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과 : 삼위일체
예비자 교리 제 15과 :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있는데, 이는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어 오직 한 분으로 존재하신다.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信經)
나는 믿나이다. 한 분이신 전능 성부, 하늘과 땅과 유형 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께 나신 천주의 외아들이시며 천주로부터 나신 빛이요,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요, 참 천주로부터 나신 참 천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 시며 만물이 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음을 믿으며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서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심을 믿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라 믿나니,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좇아 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와 죄를 사하는 하나의 성세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후세의 영생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1.계시된 진리.
삼위일체의 신비는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 즉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믿으라고 알려주신 계시 진리이다. 이는 하느님이 세 위격(位格)을 지니셨으며, 높고 낮음이나 선후의 차이가 전혀 없다는, 하느님의 내밀한 초자연적 생명에 관한 계시이다.
1) 삼위일체 (三位一體)
우리는 삼위일체라는 말을 교회 밖에서 자주 듣게 된다. 친우 셋이 항상 붙어 다녀도 삼위일체라고 하고 자본, 노동, 기계를 생산의 3요소라고 하고, 또 3위일체 영문법이라는 말도 쓴다. 그러나 그 삼위일체의 의미를 참으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원래 삼위일체란 교회의 교리에서 나온 용어이다. 우리는 이 우주에 오직 한 분이신 절대자 유일신(唯一神)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심을 통해 그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가 계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자체로 삼위가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계를 베풀고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시오. 나는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당신들과 함께 있겠습니다.”(마태오 28장 18-20절)고 하셨다. 그리고 요한 복음 14장 6-10절을 보면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잘 나타납니다.
“나는 길이며 진리며 생명입니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각부터 당신들은 그 분을 알아 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미 그 분을 뵈었습니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 저희 소원입니다.”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 들으시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당신들과 함께 지냈는데도 당신은 나를 모른단 말입니까?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뵈온 것인데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왠 말입니까? 당신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내가 당신들에게 하는 말은 내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당신의 일을 몸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내 말을 믿으시오.” (요한 14장 6-14절)
여기서 보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성부와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를 보는 것이 바로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 하신다. 또한 요한 복음 14장 23절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입니다.” 라고 하셨다.
이렇게 성서에 계시된 점으로 보면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구별되는 다른 위격(位格)이면서 또 하나의 하느님이심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 그 업적으로 구별해서 말하자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성부이시고, 창조된 것이 본래의 목적에 도달하기 이전에 타락하였을 때 이것을 다시 일으켜 주시는 분은 성자이시고, 성자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인간들이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분을 알아보게 하는 일, 즉 구원 사업을 완성하여 인간을 거룩하게 하며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시는 일은 성령께서 하십니다.
2) 삼위일체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사실 삼위일체 교리는 인간의 머리로 완전히 깨닫기는 어려운 교리이다. 그러나 그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방법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이 교리를 어떻게 알아듣는가에 따라 수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과 위배되는 교리를 설파하다 이단자로 처단되기도 하였습니다. 일찍이 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를 가장 잘 설명한 성 아타나시오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높고 낮음도 없고 먼저 계시고 후에 계심도 없으시다」라고 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이 다 천주이시지만 천주 셋이 아니며 다만 하나라고 하셨다.
삼각형에는 세 변이 있지만 삼각형은 하나이고, 또 세 변은 서로 다르면서(독립적인) 그 세 변이 하나의 삼각형을 이루듯이 성부도 천주 시요, 성자도 천주 시요, 성령도 천주 시나 천주 셋이 아니고 하나의 하느님이시다.
또 불에는 형체와 열과 빛이라는 세 가지 특징이 있지만 하나의 불을 이룬다. 또한 물은 액체, 고체, 기체로 변하지만 물이라는 면에서는 똑 같다. 또 액체의 작용, 기체의 작용, 고체의 작용은 다르지만 물이라는 구성은 변함이 없다.
비유란 항상 부족한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이해에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성 아타나시오는 “성부는 도무지 지음을 받음도 아니요, 냄을 받음도 아니요 다만 낳음을 받아 계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지음을 받음도 아니요 냄을 받음도 아니요 남음을 받음도 아니요 다만 발함을 받아 계시도다. 그러나 성부 하나이시며 세 성부 아니며, 성자 하나이지요 세 성자 아니며, 성령이 하나이지요 세 성령이 아니다. 또한 이 세 위에 先後도 없고 大小도 없으며, 오직 세 위가 도무지 한가지로 영원하시고 서로 같으시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인격주의 철학(Personalism)의 영향을 받은 관계 주의(Relationismus)의 개념을 빌려 「존재론적」 관점이 아니라, 「관계론적」 입장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들에 따르면 「아버지」와 「아들」은 항상 ___ 의 아버지, ___ 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아버지 되는 순간은 아들이 존재하면서 부터이다. 그런 면에서 동시적이다. 성부와 성자는 서로를 완전히 바치는 사랑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으며,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긴밀히 하나가 되도록 해 주시는 두 분 사이의 사랑이 성령이시다.
2."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예비자들이 일정 기간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공부하고 나면 세례 성사를 받게 된다. 세례를 받고자 하는 결심이 섰을 때 먼저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것을 고백하게 된다. 세례 성사를 받기 전에 성사 집전자는 예비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령과,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죄의 사함과,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이 세 물음에 대해 한결같이 "믿습니다."라고 대답하게 된다. 그런데 이 물음을 요약하면, "천주 성부를 믿습니까?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령을 믿습니까? 라는 물음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신앙 고백이 있은 다음 비로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우리가 입으로 고백하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의 중심이 되는 신비이다. 그리고 이 신비는 하느님 자신의 내적 신비이므로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며, 다른 신비를 비추는 빛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 업적과 인류 구원의 역사에서 삼위일체이신 당신 존재의 자취를 남겨 놓으셨다 이러한 삼위일체 교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할 '신앙의 신비'이다. 이는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 저 높은 곳에서 계시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비들”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이 신비 역시 성자의 강생과 성령의 파견 이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나 또는 이스라엘의 신앙으로도 접근할 수 없었던 신비이다. 따라서 "오직 하느님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당신을 계시해 주심으로써 이 신비를 깨닫게 해 주실 수 있다"
3'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애 대한 교회의 가르침
1)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계시
여러 종교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세상의 창조주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신앙의 언어는 주로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킨다. 먼저 하느님은 만물의 근원이시며 초월적인 권위를 지니셨다는 것과, 동시에 당신의 모든 자녀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살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혀 새로운 의미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알려 주셨다.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당신의 아드님에게도 영원한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그 아드님은 오직 당신 아버지와 이루는 상호 관계 안에서만 아드님이시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던 "말씀"이고, 그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요한 1,1)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골로 1,15)이시라고 고백했다.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교회는 성자(聖子)께서 성부와 '동일한 분'이라고 고백했다. 또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립한 이러한 표현을 그대로 지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는 성자께 대해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께 나신 천주의 외아들이시며, 천주로부터 나신 천주 시요,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시요, 참 천주로부터 나신 참 천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신(본질이 같으신) 분"이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을 취하여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당신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계시해 주는 분이시다.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나들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개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16).
수난을 눈앞에 두고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아버지께 청하여 다른 협조자, 곧 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참조: 요한 14,16-17). 예수님의 이 약속으로 지상에 파견된 성령은 창조 때부터 활동하신 분으로서, 이세 예수님의 제자들 곁에, 그들 안에 계시면서 그들을 모든 진리 안에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실 것이다(참고 요한 14,17.26). 이렇게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로부터, 그리고 성자께서 성부의 곁으로 돌아가신 후에는 직접 성자로부터 성령이 사도들과 교회에 파견되신 것은 삼위일체 신비의 극치를 계시해 준다. 그러므로 교회도 사도들의 신망을 따라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쫓아 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신다."고 고백한다.
성령은 성자의 아버지이신 성부로부터 나왔고(참고 요한 16,26), 따라서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아들의 성령이기도 하다(참고 갈라4,6). 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 당신 아들에 대한 하느님의 영원한 부성(父性)은 성자의 아버지로서, 따라서 성자를 통해서, 성자와 함께 성령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불가분적으로 내포한다. 성령은 성자와 근본적으로 다른. 분으로서, 성부의 외아들이신 성자의 절대적인 독창성을 나타내며, 이로써 하느님의 단일성 안에서 성부와 성자의 성령으로서 성사의 영광을 나타내신다(참고 요한 16,14-15).
성령은 이미 창조 때에 계셨으며,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셨을 때에야 비로소(참고 요한 14,16;로마 8,11) 삼위일체적인 계시의 빛 안에서 성령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서 세 위가 맡으신 일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성부이시고, 창조된 것들이 본래의 목적에 도달하기 이전에 타락하였을 때 다시 일으켜 주시는 일은 성자께서 하시고, 성자께서 구원 사업을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셨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게 하시는 일, 곧 구원 사업을 완성하여 인간을 성화 시키며 하느님에 이끌어 주시는 일은 성령께서 하신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 신비'는 신성(神性)으로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지만, 위격으로는 셋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 위는 다같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며 우리 인간의 완성을 원하시는데, 이 세 위께서는 서로 높고 낮음도 없고, 먼저 계시고 후에 계심도 없으시다.
2)'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삼위일체의 교리는 이미 초기 교회 때부터 주로 세례를 통해서 신앙의 생생한 바탕이 되었다. 세례를 위한 신앙고백문에 표현된 이 진리는 설교나 교리 교육, 교회의 기도 안에 양식화(樣式化)되어 전수되었고, 사도들 또한 자기들의 글을 통해서 이러한 양식문을 전해 주었으니, 성찬의 전례에서 사용되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은 이를 증명하는 좋은 예 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2고린 13,13).
(1)삼위(三位)는 한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세 분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세 위격이신 한 분 하느님, 곧 "동일 본질의 삼위일체"를 고백한다. 하느님의 삼위는 신성(神性)을 각기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 위격이 각기 완전한 하느님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실체적으로 한 하느님이시다.
(2)삼위는 서로 실제적으로 구분된다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홀로는 아니시다.” 세 위격은 서로 실제적으로 구분이 되므로 성부, 성자, 성령은 단순히 하느님의 존재 양상을 가리키는 이름들이 아니다. 그리고 세 위격은 근원적 관계들에 의해서 서로 구분된다. "성부께서는 낳으시는 분이시고, 성자께서는 나시는 분이시며, 성령께서는 좇아 나시는 분이시다"
(3)성삼위는 서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단일성은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세 위격의 실제적 구분은 오로지 위격들이 다른 위격들과 가진 관계에 국한된다.
일찍이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예비자들에게 삼위일체 신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가르쳤다. “하느님께서는 삼위가 한 분으로 존재하시며, 삼위를 서로 구별되는 방식으로 포함하고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실체나 본성의 차별도 없고, 올려 주는 우월함도, 낮추는 열등함도 없는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세 무한한 위격이 하나의 무한한 동질성을 이루는 것이다. 각 위를 그 자체로 볼 때에도 온전한 하느님이시고...삼위를 함께 생각할 때에도 하느님이시다”
그런가 하면 성 안젤무스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런 비유로써 설명한 바 있다. "샘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그 샘에서부터 시작된 개울이 흐르고 흘러서 호수를 이룬다. 나일강의 물줄기를 생각해 보자. 샘과 개울과 호수 이 셋은 서로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샘은 개울이 아니요, 그렇다고 호수도 아니다. 호수 역시 개울이나 샘은 아니다. 나일 이라는 이름에는 이 셋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샘을 생각하든 개울을 생각하든, 아니면 호수를 생각하든 나일강은 오직 하나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 셋은 한 물줄기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 이름이 세 가지를 의미하며, 세 이름이 단 한 가지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은 동의어가 아니다."
4.구원의 역사 속에서의 성삼위의 관계
성부께서는 인류 구원의 영원한 계획을 세우시고,
성자를 지상에 파견하시어 인류를 구원하게 하셨고,
성령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성화 시켜 이 영원한 계획을 완성하시려는 것.
이것을 교회에 의해 , 교회 안에, 교회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신다.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의해서 모인 백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5.성서 속에서의 삼위일체
1) 구약 : 구약에서의 하느님은 유일하신 분으로서 당신을 드러내셨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야훼 한 분이시다”(신명 6,4) 또한 하느님은 당신 안에서 구별되는 위격이 있음을 암시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하셨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복수 명칭에서 드러남(계시 이해의 차이)
2) 신약 : 삼위일체의 신비가 구체적으로 계시된 것은 신약에서이다.
- 아기 예수의 탄생 예고 때(루가 1,35)
- 예수의 세례 때(루가 3,21-22)
- 예수의 복음 선포 말씀에서(요한 14,4-10. 16-17.23)
이러한 성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세례 장면에서 드러남.
예수 자신이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시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세 위격을 분명히 표현하셨으며,
그리스도인은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게시 진리는 인간의 지성을 알아듣기 어려운 것으로서 다만 신앙의 은총으로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 하느님의 업적과 삼위의 사명
하느님은 자유로이 당신의 복된 생명의 영광을 인간에게 나누어주기를 바라신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이전에 사랑하는 당신 성자 안에 미리 세워 놓으신 "자비로운 계획"(에페1,9)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 되는 자격을 얻도록 예정하셨으며” 성령을 통해서 "당신 아드님 모습과 한 모양이 되도록”(로마 8,29)계획하셨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이 계획은 창조의 업적과 범죄 이후의 구원 역사 전체, 그리고 교회의 사명으로 이어지는 성자와 성령의 파견 안에 전개되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모든 계획은 삼위께서 이루어 내시는 공동 사업이다.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자신의 개별적인 위격의 특성을 따라 공동으로 구원 사업을 수행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약성서를 따라(참고 1고린 8,6),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한 분 하느님으로부터 만물이 비롯되었고,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이 존재하며, 한 분 성령 안에 만물이 존재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 전체의 궁극 목적은 만물이 복되신 삼위일체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참조: 요한 17,21-23).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를 우리 안에 모시도록 불렸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 23).
7.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체
1)인간과 인간이 만나서(관계를 통해서) 이루는 것을 “공동체”라고 함.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 세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우리가 계시의 도움 없이 하느님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 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라는 절대적인 분이 이 우주 안에 계셔야만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啓示)의 도움으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연 계시(自然 啓示)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해, 달, 별, 우주 만물을 관찰해 볼 때, 그 질서와 조화의 오묘함과 그 광대하고 무한함을 통해 그 조물주의 전능과 지혜를 알 수 있고, 또 하느님이 인간에게 새겨 주신 법인 양심을 통해 하느님은 선을 갈망하고 악을 미워하시는 전선(全善)하신 분이며, 정의로운 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더욱더 깊이 깨닫게 된다.
2) 성삼교리와 신자 생활
성삼교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깊은 신비를 내포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독립된 위격이지만 서로 자기다움을 조금도 손상함이 없이 다른 위격과 하나가 되어 있다. 이것은 서로가 남김없이 타(他)에 줌으로써 사랑으로 하나의 본체를 이루고 계시다. 이것은 하느님의 내적 생명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또 신자 생활의 이상도 분열과 불화를 극복하고 인간 사이를 사랑 안에 일치시키고 하나가 되는데 있다. 어떤 가정에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형제간에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 흐르는 사랑이 오고간다면 그 가정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세 분이시며 하나이신 성삼의 신비는 신자 생활의 이상이다.
종 합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는 하느님의 내적 신비이므로 다른 모든 신비의 원천이며, 다른 모든 신비를 비추는 빛이다. 삼위일체 신비는 신앙의 신비이다. 성자의 강생은 성자가 성부 안에서 성부와 함께 동일한 한 하느님이시라고 알려 준다. 성자는 성부와 일체(같은 본질)이시며,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께 나신 천주의 외아들이시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세 위격이신 한분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 세 위격은 서로 실제적으로 구분이 되지만, 이 구분은 다른 위격과 관계에 국한된다.
▶천주께서는 어떻게 계십니까?
<답> 천주께서는 다만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성령) 세 위로 계십니다.
▶세 위 서로 관계는 어떠합니까?
<답> 지극히 신묘하여, 성부는 성자를 낳으시고 성자는 성부께 낳음을 받으시고, 성령(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여 계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성령) 성삼위께서는 상하(上下) 선후(先後) 관계가 있습니까?
<답> 성부 성자 성령(성령) 성삼위께서는 상하 선후 관계가 없으시고, 온전히 같으신 한 천주이실 따름입니다.
▶성삼위에 관한 진리를 사람이 충분히 깨칠 수 있습니까?
<답> 성삼위에 관한 진리는 사람의 지능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충분히 깨칠 수 없고, 다만 계시로서 알려주신 바이니, 믿고 흠숭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합니다.
심 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 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사실 하느님의 신비의 바탕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은 곧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의 표현이요, 우리가 일상에서 조그만 사랑이라도 서로 나눌 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실 것이다.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시는 하느님을 닳도록 날마다 조금씩 사랑의 탑을 쌓아 가기로 하자.
실 천
'성호경(聖號經)'이란 십자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부르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입으로 외우는 기도문 중에서 가장 짧은 기도지만, 실상 그 사람이 가톨릭 교회의 신자임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기도이다. 성호를 긋는 방식은 먼저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 바닥을 펴 손가락 끝을 가지런히 모은 다음 이마(성부와)와 가슴(성자와)과 왼쪽 어깨(성령의)와 오른쪽 어깨(이름으로)에 차례대로 대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외운 후, "아멘" 하면서 두 손을 합장한다
우리 가톨릭 교회의 신자들은 크게 십자 성호를 그으며 이 기도문을 외움으로써 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를 믿는다는 신앙 고백을 하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