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 역사상의 예수
예비자 교리 제 10과 : 예수에 대한 이해 - 역사상의 예수 -
1. 구세주의 약속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또 다른 일면을 고찰해 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안에는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 전혀 볼 수 없는 특이한 면들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메시아 사상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 하느님께서 때가 되면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고 전세계가 이스라엘을 통하여 복을 받게 할 구세주가 와서 자기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그 메시아를 기다리고 살았다. 이 기다림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볼 때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되풀이해서 강조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과 시련에 봉착할 때 이 메시아 사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세력 다툼 속에서도 늘 간직한 희망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 다윗 왕과 맺으신 계약을 지켜 언제나는 메시아[메시아 사상: 정치적, 제사장적, 묵시묵학 예언자적]를 보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가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고된 그분이 오시면 다윗 시대보다 더한 영광과 번영을 가져다주실 것이며 이 지상에 튼튼하고 위세 등등한 이스라엘 왕국을 세워 주실 것이리라고 기대했었다. 이렇게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는데 지지치 않은 이스라엘 민족은 그때 그때의 민족적 고통과 온갖 민족적 비운을 잘 참고 지내며 끝까지 절망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시기로 약속된 분이 바로 예수이시다.
※구세주에 대한 약속은 구약성서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에와를 죄로 유인한 뱀에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뱀)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여기에서 악의 세력(뱀으로 나타나는)을 에와의 후손이 쳐부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악을 쳐 이길 구세주를 보내시겠다는 최초의 약속이다.
▶ 그리고 창세기 12장 1-3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면서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의 머리를 쳐부술 에와의 자손이 나올 것이라고 한 약속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이 세상에 복을 줄 사람이 태어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사야 7장 10 - 16절에 보면 구세주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 :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동정녀의 몸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 태어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세주가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리라는 예언인 것입니다.
▶ 그리고 태어나실 장소에 대해서는 미가서 5장 2절을 보면, “그러나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네게서 난다.”고 했습니다.
▶ 그리고 구세주 메시아의 운명과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예언되었다. 이사야 42장 1-7절, 49장 1-9절, 50장 4-9절, 10-11절, 52장 13-15절 등에 나타나 있다.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끌려가겠다.”고 죽음을 당할 모습도 미리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구세주에 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안에 놀랍게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라는 사람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인류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에 대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마태오 11,3)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했던 것이다. 신약성서는 예수님이 바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구세주는 누구이십니까?
<답> 구세주는 천주성자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답> 예수라 함은 구세주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라함은 성유로 축성된 임금이시며 대제관이라는 뜻입니다.
2. 예수님과 서기(西紀) (예수님의 탄생 연대)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 : 유다인들에게 이름은 그 사람의 본질적인 신원, 그가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활동이나 운명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알면 그분이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평범한 이름이었다. 예수의 본래 히브리 이름은 '예호수아‘ '예수아’ ‘요수아’이며, 그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이다. 복음 작가 마태오는 하느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들려준 말을 인용하면서 이 이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1,21). 이렇게 그분의 탄생 때부터 예고된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의 신원과 이 세상의 사명을 예고해 준다.
교회는 예수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바로 하느님의 이름이, 인간을 죄로부터 보편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해 내시기 위해 인간이 되신 당신의 아들 안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이름만이 구원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하느님의 이름이며, 이제는 강생 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고, 모든 사람들은 이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으므로,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다(사도 4,12).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오실 때 택하신 이름은 “예수”,“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이다. 그 당시 유다인 들에게 흔한 이름이었지만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 이름은 태중에서부터 지어졌다.
올해가 서기 1999년인데 흔히 예수님은 1999년 전에 태어나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런 것은 아니다. 서기는 분명히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기는 한데, 이것은 4세기경 “에우세비우스”라는 교회 역사가에 의해서 쓰이기 시작한 연대인데, 그는 루가 복음에 나오는 “티베리오 황제” 15년에 세례자 요한이 회개의 강론을 했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예수께서 전도를 시작하셨을 때에 그분의 연세는 서른 가량 되셨다.” 라는 복음 말씀을 근거로 티베리오 황제 15년이 예수님이 30세 때라고 보고 계산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른 가량”이라는 말을 30세라고 보고 계산한 것이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 2장에는 헤로데 대왕이 즉위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탄생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헤로데는 로마의 역사 연표에 의하면 기원전 4년 4월-3월에 예리고에서 죽었다. 그리고 예수를 조배 하려 던 동방박사들이 다녀간 후 헤로데는 두 살 아래의 남자 아기를 죽이려고 했다. 이것을 보면 헤로데가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은 1-2세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헤로데가 죽기 전 2-3년 전에 태어났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기원전 6-7년에 태어나셨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연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복음서는 그 분의 탄생 날짜보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3. 성탄절의 유래
그리스도인이거나 비그리스도인이거나 해마다 12월 25일이면 크리스마스 카드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이 날을 기쁘고 즐겁게 지낸다. 12월 25일은 '거룩하신 분의 탄생일'이라 하여 '성탄절'(聖誕節) 영어로는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의 미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유다의 산골 마을 베들레헴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신 것을 기념하여 전통적으로 24일 자정에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거행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태어나신 날짜를 알지 못한다. 성서에도 기록이 없고, 초대 교회 때부터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기념한 것도 아니다. 원래 이 날은 로마인들이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축제일이었다. 그들은 동지가 지나 다시 낮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보고 이 때부터 태양이 제 힘을 회복한다고 생각하며 축제를 지냈는데, 4세기경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 전역에 퍼지면서 이 태양신 축제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삼게 되었다. 그리스도야말로 어둠을 비추는 참 태양, 세상의 빛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4.예수의 뿌리.
건국 신화를 보면 항상 천상 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 하지만,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오히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고, 그러한 의미로 족보를 쓰고 있다. 이 족보를 통해서 예수께서 가까이는 요셉과 마리아라는 부모에게서, 멀리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서 태어난, 우리와 똑같은 참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를 보면 이름이 계속해서 열거되어 있는 족보는 오히려 지루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족보는 인간 역사가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과 많은 세대와 인물들과 그리고 그들의 운명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또한 과거와 과거의 뛰어난 인물들과의 연계는 이러한 세대와 인물을 능가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5.예수 시대의 팔레스티나 상황
팔레스티나 기원전 63년경 로마의 정복 하에, 로마의 황제는 아우구스토, 팔레스티나의 명목상의 통치자는 헤로데(괴뢰 정부)가 다스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이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이며 하느님만이 그들의 유일한 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로마의 지배를 받는 다는 사실을 민족적 수치며, 하느님께 대한 배신 행위로 여겼다. 그래서 율법에 충실하며 하느님의 왕권이 완전하게 행사되기를 고대하는 한편, 로마에 항거하는 강한 민족 의식을 보였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은 몇 가지로 분류된다.
거룩하게 성(聖)별된 자로 자처하며 율법을 지켜 이스라엘 내의 개혁을 꾀하자고 주장하는 바리사이파와 ‘빛의 아들로 자처하며 사회와 인연을 끊고 사막이나 동굴에 숨어살며 다가올 새 시대를 예비하는 엣세네파, 오래된 히브리 전통을 고수하며 로마와 결탁하여 현상 유지에 힘쓰는 사두가이파와 율법을 해석하고 민중의 선생 노릇을 하는 율법 학자들, 실력으로(폭력) 로마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려는 젤롯(열성파)등이다. 다 나름대로 나라를 걱정하며 살았고, 그러한 방면으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그들 각자의 이상대로 메시아를 기다렸다.(~적(的) 메시아)
6. 예수의 강생(降生)
교회는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는 성 요한의 표현을 따라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일을 ‘강생’,‘육화(肉化)’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 - 7).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와 관련해서 히브리서는 구약성서를 인용해서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 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예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 10,5-7).
이와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믿음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성이다.
7. 예수의 잉태
복음서는 예수의 잉태에 대한 소식을 잘 전해 준다. 특히 마태오 복음 1장 13절 이하에 잘 나타난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처녀였다. 그런데 수태한 것이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Christus)란 말은 희랍어로 “이마에 기름을 바른 자”란 뜻이다. 이것은 대관식 때 왕이 될 사람에게 하던 예식이다. 이것은 헤브리아 말, 메시아(Messia)란 말과 같은 뜻이다. 예수(Jesus)란 말은 “구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즉 구세주란 말이다.
1)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나셨다.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 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가 1,26-32).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비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님만큼 신비로우신 분은 다시 또 없다. 우리의 신앙고백문은 예수님의 출생을 두 가지 측면에서 요약하고 있다. 한 면은 그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녔다는 것으로, 이는 그분이 전적으로 하느님에게서 나셨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한 면은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것으로, 이는 예수님이 우리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요 우리의 형제라는 것을 뜻한다. 이 두 면은 결코 나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아들이고 또 전적으로 사람이지, 그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부터 나신 분도 아니고, 반신반인(半神半人)도 아니시다.
2)성령으로 잉태되어
“때가 찼을 때”(갈라 4,4)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려고 이 세상에 구세주를 보내기로 하시고, 먼저 그 소식을 마리아에게 알려 주셨다. 그러자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리라는 말을 들은 마리아는 천사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가 1,34)마리아의 질문에 천사는 그 일이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곧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실 것이다”(루가 1,35).
하느님의 이 계획을 따라, 성령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을 잉태하도록 하기 위해 파견되시어, 마리아가 그 자신의 인성에서 취한 인성(人性) 안에 성부의 영원한 아들을 품게 하셨다.
3)동정녀 마리아께 나셨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려 하실 때 그분은 한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을 바라셨다. 이를 위해서 하느님은 영원 이전에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로 삼을 이스라엘의 딸을 선택하셨다. 이 여인은 갈릴래아 나자렛에 사람으로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이며,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루가 1,26-27)였다. 이리하여 겸손하고 하느님께 지극한 신뢰심을 드러낸 시온의 가장 훌륭한 딸이 나타남으로써 오랜 기다림 끝에 약속의 때가 차고 새로운 경륜이 시작되었다.
성령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리라는 잉태 예고를 받은 마리아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확고한 신앙으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라고 응답한다. 이처럼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함으로써 예수님의 모친이 되었고, 아드님과 함께 구원의 신비에 봉사하기 위하여,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온전히 바쳤다. 더 나아가 마리아는 성부의 영원한 아드님이신 성삼위의 두 번째 위격을 잉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도 되신 것이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것은 하느님의 권능으로써 이루어진 일이었으며, 이는 또한 하느님의 업적이었다(참조 루가 1,34). 천사는 자기의 약혼녀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것을 알고서 괴로워하는 요셉에게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20)라고 일러준다. 교회는 여기에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동정녀가 몸가져 아들을 낳으리라”.(이사 7,14)고 한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교회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고 가르치며, 전례를 통해서도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한다.
8. 탄생 장소
마리아와 요셉은 예루살렘으로 부터 북쪽으로 140Km 떨어진 나자렛이라는 고을에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의 로마의 황제 “아우쿠스토”는 자기 영토 안에 살고 있는 주민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각 지방에 호적을 하라는 칙령을 내렸다(마태오 2장 참조). 요즘 말로 하면 주민등록을 하라는 명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그 명령을 받아야만 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모두 다윗 가문에 속했으므로 다윗 가문의 본거지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만삭이 된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던 것이다. 성서엔 목동들이 하늘의 이상한 현상을 보고 그 말구유를 찾아가 조배를 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9.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두려워하지 말라, 말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도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10. 그의 성장과 사생활
복음서는 주로 그의 공생활과 그분의 설교 및 기적 이야기, 그리고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뿐, 그분의 어린 시절이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많은 언급이 없다. 12세 때 해방절 축일을 지내려 예루살렘에 갔던 이야기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을 잃었던 일, 또는 태어난 지 8일만에 법대로 할례를 받았던 일이 실려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의 일반 법규를 따라 사셨던 것 같다. 그리고 예수의 양부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다고 한다.
11. 참사람 예수
예수님은 전설 속의 인물도 아니고 또는 어떤 책을 만들 때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도 아닌 참사람이시며 이천년전 팔레스티나에서 실제로 사셨던 분이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은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탄생되어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였으며 일반 사람과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며 그리고 목수의 아들로서 노동하며 고달프게 생활한 인간이었다.
예수님은 참된 인간으로서 살았고 참된 인간으로서 죽었으며 또한 참인간으로 부활하셨다.
그러나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동시에 하느님의 본질을 갖춘 이였다. 그리스도는 말하자면 다리(橋)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이시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유일한 중개자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을 인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이는 한 남성의 일생을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본질 즉 모든 것을 아버지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모든 것을 다시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는 본질을 인간의 차원에서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나약함도 가지셨는데, 전교 활동 중에 여행으로 지치셨고 목마름과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며 군중을 보시고 그들을 가엾게 생각하시고, 그분의 인간성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때에 더욱 생생하게 드러났는데,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울부짖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다른 점은 아무런 죄가 없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위험성.
1)역사적 예수라고는 하나, 그 근거가 성서에 근거하고 있지 않느냐? 성서가 역사적 사실을 쓴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모순이 아니냐?고 질문 할 수 있으나, 성서는 역사적 사실을 쓴 것이 아니라, 성서는 역사적 사실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하고 있다는데 있다.
2)예수를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간으로 치우치게 할 수 있다.
정신 과학에서는 예수를 인간의 능력을 100%발휘한 인간으로 평가. 예수의 인간적인 면에만, 육체적인 구조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이며” “그가 무엇을 했느냐?”를 주의해야 한다.
3)역사적인 예수를 보면서 그를 위대한 종교가, 도덕 주의자로 부각함으로써 신앙생활의 본 정수인 구원의 문제와는 유리시킬 수가 있다.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파괴시킨다. 자기 혼자 도(道)나 닦고, 신심이나 단련하는 현실과 유리된 상태로 몰고 갈 수가 있다. 인간들은 기도와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진정한 존재를 경험할 수가 있다.
4)예수의 전기에 대해서 단순히 전기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역사적인 연구만을 시도함으로써 예수의 인성만을 추구하게끔 되는 위험이 있다. 위대한 한 인간으로 치부되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천주 성자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영혼과 육신을 취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 되셨습니다.
▶천주 성자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신 후에도 천주이십니까?
<답>천주 성자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신 후에도 천주이시니 강생하실 때 천주성을 버리지 아니하셨고, 또 사람이 되신 후에도 천주이시므로, 그 수난공로는 천주적인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몇가지 성(性)과 위(位)가 있습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께 성으로는 천주성(天主性)과 인성(人性)이 있고, 위로는 천주성자의 위(位)가 있습니다.
▶천주 성자께서 무엇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 천주 성자께서 강림하심은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고자 하시었음이니, 우리 죄를 대신 보속하시고, 우리를 마귀 지배에서 속량하시고, 당신의 교훈과 표양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제10-2과 :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다.
1.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본성에 대해서 잘 말해 준다.
희랍에서는 말씀(로고스:Logos)을 하느님과 피조물을 연결시켜 주는 중개자로 생각하였다.
중국어로는 도(道)라고 번역을 하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는 중재자이시며 인류가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한 길이다.
유대인들은 말이란, 사람의 마음속에 품은 뜻이 밖으로 드러나는 살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말은 나의 일부를 그 사람과 나누는 것이고 나 자신을 그에게 주는 것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말씀이신 예수를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당신 자신을 주셨다.
1)왜 '말씀'이 사람이 되셨는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우리는 '말씀'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나이다."라고 고백한다.
2.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시다.
가톨릭 신앙은 예수님이 글자 그대로 참 하느님이시요 영원한 아들이심을 부동하게 고백합니다.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께 나신 천주의 아들이시며, 천주로부터 나신 천주 시요,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 시요, 천주로부터 나신 참 천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니시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3.아들과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
예수님을 말씀으로 이해할 때, 하느님과 일치됨을 알 수가 있다. 지금 하는 저의 말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인 것처럼. 그러면 말이 곧 나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이 내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할 때도 이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