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성지순례 그라나다(Granada)01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 위치한 그라나다(Granada)는 711년경부터 스페인을 약 8세기 동안 다스렸던 이슬람 계통의 나사리 왕국의 최후의 거점지였다. 1236년 코르도바의 지배권을 그리스도 교도에게 빼앗기자 아라비아 왕 유세프는 그라나다로 도망쳐 와서 나스르 왕조를 세웠다.
그 후 1492년 그리스도 교도의 국토회복 운동이 완료될 때까지 250여년 동안 그라나다는 이슬람 교도에 의한 이베리아 반도 지배의 마지막 거점으로 번영했다. 시내에는 3개의 언덕이 있다. 사비카 언덕은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곳으로 일명 알함브라 언덕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담홍색의 성벽과 탑이 성벽과 탑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전망 좋은 곳으로 시내와 주변의 경치까지 볼 수 있어 좋다.
알바이신 언덕은 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도피처로서 오밀조밀하고 작은 골목길이 인상적이다. 이 언덕 중간에 있는 산 니콜라스 성당 앞은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전체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끝으로 사크로몬테 언덕은 동굴 속에서 사는 집시들로 유명한 곳이다, 동굴 속을 주점으로 개조하여 관광객을 상대로 강렬한 리듬의 플라멩고를 보여준다.
(아)Gharnāṭa.
13세기초, 스페인에 남아 있던 알모라비드 세력이 세운 왕국.
이 세력의 중심인물인 아부 아브드 알라 이븐 유수프 이븐 나스르 알 아마르는 무하마드 1세(1232~73 재위)가 되어 나스르 왕조를 열었다. 그라나다 왕국은 주로 지금의 그라나다·말라가·알메리아 주(州)로 이루어져 있었다. 1246년 무하마드 1세는 이웃 나라인 카스티야(그라나다의 육지 경계선은 모두 카스티야와 접하고 있었음)에 봉신(封臣)으로서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대가로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에게 승인을 받았다. 이 맹세는 자주 깨졌지만 1492년 그라나다 왕국이 사라질 때까지 효력을 발휘했다.
카스티야 왕국과 전쟁을 계속 벌인데다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강력한 귀족계급이 처음부터 왕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그라나다의 내정(內政)은 항상 위기에 처해 있었다. 역대 그라나다 왕들은 모로코의 정치적 지지와 군사원조를 얻어내려고 애썼다. 모로코의 도움을 받아 그라나다 왕국은 급속히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였고, 카스티야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했으며 군부 지지에 바탕을 둔 절대주의 정부형태를 발전시켰다. 중앙정부의 경제는 주로 견직물 산업과 교역에 의존하고 있었다. 주요항구 말라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항로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라나다 왕국에서는 교역이 번창했다. 그라나다 통치자들은 지브롤터 해협에 많은 관심을 쏟아 1세기 동안 해협을 손에 넣기 위해 애썼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때로는 모로코와 손을 잡았고 때로는 카스티야와 동맹을 맺었다. 무하마드 3세(1302~09 재위)는 1306년에 카스티야와 강력한 동맹을 맺어 세우타와 지브롤터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결과 그는 카스티야 국왕의 일개 신하에 지나지 않는 지위로 떨어졌다. 리오살라도 전투(1340)에서 해협 문제가 카스티야에 유리하도록 해결된 뒤 그라나다는 고립정책을 폈고, 유리한 지형을 모두 이용하여 국경을 강화했다. 이무렵 유수프 1세(1333~54 재위)와 무하마드 5세는 알람브라 궁전을 세웠다.
14세기 후반 카스티야 왕국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무하마드 5세와 무하마드 7세(1392~1408 재위)는 재빨리 반격에 나서서 과달키비르 강변에 있는 도시들과 알헤시라스를 공격했지만, 1407년부터 카스티야는 이베리아 반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 정복을 꾀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전쟁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15세기말까지 사이를 두고 계속되었다. 그동안 그라나다 왕국은 내란으로 분열되었고 그리스도교 왕국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라나다 왕국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무하마드 11세:1482~92 재위)은 1492년 1월 2일 마지막 남은 요새인 그라나다 시를 넘겨주었다.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나사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은 스페인 국민의 국토 회복 운동에 굴복하여 평화적으로 이 성을 카톨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 때가 1492년 1월, 바로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이 있던 해이다. 이로써 스페인은 1238년부터 시작된 약 8세기 간의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의 성벽은 2km이고 길이가 740m, 넓이가 220㎡에 달하고 있다. 나사리 왕조의 번영기였던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주로 세 개의 정원, 즉 맞추카의 정원, 코마레스의 정원, 그리고 라이온의 정원을 기본 축으로하여 설계된 정원 형식의 건축물이다. 내부는 왕궁, 카를로스 5세의 궁전, 헤네라리페 정원, 알카사바(성채)로 구성되어 있다.
▶09:00~20:00, 6.0€
■카를로스 5세의 궁전(PLACIO DE CARLOS)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은 회교 건축물에 대항하기 위하여 스페인의 번영기이던 16세기 무렵에 카를로스 5세가 세운 것이다.
전체적으로 르네상스 양식을 띄고 있는 이 건축물의 1층은 음향효과가 좋아 매년 여름철,그라나다 음악제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2층은 미술관 겸 박물관으로 각종 귀중한 유품과 회화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내에는 2개의 미술관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1층에 위치한 스페인-이슬람 국립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는 알함브라 궁전 내에서 발굴한 유물을 비롯해 그라나다 시내의 저택들을 허물면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유물들 중에는 기둥, 타일, 도자기, 아랍 양식의 저택 천장과 창문 등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관람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높이 1.36m, 원둘레 2.25m에 달하는 14세기 알함브라 항아리이다.
또 하나의 미술관은 베야스 미술관으로 이 미술관에는 주로 그라나다파로 불리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고, 스페인 정물화의 대표화가인 산체스 코탄을 비롯하여 화가, 조각가 및 건축가를 겸했던 아론소 카노 등의 작품이 있다.
■ 성채(Alcazaba)
9세기에 이미 이곳에 있던 성채를 나스리드 왕조를 연 그라나다 왕국의 건국자 무하마드 1세가 현재의 규모로 정비.확장한 것. 전성기 때믄 24개의 탑과 군인들의 숙사, 창고, 터널에 목욕탕까지 갖춘 견고한 성채였지만, 현재는 그때의 자취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채의 거의 중간에 현존하는 벨라탑(Torre de Vela)에서의 전망이 훌륭하다.
헤네랄리페에서 알바이신 지구, 사크로 몬테 언덕, 그라나다 중심부, 시에라 네바다 산맥까지의 일대 장관을 만끽.
"오직 신만이 승리자다" 라는 문구가 새겨진 문을 들어서면 성채의 유적을 따라 좁은 계단을 계속 오르면 벨라탑 정상에 오른다. 이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궁전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 있는 베라의 탑까지 올라가 보도록 하자. 이 탑에서의 전망은 압권이다. 뒤쪽의 시에라 네바다의 봉우리들과 그라나다의 비옥한 들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왕궁 (Palacio Real)
14세기 중.후반, 유수프 1세와 무하마드 5세 부자시대에 건설된 이슬람 문화의 정수라고도 할 걸작 건축물ㄹ, 알람브라 관광의 백미이다. 수차례의 증개축을 반복하여 완공된 복합형 궁전, 괄람의 메수아르의 방(Sala del Mexuar)부터 시작된다. 왕이 집무를 보던 방으로 벽면이나 천장을 장식한 아라비아 문양의 타일과 석회 세공의 아름다움에 압도되고 만다. 그러나 이 장식은 모두 나중의 그리스도교 시대에 바꾼 것들이다. 방의 북쪽안에는 벽을 석회 세공으로 마감한 예배실이 있는데, 창밖으로 하얗게 빛나는 알바이신의 거리 모습이 내다보인다.
메수아르의 방에서는 아라야네스 중정(Patio delos Arrayanes)으로 나가게 된다. 남북 35m 동서 7m의 커다란 직사각혀의 연못 양옆에 아라야네스(천국의 꽃)가 심어져 있어 명명된 정원이다. 이곳에서는 작은 원형분수를 배치한 연못 남쪽에서 전체를 바라보자. 정면에 가늘고 우아한 석주가 지탱하는 7개의 아치, 그 앞에 붉게 빛나는 높이 45m의 코마레스탑, 그 정상 위로 펼쳐진 푸른 안달루시아의 하늘, 이들을 잔잔한 수면 위에 드리운 채, 바람에 아라야네스가 흔들리고 있는 풍경의 중정에는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인 정적이 감돌고 있다.
북쪽 주랑에서는 천장이 바르카(소형배)의 밑바닥 모양인 바르카의 방을 지나 코마레스탑으로 간다. 도착하면 바로 장대한 홀, 이곳은 왕궁에서 가장 넓은 한변이 11m인 정사작형의 방으로, 대사의 방이라 한다. 여러나라 사절들의 알현 등 공식 행사가 있었던 곳이다. 천장의 상감 세공, 벽의 석회 세공, 벽면을 장식한 아술레호(그림타일)는 물론 바닥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기 그지없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일대 파노라마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왕궁 관람의 하이라이트는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이다. 이 정원, 그리고 정원을 에워싸는 몇 개의 방과 시설은 왕의 사적 공간, 즉 왕 이외의 남자들은 출입이 금지된 할렘이다. 이곳을 통들어 사자 궁전이라고 부른다.
중정은 124개의 가르다란 대리석 기둥으오 에워싸여 있으며 기둥 머리를 아치로 연결한 모든 벽면에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었을 것 같지 않은 정교하고 유려한 석회 세공이 빈틈없이 입혀져 있다.
■헤네랄리페 정원(El Generalife)
왕궁의 동쪽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헤네랄리페 정원은 입구로부터 사이프러스 나무에 둘러싸인 통로가 길게 뻗어있다. 그라나다 성주가 14세기 초에 여름 별장으로 만들어 둔 이 곳은 밝은 햇빛에 반짝이는 분수와 맑은 물이 여행자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다.
작은 운하 주위에서 뿜어내는 크고 작은 분수와 흐르는 물이 한결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정원 안에서도 특히 아세키아 뜰이 돋보이는데,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꽃들이 번갈아 핀다.
14세기 초에 정비된 그라나다 왕의 여름 별궁, 왕궁의 동쪽, 도보 10분 정도인 곳에 있다. 건설 당시의 시설은 그다지 남아 있지 않지만, 물을 많이 이용한 정원이 아름답다. 그중에서 꼭 봐야 할 것은 정원 안쪽에 위치하는 아세키아 중정, 아세키안ㄴ 수로란 뜻이다. 이름 처럼 중정에는 전체 길이 50m 정도의 세로형 정원 중앙에 기다란 수로를 설치하여, 좌우에 많은 분수를 두었다. 수로를 에워싸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정성껏 가꾼 푸른 정원수들, 물이 있는 경관을 지극히 사랑했던 이슬람 사람들의 정서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
이 정원에서 약간 산쪽으로 가면 자리잡고 있는 물의 계단도 볼만하다. 긴 계단의 석조 난간 위에 얕은 수로가 새겨져, 작은 시냇물 소리를 내며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왕실 예배당(Capilla Real)
이곳에는 그라나다의 이슬람 교도들을 몰아냄으로써 스페인 전성기로서의 발판을 다진 페르난도 공과 이사벨 여왕의 묘가 지하에 보존되어 있다. 건축양식은 르네상스식과 고딕을 절충한 것으로 주요 볼거리는 왕실 예배당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장식을 한 황금색 울타리가 눈에 띈다. 이것이 왕의 묘소이다.
'그리스도의 세례' '부활' 등을 조각한 대리석 좌대에 누워 있는 것이 그들의 딸인 후아나와 남편 펠리페의 묘소이다, 지하실에는 페르난도 왕의 왕자 비겔이 잡들어 있다.
사원이 있는 곳은 시내의 중심지로서, 각종 민속 공예품 가게와 레스토랑, 기타 잡화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서 쇼핑하기에도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