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노릇

기승전 본당 신부(1)

월요일은자유인 2020. 12. 3. 18:35

시대적 상황에 교회도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 해결책은 세미나, 토론회를 자주 열어도 항상 결론은 본당신부이다.

청소년문제

청년 문제

본당 단체의 활성화

심지어 소공동체까지 기승전 본당 신부이다.

 

그런데 2차 공의회 이후 교회는 본당신부의 교회가 아니라 주교들의 교회이다.

주교들이 올바른 방향을 잡아서 지침만 내리면 그것에 따르는 것은 본당신부일 뿐이다.

주교들이 제대로 감독, 관리를 잘하고 인사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지

본당신부가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마저도 항상 신부들만 뭐라한다. 신부들이 잘살아야 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고, 신부들이 잘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교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미국 추기경의 성추문에 대해서 처음에는 침묵하고, 고위 성직자들의 추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교황이 신부들만 잘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공동체 전국모임에서 열띤 토의를 한 후 항상 마감은

본당 신부들의 사목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소공동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냥 소공동체를 교회내의 반조직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기때문에 결론은 본당신부의 관심으로 결론을 내리고 만다.

 

소공동체의 시작은 남미의 Unit공동체에서 시작을 한다.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이나, 절대 사제수가 부족하고, 문맹율이 높은 남미이기 때문에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여건이 기본적이다.

 

저녁에 식사를 마친후 마을 사람들이 마을 공동장에 모여서

서로 잡담을 나누다가,

근본적으로 신자이기에 이렇게 모일때 그냥 성경구절 읽자고 제안을 한다.

그러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성경을 읽고 글을 모르는 사람은

성경구절을 잘 듣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새겼다가

서로 말씀나누기 하고, 말씀 나누기가 마치면

마을 사람 중에 한사람이 올라오는데 마리아할머니 집 지붕 손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 자리에서 서로 마리아 할머니집 지붕 손질 하기로 약속하고

그리고 그날 저녁 모임이 끝난다.

이렇게 시작된 소공동체 모임이 여건이 비슷한 필리핀 공동체에 전이되고

필리핀에서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필리핀 사례를 듣고 좋다고 해서

한국교회에 도입하여 소공체를 한지가 25년이 지나서 30년이 다되어간다.

 

소공동체의 시작이 철저하게 밑으로의 운동이었는데

한국교회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운동으로 변질이 되면서

예전의 반기도회를 대신하는 모임으로 전락하였고,

소공동체에 관심있는 본당 신부가 오면 조금 활성화되었다가 관심없는 아니 본당 신부가

관심을 가지면 안되는 소공동체의 자율성을 강조하면  소공동체 운동을 시들해지고 만다.

 

본당신부보다 더 바쁜 한국 교회의 신자들

평일미사 다 참례하고

레지오하고

성가대하고

주일학교하고

자모회하고

소공동체하고

주일날 미사 봉사

평일 전례봉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