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성지순례/2012년성지순례

2012년 성지순례 107 이스라엘 63 예루살렘

월요일은자유인 2012. 11. 4. 17:42

 

 

  승천 경당이 이슬람 사원 안에 위치해 있다.

 

 감시 초소이다.

 경찰들이 있다.

 

 

 이 입구를 통해서 들어간다.

 

  올리브산

 

 

 

예수님 승천 경당은 올리브산 정상에 있는 앝-투르(At-tur)라는 아랍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이슬람 사원 안에 있다.

주님의 기도 성당에서 3-5분정도의 위치에 있다.

 

올리브산 정상은 처음부터 신심깊은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승천장소로 여겨졌고,

387년에 귀족출신 부인인 포메니아(Pomenia)가 올리브산 정상에다 기념성전을 지었다.

 

이 소성당은 둥그렇게 만들었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붕을 덮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당도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670년에 다시 지어졌으나

1009년 술탄 엘 하킴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후 1152년 십자군에 의해 팔각형으로 다시 지어졌는데

1187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건물은 커다란 팔각형의 십자군 성당의 남은 부분이며,

사원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남겨 놓았다는 예수님의 오른쪽 발자국이 찍힌 바윗돌이 하나 있는데 역사적인 신빙성은 없고, 십자군 시대의 유물로 보고 있다. 매년 작은 형제들은 이곳에서 예수님 승천 축일을 기념한다.

 

형제들은 벽 안쪽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자며, 저녁기도와 아침기도를 바친다.

자정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와 꼽틱, 시리아 정교회도 그들의 예수님 승천축일에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경당 내부

  예수님의 발자국이라는 곳

 

  지붕의 모습

 

 

 

 

  나와서  걸어서 주님의 기도 성당으로 향한다.

 

 

 

 주님의 기도 성당으로 내려가면서 본 예루살렘 전경

 우리가 묵었던 호텔도 보인다.

 

 주님의 기도 성당 입구

 성지의 특징이

 성지의 출입구가 대체적으로 작다는 점이다.

 

 

  Pater Noster라는 표지석이 있는데

  주님의 기도라는 특이 아니고,

  주님의 기도를 드릴때 라틴어로 제일 먼저 시작하는 내용이다.

  "우리 아버지"라는 뜻이다.

 

  주님의 기도 성당 전경

 

 하느님을 경배하는 장소(2사무 15,32)인 올리브 산 정상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문을 가르치셨고(마태 6,9-13; 루가 11,2-4)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셨던(마태 24,1-3; 마르 13,1-2; 루가 21,5-6) 동굴 위에 세워진 주님의 기도문 기념 성전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성전을 빠떼르 노스떼르”(Pater noster) 성전이라고 하는데, 빠떼르 노스떼르는 우리 아버지에 해당하는 라틴어 주님의 기도 첫 글자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는 324년에 예루살렘으로 성지를 순례 왔고,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3대 대성전인 예수님의 무덤 위에 세운 예수님 부활 기념 성전’(십자군 이후 무덤성당으로 부르게 됨),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기념 성전그리고 올리브 동산위에 엘레오나라고 칭하는 대성전을 지었다.

   326-333년에 걸쳐 지어진 이 성전의 이름은 올리브 나무 숲이라는 의미를 지닌 희랍어 엘라이온의 와전된 발음으로 길이 65m, 30m나 되는 거대한 성전이었다고 한다.

 

  엘레오나 성전은 614년에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파괴 되었고, 붕괴된 비잔틴 시대 성당 위에 1106년 십자군 시대에 소경당이 건립되었다.

  이때부터 순례자들에게 그곳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친 곳이라고 소개되었고, 소경당 안에는 히브리어, 희랍어 그리고 라틴어로 된 주의 기도문이 적힌 대리석 판이 장식되었다.

  하지만 십자군이 패한 뒤 소경당도 파괴되었고 그 자리는 이슬람교도들의 손에 들어갔다.

 

 

 

 

 

 

 

 

   1868년에 프랑스의 바씨의 아우렐리아(Aurelia de Bassi) 공주가 그 땅을 사서 프랑스에 헌납하였고, 1875년 조그마한 기념성전과 카르멜 수녀원을 지어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아우렐리아 공주는 그 수녀원 안에 있는 묘지에 묻혀 있다.

   1910년부터 1911년까지 실시된 발굴 작업 때 이전 교회 건물이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념 대성전은 아직도 미완성인채로 있다.

   주님의 기도 기념성전에서 순례자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빠떼르의 회랑(Chiostro del Pater)이라고 부르는 수녀원의 회랑 안에 걸려 있는 각국의 언어로 되어 있는 주님의 기도문 판들이다.

   현재(200612) 145개국의 언어로 쓰여져 있는데, 몇몇 나라이지만 점자어로 된 주님의 기도문까지 있다.

  우리말로 된 주님의 기도문은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 최재선 요한 주교님이 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식 후 성지순례를 하신 후 기증하신 거라고 한다. 우리말 주님의 기도문은 성물판매소 근처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200812월에 한국 개신교 목사와 분별력 없는 주님의 기도 성당 카르멜 수녀회의 수녀에 의해서 파괴되고 바로 그 자리에 개신교용 주님의 기도문이 들어서 있다. 20099월 현재, 원상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조잡하게 복원되었고,

   현지인이 쓴 것이 아니라 거의 그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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