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과 : 성체성사
예비자교리 제 22과 : 성체성사(聖體聖事)
1.입문.
성체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사랑이신 그분과 일치하며 영적 생명을 성장케 하는 성사이다. 우리 육신 생명을 지탱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먹고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육체는 점차로 약해져서 마침내 죽음에 이를 것이다. 인간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셔야만 힘을 얻고 육신 생명을 지탱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신(靈信)생활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영적 생명은 주님의 몸인 성체를 받아먹음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사가 바로 성체 성사이다. 성체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과 피로써 우리에게 오셔서 그것을 먹는 영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入門) 성사를 완결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절정이다.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께 드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께 드리는 예배의 극치가 성체성사 안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체성사를 거행함으로써 하늘의 전례와 맺어지고,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게 될 때의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본다”(참조1고린 15,28). 한 마디로 성체 성사는 우리 신앙의 요약이며 총체이다.
2.성체 성사: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사
1)요한 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이 보리 빵 다섯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이신 일을 본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어 예수님을 찾아 나섰지만, 예수님도 “만일 너희가 네 살을 먹고 네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라는 말씀에,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하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갔다고 전한다.
예수님은 단지 기적만을 보고 매료되어 온 사람들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은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하시면서,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 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하시며, 다신 자신을 바로 그 영원히 살고 할 양식인 ‘생명의 빵’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오늘도 미사 중에 주님의 식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성체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고 미사 중에 사제는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하느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게 하며, 신자들은 이 빵을 먹음으로써 주님의 몸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체란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받아먹는 것을 말한다. 성혈은 ‘그리스도의 피’를 말한다. 미사 중에 사제는 포도주를 주님의 피로 변화시키며, 신자들은 이 포도주를 받아 마심으로써 주님의 피를 마신다.
결국 성체 성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사이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주님의 식탁에 모여 성체 성사를 통해 우리 육신 생명이 음식을 먹고 지탱해 나가듯이 영적 생명은 천상 양식인 주님의 몸을 받아먹음으로써 성장해 가는 것이다.
2)주일마다 함께 모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인
유다인의 달력을 따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은 안식일 다음날이었고, 한 주간의 첫 날로서 일을 시작하는 날이었다(참고;마르 16,2).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날이 애초부터 다함께 모이는 날이었다(참고 요한 20,19.26). 얼마 후에 그들은 그 날을 '주님의 날'이라고 했는데, 이유는 이 날 함께 모여 '빵을 떼어 나누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고대 로마식 표현인 '태양일'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날을 거룩하게 지내야 할 안식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참 태양'이신 분으로 전용했던 것이다(참조. 요한 1,9; 8,12).
일요일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그래서 일요일마다 '작은 부활 축제'가 벌어지며, 그것은 미사에서 실행된다. 거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부활의 기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사람들은 일요일에 번거로운 일과 일상적인 노동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린다. 일요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참고 마르 2,27). 일요일은 축제일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은 물론 다른 이들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하고 하느님을 위해 자신들을 온통 열어 놓아야 한다.
3.구약의 빠스카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즉 어린양을 잡아 피는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서 누룩 없는 빵과 곁들여 먹도록 하였다. 하느님은 피묻은 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표로 아시고 그냥 지나치시고, 그렇지 않은 집에 장자를 모조리 죽이심으로 이스라엘을 에집트에서 구출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시다’라는 의미가 ‘빠스카’라고 표현한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모세에 의해 에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광야를 걸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된 역사가 신앙의 원점이 된다. 그들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선택하셔서 특별히 지켜 주셨다는 것을 자손 대대로 전함으로써, 그 추억이 또한 지금의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을 주어 하느님이 반드시 도와주신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던 것이다.
또한 출애굽기는 사막 가운데서 모세가 허지진 백성에게 만나라고 부르는 양식을 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 시대에도 로마가 점령해서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고 일을 열심히 해도 부유해지지 않고 매일의 생활양식이 모자라 허기로 고생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저 모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그와 같은 힘있는 지도자가 나타나서 자신들에게 양식을 주고 생활의 평안을 가져다 줄 것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4.신약의 빠스카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구약이 빠스카 |
신약의 빠스카 |
어린양의 희생 양고기(음식) 양의 피(해방의 표시)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육체적)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그리스도의 몸(빵, 음식) 그리스도의 피(포도주, 새로운 계약)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영생) |
예수님은 구약의 전통적인 예식을 빌어서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찬을 베풀어 주시어, 그것을 신약의 중심 예식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래서 구약은 신약을 준비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이한 완전한 해방, 즉 죽음과 죄에서 벗어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신약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쳐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희생되시고 ‘모든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쳐 영적 양식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이다.
성체성사 거행의 핵심적 요소는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을 청하는 기도로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주님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교회는 주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기억하면서, 주께서 수난 전날 밤에 행하신 예식을 계속한다.
구약 시대에는 창조주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땅에서 나는 맏물을 제물로 바쳤다. 에집트 탈출 이후에 제물들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빵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산물이고, 과월절 식사 끝에 마시는 "찬양의 잔”(1고린 10,16)은 예루살렘을 재건할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만찬을 드시는 자리에서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마태 26,27-28)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과월절의 빵과 포도주의 축복에 새롭고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당신의 일을 마치시고 아버지께 돌아가시며 제자들에게 남겨 주신 사랑의 증표이다. 예수님은 성체 성사를 세우시고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예식을 거행하라고 사도들에게 명하셨는데, 이것은 단순히 당신을 기억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성체성사의 예식을 반복함으로써 제자들과 후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고, 당신의 살과 피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의 몸과 시가 의미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바치는 조건 없는 사랑을 삶 안에서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사도 2,42-46).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교회 어디에서나 구조가 같은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다. 성찬은 교회 생활의 중심이다.
5.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
1)기념제
유대인 가정에서 빠스카 만찬을 들기 위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으면 제일 나이 어린 막내둥이가 “왜 이 밤은 다른 날 밤과는 다른 가요?”하고 묻는다. 그러면 가장인 아버지는 이렇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우리는 이 만찬을 들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린단다. 그 까닭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에집트에서 해방시키고, 시나이 산에서 우리와 계약을 맺으신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땅을 우리 백성에게 주셨으니, 장차 언젠가는 온 세상을 당신 친히 다스리시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념 만찬례를 엄숙히 지낸단다”
이처럼 어린이가 “주일에 사람들은 성당에서 무엇을 하나요?”하고 물으면 어머니는 우선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예수님이 최후 만찬 때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예식을 올린단다.” 그리고 예수께서 유다의 배반으로 붙잡히시기 전에, 마지막 이별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여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당신이 죽으신 다음 같은 예식을 끊임없이 올리며 당신을 기념하라고 명하신 경위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념’이란 말은 지난 일을 회상하거나 기억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사로써 최후 만찬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 만찬이 현재에 재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기념이란 바로 ‘과거의 사건을 현존시킨다’는 의미이다. 이 ‘과거의 사건’이란 바로 주님의 만찬과 죽으심과 부활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신자들은 세례를 받아 신앙인 공동체에 받아들여진 즉시 성체를 받아 모셨다. 이처럼 세례를 받고 처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상징한다. 성체는 세례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기까지 계속해서 재현되는 주님의 부활이요 그분의 임하심이다.
우리는 미사에서 예수의 만찬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재현시킨다. 미사 때 우리가 받아 모시는 성체가 우리가 세례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의 왕국으로 들어가기까지 계속해서 재현되는 예수의 부활이요 임하심이다.
기념이란 단지 과거를 뒤돌아보는 회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의 기념에 어제와 내일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빠스카 만찬은 과거에 이스라엘 조상들을 에집트에서 해방시킨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회상하고, 또한 역사의 종말에 하느님이 공의로운 심판에 이어 당신의 구원 경륜을 완전히 성취하시리라는 확신을 새롭게 하고 현재의 생활에서 율법을 더욱 충실히 준행 할 것을 다짐하는 회식(會食)이었다.
예수님께서 명하신 기념제요, 신약의 빠스카 회식인 성체 성사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잇다. 미사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 전개하신 새로운 구원 활동을 회상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린다. 그리고 하느님이 열어 주신 복된 미래에 희망을 걸고 종말에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신앙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교회는 미사에서 주님이 행하신 바를 그대로 행하고 그럼으로써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한다. 이 기념제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신비의 보고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제단을 중심으로 모여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 가운데 예수께서 현존하시어 당신 자신을 영적 음식으로 내어 주시는 회식이요, 또 한편으로는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인류를 하느님께 새로 결합시키는 새로운 계약의 제사이다. 하느님께서 그 제물을 참례자들에게 도로 내려 주시어 함께 받아먹게 하므로 제사와 식사가 연계되어, 참례자들을 예수님과 하나가 되게 하고 또 서로간에 하나가 되게 하는 일치의 성사를 이룬다.
2)감사제
감사제: 이 성사는 성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Eucharistia)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만찬인 이 성사는 성체가 그리스도의 최후 만찬과 관계되며 또한 천상 예루살렘에서 들게 될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식사 중에 큰 빵 한 덩어리를 떼어 나누어 먹었다. 예수님은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이 빵을 나누는 예식으로 성체 성사를 세우셨다. 이로써 나누어진 유일한 빵, 곧 그리스도를 받아먹는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한 몸을 이룬다(참고 1고린 l0,l6-17),
성체 모임 : 눈에 보이는 교회, 곧 신자들의 모임에서 성찬이 거행되기 때문이다(참조 1고린 11,17-34).
거룩한 희생 제사: 이 성사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하고 교회의 봉헌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거룩하고 신성한 전례: 성체성사는 교회 전례의 중심에서, 전례들이 표현하려는 모든 것을 한데 아우르기 때문이다.
친교: 우리는 이 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몸과 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한 몸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참조. 1고린 10,16-17).,
미사 성제: 구원의 신비를 실현시켜 주는 이 전례는 일상 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함으로써 끝나기 때문이다
6.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미사의 두식탁)
모임, 참회, 성서 봉독과 강론, 신자들의 기도로 이루어지는 말씀의 전례와, 빵과 포도주의 봉헌, 축성과 감사의 기도, 영성체로 이루어지는 성찬의 전례이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는 함께 "오직 하나의 흠숭 행위”를 이룬다. 실제로 성체성사에서 우리를 위해 차린 식탁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이며, 동시에 주님의 몸을 받아먹는 식탁이다.
1)말씀의 전례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성찬 모임을 위해 한 곳에 모인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이 모임을 앞에서 이끌고 주관하신다. 주교나 사제는 그분을 대신하여 모임을 주재하고, 강론을 하고, 봉헌물을 받아들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자신들의 참여를 "아멘"으로 표현하는 회중은 나름대로 전례 거행 때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성체성사 예식의 형식과 내용은 그리스도교 이전인 구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 갈 만큼 뿌리가 깊다. 특히 말씀의 전례의 내용은 유다인 들의 안식일 전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말씀의 전례는 사제와 참석한 신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죄를 공동으로 고백하는 '고백의 기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참회의 기도와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영광송, 당일의 본기도, 신자들의 기도와 회중의 노래가 말씀의 전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말씀의 전례의 중심은 성서 봉독이다. 첫째 봉독은 구약성서와 사도행전, 묵시록, 사도들의 편지들 가운데서 한 대목을 취하여 낭독한다. 이 봉독을 '독서'라고 하튼데, 주일과 대축일 또는 특별한 미사를 거행할 때는 두 개의 독서를 한다. 마지막 봉독은 항상 네 복음서 중에서 한 대목을 취하여 읽는 것이다. 대축일에는 복음 말씀을 장엄하게 노래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말씀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사제가 복음을 봉독하고 나서 "이는 주의 말씀입니다."라고 하면,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찬미" 하고 응답한다. 대축일에는 복음서가 봉독대에 옮겨질 때 촛불과 향이 뒤따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성서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도 있다. 이렇게 신앙인들은 성서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는데, 성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존경의 대상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곧 그리스도인들의 머리, 심장, 입이 주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복음서를 봉독 하기에 앞서 머리와 입과 가슴에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강론은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시대에 접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서의 말씀을 우리 생활에 비추어 재해석해 쑨다. 그리하여 회중은 성서 시대의 신앙인 공동 체 안으로 들어가 그들처럼 하느님이 가까이 계심을 체험하며, 오늘의 삶 안에서 부딪히는 온갖 일들을 슬기롭게 풀어 가고, 자신들의 삶과 말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 전할 용기를 얻는다.
주일과 대축일 전례 때 회중은 주님의 말씀과 해설을 들은 후 신앙고백문을 낭송함으로써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 성업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한다.
말씀의 전례 가운데 선포하고 전하는 내용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거행하는 성체성사 예식을 통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이 모든 이를 위해 책임을 떠맡은 놀라운 사실이 현실화되는 공동체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교회는 공동체의 간청이면서 전 세계 교회의 간청인 '신자들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중재의 기도를 바친다. 신자들의 기도에서는 세상과 교회에 필요한 은총, 특히 여러 모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청한다.
이처럼 말씀의 전례 부분은 미사의 개회 인사로부터 신자들의 기도를 바치는 데까지이다. 이 부분을 말씀의 전례라고 하는 이유는 ‘말씀’이 이 예식의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란, 하느님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과 우리가 드리는 말씀, 우리끼리 서로 나누는 말씀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신자들의 일치도 이룩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동안에 노래를 부르며 앉거나 서거나 하는 것은 그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경건하게 들으려는 우리의 자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모름지기 말씀을 들음으로써 이루어지는 내외적 성숙을 인식해서 미사의 시작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참석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성찬의 전례
이어서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는데, 먼저 사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성하여 변화될 빵과 포도주를 제단에 바치는 제물 봉헌을 한다. 그리고 성찬 기도와 감사와 축성의 기도로 성찬 거행은 절정에 이른다
주의 기도를 바치고 빵을 쪼개어 나눈 다음, 사께와 신자들은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요한 6,51)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
이천 년이라는 시대의 흐름과 전례의 풍부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성찬 예식의 본질 적인 요소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성찬은 성부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이며,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이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성찬은 교회가 성부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요 감사의 제사이다. 곧 교회는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 그리고 창조와 구속과 성화로 이루어 주신 모든 것을 감사드린다. 교회는 이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께 봉헌한다
모든 양식의 성찬 기도 안에는 '성체를 이루는 말씀' 후에 '기념'이라고 부르는 기도가 있다. 그런데 성서에서 기념의 의미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기념할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이루신 놀라운 일들에 대한 선포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사건들은 전례적 기념 안에서 현재화되고 현실화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빠스까를 기념하고, 십자가의 희생을 기념하고 구현하며, 십자가 제사의 결과를 현실에 드러내기 때문에 성찬은 교회가 하느님께 그리스도를 바치는 희생 제사이다.
동시에 교회 자신을 바치는 희생 제사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그분과 함께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 그리스도의 제사는 그분 신비체의 지체들인 교회의 제사도 된다. 신자들의 생활과 찬미, 고통과 기도, 노동 등이 자신을 남김없이 바치시는 그리스도의 행위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또는 미사의 희생 제물은 어떤 종교들이 행했던 것처럼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그런 제사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을 송두리째 인류를 위해 내어 주셨음을 뜻한다. 이렇게 당신 자신을 모두 바쳐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류를, 그리고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킨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하나의 증거가 되어 하느님과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게 해 주고 뒷받침이 되어 준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또한 죄의 용서를 실현시키고 모든 이를 위한 기쁨과 구원에 이바지한다. 그것은 교회가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효과적으로 발생한다. 그러기에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전 인생을 내어 주심과 죽으심을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재현시키고, 예수께서 하느님과 인류를 위해 존재하시며 행하셨던 바를 계속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봉헌에는 아직 이 세상에 있는 지체들뿐 아니라, 이미 하늘 나라에서 영광을 받고 있는 지체들도 결합된다. 성찬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말씀과 교회의 기도 안에, 가난한 사람들 안에, 당신께서 세우신 성사들 안에, 특별히 성체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은 축성되는 순간부터 시작되어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된다.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온전히 현존하시며, 또한 그 형상의 각 부분에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쪼개어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누어 지지 않으신다.
성 토마스는 그리스도의 참다운 몸과 피가 이 성사 안에 계심은 "오관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권위에 근거한 신앙으로써 알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성 치릴루스는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라는 루가 22,19의 말씀을 해설하면서, "이 말이 참말인가를 의심하지 말고 차라리 신앙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진리이신 주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1)표징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교회가 끊임없이 거행해 온 미사 성제의 표징 안에 예수께서는 사도 시대와 똑같이 신비롭게 현존하신다. 최후 만찬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사제가 외우면, 빵과 포도주의 외적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실체(본질적 존재)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그분의 거룩한 인간성 자체가 제단에 현존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왜 이런 방식으로 현존하시는가? 음식이 상징하는 효과를 우리 안에 내기 위해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를 영적으로 양육하고자 하신다. 제단에는 예수님의 그 거룩한 인간성과 함께 하느님으로서의 위격도 현존하고 있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체험하며 사도 토마처럼 “내 주여,내 하느님이여!”하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이처럼 가장 인간적이고 감각적인 방법을 택하신 것이다.
7.성체 성사의 상징과 효능.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더라도 당장 겉으로는 드러나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영성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죄인임을 고백하게 한다. “주여, 내안에 주를 모시기에 당치못하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영성체는 우리를 순식간에 탈바꿈시키는 마술적 예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해서 서로 하나가 되게 하고 복음적 생활에 당신을 증거할 힘을 주시는 회식이다.
사실 우리 신자들의 기도 생활의 절정은 성체 성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신자들은 성체 성사가 거행되는 내용 자체에 포함된 모든 점들, 즉 함께 모임, 말씀을 들음, 기념함,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자신을 바침을, 받아먹음을 철저히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기도의 최고 형태는 분명히 공동으로 하는 것이다. 곧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가 모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로서의 전례를 통해 드리는 기도이다. 성체 성사는 하나의 집회입니다. 그러기에 성체 성사가 제정된 것은 우리가 이웃을 떠날 수 없으며, 이웃을 떠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과의 유대를 되살리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체 성사는 최고의 기도인 동시에 또한 이웃과의 사랑의 재일치이다.
8. 성체 성사의 현대적 이해
성체 성사는 교회의 가장 거룩한 보화요 가장 내밀하고 심오한 실재로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월적 세계 현세와 만나는 성스러운 자리이며, 그 앞에서는 오직 경건한 묵상과 몰아(沒我)적 믿음만이 요구되는 신비이다. 그러나 이 신비는 신앙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험과 실증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난점도 제기한다.
그분은 오늘날도 사람들을 당신 둘레에 불러모으고 계시다. 생전의 공생활 때와는 달리 ‘빵과 포도주’에 의해 불러모으신다. 그것은 사람이 일상 먹고 마시는 음식이다. 음식 없이는 살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육신을 위한 음식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도 있어야 ‘사람답게’살 수 있다. 마음의 양식이라 ‘사랑’이다. 사람에게는 빵에 못지 않게 사랑 또한 절대로 필요하다.
우리는 미사에서 ‘쪼개어지는 빵’ 성체를 통해, 당신 자신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나 당신에게 오는 모든 이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찾게 하시는 분, 다른 이를 위한 봉사의 삶에 이 세상의 구원이 달려 있음을 당신의 ‘으스러진 몸’으로 보여 주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분이 우리에게 당신의 그 ‘으스러진 몸’을 받아먹게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욕심과 아집의 장벽을 헐어 버리고, 이웃 안에서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 안에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는 당신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당신의 삶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분의 ‘으스러진 몸’을 받아먹으면서 그 성체 안에 그분의 십자가 수난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봉사적 삶을 외면하는 생활을 한다면 그분의 말씀과 행적도 왜곡하여 자기 합리화에나 원용하고, 결국 믿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사이비 그리스도인’, ‘위선적인 예수쟁이’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10.응용 및 실천
1)성체 성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현존은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러기에 우선 신자들은 자주 영성체를 해야 한다. 영적 성장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신자들이 적어도 일년에 한번 부활 축일을 전후로 하여 영성체 할 것을 명하고 있지만, 우리는 성체를 자주 영하여 그리스도와의 사랑을 깊게 하는 것이 좋다.
2)성체는 미사가 끝난 후에는 보통 성당 내의 제단 위에 있는 감실(監室) 안에 모셔 둔다. 그래서 성체가 감실 안에 모셔져 있다는 것은 붉은 등, 즉 성체 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유롭게 성당에 나가 감실 안에 계신 주님을 방문하여,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개인적인 기도를 바칠 수 있다. 그리고 환자와 임종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성체를 모셔 감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안에서 한 몸을 이룬다. 특히 신앙인들은 미사가 거행되지 않는 시간에도 감실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흠숭을 드릴 수 있다. 이들이 드리는 흠숭의 외적인 표시는 무릎을 꿇고 묵상 기도를 하는 것이다. 성체등(聖體燈)은 빵의 형상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그들에게 일깨워 준다.
3)교회는 성체성사 이외에도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고 성체께 대한 신심을 깊게 하기 위해 성체 강복, 성시간, 성체 거동, 크게는 성체 대회 등의 행사도 거행하는데 신자들은 거기에서도 풍요로운 은혜를 얻을 수 있다.
4)성체를 영하기 전에는 영적, 육적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고백성사와 공복제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경건한 마음을 지니기 위해 외적으로 단정한 자세와 옷차림에도 유의해야 한다.
5)무엇보다도 지극한 사랑으로 빵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생활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의 음식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나눔과 친교와 일치의 성격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미사가 끝난 후에도, 미사에서 길러 낸 힘으로 매일을 살아가면서 평범한 우리의 일상생활을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생활로 성화 되는 것이다.
11. 성체성사와 신앙생활
우리 생활 전체가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
'희생'이라는 말에는 세상의 어떤 물건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것을 마주 없애 버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구약에서는 제사 때 제물로 바친 짐승이나 음식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완전히 태워 없애 버렸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제사는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사는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만이 아니라 그분의 출생과 공생활, 수난과 죽음, 부활을 포함하는 전 생애를 하느님께 바친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바치는 제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 전체를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제물은 단순히 미사 예물만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제물이 된다. 시간이나 돈이나 취미나 오락이나 친구까지도 그리스도 때문에 버렸다면, 그것은 하느님께 바치는 우리의 제물이 된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바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의 입으로 찬양합시다 좋은 일을 다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런 것을 제물로서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히브 13,15-16).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하셨던 것처럼 자기의 존재와 삶 전체를 제물로 봉헌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들의 공동체의 동료들에게 자기를 바치고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의 은총과 구원 업적들을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 바치는 회생, 거룩한 산 제물(참고 로마 12,1)이다.
▶ 성체는 무엇입니까?
<답> 성체는 빵과 포도주로 계시는 살아계신 예수이십니다.
▶ 성체성사는 무엇입니까?
<답> 성체성사는 7성사 중에 제일 큰 성사이며, 천주교회의 제사이고, 또한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 예수께서 언제 성체성사를 설정하셨습니까?
<답>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설정하신 것은 수난 전 날 저녁이니, 빵을 드시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받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니라"하시고, 후에 포도주를 드시고 "너희는 받아 마시라. 이는 내 피니라"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피니라"하신 말씀으로 무엇이 되었습니까?
<답> "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피니라"하신 말씀으로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화되고,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하신 말씀으로 예수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답>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하신 말씀으로 제자들을 사제 지위에 올리시고, 성체를 이루고 제사를 드리며 성체를 나누어주는 권을 주시고, 또 세상이 마칠 때까지 그 성무를 수행할 후계자들을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 사제가 어느 때에 성체를 이루게 됩니까?
<답> 사제가 성체를 이루는 것은 미사를 드릴 때입니다.
▶ 미사는 무엇입니까?
<답> 미사는 천주교회의 참된 제사입니다. 예수께서는 사제가 행하는 예절로 십자가의 제사를 새로이 재현하시며, 기념하시고 또 당신의 몸과 피를 천주성부께 제물로 드리십니다.
▶ 사제가 성체를 이루기 위하여 무슨 재료와 기도문을 사용합니까?
<답> 사제가 성체를 이루기 위하여 예수께서 성체를 세우실 적에 쓰시던 재료와 기도문을 사용합니다.
▶ 사제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를 들고 기도문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답> 사제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를 들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같은 기도문을 하면, 예수께서 성체를 세우실 때와 같이 빵과 포도주의 체(體)가 없어지고 생활하신 예수 즉시 계시며, 빵과 포도주의 형상만이 남게 됩니다.
▶ 미사가 십자가의 제사와 어떻게 같습니까?
<답> 미사가 십자가의 제사와 같음은 제물과 제관이 같으니, 다만 그 드리는 방식이 달라서 십자가에는 피 흐름이 있었고, 미사에는 피 흐름이 없을 뿐입니다.
▶ 미사로서 우리는 십자가상의 공로와 효과를 받게 됩니까?
<답> 미사로써 우리는 십자가상의 공로로 효과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예수의 성혈공로를 인하여 천주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 미사의 영신적 이익이 몇가지 있습니가?
<답> 미사의 영신적 이익이 세가지 있으니,
1) 모든 신자들이 받는 것과 2) 미사를 청한자가 받는 것과, 3) 미사를 드리는 사제가 받는 것입니다.
▶ 미사의 주요한 부분은 몇가지 있습니까?
<답> 미사의 주요한 부분은 말씀의 전례와 감사송 외에 세 부분이 있으니, 빵과 포도주의 봉헌과 성체축성과 영성체입니다.
▶ 미사 참례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답> 미사참례는 십자가상의 제사를 생각하여 사제와 한가지로 예수의 몸과 피를 천주 성부께 드리고 영성체하거나 적어도 정신으로라도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와 일치 결합하면서 해야 할 것입니다.
▶ 예수께서는 미사 때에 제대 상에 계십니까?
<답> 예수께서는 제대 상에 미사 때는 물론이고, 성체를 모신 곳마다 항상 계시니,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그 앞에 나아가서 경배하며, 흠모하는 정을 발하고 기도하며 성당 안에서는 태도를 정중히 해야 합니다.
▶ 영성체는 무엇입니까?
<답> 영성체는 축성한 제병을 받아먹음으로써 생활하신 예수를 마음 안에 모심입니다.
▶ 천주시오 사람이신 예수 축성된 제병에 전체로 계십니까?
<답> 천주시오 사람이신 예수 축성된 제병에 전체로 계시니, 축성된 성체의 그 조각 안에도 전체로 계십니다.
▶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예비해야 합니까?
<답>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신을 거룩하고 단정하게 예비해야 합니다.
▶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서 영혼의 예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서 영혼을 깨끗하고 뜨겁게 예비해야 할 것이니, 만일 대죄 중에 있으면 합당한 고해성사로써 은총의 상태에 있게 하고 열렬한 사랑을 발하게 할 것입니다.
▶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서 육신의 예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서 육신의 예비로서 영성체 전 적어도 한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말고 몸을 단정히 하며 정성을 다하여 조심스럽게 할 것입니다.
▶ 정당한 예비없이 영성체하면 무슨 죄가 됩니까?
<답> 정당한 예비없이, 즉 대죄 중이거나 혹은 합당한 사유(중병에 걸려 있다거나) 없이 공심재(空心齋)를 지키지 아니하고 영성체하면, 성체를 모독하는 중죄가 됩니다.
▶ 영성체를 하기 전에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답> 영성체를 하기 전에 할 것은 미사 드리는 사제와 함께 뜻을 같이하여 신, 망, 애 삼덕과 통회의 정을 발하고 또한 예수께서 나에게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청해야 합니다.
▶ 영성체한 후에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답> 영성체 한 후에 할 것은 예수를 흠모하며 감사하는 정을 발하고, 영혼과 육신을 예수께 드리며 그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 성체를 잘 모시면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답> 성체를 잘 모시면 예수와 일치, 결합하고 성체로써 우리 영혼을 기르고 은총을 더욱 보태어 받으며, 힘을 얻어 선업에 항구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