바니아스에 있는 ‘나흐르 바니야스’이다. 여기서 ‘나흐르’라는 말은 ‘시냇물, 개울, 수로’라는 뜻이다. 이들 수원에서 나온 물과 헤르몬 산의 눈 녹은 물이 합쳐져 먼저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훌레 호수에로 모여든다. 이 호수까지 길이가 약 12km 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호수가 호수 역할을 못하고 있다. 본래 늪지대인데다가 오래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호수를 개간하여 농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줄기는 계속해서 남쪽 18km 떨어진 갈릴래아 호수로 모여든다. 이 호수에 대해서도 이미 앞에서 상세히 보았다. 이 호수의 물은 호수의 남쪽 끝부분에 있는 수로를 통해서 요르단 강으로 흘러든다. 필자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호수에서 맑은 물이 수로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수로의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 물은 지금같이 흘렀을 것이다. 이 강물은 다시 요르단의 낮은 계곡을 따라 사해로 흘러들어 간다. 요르단 근원에서부터 사해에 이르는 직선거리는 약 130km이지만 강 전체의 길이는 하류의 굴곡 때문에 무려 320km가 넘는다. 그만큼 강물이 굽이굽이 흐른다는 표시이다.
요르단강(II)-구약성서에서
구약성서에서 요르단강이 몇번 언급되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요르단강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사해까지의 강이다.
① 성서에서 ‘요르단’이 처음 언급된 곳은 아브람과 롯의 이야기에서이다(창세 13장).
아브람과 롯이 분가하기로 했을 때 롯은 요르단 분지를 다 차지하였다. 거기에는 에집트의 땅같이 물이 넉넉하였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살았고 롯은 요르단 분지에 있는 여러 도시에서 살다가 소돔으로 옮겨가 살았다. 그후 롯이 살고 있던 지역에 있는 성읍들은 모두 빼앗기고 짓밟혔으며 롯도 포로로 잡히고 그의 재물도 빼았겼다. 그러자 아브람이 그의 사병들을 불러모아 밤중에 적군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롯을 구하고 그 재물을 되찾았다(창세 14장).
② 가나안 정복시대에 요르단 강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극복해야 할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모세의 마지막 소원은 이 강을 건너도록 허락받는 것이었다: “부디 저도 건너가게 해 주십시오. 요르단 강 건너 저 아름다운 땅, 저 풍요한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해 주십시오.”(신명 3,25). 그러나 하느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았다.
모세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하느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그 당대의 백성들은 아무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너는 예리고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맥을 타고 느보산 봉우리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 차지하게 할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그 산에서 죽어라.”(신명 33,49).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저 땅을 건너다 볼 뿐 들어가지 못한다.”(신명 33,52).
그래서 모세는 그토록 평생 원했던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금 요르단에 있는 높은 산인 느보 산(지중해발 822m)에서 그 땅을 바라보면서 죽어야만 했다. 야훼께서 바로 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구출하셨고, 그를 통하여 계약을 맺으셨다.
또 모세 이후로 “이스라엘에는 두 번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야훼와 얼굴을 마주 보면서 사귀는 사람이 없었다”(신명 34,10)고 할 정도로 그는 위대한 예언자였다. 이런 그에게까지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게 하시고 바라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라시는 야훼 하느님은 참으로 얄궂은 분이시고 알 수 없는 분이시다.
③ 그의 소원이 하느님께로부터 거절당하자 모세는 그의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맡겼다(신명 3,28; 여호 1,2).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야훼의 명령에 따라 요르단 강을 건너야 했는데, 마치 홍해 바다를 건너듯이 했다고 한다(여호 1-4장).
④ 요르단강은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와 많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엘리야는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와 함께 요르단 강으로 갔었다.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말아 가지고 그것으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엘리야 승천 후 엘리사도 엘리야가 남겨 둔 겉옷으로 요르단 강을 치자 역시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2열왕 2,6-14).
또 나환자였던 시리아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르단 강물에서 일곱 번 몸을 씻었더니 그 병은 깨끗이 사라졌고 몸이 깨끗해졌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야훼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2열왕 5,1-19).
이렇게 구약성서는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이 특별한 방식으로 요르단강에 닿아 있음을 전하고 있다.
요르단강(III)-신약성서에서
요르단강이 주변의 국가들의 큰 강에 비해서 규모가 작고 그 이용가치가 떨어지며, 또 구약성서에서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신약성서에서만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먼저 선구자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회개를 부르짖고 구세주 오심을 선포했던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이 이 강에서 전개되었고, 더욱이 예수께서 친히 이 강으로 오셔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강은 고향의 강이면서 크나 큰 성지임은 물론, 그들 안에 굽이쳐 흐르면서 그들의 가슴을 적셔주고 있는 강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가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요르단강 주변을 두루 다니면서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한 때를 정확히 “티베리오 황제의 치세 십 오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3,1).
그러면서 “본티오 빌라도가 유대를 통치하고 안나스와 가야파가 대제관으로 있을 때”라고 덧붙인다(3,2). 로마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토는 기원 후 14년 8월 19일에 죽었다.
그러기에 그의 후임인 티베리오 즉위 제 1년은 기원 후 14년 8월 19일에서 그 이듬해인 15년 8월 18일까지이다. 관례적인 계산에 따르면 티베리오 치세 15년은 기원 후 28-29년에 해당한다.
고로 기원 후 28-29년에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고, 이때 예수께서 그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활을 시작하신 것이다. 또 본티오 빌라도는 기원 후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있었기에 이 연대를 뒷받침한다고 하겠다.
그냥 지나 칠뻔한 요르단 강 구경을 위해서 차가 다리를 지나고 난 뒤 확인을 하고
그냥 지나 칠 수 없어서 내려서 요르단강 구경을 했다.
가는 중에 히치 하이를 하는 이스라엘 청년
갈릴리의 일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