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과 : 성사론
예비자교리 제 20과 : 성사론
우리는 먼저 하느님을 알고, 또 교회의 신자가 되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려는 것이다. 이 세례를 우리는 “성사(聖事)”라고 부른다. 즉, “세례 성사(洗禮聖事)”라고 부른다. 그런데 “성사”라는 것에는 세례뿐만 아니라 다른 성사도 있다.
성사는 거룩한 일, 거룩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성사라고 하면, 군인으로서의 충성, 맹세, 공무원의 선서 등을 의미했다. 그 이유는 이런 맹세를 자기들이 믿던 신 앞에서 신의 이름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에 아오스딩 성인께서 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시면서 그 의미만을 바꿔 “보이지 않는 구원의 보이는 표지”라고 사용하였다. 또한 이 과정이 매우 신비롭기 때문에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똑같은 의미를 가진 용어로 “신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성사들은 그냥 말로만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상징을 통해 치루어진다. 성사에서도 이런 상징을 통해 하느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준다.
1.성사와 상징(象徵)의 관계
먼저 “성사는 보이지 않는 구원의 보이는 표지”이다.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구약 시대에는 율법을 주셨고, 신약 시대에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그리스도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볼 수 없는 당신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성사”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2000년 전에 살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예수님을 뵙지 못한다. 이런 것을 예상하신 예수님은 당신께서 세상에 사실 동안 행하셨던 구원의 일을 계속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드러내 보여주는 하나의 표지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성사”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교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구원을 느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구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행적을 따라 일곱 가지 성사를 세웠다.
추상적인 실재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어 상징하는 것을 표징이라 한다. 어떤 만들어진 사물이 그것을 만든 이의 존재와 능력을 드러내 보이는 표징이라면, 온 누리 삼라 만상이 그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암시하고 상징하고 감지하게 하는 표징이다. 피조물에서 그런 의미를 읽어 낼 수 잇는 마음의 눈이 열리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하느님의 표징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현존과 섭리와 은총의 표징을 ‘성사’라고 한다면, 넓은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성사이다. 오직 창조물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고 그분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믿음의 눈’이 열리면 영적으로 그분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런 ‘보편적 성사성은 ’인간과 그 삶‘에서 만물의 영장다운 밀도를 이룬다.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있고 모든 것이 인간 안에 있다. 인간만이 사유 능력을 갖추고 언어와 상징을 사용하여 자기 사상을 표현하고 전달하며, 갖가지 경험을 성찰하여 비교하고 기억하며,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운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 자신의 힘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선사된 것임을 깨닫고, 또한 결코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어울려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에 어떤 초월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성사적 체험이 바로 신앙의 못자리이다.
‘역사상의 사건들’도 인간이 그 주역인 만큼 사건마다 고유한 의미를 드러내며 뭔가 지시하고 촉구하는 표징이 된다. 예컨대 혹독한 독재나 참혹한 전쟁은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케하는 도전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믿음은 이런 역사상의 사건들에서 하느님의 구체적인 메시지를 읽는다. 이렇게 해석된 역사는 성사적 성격을 띤 ‘구원사’로 파악된다.
성사는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표징, 즉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고 그분의 생명을 전해 받게 하는 상징적 예식 및 행위들을 말한다.
성사란 하느님의 현존을 능동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하나의 표징(응징)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 지 가장 완전하게 드러내 주는 분이시므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완전한 성사"이시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 되신 분이시다. 예수께서 어린이를 안아 주셨을 때 그것은 하느님의 포옹이었고, 병든 이들을 고쳐 주셨을 때 그것은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들, 삶과 죽음은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하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구원의 상징이 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인격을 통해서 우리에게 실제로 구원을 가져다주신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사는 그것이 상징하는 것을 가져다주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것을 상징한다.
2. 성사는 하느님의 표징(거룩한 '표징'인 성사의 깊은 신비를 느껴 알려면 믿음의 눈을 떠야 한다)
불을 보는 것은 빛을 보는 것이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만지는 것은 사랑을 잡는 한 방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보는 것은 곧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성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사는 '거룩한 표징'인 셈이다. 그런데 성사의 신비를 올바르게 느끼고 알려면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한다. 표징은 물리적인 것이지만, 그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표징에 담겨 있는 뜻은 믿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표징은 하느님과 우리, 또 우리 서로를 능동적으로 만나게 해 준다. 표징은 생명이 없는 물질이나 껍데기만의 예식이 아니다. 말없이 웃으며 건네는 장미 한 송이에, 따뜻한 악수 한 번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뜻을 담을 수 있는가?
표징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표징이 가리키는 '사랑'을 알아보려는 맑디맑은 눈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표징을 통해서 맺으려던 관계는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꽃처럼 될 것이다.
표징에는 그것이 표상 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것들을 초월 하시면서도 아주 가까이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따사로운 햇살과 같은 피조물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전체 전례 생활은 성체의 희생 제사와 다른 성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교회에는 일곱 가지 성사가 있으니, 곧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신품, 혼인 성사이다.
1)표징이란 무엇인가?
성사는 하나의 표징(상징)이다. 표징이란 어떤 사물을 통해서 그 속에 담긴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사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표징이 무엇인지 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
표징은 외면적인 실물 자체를 가리킨다. 그 실물을 통해서 깊은 의미를 드러낸다.
2)하느님의 표징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것의 보이는 표징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심. 즉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신다. 이 또한 표징이다.
3)표징을 알아차리기 위한 자세
하느님의 표징을 알아차리는 데는 믿음이 필요 「창조물 =?하느님」
표징은 물리적인 것이지만, 그 이상의 뜻을 담고 있으므로 믿음의 행동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표징은 나와 하느님, 우리들 상호간의 능동적인 만남을 가져다준다.
4)성사는 은총의 표징.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사랑과 자유의 삶에로 초대하시고, 그 완성을 위해서 초자연적 선물인 은총을 주신다. 인간은 은총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유한성과 나약성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은총은 성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예수께서는 교회의 구체적인 전례 행위를 통해서 그 성사가 상징하는 은총을 실제로 주신다. 성사는 표징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표징이란 비구상적인 것, 즉 정신적으로만 파악되는 추상적 실재를 구상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예컨대 국기 그 자체는 한갓 염색을 한 천에 지나지 않지만, 국가를 상징하는 표징으로서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표징을 통해 우리는 그 배후에 있는 실재와 이런 저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가 태극기를 높이 게양할 때는 대한 민국을 높이 기리는 것이고, 누가 태극기를 찢을 때는 대한 민국을 저주하는 것이다. 구기는 사람이 고안한 인위적 표징이지만, 누네 보이지 않는 본질적 실재와 원래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표징이다. 사람의 육신이 그렇다. 육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떼어놓을 수 없게 결합되어 있다. 영혼은 단순히 육신 내부의 어떤 부위가 아니라, 육신에 내재하면서도 초월적 작용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신비로운 실재이다. 영혼은 육신을 통해서 그 실재성을 드러낸다. 육신은 영혼의 불가결의 표징이다. 육신의 활동이 곧 영혼의 활동이다.
성사와 그리스도와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다. 성사는 교회의 행위인 동시에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다. 교회의 이름으로 성사의 예식이 거행되면 거룩한 상징과 집전자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그것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요 행동이다. 그리스도와 하느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사에서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사람은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성사의 예식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눈에 보이게 나타내는 표징이다.
3.성사: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는 것.
1) 성사(聖事)란 무엇인가?
인간은 성장의 각 단계마다 새로운 관심을 드러내고, 열중하는 일이 달라지며, 또한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와도 한층 더 성숙하게 관계를 맺어 찬다. 인생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때가 되면 더러는 반성하고 새롭게 마음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회갑연 등이 모두 그러한 의식이라고 하겠다.
그리스도인도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단계마다 신앙 생활의 모습이 달라지고, 그 달라진 모습으로 공동체에 합류한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자신과 사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책임을 떠맡듯이, 신앙인도 성장의 단계마다 자신과 교회 공동체와 하느님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책임을 떠맡는다.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이 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특별한 예식을 통하여 거 깊은 성화(聖化)의 단계로 이끌어 준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 때마다 은총을 베푸시어 그 사람을 한층 성숙한 당신의 자녀로 변모시켜 주시는데, 이 특별한 예식을 '성사(聖事)‘라고 부른다.
2)예수 : 하느님의 완전한 성사
우리는 나무한 그루를 보고 하느님의 업적과 현존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무 자체가 흠숭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하느님을 아는 것은 성사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완전한 성사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귀로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피부로 그분을 느낄 수 있었던 인간이며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신약성서는 역사의 인간화가 나자렛 예수에게서 절정에 도달했다고 보았다. 이런 확신은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의 부활을 체험한 데서 비롯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구원사의 맥락에서 해석하여, 구약의 예언이 그분에게 이르러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분으로 말미암아 죄악과 역사의 부조리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하느님의 구원 경륜과 은총이 그분 안에서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사랑이요 용서 자체이시라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몸소 실천하며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글자 그대로 ‘하느님 말씀의 육화’요, ‘은총의 화신’이다. 그분은 병자들과 귀신들인 사람들을 고쳐 주고,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을 보살펴 주고 무법자들과 죄인들을 용서하고 살아 하셨다. 그분 생애의 모든 행적과 말씀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산 표징’이다. 그분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 ‘봉사의 완성’이다. 부활은 그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이 열렸다는 것을 확증하는 신비이다. 그분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셨다. 그분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구원의 근원이시며 모든 은총의 초자연적 원천이시다. 그분은 창조하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신다.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모든 운동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귀착된다. 역사적이고 현세적인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면서도 사람이 되신 아들에 의해 구체화되고 실현되고 있다.
3)교회: 예수의 완전한 성사
성사 자체이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신 후 제자들의 마음속에 성령을 부어 주셨으며, 제자들을 당신의 부활하신 현존의 표징으로 삼으셨다. 그들을 이끄시어 그들이 스스로 살아 있는 표징이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생존시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신이(神異)로운 분으로 믿어졌다. 따라서 그분이 죽으면 그분의 ‘하느님 나라 운동’도 그 빛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분이 죽은 후에도 그분의 구원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분은 단순히 후계자를 지명함으로써 그 명맥이 유지될 그러저러한 운동을 추진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그분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그분 자신의 지도와 감화로 전개되었고, 오히려 일취월장하였다. 이렇듯 그분의 구원 활동이 줄기차게 온 세상으로 전파되어 나갔다는 것은 그분이 계속 살아 계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 주님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게 현존하실 뿐 아니라, 또한 성령의 감도와 갖가지 표징을 통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게도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성사라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는 그분의 초월적 권능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전승하고 구현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삶의 영성을 길러 주고, 전례에 의해 표명되고, 제도 속에 실체화되고, 선교 활동과 자선 사업 등으로 실천된다. 이 모든 것이 성사를 이룬다. ‘원천적 성사로서의 교회’를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표징들이 풍부히 드러나는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복음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다.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교회는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다스림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성사이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의 집단으로서의 모자람과 무름과 비참한 죄도 있다. 하늘나라의 좋은 씨앗을 뿌렸건만 종종 ‘가라지’‘도 함께 자라나는 이상한 결과도 빚어진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사들을 제정하여 교회에 맡기셨다
1)그리스도의 성사
"성서의 가르침과 사도 전승, 교부들의 일치된 의견을 충실히 받아들여, 신약의 성사들이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해 세워졌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믿음이다. 가톨릭 교회는, '성사'는 모두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시어' 시행을 교회에 맡기셨다고 믿고 또한 그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이 믿는 바로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은 이미 구원을 위한 것들이었으며, 그분의 삶의 신비들은 당신이 교회의 사제들을 통해 성사 안에서 나누어주시는 것들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므로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나는 일이며, 성사 거행 중에 여러 가지 표징으로써 드러내는 은총과 구원이 실제로 그 성사를 받는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교회의 성사
교회는 예수님의 성사이다. 교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공동체로서, 그분이 계속해서 이 세상에 살고 계시다는 것을 표상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성사를 통해서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더 깊이 다져 간다면, 실제로 사람들과 관계를 잇고 그 관계를 다져 가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예수님은 항상 교회 공동체 안에 계신다. 그렇지만 당신이 어떻게 우리 가운데 계시는지 깨닫게 하시려고 성사를 세워 주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우신 이 모든 성사가 교회에 의해 '교회를 위해' 있다는 의미에서 성사는 교회의 것이다. 성령의 파견으로 교회 자체가 하느님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성사이기 때문에, 성사는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다. 성사는 그 안에서 삼위로서 한 분이신 하느님의 친교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누어주며, '교회를 이루는 성사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한'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수님이 하느님 현존의 살아 있고 볼 수 있는 표징으로서 이 세상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라고 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 역시 오늘의 세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살아 있는 징표가 된다고 가르친다. "교회는 말씀이 혈육을 취하신 신비에 비교된다. 하느님의 말씀이 취하신 인성도 생명을 가진 기관으로서 말씀과 갈릴 수 없도록 결합되어 말씀에 봉사하듯이, 비슷한 모양으로 교회의 사회적 기구도 교회를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께 봉사함으로써 몸을 자라게 한다.
이렇듯이 예수님은 교회의 성사를 통하여 세상에 현존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성령을 모시는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이루도록 불렸다. 이 부르심은 우리 주위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음성, 손이 되라는 것이다.
5. 신앙을 일으키고 구원을 가져다주는 성사
1)신앙의 성사
성사는 예식이 거행될 때에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신앙으로 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사의 사명은 복음 전파의 사명에 포함되어 있다.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 또한 하느님께 대한 흠숭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표징으로서는 교육적 역할도 한다. 성사들은 신앙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말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세게 하고, 또한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불린다.
기도하는 법은 신앙의 법이며, 교회는 자신이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 전례는 거룩하게 살아 있는 성전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성사 예식도 사제나 공동체가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조작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을 확고하게 지키며, 전례의 신비를 경건하게 존중하는 한에서 개정할 수 있다.
2)구원의 성사
신앙 안에서 적합하게 거행된 성사는 그 성사가 의미하는 은총을 받게 해 준다.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성부께서는 각 성사의 성령 청원 기도에서 성령의 능력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교회의 기도를 항상 들어주신다.
"성사는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받은 사람의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성사가 교회의 의향에 따라 거행되면 성사 집전자의 개인적인 성덕과는 관계없이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은 성사 안에서 성사를 통하여 작용한다. 그러나 성사의 결과는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교회는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성사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사의 은총'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총이며, 각 성사에 고유한 것이다. 성사 생활의 효과는,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께서 그 자녀들을 그리스도와 근본적으로 결합시키고, 그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이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
6.칠성사(七聖事)
예수께서는 우리 생활의 핵심적인 것을 통해서, 결정적인 순간들 안에서 우리와 접촉하시고, 그 순간이 당신과의 생생한 만남의 시간이 되게 해주신다.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의 전달자이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사를 우리 인생의 과정과 비교하여 이해해 볼 수 있다.
1)세례 성사(洗禮聖事)
이 성사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하느님 안에서의 새 탄생이 세례 성사로서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무르게 된다.
2)견진 성사(堅振聖事)
세례를 받은 신자는 이 성사로써 한층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고 자기 신앙을 증거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된다.
하느님 안에서 자란 자녀들이 점차 성숙되어 남자는 군대에서 의무를 다하고 여자는 어머니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가듯, 견진 성사를 통해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갖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 의무를 진다.
3)성체성사(聖體聖事)
세례 받은 신자가 받는 일치와 친교의 성사이다 이 성사를 받음으로써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지체인 교회의 모든 성원들과 일치와 친교를 도모한다. 또한 나날의 양식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그 지체인 형제들과 일치를 이루는 성체 성사가 있다.
4)고해 성사(告解聖事)
화해를 이루는 성사이다. 세례를 받은 후에도 다시 죄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이 성사를 받음으로써 하느님과 이웃과 멀어졌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고백성사를 통해 세례를 받고도 죄에 떨어지는 자녀를 화해로 친교를 이루신다.
5)병자 성사(病者聖事)
병을 앓고 있거나 또는 임종을 앞둔 신자들이 받는 성사이다. 병고로 인한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실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용기를 얻으며, 또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병중에 있는 신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병자의 성사이다.
6)혼인 성사(婚姻聖事)
이 성사는 성인(成人)이 된 그리스도인 남녀의 자유로운 결합을 축복해 주는 성사이다. 이 성사를 받는 한 쌍의 남녀는 새로운 삶의 기초를 하느님께 두겠다는 결의를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혼인 성사로 남녀의 자유로운 결합을 축복하는 성사를 통하여 하나가 된다.
7)신품 성사(神品聖事)
교회의 직무적 사제직에 종사하려는 이들을 축성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성사이다.
성사들은 인간의 삶 전체와 연관되어 있다. 교회는 인간의 삶의 어느 분기점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그분의 은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약속해 주고, 그러한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에게 관여하셨는지 보여 준다.
▶ 성사는 무엇입니까?
<답> 성사는 예수께서 친히 정해주신 유형한 표적으로서, 그 표시하는 은총을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성사로써 받는 은총은 몇 가지 있습니까?
<답> 성사로써 받는 은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성화은총을 주거나 더해 줌이고, 성사은총이니, 각 성사의 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도움의 은총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 성사는 어떻게 은총을 이루어주게 됩니까?
<답> 성사는 행하는 예절의 힘으로 아무 장애가 없는 이에게 은총을 이루어 줍니다.
▶ 성사는 몇 가지 있습니까?
<답> 성사는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즉 세례, 견진, 고백, 성체, 병자, 신품, 혼인입니다.
▶ 7성사 중에 죄인이 받는 성사는 어느 것입니까?
<답> 7성사 중에 죄인이 받는 성사는 세례와 고백입니다.
▶ 7성사 중에 의인이 받는 성사는 어느 것입니까?
<답> 7성사 중에 의인이 받는 성사는 그 나머지 다섯 가지입니다. 즉, 견진, 성체, 병자, 신품, 혼인입니다.
▶ 일곱 가지 성사 중에 일생에 한번만 받는 성사는 무엇입니까?
<답> 일곱 가지 성사 중에 일생에 한 번만 받는 성사는 세례와 견진과 신품인데, 이 성사를 다시 받지 못하는 것은 영혼에 없어지지 아니하는 인호(印號)를 박아주기 때문입니다.
7. 교회의 준(準)성사
준성사들은 성사들을 어느 정도 모방한 거룩한 표징들로서, 효험 특히 영적 효험을 의미하며, 교회가 드리는 간구의 힘으로 그 효험을 얻도록 해준다. 사람들은 준성사들을 통해서 성사들의 그 본래의 효력을 받을 준비를 갖추게 되고, 삶의 다양한 상황이 성화 된다.
교회는 몇 가지 직무와, 몇 가지 생활 양식과, 신앙 생활의 매우 다양한 상황들과, 사람들에게 유익한 물건 등을 성화 하기 위해 준성사를 제정했다. 준성사는 주교들의 사목적 결정에 따라 한 지방이나 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고유한 필요와 문화, 역사에도 부응할 수 있다. 이러한 준성사에는 언제나 기도가 포함되며 흔히 안수, 십자 성호, (세례를 연상시키는) 성수를 뿌림 등과 같은 일정한 표징적 예절이 따른다. 준성사들은 성사들처럼 성령의 은총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교회의 기도를 통해서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협력하도록 결심하게 한다.
준성사 중에는 우선 축복(사람, 음식, 물건, 장소에 대한)이 있다. 어떤 축복들은 지속적인 효력을 가지므로 사람들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물건과 장소를 전례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성사 전례와 준성사들 외에 신자들의 신심과 대중 신심도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성화 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그리스도인 대중의 신앙 의식은 유해 공경, 성당 방문, 순례, 행렬, 십자가의 칠, 묵주의 기도, 메달 착용 등과 같이 교회의 성사 생활을 둘러싼 신심의 여러 형태로 표현해 왔다. 물론 이러한 표현들은 교회의 전례 생활의 연장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하느님께 기도하여 행복과 은총을 간구 하는 것을 축복이라고 한다. 교회의 이름으로 행하는 축복은 일정한 형식이 있고 교회의 이름으로 행하는 축복은 일정한 형식이 잇고 사제만이 이를 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교회가 종교적 효과를 얻기 위해 성사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하느님의 축복을 간구 하는 사물이나 전례적 행위를 준성사라고 한다.
성당, 종, 성작, 성수, 묵주 등 어떤 대상을 특별히 구별하여 하느님을 위한 것으로 삼는 축복을 행할 때, 이를 성별 혹은 축성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더욱 깊이 알아차리도록 도와주는 것들이나 행동들을 준성사라고 한다. 준성사에는 기도,강복, 구마 등의 전례적 행위와 축성한 물건의 사용 등이 있다.
전례적 행위 : 성호 긋기, 무릎 끓기,기도하고 절하기, 미사 중의 평화의 인사, 성가 부르기
축성한 물건 : 초, 향, 성상, 성수, 묵주, 유해, 성화, 교회 건축물, 제의 등이다.
▶ 준성사는 무엇입니까?
<답> 준성사는 천주교회에서 신자들의 영신적 유익을 위하여 7성사를 본떠서 세운 물건이나 행동이니, 구마 축성 강복 같은 것입니다.
▶ 준성사와 성사가 무슨 구별이 있습니까?
<답> 성사는 장애만 없으면, 행하는 예절의 힘으로 은총을 직접 내어 주지만, 준성사는 받는 자와 행하는 자의 성덕과 정성에 의하여 은총과 그 효력을 내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