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성지순례(아빌라:Avilla): 성녀 데레사
성녀 데레사의 영성에 관한 강의록 종합적 입문:
1.1: 성녀 데레사의 인간적 영성적 여정
1.2: 성녀 데레사의 작품들
2.1: 자서전 입문
2.2: 성녀의 그리스도론
3.1: 완덕의 길 입문
3.2: 하느님과의 친밀한 우정의 나눔
4.1: 영혼의 성 입문
4.2: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동성
4.3: 교회에 봉사하기 위한 기도생활과 사도적 활동
종합적 입문
1. 영성신학에서 차지하는 데레사의 위치
우선 짧고도 간단하게나마 영성신학 분야에서 차지하는 성녀 데레사의 위치와 발자취에 관해 전인적인 평가를 내려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성녀 데레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다음 세 가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첫째는 성녀는 영성사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성 작가라는 사실이다.
- 둘째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증거한 신비가이며,
- 셋째, 성녀는 당신이 가르치셨던 영성 교의들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여러 주제들, 예를 들면 기도와 신비적 체험, 그리스도인의 역동적 체험 등이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대한 영적 스승이라는 사실이다.
종합한다면 이러한 모든 사실 외에 무엇보다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분은 16세기의 스페인의 한 시대를 살았던 한 사람의 여성이였으며, 동시에 영성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작가였고, 일생을 영적 스승으로 살아가신 분이셨으며, 창립자로서 당신이 받은 세례성사의 은총에 돌아가실 때까지 충실하셨던 분이였다는 사실을 늘 상기해야 할 것이다.
성녀에 대한 이러한 전반적인 평가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성녀께서 평생동안 어떠한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셨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겠다.
2. 성녀는 자신의 영적 메시지 안에서 본질적으로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가?
▶내적 생활:
- 성녀가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는 영성적 주제는 크게 말한다면 내적 생활이다.
- 인간이 영위하는 내적 생활의 가치와 기도. 성 아우구스티노가 언급한 내적 생활과 그 체험.
- 인간은 하느님께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 인간을 하느님과 통교하게 하고 변모시키는 은총의 실재와 그 능력에 대한 강한 확신.
-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요약이라는 것 등이다.
▶그리스도인이 지닌 인성의 가치에 관하여:
- 인간의 본성이 가진 가치에 대한 깊은 관심.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지닌 실제 모습.
- 인간적인 덕과 복음 삼덕과 사회적인 덕목을 강조함과 동시에 우정과 통교의 가치.
- 기도 생활과 신비적 삶의 최종 목적은 사도적 봉사라는 것.
▶신비신학:
- 신비들의 가치에 대한 증거.
- 평범한 인간에게 은총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초월적 개입. 성녀의 모든 저서들은 신비체험의 증거임.
- 신비생활은 수덕적(修德的)삶과 행동에 반대되는 것이 아님. 수덕생활은 일관성이 중요함. 수덕생활의 최종목적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거처를 마련하실 수 있도록 내적 공간을 넓히는 행위임.
- 신비적 현상들은 그 자체로서 만족하는 현상이 아니라, 타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된 성덕과 삶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결과이며 증거임.
▶체험과 교의(敎義)의 일치:
- 성녀의 가장 근원적인 영성의 샘은 살아계신 그리스도 체험이다.
체계적으로 작품을 학술적으로 정리하고 발표하는 능력이나 지성을 가지지는 않았고 또한 비록 불확실한 교의에서 출발하지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하느님간의 영적 여정을 새롭게 정리 서술한 것이다. 부연하자면, 연역적이지도 않고 귀납적으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닌 데레사의 체험과 교회가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입증하는 진리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보이듯이 저서들은 개인적인 영성적 여정이며 그 체험들은 자신의 독창적인 자신의 영적 자산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모든 영적 여정은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능력을 매순간 체험하는 신비생활을 보여주고 드러내는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하느님의 능력을 느끼고 알고 깨닫고 서술해 나가는, 한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에 대한 깊은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녀 데레사의 인간적 영성적 여정
데레사의 생애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첫째로 교회 내의 모든 성인과 성녀들의 일생은 교회를 향한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두번째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느님이 베푸는 구원사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의 삶은 하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라고 이해할 때, 특별하게도 성녀의 삶의 배경(봉쇄)에서 적용한다면 오랜 동안의 고통과 창립과정,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나아갈 영성적 지표를 세웠다는 면에서 교회안에서 자신의 성소를 완전히 실현시킨 충만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성녀의 생애에서 보여지는 과정과 영성적 메시지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작업은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가 다루려는 한 인간의 단순한 역사적인 영역과 인간 심리학적인 부분만을 파악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하겠다.
어쨌든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영성적 교의와 영적 체험은 데레사의 인생의 여정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인격체의 인간적 여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삶의 자리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앞으로 전개될 저서 안에 나타나고 있는 영성적 교의를 더욱 깊고 심오하게 접근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성녀 데레사의 생애
우리는 성녀의 삶에 있어서 네 번의 중요한 전환기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1515 - 탄생 (아빌라)
1535 - 가르멜 입회 (1535. 11. 2). 서원 (1537. 11. 3)
1562 - 첫 번째 가르멜 수도회 창립 (아빌라)
1582 - 운명 (알바 데 또르메스)
▶또 이러한 날짜는 다음과 같이 세 단계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 1515-1535: 가정 생활 (20살까지)
(2) 1535-1562: 엔까르나씨온 수도원 시기 (27년)
(3) 1562-1582: 개혁 가르멜 창립 시기 (마지막 20년)
1) 첫번째 시기: 가정 생활 (20살까지)
▶ 유아기
아빌라에서 1515년 3월 28일 아버지 알론소 쎄뻬다와 어머니 베아뜨리쓰 데 아우마다 (당시 20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된다. 데레사 데 아우마다는 11남매의 6번째, 딸로서는 언니 마리아 다음으로 두번째로 태어나서 부모에게 많이 사랑 받았음을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가정의 분위기가 그리스도교적이고 또한 중세 기사도의 전통에 충실한 가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자신의 부모로부터는 성모님께 대한 사랑과 타인들에게 베푸는 동정심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나의 아버지는 좋은 책과 다양한 언어와 속어로 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것이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6~7살 즈음에는 그녀의 오빠인 로드리고와 함께 영원한 삶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며, 특별히 순교성인에 대해 관심을 갖은 데레사는 그녀의 오빠와 함께 이교도들의 나라에 가서 순교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집을 나와서 도망을 치나, 곧 가족에게 인도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유년기
평온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얌전하지 못한 그의 사촌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성녀 자신은 증언하고 있다.
14~15세 사이에 성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성모님께서 어머니를 대신해 주실 것을 청한다.
1531년 성녀의 아버지는 성녀를 아빌라의 아우구스티노회의 수녀원 기숙학교로 보내어 교육을 받게 한다.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의 기숙학교에서 마리아 브리쎄뇨 (Maria Briceno) 수녀의 감독을 받게 되는데, 당시 성녀는 수도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수도자가 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인간적 사랑의 허무함을 깨닫게 되고 친구 후아나 수아레쓰가 사는 강생 수녀원을 생각하며 1년 반 동안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성소
1532년, 이 시절 성녀는 병으로 말미암아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시골 까스테야노스에 있는 언니 마리아의 집에서 요양하면서, 결혼 생활의 행복하지 못한 현실을 보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골 오르띠고싸에서 데레사는 숙부 베드로의 집에 잠시 머물면서 열심한 숙부의 신심생활에 영향을 받는다. 이때 성 예로니모의 서간집을 읽게 되고 성소를 느끼게 된다.
“나는 성 예로니모의 서간집을 읽고 있었는데, 거기서 큰 용기를 길어 낼 수가 있었고, 따라서 아버지께 내 성소를 이야기할 수 있는 진실을 갖게 되었습니다.”
2) 두번째 시기; 강생 수녀원에서의 삶 (27년간)
초창기: 착복 - 1536년 11월 2일.
서원 - 1537년 11월 3일 (자서전. 4장 2절 참조).
큰 만족감(4,2)과 어려움을 기쁨으로 참아 견디는 것과 또 자신의 노력(5,1). 병고(4,5).
병고: 서원 몇 달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함.9) 수도원을 떠남(4,5) - 백부 집으로 감(4,6). 여기서 거둠의 기도를 다룬 ‘제삼 기도의 초보’10)라는 책을 읽게 된다. 1538년 8월에 데레사는 병상에서 나흘동안 가사상태에 빠져 종부성사를 받게 되고, 9개월 투병후 강생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거기서 완전히 전신불수로 간호를 받아야 했다. 1540년 데레사는 기적적으로 치유된다.
회심: 1553년. Ecce homo 흉상에서 은혜의 충격을 받은 데레사는 회심하게 된다. 손님들을 피하고 묵상기도에 힘쓰게 된 것이다. 1554년초에 아오스딩의 고백록을 읽고 결정적 회개를 하게 된다.
3) 세번째 시기; 마지막 20년 (본격적 창립 활동 시기)
이 시기에 데레사는 수도원 창립을 위해 스페인 거의 전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계층 (예: 왕, 총장신부, 교황대사, 주교, 관구장, 교수, 대학생, 사령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귀족부인, 선교사, 남미에서 돌아오는 기사 등)의 사람들과 교류를 갖게 된다.
▶첫번째 창립 (1562)
데레사가 새로운 수도원의 창립을 생각하게 된 때는 거의 성녀의 나이 50세 쯤이었다. 그때는 성녀의 깊은 영성생활의 완숙에 이르렀을 때에 시작하게 된다. 그 시작의 은혜는 물론 하느님의 신비적 은혜이다.
이리하여 지옥의 환시를 봄으로 해서 성녀는 영혼들을 구하려는 열망을 갖게 된다. 계속해서 성녀는 당신과 뜻을 같이하는 젊은 수녀들과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수도원을 창립할 뜻을 세우게 된다. 이 수도원을 창립하게 된 기본적인 바탕은 다음 세가지이다.
첫째, 철저하게 소공동체의 삶을 추구한다.
둘째, 이 수도원은 기도와 침묵, 그리고 극기생활을 통하여 완덕생활을 지향한다.
셋째, 원회규(原會規)와 초창기 가르멜 은수자들의 삶을 모범으로 삼는다.
창립을 도와준 은인들은 아빌라에 살고 있던 미망인 우요아의 기요마르 (Guiomar de Ulloa)13)와 알깐따라의 베드로 성인, 그리고 예수회 고백신부들, 충고자들, 도미니꼬회 사제들, 그리고 교구사제들이었다.
똘레도에 있는 귀족부인을 도와주라는 관구장의 명을 받들어 봉쇄에서 나와 똘레도로 가게됨. 아빌라 시의 반대를 극복함. 성녀가 47살 되던 해 1562년 8월 24일 첫번째 개혁가르멜 수도원이 창립되게 된다.
“이윽고 온갖 준비가 끝나자,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에 몇 명의 지원자가 착복을 하고 성체를 모시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영화로우신 우리 아버지 성 요셉 수도원은 필요한 온갖 허가와 권리를 갖추고 1562년에 창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즉시 창립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아빌라 시의 많은 사람들과 수녀가 속해 있던 엔까르나씨온 수도원의 장상들과 동료들의 거센 반대와 도전을 받게 되고 수도원 폐쇄 압력과 수도원(Encarnacion)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당한다.
”그렇지만 우리 수도원과 시내에 이미 이 사정이 퍼졌기 때문에 수녀들 사이에 큰 소동이 일어났었는데,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이유 때문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즉시 원장님은 내게 수도원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나는 이 명령을 받자, 슬퍼하는 수녀들을 그냥 남겨두고 지체하지 않고 곧 떠났습니다. 여러 가지로 큰 고생이 있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나, 이미 수도원은 창립된 터이라 그리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주께 나를 도와 주십사고 뜨거운 기도를 바치고 우리 아버지 성 요셉에게는 당신 집에 나를 다시 데려와 주십사고 부탁드린 후, 참아 견디어야 할 온갖 고통을 다 주님께 바쳤습니다.”
다시 수녀원 본원으로 돌아온 후 관구장에게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하고, 몇 달 후에 마드리드에 있던 관구장의 허락을 정식으로 얻어 성녀는 다시 자신이 창립한 수도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5년동안 성녀 일생에서 가장 평온한 때를 보내게 된다.
“아빌라의 성 요셉 수도원을 창립하고 나는 거기서 5년 동안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내 생애에서 가장 평화스런 때였습니다. 그 고요, 그 평화, 나는 지금도 그 때가 얼마나 그리워지는지요.…”
이 시점에서 성녀의 본격적인 저술활동이 시작된다. (예:자서전, 완덕의 길, 그 밖의 소품들).
▶본격적 창립활동
새로 창립된 가르멜의 평화는 두 번의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1) 총장 신부와의 만남과 (2) 남미의 선교사 신부의 방문이었는데,
1567년 2월 아빌라에 총장 신부인 요한 바티스타 로시 (Giovanni Battista Rossi) 신부를 만나게 된다. 데레사는 총장신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미안함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성녀가 창립한 수도원이 총장신부가 아닌 그 도시의 주교 관할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총장신부는 처음 데레사를 만났을 때부터 성녀가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데레사에게 계속적으로 다른 수도원을 창립할 것을 허락했고 장려했다고 전해진다.
그 몇 달 전 1566년 가을 성 요셉 수도원에 남미에서 선교를 담당했던 프란치스꼬회 수사신부인 알론소 말도나도 (Alonso Maldonado)가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신부가 설교 중에 남미에는 수많은 인디안들이 바르지 못한 종교 인식과 배우지 못한 탓으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자, 데레사는 자신의 기도로 이러한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성소라고 생각하게 된다.
“악마가 이다지도 많은 영혼들을 앗아가는데, 나는 기도밖에 다른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부족하나마 이 기도로써 다만 몇몇 영혼이라도 주님을 위해 구해낼 수 있도록 해 주십사고 애절한 눈물로 호소하였읍니다.…(중략)… 하지만 주님은 내게 우리가 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체의 봉사보다도 주님의 자비하신 도움으로 기도와 다른 방법을 다하여 구한 한 영혼을 훨씬 소중히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러한 배경 (총장의 허락과 영혼을 구하려는 열정)으로 말미암아 데레사는 남자 수도원을 창립하려는 소망을 품게 된다.
1567년 8월에 두번째 가르멜 수녀원이 메디나 델 깜뽀 (Medina del Campo)에 창립되고, 그곳에서 데레사는 십자가의 요한 신부를 만나게 되어 그를 설득하여 새로운 남자 가르멜을 시작하도록 그를 끌어들인다. 데레사는 이 새로운 수도생활 양식을 보여주기 위해, 수녀원 창설을 위해 기증 받아 개조 중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한 집으로 십자가의 요한 신부를 데리고 가게 되고, 드디어 1568년 11월 십자가의 요한 신부와 안또니오 신부는 두루엘로(Duruelo)에서 최초의 남자 개혁 가르멜 수도원 생활을 시작한다.
▶이제 데레사가 창립한 수도원을 연대순으로 살펴볼 수 있겠다.
- 아빌라 (1562). -
메디나 델 캄포 (1567). -
말라곤 (1568). -
바야돌리드 (1568). -
똘레도 (1569). -
빠스트라나 (1569). -
살라망까 (1570). -
알바 데 또르메스 (1571). -
세고비아 (1574). -
베아스 데 세구라 (1575). -
세비야 (1575). -
비야누에바 데 라 하라 (1580). -
소리아 (1581). -
부르고스 (1582); 그리고 성녀가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대리자를 시켜 창립한 수도원은 까라바까 (1576)와 그라나다 (1582) 등이다.
▶장상들의 압력
데레사의 개혁 수도원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여러 장상들에 의한 교회 사법권적인 권한의 오류와 또한 그들의 간섭으로 말미암아 마찰을 빚게 된다. 성녀는 그 어려움을 총장 신부에게 호소하고 도움을 청하지만 냉랭한 반응을 접하게 된다. 오히려 총장 신부는 더 이상 성녀의 편지에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총평의회에서는 수도원 창립을 금할 뿐만 아니라 어디 한곳의 수도원을 선택해 들어가서는 다시는 나오지 말라는 명령이 총평의회에서 결의되게 된다.
그동안 개혁 가르멜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교황대사 오르마네또 (Or- maneto)가 사망하고 후계자였던 세가 (Felipe Sega)는 성녀 데레사와 개혁 가르멜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십자가의 요한 신부는 똘레도의 감옥에 갇혔고 데레사는 그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던 중, 심지어 왕에게도 탄원해 보았으나 허사로 끝나게 되고, 오히려 성녀 자신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고발당하게 된다.
오랜 고통의 과정을 거쳐 데레사는 자신의 개혁 수도회의 창립에 대한 지지를 얻게 되고 차츰 수도회가 정착되자, 그라시안 신부에게 처음으로 콩고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제안하게 된다. 1582년 10월 4일 알바 데 또르메스에서 긴 여행을 마치고 선종하시게 된다.
2. 내적 여정
성녀의 내적 생활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대 결심(determinada determinacion)으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수덕적인 시기와 가시적인 은총의 형태 안에서 인격의 상호 교환이 이루어지는 신비적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여정은 1554년의 회개로 시작된 것이며, 첫번째 시기를 1515년에서 1554년사이의 과정 즉 거의 40년동안의 기간으로 볼 수 있다면, 두번째 시기는 1554년에서 1582년까지의 약 25년의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첫번째 시기는 성녀의 일생에 있어서 길고도 깊은 내적 투쟁과 위기, 긴장, 때때로 느꼈던 하느님 은총의 부재를 체험하는 수덕적인 시기였고, 두번째는 하느님의 은총의 우월함에 의해서 이끌려지던 신비적인 시기였다.
1) 첫번째 시기 - 수덕적인 시기
무엇보다도 먼저 성녀의 영성생활은 처음부터 일관성있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굴곡이 많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녀의 영성생활은 자신의 삶에 다가오는 사건과 일에 지나칠만큼 많이 좌우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성녀의 수덕생활을 세 단계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번째 개화기: 유아기때부터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1515 - 1529년까지?)
자서전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관상과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직관하는 선천적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립이 되는 두 개의 대상의 깊은 가치를 비교하고 직관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면 하느님과 사물들,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등이다. “오직 하느님만으로 족하다 (solo Dios basta)” 인식은 유아기에서부터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하나의 진리로 나타나고 있다.
▶성소: 1543년에서 아버지의 죽음에까지
아우구스띠노회 은혜의 기숙학교의 생활에서 차츰 외적인 사물과 맛이나 위로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다.31) 이 수녀원의 수녀인 마리아 데 브리쎄뇨에게 차츰 자기자신을 열기 시작하고, (자서전 3,1) 성소를 느끼기 시작한다. (3,1-2) 성 예로니모의 서간집을 읽고 아버지께 성소에 대해 의논한 결과 거절당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수도원에 입회하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3,7) 부모에 대한 애착에서 차츰 이탈하고 수도원에 입회한다. (4,1) 입회를 결정하게 된 동기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목적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연옥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싸움은 석 달 쯤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방패로 내세워 제 자신과 싸웠습니다. 수도생활의 괴로움과 번민은 제 아무리 크다 한들 연옥만은 못할 것이다. 나는 기왕에 지옥가게 마련이었던 위인이 아닌가. 그러니 남은 생애를 연옥같은 곳에서 지낸들 그리 대단스러울 것이 있겠는가. 더구나 그 다음에는 곧장 천국에 갈 테니 말이다. 이것이 내 소망의 전부였습니다. 나로 하여금 수도생활에 들어 가도록 결심케 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노예적 두려움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악마는 안락을 즐겨 버릇하는 내가 수도생활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녀가 성소를 생각하게 된 동기는 지옥과 연옥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수도생활에 대한 관점을 자신의 봉헌에 가치를 두면서 성녀의 생활은 점차 변화되기 시작한다. 즉 덕의 함양과 기쁨을 느끼면서 점차 변모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형제적 애덕 (결코 부재중인 동료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 비난하는 적이 없었음)과 참다운 겸손과 자기부정, 자신의 병고에 대한 영웅적인 인내.33) 오수나의 프란치스꼬 (Francisco de Osuna) 수사가 쓴 <제삼 기도의 초보>를 읽고 점차 기도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함. (4,7) 그러나 한편으로 여전히 성녀의 영성생활의 큰 테두리는 인간적인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는 성녀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좋은 영적 지도자의 부재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나는 나를 이해해 줄 만한 스승, 곧 고해신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20년간 그런 분을 찾았지만 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내 영혼이 받은 손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습니다. 내 영혼은 때때로 뒷걸음질을 치기도 하고 또 온전히 몸을 망쳐 버릴 만한 위험에 놓일 뻔도 하였습니다. 현명한 지도자가 있었던들 하느님을 배신할 만한 기회에 말려든 나를 구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동료인 선배 수녀의 충고를 애써 무시하고 거부함. (7,9) 그리스도의 엄한 얼굴의 현시와 혐오스럽게 생긴 두꺼비의 출현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임. (7,8)
- 평범과 세속적인 그런 느슨한 봉쇄수도원의 생활에 자기자신을 점차로 적응시킴.
- 경박한 외부인과의 교제 (7,6)
- 양심 성찰에 대해 소흘해지고 충실하게 임하지 않는 태도 (7,6-8)
- 묵상기도에 대한 소흘, 등한시하고 귀찮게 여김 (7,1;8,7)
“나는 기분풀이에서 기분풀이로, 부질없는 것에서 부질없는 것으로 죄의 기회에서 죄의 기회로 옮겨가기 시작하여, 마침내 위험천만한 지경에 이르고, 이런 경박한 것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타락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가까이하여 묵상기도함으로써 그처럼 친밀한 가운데 하느님과 사귀는 일이 부끄러워졌습니다.”35)
- 불충실한 기도생활을 하느님께 드린데 대한 부끄러움으로 거의 1년반동안 기도를 놓음. (7,1;7,11;9,4)
결국 위기에 도달함. 이즈음 아버지의 사망. (1543: 자서전 1,4-16)
▶마지막 투쟁
회개까지 10년의 기간 (1544-54). 아버지의 사망으로 큰 충격에 빠짐. 바론 신부 (도미니꼬회 수사신부)의 충고로 묵상기도를 다시 시작함, 두 주일에 한 번씩 성체를 모시게 함. 바론 신부는 성녀를 영적으로 지도하나 여전히 성녀는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7,17) 거의 10년 동안 모순 (성녀의 표현으로는 영적 생활과 위로, 관능적 생활의 향락과 기분전환)이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명제, 모순에서 고민하게 되고 건조하고 고통스런 묵상기도의 건조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수 년 동안은 유익한 좋은 생각보다는 빨리 묵상시간이 끝났으면 좋겠다, 어서 시계가 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 정신이 팔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묵상기도를 하려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보다는 아주 지독한 보속을 받는 편이 더 수월하다고 느껴졌읍니다.…”(8,7)
- 응접실에서 무익한 대화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림. (8,11)
- 드디어 데레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회개의 기회를 맞게 된다.
ㄱ) 기도소 앞에 있던 성상의 그리스도 모습에서 그녀의 영혼은 정말 그리스도의 인성을 대한 듯 그동안의 잘못을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이 용해되는 시기를 맞음. (9,1-3)
ㄴ)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을 읽고 결정적인 회개에 이르게 된다. 자신을 성 아우구스티노의 회개에 비추어 동일시함 (정원에서의 일화). (9,7-9)
- 이 두가지 사건이 결정적인 회개와 일대결심 (determinada de- terminacion)을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평가: 마지막 정화(淨化)를 위해서는 하느님의 신비적 은총이 필요하고 개인의 수덕생활을 실현시키고 반성하게 한다. 신비은총은 이러한 수덕적인 시기에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비적인 은총은 갑자기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2) 두번째 시기 - 신비적인 시기
성녀의 삶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여는 신비적 시기는 우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 (심리학적-윤리학적)의 지속적 현존(現存)이라는 체험이 연속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체험될 수 있는 은총의 삶이 더 이상 감추어지는 어떤 실재가 아닌 오히려 그 은총을 주시는 근본적인 존재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의 영성적 삶을 지탱하는 신비의 저 근원을 탐구하게 만들도록 자신을 고무시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녀는 자발적으로 이러한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를 청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미 기술한 1554년 사순절에 받은 두가지 은총 (그리스도의 고통받는 모습의 성상을 보고 회개를 결심함과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을 읽고 결정적인 회개에 이르는 과정) 후에 성녀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성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신비적인 시기에서도 역시 우리는 네 단계가 있었음을 성녀의 일생과 저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신비생활의 입문시기 (54-62세까지)
a. 신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주부적(注賦的)인 관상이며 이때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하느님 현존인데,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느낌과 감각으로 성녀의 영혼안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게 되고 하느님은 성녀의 기도생활을 견고하게 하며 서로를 결합시키는 주체로 활동하시고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내 안에서 현존하는 하느님과 성녀의 사이에는 고정되고 안정된 관계라는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b. 그리스도의 인성이 중심을 차지하는 새로운 은총을 체험하게 됨
- 그리스도의 첫번째 말씀 (19,9)
- 첫번째 황홀경 (24,5)
- 첫번째 현시 (27,2)
c. 이러한 그리스도의 인성은 인간적인 잘못된 애정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정화시키며, 그리고 차츰 심리적인 변화와 동시에 타인들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애정과 방식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으로 대하게 된다.
d. 궁극적으로 일치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현존은 성녀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과 의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노력으로 방향전환하게 한다. 차츰 영적 지도자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으며, 예수회, 도미니꼬회 사제들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영적 지도를 받는다.
■탈혼상태의 시기 - 은총으로써 정화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 완덕을 준비하는 시기
a. 내적 정화와 신앙과 사랑의 삶, 그리고 은총이 증대되며, 초자연적 은총과 가시적인 현시와 탈혼이 지배되는 시기였음: 탈혼과 격정과 사랑의 화살, 신비적인 표현, 공중에 뜨는 현상 등이 나타나게 된다.
b. 우리는 성녀가 체험한 여러 가지 초자연적 현상들 중에서 다음 두 가지를 주목해 볼 수 있다. 천사에 의해서 심장이 불붙은 금화살에 의해 찔리심과 저술의 여러곳에서 나타나는 영적 정화에 대한 선포: 이러한 현상들은 성녀의 신비체험을 나타내지만 반면에 그러한 느낌과 초월적인 영역들은 단지 인간이 표현할 수 없고 자세하게 묘사할 수 없는 하느님만이 선사할 수 있는 심원한 은총의 비밀을 앞서서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과 메아리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c. 결국 데레사가 체험한 신비적 체험의 은혜는 "오로지 하느님 한분"이라는 순수하고 정화된 종말론적 결과를 탄생시키게 된다. 즉 은총을 받은 어떤 한 개인이 천국에 대한 동경과 그분과의 만남을 희망하게 되면서 "오로지 하느님 한 분 (solo Dios)"이라는 절대적 관계가 형성되고 이에 더불어서 자신의 삶을 정향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나는 천국으로 옮겨진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맨 먼저 뵈온 분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였습니다..." (자서전38,1)
"하지만 이런 은혜는 그지없이 높은 은총이라 그 중에서 제일 작은 것이라도 나를 황홀하게 만들고 이 세상의 온갖 것을 업신여기고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매우 귀중한 효과를 영혼에게 끼치기에 충분합니다..." (자서전38,2) 또한 이러한 환시와 현상들은 성녀로 하여금 죽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고 하느님을 빨리 뵈오려는 종말론적인 삶을 준비하게 한다.
"시계가 치는 것을 듣는 것은 나의 위로입니다. 내 생애의 이 한때가 지나가도 하느님을 뵈러 가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되니 말입니다." (40,20)
"지금 나는 세상을 떠나 소수의 거룩한 동반자들과 함께 있으므로 나는 매사를 마치 높은 곳에서 보는 것 같으며, 사람들이 내게 대한 말을 하거나 말거나 하는 따위는 조금도 상관치 않습니다." (40,22)
"인생살이는 내게 한낱 꿈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은 거의 꿈 같기만 합니다. 내 안에서 이 세상 일 때문에 큰 기쁨도 슬픔도 찾지 못합니다." (40,22)
"내 벗이 되어 주고 내가 함께 위로를 맛보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저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고 나는 가끔 느낍니다. 이와는 달리 이승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죽은것 같아서 온 세계도 내 동반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38,6)
이 "오로지 하느님 한 분"이라는 방향제시는 첫번째 개혁 수도원인 성 요셉 수도원 설립 목적과 개혁 수도원의 성격을 규정짓는 대전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벌어지고 있었던 종교전쟁과 프로테스탄트로부터 위협받고 있었던 교회가 처한 상황은 성녀로 하여금 자신의 개인적 삶과 이상적인 목표를 "교회를 위해 살고", "교회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교회를 위해 성녀가 되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하게 되는 교회론적인 삶이 되게 하는 것이며, 실제로 창립의 목적과 계기로써 적용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1566년 가을 성 요셉 수도원에 남미에서 선교를 담당했던 프란치스꼬회 수사신부인 알론소 말도나도(Alonso Maldonado)가 방문하여 남미의 상황을 설명하자 데레사로 하여금 기도는 교회를 위한 중요한 사도직으로 여기게끔 하는 기회로써 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알론소 신부는 설교 중에 남미에는 수많은 인디언들이 바르지 못한 종교 인식과 배우지 못한 탓으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자 데레사는 자신의 기도로써 이러한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성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악마가 이다지도 많은 영혼들을 앗아가는데 나는 기도밖에 다른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부족하나마 이 기도로써 다만 몇몇 영혼이라도 주님을 위해 구해낼 수 있도록 해 주십사고 애절한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 (중략) ... 하지만 주님은 내게 우리가 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체의 봉사보다도 주님의 자비하신 도움으로 기도와 다른 방법을 다하여 구한 한 영혼을 훨씬 소중히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창립사 1,7-8)
이 모든 신비적 삶과 관상적 몰입은 사도직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투신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며, 뿐만 아니라 여러 곳의 가르멜 수도회의 창립과 자신의 삶안에서 체험한 하느님과 영성적인 자신의 작품들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자서전. 완덕의 길. 영적 교제)
■마지막 시기: 하느님과 신비적 합일 (1572-1582)
성녀의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시기였다. 신비적 현상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반면, 앞에서 언급한 일치와 사도직 그리고 종말론적인 희망의 모습들이 한층 심원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세 가지 중요한 요소들, 즉, 그리스도론적이고 교회론적이며 삼위일체적인 요소들이 자신의 삶안에서 확고한 위치를 정립하게 되는 시기였다.
a. 십자가의 성 요한으로부터 성체를 영할 때 받은 영적 합일 (1572. 11. 18)은 상징으로써 제시되고 있는 영적 결혼의 신비적인 합일의 은총이 성녀의 일생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시에 여전히 신비적인 은총과 현상들이 지속되고 있으나 차츰 감소되면서 희박하게 나타난다.
b. 성녀의 영혼안에서 부차적이고 화려한 현상과 환시가 없어지고 하느님의 현존 체험이 지배적 역할을 하게 된다: 삼위일체의 현존 체험과 하느님의 이끄심과 적극적인 초대가 이루어진다.
c. 내적 생활과 사도직이 더욱더 긴밀히 서로 연결되고 안정적인 구도를 갖는다. 이 시기에 성녀는 자신의 개혁 가르멜에 대한 장상들의 반대와 그리고 인간적인 몰이해의 조건에서 크게 시련을 겪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영성적 저술이 가장 활발하고 충만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시기에 쓰여진 작품은 '영혼의 성' (신비적인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과 사도적인 활동들에 전념하는 모습을 담은 '창립사'와 각종 서간들이 탄생하게 된다.
d. 운명: 성녀는 자신의 운명을 예측했었고 운명의 날짜까지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근거는 성녀가 쓴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하게 판독할 수 없는 작은 메모에서 보여지고 있다. 자신이 '영혼의 성'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때로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하여, 어서 죽기나 했으면 하다가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는,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당신을 섬기고자 오래 살고 싶어하며, 자기에게 관한 모든 것을 당신 자비에 맡기고 맙니다. 그런가 하면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마치 짐을 너무 많이 실은 배가 바다 속으로 잠기듯이, 자기도 그와 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데레사의 사랑의 삶과 그의 영적 여정동안 끊임없이 유지되었던 다음 세 가지의 신념을 간단하게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 하느님을 뵙겠다는 원의
- 자신의 영적 가난함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
- 교회의 딸로서 갖게 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정체성
이 세 가지의 신념에 대하여는 성녀가 전개했던 영성교의의 모습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다.
3. 성녀의 영성교의
성녀의 영성교의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먼저 교의와 당신의 일생이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성녀의 영성교의(靈性敎義)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데레사의 삶에 나타난 여러 객관적이고도 역사적인 사실과 하느님에 관한 자신만의 체험들이 자신이 받은 고유하고도 특별한 감각에 의하여 조화로운 통합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작품안에 나타난 영성교의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하느님과 성녀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1) 하느님
데레사에게 구원의 계획을 밝혀주는 빛이며, 원천(源泉)으로서 그리고 성녀의 일생의 배경을 형성하고 이끌어가는 원체험(元體驗)으로서, 또한 인간의 지성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충실성을 보존하는 주인공이시다. 데레사의 영성생활의 시작, 그리고 영성적이고도 신비적인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고, 성녀의 자아실현(自我實現)과 자신이 받은 고유한 사도직을 실현하게 하는 주체이며 그 목적과 대상으로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녀의 데레사적인 영성교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녀가 체험한 하느님께 대한 내용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2) 데레사
자신의 영성교의 안에서 나타난 성녀의 모습은 매 순간 찾아오는 고통의 시련과 반대자들의 몰이해 속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며, 가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서 어떤 구체적 계획을 갖고 계시며, 어떻게 그것을 행하실지를 모르는 상황을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반문하면서 찾아가는 한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신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개인적인 경우를 "구원의 작은 역사"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성서적이고 교회적인 삶의 연장선 상에서 본다면 자신의 삶은 바로 구원의 역사이며 동시에 이러한 구원의 은총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입장 (개인적인 차원)을 취하고 있다.
즉, 우리 개인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셨듯이 우리 개인 자체가 구원사를 담고 있는 작은 장소이며 그 구원의 대상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성녀는 자신의 작품안에서 성서를 인용할때 바오로, 베드로, 다윗, 막달레나 등의 회개한 성서 상의 인물들과 성 아우구스티노 등을 언급하면서 이 하느님께로 회심한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하느님으로부터 들어높여짐: 어떤 순간적이고도 일시적인 성소나 상황이 아니라, 하느님 면전에서의 자신의 삶이 의존되는 결정적이고도 영원한 상황을 뜻한다.
- 죄: 하느님의 계획과 그분의 부르심에 저항하는 행위로 이해되고 있다.
- 회개: 인간이 하느님의 전적인 인격 안으로 돌아가는 것.
- 그리스도와의 만남: 가장 중심적이고 결정적인 사건으로써 바오로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모든 것이 변화되었듯이 우리의 각자의 삶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고, 위치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그 대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 복음삼덕의 삶 (vita teologale): 삼위일체의 깊은 신비에로의 입문하는 구체적 행위이며 실천으로 제시된다.
- 교회적인 삶: 자신의 개인적인 한계와 부족함을 초월하여 내면적인 삶을 통해 교회와 타인들에게 끊임없는 사도직의 자신의 사랑을 되돌려주는 우리 삶의 최종적 목표가 된다.
3) 작품과 생애와의 관계 (성녀의 체험과 교의)
궁방 생애 1515 - 수덕적 시기 1-2궁방, 3-4궁방 1544 - 1554년 신비생활 입문 4궁방 약 1554 - 1562년 신비적 합일 5궁방 약 1562년 영적 약혼 6궁방 1572년 - 1582년 영적 결혼 7궁방
4) 성녀의 작품과 원본 소재(所在)
성녀 데레사는 단지 교회의 한분 성녀 혹은 스승으로 뿐만이 아니라 문학적인 관점에서 스페인의 황금시기였던 16세기의 까스티야 지방의 고전적 언어를 잘 보존하고 있는 작가로 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녀의 모든 작품은 그녀가 영성적으로 성숙했던 시기인 1560년 이후에 저술된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저술했던 작품 중에서도 젊었을 때에 몇 편의 기사소설을 집필했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그러한 저술활동은 그 당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을 놓고 이해할 때 흔치 않는 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서전, 완덕의 길. 공동체 방문에 대하여. 창립사 등이 마드리드 근처에 있는 엘 에스꼬리알 왕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고, 영혼의 성, 완덕의 길 제 2판은 바야돌리드 가르멜 수녀원에, 그리고 영혼의 성 (Moradas)은 세비야의 수도원에, 그리고 작은 소품들, 관계(Relacion), 서간, 시 등은 역시 바야돌리드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성녀 데레사의 작품들
다양한 양식의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해서 대략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자전적-교의적 작품들: 자서전. 창립사
교의적-신비적 작품들: 영혼의 성. 하느님 사랑에 대한 묵상
수덕적-교육적-교의적 성격의 작품 ; 완덕의 길
교회법적 성격: 회칙. 수도원 방문에 대하여.
서정적 성격: 詩. 외침(Exclamaciones)
서간. 공동체적 성격: 서간
영성적-유모어적 내용: 풍자(Vejamen). 결투(Desafio)
1. 독창성과 영향
내용상으로 본다면 데레사 작품들의 형태와 원천들은 성녀 자신의 독창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녀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의 어떤 것을 감추려는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녀의 작품을 분석해 볼 때 매우 문학적이고 교의적인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이 선행되었음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 중에서는 어떤 사상과 보조자료의 영향을 받았음도 보여지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항상 개인적이고도 영성적인 풍요로움 등이 종합되어 자신의 독창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든다면 '자서전'에서는 다양한 문학적 사고를 토대로 한 묵상기도에 대한 언급과 이를 수행하기 위한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세하며 '완덕의 길'에서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문학적인 독서와 서적들, 그리고 그에 따른 일관된 전개로 논쟁의 확실한 핵심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영혼의 성'에서는 인용한 책에 관한 내용에 대한 암시가 없지만, 영성적 성숙에 이른 한 개인의 체험담이요 증거의 내용이 가득하다.
성녀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영성적 흐름, 그리고 교회에서 선포하는 교의적인 내용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녀가 어떤 책을 언급하거나 접할 때 무조건적이면서 수동적인 모습으로 책의 내용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녀는 때때로 책의 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비판하고 해석하고 있으며 또한 잘못된 부분에서는 나름대로의 교정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독서
어린시절 부터 책을 좋아했던 데레사는 그의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읽게되고, 점차로 어른들이 즐겨 읽는 낭만적인 기사소설에까지 독서의 폭을 넓히게 된다. 성장한 후에는 교부들의 작품과 그 당시의 영성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읽게 되는데, 성녀가 있던 공동체의 도서관은 성녀가 좋아하던 많은 까스티야어로 된 신심서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신심서적을 좋아했던 성녀는 회칙에서도 회원들에게 영적 독서는 마치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매일 취해야 하는 양식과 같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녀의 일생과 자신이 추구하던 영성적 여정에서 함께 했던 명백하게 언급되면서도 반면에 작품에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성녀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던 서적은 다음과 같다.
▶ 교부들의 작품: 성 예로니모의 '서간집', 성 그레고리오의 '욥기에 대한 주해와 교훈집',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묵상을 위한 작은 소책자'등이다.
▶ 당대의 영성가들의 작품: 그라나다의 루이스의 '기도와 묵상', 알깐따라의 베드로 성인의 '기도와 묵상집', 프란치스코 데 오수나 수사의 '제 삼기도의 초보', 라레도의 베르나르디노가 쓴 '시온산의 등반', 마드리드의 알론소가 저술한 '하느님께 봉사하는 예술', 팔마의 베르나르도의 '영적 길' 등이다.
▶ 중세기의 책인 사쏘니아의 루돌프가 저술한 '그리스도의 생애'와 카르투시오회 수사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준주성범'과 그밖의 수덕적인 내용의 중세기의 책들이다.
▶ 명백하게 자신의 작품에서 언급이 되고 있지 않지만 성녀는 당시 가르멜의 영성적 분위기와 문화를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 문화속에서 살고 있었던 관계로 수도회에서 제시하는 여러 영성서적과 가르멜 수도회의 기원을 다룬 '수도회의 거울(Speculum Ordinis)'을 비롯해서 충분하고도 다양한 가르멜의 역사와 영성에 관한 책들을 알고 있었고, 읽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당시의 영성적 흐름
당시 영성적 흐름을 주도하는 분위기는 종교의 외적인 실천과 가톨릭의 외적인 예식에 강하게 반발하여 내적 움직임을 매우 중요하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앞서 언급했지만 당시의 조명주의자들보다 더 인간의 심리적인 경향을 주시했던 에라스무스적의 인문주의 경향에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여성들의 문화, 특별히 기도에 대해 헌신하던 여성들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던 문화적이고 영성적 배경이 팽배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4. 데레사의 살아있는 책 - 성서: 말씀과 스승
성녀의 영성체험과 작품에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성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녀가 성서를 인용할 때는 매우 부분적으로 인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왜냐하면 성녀는 일생동안 지금의 우리들처럼 모국어로 번역된 성서를 결코 가져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라틴어로 된 성서를 모두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비록 성무일도를 라틴어로 드리고, 미사와 그 밖의 전례를 라틴어로 지냈다 해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는 성서를 제대로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서에 대한 사랑만은 매우 각별했다. 성서의 내용과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신하고 있다.
"내가 네개 베푸는 이 은혜는 작은 은혜가 아니다. 그것은 네가 나에게 진 값진 빚 중의 하나다. 세상에서 생기는 온갖 해로운 악은 사람들이 성경의 진리를 똑똑히 모르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가장 사소한 한 점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늘 그렇게 믿어 왔고 모든 신자들도 모두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읍니다...
"나는 성 교회의 예전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나 혹은 성서 중의 어떤 진리를 위반해 나간다는 판단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천 번의 죽음을 당할 각오가 았습니다."
이러한 좋은 예는 완덕의 길에 나오는 성서의 주의 기도에 대한 해설에서 잘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 하느님 사랑에 대한 묵상에서 성서의 가장 예민한 부분중의 하나인 아가서의 몇 구절을 주석하는데 이것은 그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사회적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종교 재판소의 검열을 감수하는 매우 위험한 시도였을 것이다. 성녀가 막 그것을 작성했을 때 고백신부는 그것을 불에 태울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그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종교재판에 회부될 것이 매우 두려웠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성녀의 성서에 대한 사랑을 방해하지 못했다. 성서는 성녀에게 유일한 영감(靈感)을 불어넣는 배경이였으며, 영혼의 성은 바로 성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였다. 이러한 성서에 대한 사랑으로 데레사는 그리스도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된다. 바로 당신의 말씀으로 성녀에게 확신을 주게 된다.
"주님은" "그일을 슬퍼하지 말라, 내가 살아 있는 책을 주마"고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왜 이런 말씀을 내게 하시는지 알아듣질 못했습니다. 아직 현시의 은혜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적, 그리스도론적, 신비적인 체험의 단계에서 성서는 성녀에게 가장 숭고한 원체험이 되고 있다. 이 내용에 대해 후에 자세하게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5. 다양한 체험의 풍요함
성녀의 다양한 체험이 자신의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영감의 샘이요, 원천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한 여성이 다양한 삶의 여정을 통해서 지혜와 통교, 그리고 무엇인가 배우고자 하는 진리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와 그 원의는 다양한 개인적 신비적 체험을 형성하게 되며,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을 주시고자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첫 번째 데레사의 체험은 자신의 인간적인 여정을 비롯한 삶의 모든 구성요소이다. 즉,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과 분위기 그리고 친분을 나누었던 모든 사람들, 조언을 주었던 신학자들, 자신만이 체험했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감각안에서 여과되어 하나의 종합을 이루고 있고 결국 그 체험은 영성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이면서 자신만이 갖을 수 있는 고유한 하나의 실재를 형성하게 된다.
두 번째의 데레사의 체험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내적인 체험이다. 기도와 신비적 체험들이 자신의 힘을 축적하는데 근본적인 요소이다. 저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타인들에게서 들은 내용이 아니라, 체험의 언어이다. 체험된 언어는 데레사적 교훈의 열쇠이며, 바로 이것때문에 성녀가 신학자들에게 어떤 주제에 대해 질문할 때나 토론할때 보여지는 모습은 자신과 확신에 찬 모습이며, 그들이 전하는 성 교회의 진리는 성녀가 이미 체험으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으로서 그 체험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조화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녀의 조화의 체험에 신뢰를 갖을 때, 저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증언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믿을 수 있으며 또한 우리 자신을 그러한 체험에까지 고무시킬 수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