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소리/파라독스

개념시리즈 01

월요일은자유인 2014. 5. 6. 05:06

◈ 대통령 방문한 진도에는 격앙된 감정만 폭발

그러던 지난 4일,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박근혜 대통령이 이곳 진도를 사고 뒤 두 번째로 방문했습니다.

저는 박 대통령이 방문하기 직전 박 대통령이 진도항(옛 팽목항)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먼저 도착했습니다.

창밖으로 비친 도로에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경찰이 가득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경호 안전을 위해 모든 교차로와 갓길에 경찰이 배치돼 서 있던 겁니다.

진도항에 도착하자 이미 삼엄한 공기를 감지할 수 있었어요.

'주차 요원'으로 위장했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경호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일반인으로 변장한 사복 경찰도 눈에 띄게 늘어났죠.

대통령이 도착한 뒤, 가족과 비공개 회의를 진행한 가족대책본부 텐트에도

경호 인력이 겹겹이 둘러싸 접근을 통제했습니다.

한 경찰은 실종자 가족을 일반인으로 착각하고 제지하다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죠.

회의는 비공개였습니다.

당시 저는 텐트 밖 약 5m 지점에 있었는데도 학부모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애들 다 죽었잖아요. 저 안에 있는 애들 다 꺼내야지 언제 꺼낼 거에요.

이제 형체도 몰라요. 애들 형체가 다 없어졌어요.

그런 상황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어요? 부모 입장에서 아이 얼굴 못 알아보는 그 기분 아느냐고요!".

이제 화낼 힘조차 없는 부모님들의 격앙된 목소리, 울분, 사무침이 텐트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홍원 국무총리 방문도 그렇고 높은 사람들이 방문하기만 하면

이곳 진도에는 부모님들의 통곡 소리가 꼭 이어지네요.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19일째인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뉴스특보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재방문 소식을 접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 대통령 대신 가족들이 손 잡아 준 사람은…

박 대통령이 다시 진도를 방문한 목적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구조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결코 이런 목적은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이 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해가 됐을지도 몰라요.

대통령 방문 때문에 수색 작업을 지원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오롯이 지원에만 신경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잠수사들도 마찬가지죠.

대통령이 수색 바지선에 오르는 순간 반복되는 잠수 뒤 잠깐이라도 편히 쉬어야 하는

잠수사들은 고된 잠수로 피곤한 몸으로 대통령을 맞이해야 했을 겁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학부모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두 번째 진도 방문에서도 이런 말을 부모님들께 했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겪어봐 잘 알고 있다. 여러분들이 어떠실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눈앞이….".

과연 부모님들은 대통령의 이런 말에 동의하실까요?

확실한 건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는 환영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딱 한 사람만 빼고요. 사고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지휘하는 해군 소장이었습니다.

한 아버님은 박 대통령이 텐트에서 나간 뒤 따라 나오는 이 소장의 손을 꼭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손 말고요.

"제발 아이들을 구해주세요. 잠수사들을 제발 잘 먹여주세요. 우리가 먹을 거 갖다줄게요."

그리고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분이 우리 애들 꺼내는 최고 지휘관이래요. 다들 손 한 번씩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