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과 : 하느님, 성서
예비자 교리 제 9과 : 하느님(2), 성서(聖書)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늘 인간의 고통을 위로하시고 잘못을 용서하시며, 인간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의 목숨까지 내어 주신 분이다.
1.하느님을 올바로 아는 길.
하느님께서 당신에 관해 직접 말씀 해주시고 보여 주시는 직접 계시와 자연 사물이나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간접 계시에 의한 방법이다.
2.하느님에 대한 오해들.
1)하느님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무관한 존재로 몰아내는 경우가 있다.
2)하느님은 다른 존재보다 좀더 위대하거나 능력 있는 존재 정도이며, 따라서 인간 이성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나 해결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3)하느님은 모든 거룩한 존재의 총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다른 존재 사이에는 전체와 부분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하느님을 이 세상과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자연 자체를 하느님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3.구약성서에서의 하느님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점진적으로 계시를 통해 당신을 알려주셨다.
하느님은 유일하신 분.
창조주이시며,
피조물들을 초월하여 계시는 초월자
무한하고 영원하신 분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분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부르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분.
가나안 땅을 주시고,
왕국을 세우게 하시고,
예언자를 보내시어 이스라엘을 가르치시고,
언제나 당신 백성과 가까이 계시는 분이다.
4. 신약에서의 하느님.
하느님은 하와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에서 해방시키시겠다는 약속도 하셨다.
약속대로 외아들을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내시어,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룩하셨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시어 들어 놓이셨으며,
믿는 모든 이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다.
또한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분.
그러므로 우리에게 베푸신 것처럼 용서와 자비로 서로 사랑을 나누며
그분의 자녀된 의무를 지켜야 한다.
5.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요약한 '사도신경(司徒信經)‘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으로 표현하고자 애써 왔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도신경'을 가장 일상적인 신앙고백문으로 여기고 있다. 사도(司徒)란 예수께서 당신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고자 특별히 뽑으신 12명의 제자를 가리킨다. 또 신경(信經)이란 신앙의 중요한 진리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이란 글자 그대로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의 충실한 요약”이라는 뜻이다.
사도신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사도신경을 구성하고 있는 이 세 부분은 세례를 청하는 후보자에게 하는 다음과 잘은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당신은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령과 그분이 하시는 일을 믿습니까?” 오늘날에도 부활 성야(聖夜)의 세례 갱신(更新)식 때 신자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이처럼 신앙 고백은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의 표현이자 하느님과 인간이 갖는 생생한 관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곧 "당신을 믿나이다. 당신께 저 자신을 맡기나이다."하고 하는 고백이다. 그런가 하면 그것은 또한 하느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찬미와 찬송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앙고백문을 종종 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애초부터 이 신앙고백문을 자기들이 믿는 신앙의 근본 진리를 가장 적절하면서도 명확하게 표현한 것으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사도신경을 공부하면 그리스도교가 전하려는 진리의 핵심을 깨우치게 된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넘어야 할 첫 관문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에 대한 탐문(探問)인 셈이다.
6.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간직했던 신앙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하느님 신앙'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하느님 신앙부터 깨우쳐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대 근동에서는 유일하게 '하느님은 오직 한 분'(唯一神)이시라는 믿음을 가졌던 백성이었다. 하느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당신은 유일한 분이라고 알려 주셨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4-5). 하느님의 이 계시를 받들어 이스라엘은 하느님만을 유일하신 신(神)으로 믿고, 하느님께만 의탁하며, 그분께만 예배드려 왔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종교를 '유일신교'(唯一神敎)라고 부를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역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신관(神觀)을 따르기 때문에 유일신교이다.
7. 하느님은 '존재하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심으로써 당신이 어떤 분이신 지 계시하셨다. 유다인 들에게 또는 고대 근동인 들에게 이름은 그 사람의 가문과 성(性) 등 그의 본질과 신원(身元)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내 이름을 알려 준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나에게 다가와 나를 더 깊이 알고, 나를 인격적으로 부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그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을 전혀 모를 때 “이름도 성(性)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그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나는 존재인 자이다” “나는 존재하는 자이다” 또는 “나는 나다”라고 하는 의미를 지닌 당신의 신비한 이름 야훼(YHWH)를 알려주심으로써, 하느님은 당신이 누구이시며, 어떤 이름으로 당신을 불러야 할지 말씀해 주신다.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당신의 이름 야훼에는 하느님이야말로 '유일한 존재'이시라는 진리가 담겨 있다. 하느님은 영원 무궁히 계시는 '존재 그 자체이신 분'이시다.
8.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결과
유일하신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면 우리의 삶은 엄청나게 변한다. 먼저 하느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을 깨닫게 해 주며, 우리의 본질과 소유가 모두 그분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해 주고, 인간 전체의 단일성과 참된 품위를 깨닫게 해 준다. 또한 창조된 모든 만물을 선용하게 하고, 어떤 처지에서든 설혹 역경에 처했을 때라도 하느님만을 신뢰하게 해 준다.
이 신앙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요 최종 목적이신 하느님께만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리하여 하느님보다 먼저 다른 무엇을 선택하거나 하느님을 다른 무엇으로 바꾸지 않게 한다.
9.사랑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다. “나는 야훼다. 야훼다.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출애 34,5-6). '나다' 또는 '그는 계시는 분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신 야훼 하느님은 대를 이어가며 당신을 거스르는 인간에게 그에 마땅한 벌을 내리시기는 커녕 오히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베푸시는”(출애 34,7)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시다.
우리 인간을 이토록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결국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기”(요한 3,16)까지 하셨다. 사도 요한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한 마디로 표현하였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일반적으로 하느님을 벌주시는 엄한 분으로만 이해 하려 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으로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실 정도로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시고 잘못을 용서하시는 자상한 아버지이시다.
루가 복음 18장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잘 드러난다.
▶천주께서는 누구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만선만덕을 갖추신 순전한 신(神)이십니다.
▶천주께서는 어떠한 일을 하셨습니까?
<답> 천주께서는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을 내셨습니다.
▶천주께서는 영원하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영원하시어, 시작도 마침도 변하심도 없으십니다.
▶천주께서는 전지(全知)하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전지하시어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고, 사람의 은밀한 생각까지 다 아십니다.
▶천주께서는 무한(無限)하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무한하시어 유한(有限)한 모든 곳에 다 계시고도 무한히 남아 계십니다.
▶천주께서는 의(義)로우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의로우시어 선(善)을 상주시고, 악(惡)을 벌하십니다.
▶천주께서는 전능(全能)하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전능하시어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것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천주께서는 선(善)하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무한히 선하시어, 통회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당신께 청하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천주께서는 무엇을 원하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사람의 구원을 원하십니다.
▶천주께서는 전지, 전능, 전선 하시다는데, 이 세상에는 죄악과 전쟁과 온갖 병고가 왜 그대로 계속되고 있습니까?
<답> 천주께서 전지, 전능, 전선하시면서도 현세에 죄악과 전쟁과 병고가 계속되는 것은, 천주께서 지극히 귀중하게 여기시는 자유를 인간들이 남용하기 때문이고, 또 현세의 온갖 고통으로 인하여 인간들은 죄악을 보속하고 공덕(功德)을 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 9-2과 성서(聖書)
성서는 교회의 모든 가르침의 원천이요 믿는 이들의 양식이다.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서 기록된 거룩한 책으로 교회만이 보존하고 해석하고 전해 준다.
성서는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계시하신 바가 영구히 온전하게 보전되며 모든 세대에 전해지도록 자비로이 계획하셨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며 주 그리스도께서는 전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당신이 완수하시어 친히 선포하신 그 복음을 구원의 모든 진리와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설교하며 천상 은혜를 전해 주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성서는 글자 그대로 거룩한 책이다.
성서는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며 허물을 고쳐 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유익한 책이다.
성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해 준다.
성서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의 말씀이 기록된 책으로 이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읽혀지고 있는 책이다.
1.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은 저마다 경전(經典)을 가지고 있다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은 저마다 경전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경전에는 각 종교에서 믿고 가르치는 말씀이 실려 있다. 예를 든다면, 불교에는 '불경(佛經)‘ 이슬람교에는 '코란‘ 힌두교에는 '베다'라는 경전이 있으며, 그리스도교는 '성서(聖書)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서에는 그리스도교가 믿고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 곧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들려주신 말씀과 인간을 위해 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2. 성서는 어떻게 쓰여졌나
성서는 특이하게도 하느님의 영감(靈感:inspiration)을 받아서 기록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거룩한 책이라 한다.
영감이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생각하고 충실히 기록하여 틀림없이 표현하도록 기록자에게 작용하는 초자연적 힘이다.
그러나 성령이 기록자로 하여금 내용을 받아쓰게 했다거나, 그들의 생활이나 신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생각을 불어넣어 쓰게 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성서 기록자들은 그들의 고유의 표현 방식으로, 그들 나름의 인간 조건 안에서, 그리고 당시의 제한된 사상 안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을 해석했다.
3.교회가 성서를 보존하고 해석하고 전해 준다.
성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서는 교회를 위한 책이며, 교회 안에서 사용하고 있는 책이므로 교회의 가르침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된다. 따라서 교회는 성서를 올바르게 해석 해줄 의무가 있다. 이러한 성서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 끝날 까지 영구히 보존하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4.성서의 형성.
5.성서의 구성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구성된다. 구약성서는 역사서, 교훈서,예언서로 구분되며, 신약성서는 복음서와 서간경(교훈서) 요한 묵시록(예언서)로 구성된다.
1).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거룩한 책'인 성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놀라운 일들이 처음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수백 년 동안 구전(口傳)되어 오던 그 이야기들은 세윌이 흐르면서 조금씩 글로 쓰여지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시로, 어떤 이들은 역사적인 사건과 사실들을 충실히 기록함으로써, 또 어떤 이들은 지혜를 깨우쳐 주는 말씀이나 예언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업적을 전하였다. 이렇게 문자로 기록되고 책으로 엮어진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성서이다. 그런데 성서는 단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권으로 된 '거룩한 책들'의 묶음이며, 크게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나눌 수 있다.
한편,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자 하신 당신의 말씀을 올바로 기록하도록 글을 쓰는 이들의 마음과 정신을 밝혀 주셨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는 구약성서 46권과 신약 성서 27권을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책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하느님의 계시의 단일성을 말해 주는 단일한 성서로서, 구약성서는 신약성서를 준비하고,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완성한다. 이와 같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서로 밝혀 주는 것으로 둘 다 참된 하느님의 말씀이다.
2) 구약성서
(1)구약성서의 형성
이스라엘인들은 살아 있는 전통과 기록된 문서 안에서 종교적 가치들을 보존해 나갔다. 하느님의 계시는 원래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인의 삶과 예배의 전통, 즉 설화, 신화, 노래, 교훈, 기도, 관습 등을 통하여 전해졌으나, 시간이 흐르고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글로 기록되고 해석이 첨가됨으로써 내용이 더욱 심화되고 풍부해졌다.
이스라엘이 신앙의 눈으로 자기네 역사를 바라보고 반성하면서 기록한 것으로서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약속에 충만하심을 알려주는 구원의 역사서이다.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도자나 교사 또는 위임받은 역사가들이 흔히 백성과 경험한 사건들을 글로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는 단 한번의 작업으로 완성되지 않고 수세기에 걸쳐 새로운 체험들이 추가되면서 형성되었다.
구약성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건네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 펼쳐지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은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였다 구약성서에 대해 교회는 "하느님께 대한 숭고한 가르침과 인간의 삶에 대한 유익한 지혜와 기도라는 보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우리 구원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 이룩하신 놀라운 일들과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신 내용을 담은 글들을 한데 모아 책으로 엮는 일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약 100여 년 전에 거의 매듭지어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엮어 낸 구약성서는 그들 자신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의 책'으로 읽고 있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 끝날 까지 당신 사랑의 계획을 펼쳐 보이는 성서를 전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성서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 목록
서기 1세기 말엽, 팔레스티나 유대교의 권위자들은 성서를 세 범주로 나눔으로써 공식적인 성서 목록을 고정시켰다. 구약성서는 아래와 같은 4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율법서(律法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모세 오경'이라고 하는 이 다섯 책들이 '성서의 첫 번째 책들'인데,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이 책들이 맨 처음 씌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뽑으신 백성의 시작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2)예언서(豫言書)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예언 시대의 역사로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상 . 하권, 열왕기상,하권 등이 있으며, 예언집(預言集)으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12소예언서,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가, 나훔, 하바꾹,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 등이 있다.
(3)성문서집(聖文書集)
매우 다양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시편, 욥기, 잠언, 다섯 두루말이(룻기,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델), 다니엘, 역대기 상, 하권 등이다.
(4)구약성서에는 이밖에도 '제2경전' 7권이 포함되는데,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과 예레미야의 편지, 마카베오 상, 하권, 다니엘과 에스델의 보충 부분들이다.
가톨릭 교회는 후대에 경전 목록에 들어온 성서들, 곧 제2경전도 똑같이 영감을 받은 성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에 생긴 교회들은 보통 팔레스티나 유대 경전(히브리 경전)만을 인정하고 나머지 책들을 '외경‘(外經)이라 하여 부록으로 취급한다. 어떤 개신교에서는 '제2경전'의 성서들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한다.
3) 신약성서
(1)신약성서의 형성
예수와 제자들은 말로 메시지를 선포했으며, 공동체의 규모가 작고 예수 행적의 목격자가 생존해 있으며,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믿던 당시에는 구태여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사도들과 목격 증인이 줄어들고 종말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면서, 그리고 교회의 성장에 따라 외교 문화 및 이교도들과 대항하게 되면서 전해 받은 계시와 신앙을 기록해 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사도들이 지방 교회들에 메시지를 전하고 신앙을 격려하며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쓴 편지들을 모은 것이 서간(書簡) 성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팔레스티나의 유대교 안에서 탄생하신 분이다. 그분은 유다교의 언어로 말하고 유다교의 생활을 영위하셨다. 그분이 그리스도교의 초석(礎石)이 되었던 당신의 사도들을 선택하신 곳 역시 팔레스티나 유다 지방이었다. 그러나 그분이 직접 무엇을 쓰신 일이라고는 없었다. 그분이 남겨 놓으신 것은 당신의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이었고, 당신이 기초를 놓으신 교회라고 하는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였단. 그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전승'의 형태로 전수되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그분의 행적에 관한 기억들은 설교, 신자 공동체들의 실천적 조직, 구약성서들에 대한 설명, 그리고 세례와 성찬 예절 등으로 전수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다의 전승을 초월하는 형언할 수 없이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도들과 이들의 말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단순한 예언자나 현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1,1-2)
하느님의 말씀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충분히 전해진 셈이다. 그분이 발설하신 말씀들과, 그분 생애의 모든 행위와 마지막 운명에 의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충만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계시가 성취되었고, 동시에 인간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시작될 때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의 목적은 인류사 전체의 귀착점인 하느님의 계시의 성취(成就) 사건을 갈파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신약성서 목록
그렇지만 사도 시대와 그 후의 교회들은 나름대로 사도 전승을 몇 가지 요점으로 보존하고 있는 하나의 종교 문학을 이루어 냈다. 그 본질적인 목적은 “맡은 것을 잘 간수하는 일”(1디모 6,2O)이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단 한 편의 글도 직접 쓰거나 남기지 않으셨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스승이신 예수께 관한 글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그분을 직접 따라다녔던 제자들이나 또는 그 제자들과 접촉했던 몇몇 사람들이 하느님의 인도를 받아, 예수께 관한 내용들을 모으고 또한 그것들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이렇게 하여 모두 27권의 책들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간직하고 있는 신약성서이다.
1)네 복음서 :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복음을 말한다.
(1)마르코 복음서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가장 오래된 복음서이다. 이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의 세례로부터 빈 무덤을 발견하는 데까지이다 저자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이라는 첫 구절과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15,39)라고 한 이방인 백인 대장의 고백을 통해서 이 복음서의 목적을 명백하게 알리고 있다. 이 복음서는 이방 그리스도인 독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2)마태오 복음서
원사료(原史料)는 마르코 복음서이다. 내용과 순서도 대체로 마르코 복음서를 따르고 있다. 이 외에도 이 복음서 안에는 추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사료가 있는데, 그 중 반쯤 은 루가 복음서에 소개되어 있다(예들 들면, 산상설교). 이 복음의 주된 내용은 예수께서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분으로서, 이스라엘에 파견된 메시아라는 것이며, 이 복음서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하나의 공동체 건설에 있다. 이는 아마 주후 70년 이후 그리스도인의 유다화 경향으로 갈등을 겪고 있었던 이방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해 쓴 것으로 보인다.
(3)루가 복음서
첫 머리에 이 복음서를 집필하게 된 저자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1,1-4). 전체 절 수의 반 이상을 마르코 복음서에서 따 왔다. 마태오 복음서에도 소개되어 있는 내용과 루가만이 알고 있는 전승들이 섞여 있는데, 분량은 마르코 복음서의 두 배 정도이다. 유다인 들의 관습을 알지 못하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썼다. 깨어 경계할 것을 요청하면서, 예수의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는 사도행전의 저자와 동일 인물로 보이며, 집필 연대는 주후 90년경이다.
(4)요한 복음서
이른바 '공관(共觀) 복음서'라고 하는 앞의 세 복음서와는 윤곽이나 어법이 다르다. 유다적인 배경은 물론 후기 그리스 철학의 영향도 받았다. 주된 강조점은 예수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 신앙과 공동체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예수의 행위의 상징성, 당신 공동체 안에서 찬양 받으신 주님의 현존 등이며, 주후 12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
교회는 복음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복음서는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례에서 복음서들이 존중되고 모든 시대의 성인들이 복음서에 비할데 없는 매력을 느껴 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복음서보다 더 훌륭하고 소중하며 더 빛나는 교리는 없다 우리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행동으로 실현하신 것을 보고 간직하기 바란다."
2)루가는 자기 복음서에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서술하는 둘째 권을 첨부했는데, 이 책이 사도행전이다.
3)사도들의 서간집(書簡集)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사도 바울로의 편지들
수신인이나 또는 수신인들의 공동체의 이름이 각 편지의 명칭이 되는 것으로 로마서, 고린토 전. 후서, 갈라디아서, 에페소서, 필립비서, 골로사이서, 테살로니까 전. 후서, 디모테오 전. 후서, 디도서, 필레몬서, 히브리서 등이다.
(2)가톨릭 서간.
발신인의 이름이 편지의 명칭이 된 것으로 야고보서, 베드로 전. 후서, 요한 1.2.3서, 유다서 등이다.
4)독특한 유형의 묵시문학서인 요한의 묵시록이 성서의 마지막을 이룬다.
6.성서를 대하는 자세.
하느님의 계시를 담은 성서는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시대의 모든 이가 알아 구원되기를 원하셨고, 이를 위해 당신의 말씀과 구원 업적을 기록하여 세세 대대로 모든 이에게 전해지도록 성서를 마련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를 대할 때, 바로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을 직접 뵙듯이 대해야 한다.
성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성서란 고통과 슬픔, 절망과 불안, 좌절로 얼룩진 인류의 비참한 역사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산 증언의 기록이며 하느님과의 만남에 이르는 문이며 그 자리이다.
우리가 절망할 때 일으켜 주시고 우리가 빛을 등지고 죄 중에 방황할 때 길을 안내해 주시고 어둠에서 빛으로 일으켜 주시는 분, 그분을 우리는 성서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성서를 읽는 태도
1)성서는 성신의 감도로 성서 기록자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쓴 책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 태도는 마땅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단정함과 경건함을 지녀야 할 것이다.
2)성신의 영감은 성서의 모든 부분에 동일하게 미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경시해서는 안된다.
3)성서 안에서 자연과학의 진리나 역사적 정확성을 찾으려고 하지 말 것이다. 계시의 목적은 종교적 진리에 있는 것이지 과학적 원리를 증거 하려는 것은 아니다. 성서에 나타나는 통속적인 표현을 이상하게 여기기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하시려는 말씀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4)성서는 신학서가 아니라 신앙서 이기 때문에 성서가 씌어진 일정한 장소와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그들을 구원에로 이끌어 가는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그래서 하느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관리하는 교회의 주해에 따라야 한다.
5)우리는 가끔 성서 안에서 우리의 윤리관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성서의 신성성(神聖)을 해치지는 않는다.
[원수에 대한 악담은 개인 대 개인의 악감정의 표현이 아니고, 하느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불의 하게 괴롭히는 자들을 하느님의 원수로 보고 하느님의 정의에 호소하여 하느님께서 벌하시기를 비는 행위이다. 이는 정의가 이기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에언 이기도 하다.]
[고통 속에서의 울부짖음은 하느님께 대한 원망이 아니라 극도의 고통을 받는 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바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것이다. ]
[전쟁에 있어서의 섬멸의 잔인함은 다른 민족과의 종교적 타협(우상 숭배)이나 문화 유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유일신에 대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으로서, 오직 하느님만을 섬겨야 하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특별히 보존되어 인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정(不淨)한 행위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동시에 그 죄에 대한 벌을 밝혀 죄인을 경계하는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
6)성서는 우리 영신 생활의 무한한 보고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든지 더 이상 성서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7)성서를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성서의 배경 즉 역사, 지리, 용어 등에 대해서 미리 공부해 두는 것이 좋다.
8)하루에 많이 읽으려고 애쓰지 말고 한 장 정도로 꾸준히 읽고 묵상할 것이며,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외우든지 따로 써 두는 것이 좋다.
7. 종합
교회는 사도 전승을 따라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을 교회의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였다. 구약 성서는 그리스도의 내 림(來臨)을 준비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 대한 가르침과 인간의 삶에 관한 지혜, 그리고 기도를 담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한편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활동, 가르침, 수난과 죽음과 영광, 그리고 성령을 통한 교회의 탄생을 전해 주는 책이다. 이러한 성서들 중에서 복음서는 강생하신 '말씀'에 재한 증거이기 때문에 성서의 핵심이 된다.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과 계시의 단일성에 의해서 구약과 신약은 하느님의 단일한 말씀이다 구약성서는 신약성서를 준비하며,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완성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는 의지와 활력이 되고,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영적 삶의 마르지 않는 샘이 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힘써 성서를 읽고, 읽은 말씀을 명상하며, 성서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는 신앙과 성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성서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지고 침묵하는 말씀이 아닌 강생하시고 살아 계신 말씀의 종교이다. 이 기록된 말씀들이 죽은 문자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루가 24,45)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