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자 교리 제 14과 : 성령론(2)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파견되어 임무를 마치시고 영광스럽게 된 인성을 간직한 체 승천하신 후 풍요로운 성령께서 이 세상에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사도행전 1,4-9). 성령은 세례 받은 각 지체인 신자 개인뿐 아니라 전체로서 교회에 내재하시어 분발케하시며, 지도하시고, 성화시켜주신다.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와 교회와 우리의 관계, 바로 그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성원들이 하느님을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그들을 성화(聖化)시키신다.
신앙인 공동체를 형성하시고 이 공동체인 교회를 성장시키며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활동하시며 각 지체를 도구로 하여 주님을 전파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확충해 나가는 성령의 활동 곧 교회와 성령과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성령은 교회를 형성하시고 성화 유지시키시며,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확장 발전시켜 나가신다.
1.성령과 교회의 태동.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수행하는데 자기들의 주도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으로 오셔서 진리를 계시해 줄 성령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셨다. 성령이 내리시자, 고무된 제자들은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 순간에 교회는 탄생되었고,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2. 성령의 시대 - 교회의 시대
성령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을 이 세상 끝까지 확장시켜 나가고 이 세상 끝 날까지 주도하실 분으로서
복음을 선포하던 초기에는 사도들을 통하여,
이후에는 교회를 통하여, 활동하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은총의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성령의 시대 교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3.신앙인 공동체를 형성하시고 그를 통하여 활동하시는 성령.
성령은 교회를 인도하고 성장시키며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활동하신다.
교회가 태동하던 시기도 사도들이 아니라, 성령의 역할이 우선되었다.
성령은 선교 여행하는 사도들과 복음 선포자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심.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사람들을 뽑으셨음.
중요한 직분을 확립하여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심.
성령은 인류가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이며, 의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의 힘이시며,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용기를 주시는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4.성령과 교회의 관계
성령과 교회는 분리시킬 수 없다. 교회가 있는 곳에 성령이 계시고, 성령이 계시는 곳에 교회가 있다. 그리고 성령은 교회를 존재케 하고 생명을 주신다.
1)성령은 교회를 성화 시키신다.(교회가 하는 거룩한 것은 성령의 힘으로)
성령은 성화 은총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영신적으로 새사람이 되게 하신다.
구원 진리를 올바로 믿고, 영생을 바라고, 하느님을 가장 사랑하도록 향주삼덕과 유익한 도움도 주신다.
성령은 개인을 성화 시킬 뿐 아니라, 신앙의 증거자, 성인 성녀, 수도회를 세우고
전례와 영성을 발전시키며
신심 운동을 새로 일으키고 더욱 활기 차게 하는 등 공동체도 성화 시키신다.
2)성령은 교회를 유지하신다.(유지는 인간의 힘으로가 아닌 성령의 힘)
성령은 교회가 교회로서 존립하고 활동할 수 있게 하신다. 즉 교회가 신앙을 간직하고 실천하며 하나의 백성으로 유지하며, 오류 없이 구원의 진리를 믿고 실천하며 선포하게 하신다.
3)성령은 교회를 일치시키신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으로써 하나가 된다.
마지막 만찬을 드시던 날 저녁에 예수께서는 일치가 교회의 필수 불가결한 표지의 하나이어야 하며 그분의 사명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증거임을 지적하였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요한 17,21)
교회의 일치는 결코 결여될 수 없다. 그것은 같은 성령의 인도와 활동 때문에 그러하며 전체 신자들이 보호되고 신앙에의 일치로 진보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진리의 성령이 지도하시는 빛 아래서 계시는 신앙으로 지켜지며 믿음으로 설명되어 지는 것이다.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영혼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계신다. 따라서 교회는 성령께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그 지체에 계시어 몸 전체를 생활케 하시고 통일하시고 움직이신다.
4)교회를 형성하고 보호함.
그리스도 승천 후 오순절의 성신 강림으로 성령은 사도들에게 내려오시어 그들과 함께 영원히 남아 계시게 된 것이다. 바로 그 날부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앙인 공동체인 교회가 형성되어 오고 만백성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성령께서는 구원의 진리를 믿고, 실천, 선포하며, 전파하는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며 감독하신다.
교회 헌장은 교회 전체가 진리를 믿음에 있어서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되는 이유가 성령께서 백성에게 일으키시고 지지하시는 신앙감(Sensus fidei)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세례자에게 성령이 오시면 성령으로 충만된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에 점차 화합하게 된다. 이렇게 성령은 개인은 물론 전체로서 교회에 내재하시며 지도하신다.
5)교회 공동체 안에 주어지는 특은(特恩) 들
성령을 통해서 받는 은총은 자신의 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6)“나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서와 전승(傳承)에서 영, 생명, 사랑, 선물, 일치의 인장(印章), 협조자, 성화주(聖化主), 생명을 주시는 주님으로 불리는 성령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아니한 하느님이시지만 우리에 너무나 친근한 분이시라는 것이 그분의 고유한 역할에서 드러난다. 성령은 하느님의 속 마음을 아시고 우리 안에 거처하심으로써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며 우리를 자녀로서 하느님 앞에 서게 하시고 그리스도에게 신앙을 고백하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시게 하신다. 이리하여 그분은 우리가 장차 받아 누리게 될 상속의 담보가 되신다. 전통 신학의 귀속(歸屬) 이론에 의하면 성령은 자비, 성덕(聖德)의 힘, 선성(善性), 기쁨이고 성화주이시다. 이 귀속 원리에 의하여 성령은 위격적으로 이름으로서 선물과 사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계시에 의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사랑이시다. 그러나 성령이 사랑이라는 말은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성부도 사랑이고 성자도 사랑이고 성령도 사랑으로부터 나온 사랑이다. 그런데 성령은 사랑의 충동이 사랑하는 사람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위격화된 사랑이시다. 성부와 성자가 서로에게 자기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완전한 사랑을 나누고 친교를 이루시는 데서 성령이 발출하시므로 성령은 두 분의 공통 사랑, 공동 선물인 것이다.
㉮우리는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하고 성령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그것은 “생명을 주시는 주님”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성령은 우리 인식, 사색의 대상 이전에 체험, 찬양, 흠숭의 대상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삶 안에 함께 하시는 성령을 체험하고 찬양하고 흠숭할 때에 그분의 정체와 신원 및 역할을 인식할 수 있다. 성령에 대한 신앙의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는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나의 삶과 세사 안에서 펼치시는 하느님의 행위의 문제는 성령의 힘에 대한 문제이다. 하느님은 세상 및 인간을 무한히 초월하시고 영원히 근접할 수 없는 분이시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는 나자렛 예수가 하느님의 영을 항구히 또 충만하게 받는 분이시임을 믿는 것이다. 그분은 성령의 힘으로 태어나시고 그 힘 안에서 활동하시고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베푸시고”(마태 3,11) “하느님의 영으로 악마들을 쫓아내시고” 또한 그리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다가 온 것이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는 내가 하느님의 영에,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힐 수록 더욱 더 나는 이 영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특유하게 행사하시는 자주성과 주도권을 깨닫게 됨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인해 나는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재적 생명의 과정 안에 동참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암시는 것이 <세례 명령>이고 바울로가 전해 주는 초대 교회의 축복 양식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길 빕니다. ”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는 바울로와 더불어 우리 모두가 “영적 존재” 즉 영으로 충만 되어 있고 영의 체험에 불리움 받고 있음을 내가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도 행전은 성령이 활동하시는 그 효력을 특히 비상한 현상들 예컨대 방언, 미래에 대한 환시, 깊은 통찰, 기적적 치유와 회개 그리고 복음의 자유롭고 담대한 선포로 묘사한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는 또한 우리 역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분은 현세를 건너서, 피안에만 계시는 무의미한 위대한 존재가 아니시다. 나는 공동체, 교회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의 현존을 믿는다. 영은 위격적 존재로서 독자적 의지와 계획과 자유를 지니는 주체이고 또한 따라서 교회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 그분은 말씀, 직무, 성사 안에서 당신 자신을 넘겨주신다. 말씀과 더불어 직무를 통하여 성사를 실현하신다. 교회의 역사는 성령과 사람들의 공동 역사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그분이 쥐는 선물들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교회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영을 믿는다. 교회의 신앙은 성령의 업적이고 그분은 성사들 안에서 활동하시고 매사에 있어서 성실하심을 나는 믿는다. 즉 사람들의 불신이 그분의 현존을 표지들을 무시할 때에라도 그분의 사랑이 성실함을 믿는다. 성령은 예수의 사명을 계속하는 영이시고 일시적인 세상의 긍정적 가치들을 충만한 완성에로 이끄는 미래의 담보이다.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은 인류의 미래와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음을 믿는 다는 것을 뜻한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 즉 성부와 성자의 사랑의 유대, ‘평화의 유대’이신 성령에 대한 신앙은 만사가 평화, 사랑 안에서 해결점을 찾고 완성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이 활동하시는 행위에 자신을 개방 하다면, 일치에 대하 보다 큰 자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분 성령이 모든 이들 안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이다.
제14-2 : 그리스도와 교회
교회라는 말은 희랍어에서 나왔는데 원래의 뜻은 군주가 어떤 정치적인 메세지를 백성들에게 전해 주려고 사절을 보내어“백성을 부러 모은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백성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이 의미에 종교적인 의미를 붙여 쓰면, ”믿는자들의 모임“”즉 하느님께서 불러모으신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된다.
1. 구약에 예언되었던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이스라엘과는 계약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의 파기와 불성실로 새계약을 맺음.
예수께서 이 구약의 예언대로 당신의 피로써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고 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무리들은 새 이스라엘 즉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었다.
1)가톨릭 교회에서 물과 성신으로써 다시 태어난 사람은 완전한 하느님의 백성이라 할 수 있다.
2)갈라진 형제로서
3)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 복음을 알지 못하지만 제나름으로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도 있다.
2.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예수께서 생전에 제자단을 만드심. 가르치심. 당신의 일을 계속해 나가도록 준비. 제자들이 당신 교회를 계속 이끌어 나가도록 마련하심. 교회의 창설자이요. 머리이신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서 지금도 함께 계시면서 성령을 통해 당신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심.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수행하시려고 교회를 세우셨고,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진리를 전하게 하셨다. 교회 안에서 인간 구원을 위해 행해지는 것을 이루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교회가 존속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께로부터 유래하였고 세상 끝날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기를 언약하셨기 때문이다.
3.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
예수께서는 다른 협조자인 성령을 당신 교회에 보내심.
4.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예수께서 택하신 12제자와 이들의 제자인 주교들은 오늘날까지 에수의 이름과 권한으로 하느님의 백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예수께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어 살도록 이끌어 준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이며 또한 이 교회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시고 성령 안에 하나를 이루게 하신 ‘하나인 교회’이며 어느 민족,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교회’이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교회의 전파와 보편성을 말한 것이며 교회가 있는 곳마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함께 게시는 것입니다. 가톨릭이란 용어 자체가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성사 안에 거룩하게 되도록 해주시므로 ‘거룩한 교회’이다.
5.그리스도의 교회
교회는 그 시초부터 오늘날까지 여러 모양으로 탄압과 제지를 당해 왔으면서도 현재의 모습으로 자랄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예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모진 박해와 압박에서도 결국 승리하고야 마는 그 내면의 힘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이처럼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교회요, 그리스도는 당신의 교회 안에서 언제나 함께 계시면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세상 끝 날까지 펼쳐 나가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가 처한 시대와 문화에 맞는 언어로, 즉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방이요 구원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도구이어야 한다.
※보충 자료 : 종교 개혁에 대해서
1. 종교개혁의 어의(語義)
소위 종교개혁(宗敎改革, Reformation)이란 말은 16세기에 특히 독일에 있어 마르틴 루터(1483 - 1546)가 전통적으로 믿어 내려오던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학자들 간에는 ‘종교개혁’이란 말이 글자 그대로 16세기의 종교적 변동을 가리키는 말이 못 됨을 지적하고 나아가서는 그 부당성을 말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지라도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 제도를 사람이 개조 혹은 변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 개혁이 정말로 필요했다면 초대 교회로부터 16세기 동안 끊임없이 믿어 오던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오류를 범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면 16세기 이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모두 진정한 교회를 못 찾고 그릇된 교회에서 헤매고, 또 모두 신앙에 있어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즉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 사도 시대를 제외하고는 16세기까지 이 지구상에는 없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 졌기 때문에 죽음의 힘도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16,18) 또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하셨기 때문에 절대로 교회는 중단되거나 혹 개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가톨릭의 견해로서는 종교 개혁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16세기의 종교적 변동을 글자 그대로 종교 개혁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주장하는 바이다. 이제 소위 종교 개혁의 역사적 사실을 검토하면 그 진부(眞否)가 밝혀질 것이다.
2. 종교 개혁의 원인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그를 선행(先行)하는 원인이 있다. 종교개혁의 주인공은 마르틴 루터였다. 그도 다른 역사의 인물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와 환경을 노질하여 자기의 소기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을 잘 알아듣기 위하여는 16세기를 전후하는 사회 환경을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의 원인 중에 중요한 것은 다음의 몇 가지이다.
(1)로마 교황청의 권위 쇠퇴
중세기는 그리스도 교회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국제적 국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중세기 후반에 있어 교회법은 전 유럽의 공법으로 모든 유럽 제국가에서 인정되었다. 즉 교권(敎權)과 국가의 속권(俗權)이 긴밀히 연결되어 교회의 전성시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14세기부터는 점차 교권과 국가의 속권 사이에 간격이 생겨 서로 투쟁하기 시작하였다. 또 프랑스 국가주의의 농락(籠絡)으로 14세기에 교황이 로마를 떠나 프랑스 남쪽 아비뇽에 가서 70년간(1305-1376) 있게 되므로 더욱 로마 교황청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2)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
당시 성직자 사회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세속적 정신은 그들의 도덕 생활을 타락시켜 소위 종교 개혁자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의 구실을 준 것이다.
16세기쯤에는 교황청의 고급 성직자와 교황들 자신, 그리고 주교들은 지방 장관의 직을 맡아본 나머지, 교회의 성직자라기 보다 가끔 세속의 군주와 같이 살았다. 따라서 그들의 윤리 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16세기를 전후하여 성직자와 교황들의 악한 표양, 타락한 모습은 적지 않았다.그러나 그것을 과장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깨끗한 물동이에 먹물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그 물은 전부 흐려지고, 또 깨끗한 흰옷 한 벌에 조그마한 물감칠을 하면 그 옷 역시 더러워지는 법이다. 즉 당시 몇 몇 성직자들의 악한 표양은 아직 그 당시 신학교 제도가 없고, 또 젊은이들을 충분한 준비 없이 성직에 등용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3)독일의 정치 및 사회적 환경
특히 종교개혁의 발생지인 독일의 정치 및 사회적 환경은 종교 개혁의 원인을 만들었다.
보통 비가톨릭적 학자들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부패한 로마 가톨릭 교회를 거슬러 일어난 그리스도 신자들의 정정당당한 분기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종교개혁의 원인은 독일의 정치 및 사회적 환경이 전통적인 신앙의 유일성과 교회의 통일성을 무시하고 분열을 만든 데 있었다. 당시 독일에 있어 분열의 요소는 정치, 사회, 종교 세 분야서 싹트고 있었다.
15세기 말엽에 독일 지방에서는 반로마 사상을 부르짖는 독립 주의와 무정부주의가 횡행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에 황제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한 큰 군주에 지나지 않았다. 즉 당시의 독일 황제는 전 독일에 있어 최상권을 갖지 못하고, 많은 지방의 소군주들이 있어 각각 그들이 자기 지방에서 독자적인 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 중에 50명의 주교와 40명의 수도원장이 성직 이외의 지방 군주를 겸하고 있었는데, 세력 있는 군주들은 이들 성직자들이 다스리는 지방을 탐내 점령하였다. 그 당시의 환경으로 말하면 주먹 세상이었다. 즉 ‘힘이 권리였다’
한편 하류 계급의 농민들은 불의하게 땅을 약탈당하였음로 분노하여 여러 농민들이 합세하여 군주들을 거슬러 반란을 일으켰다. 16세기 초에 있어 25년간 5차씩이나 농민들의 반란이 있었다. 이와 같이 전 독일은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었고, 또 사회 정의가 유린당할 대로 당하고 있었으므로, 어떤 정치적 혁명과 반란의 폭발을 앞에 둑 있었다. 이런 불가피한 정치적 혁명이 독일에 있어 신앙을 배반하는 결과까지 되고 만 것이다.
3. 종교 개혁의 경과
이제 마르틴 루터가 독일의 정치적 환경을 이용하여 종교개혁을 어떻게 전개하는지 그 과정을 고찰할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독일 삭소니아(Saxonia)지방의 아이슬레벤이란 조그마한 읍에서 1483년에 탄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철광에서 일하는 광부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그가 소학교를 마친 다음에 아이제나흐에서 고학을 하며 라틴어를 공부하였다. 그 후 그는 에르포르디아대학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여 문학사가 되었다. 1505년 갑자기 벼락을 만나 땅에 넘어지면서 성녀 안나에게 서원하기를, 생명을 구해 주시면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그 후 그는 에르포르디아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들어가 수사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1512년에는 비텐 베르크 대학의 성경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1516년부터는 신앙심이 줄어 미사 성제와 성무일도를 등한히 하였다. 또는 그는 말하기를 “사람은 필연적으로 악에 기울어진다”고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그의 사사로운 태도였다.
마르틴 루터가 공공연하게 교회를 거슬러 반기를 들고일어난 것은 당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의 건축을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면서 기부하는 이에게 특전 적인 은사를 반포한 때이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이 은사를 면죄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은사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말하기를 16세기에 로마 교황 네오 10세가 성전 건축비를 거두려고 면죄부를 판매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네오 10세의 은사 반포는 그런 것이 아니고, 신자들이 자기 형편대로 성전 건축에 기부를 하고 또 통회하면서 고백성사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무한한 공로로써 잠벌(暫罰)의 면제 특은을 받는다는 것이다.
1517년 네오10세의 은사 반포가 있은 다음 독일 모군티아의 추기경 알베르토는 성 도미니코회의 테젤 신부를 시켜 베드로 대 성전 건축비 모집을 위한 강론을 하게 하였다. 테젤 신부는 수재는 아니었으나 열렬한 대중적 강론가였다. 그는 네오 10세의 은사 반포에 대한 말을 하는 데 있어 좀 과장을 하였다.
테젤 신부의 강론에 불만을 품고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제성인의 성당 문전에 95개조의 자기의 주장을 라틴어로 써서 광고하였다. 그는 이 광고문에 테젤 신부의 강론을 비난하고 로마 교황청을 크게 혹평하였다.
이 95개조의 광고문에 대해서 테젤 신부와 그의 동료 요안에키우스는 크게 논박하였다. 그리고 1518년 10월 국가 법정에서 루터에게 95개조의 이설을 취소하도록 권고하였다.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공의회에 상소하고 로마교황도 소용없다고 하며 성경만이 유일한 지침이라고 부르짖었다. 1519년 6월 27일부터 7월 16일까지 공개 토론회가 개회되었다. 이때에 요안 에키우스는 철저히 루터의 소론을 반박하였다.
1520년 6월 15일에 네오 10세는 ‘주여 일어나소서!’의 칙서로 루터의 41개조의 오류를 처벌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교만하게도 그 칙서를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불에 태웠다.
1521년 1월 2일에는 고집 하는 루터와 그 추종자들에게 파문 선고가 내리고, 그해 5월 26일에는 독일 황제 카를로 5세가 그를 유배 보냈다. 그러나 카를로 5세와 사이가 좋지 않던 삭소니아의 군주 프레데리크 공은 루터를 보호하여 발트부르크에 피신케하였다. 만일 루터가 몇몇 군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더라면 소위 종교개혁이란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의 군주들이 루터를 지지한 이유는 그가 군주들의 요구대로 로마 교황을 반대하고, 똑 독일을 국수주의를 부르짖은 데 있다. 그리고 루터는 신앙만으로써 구령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므로 군주들이 믿기에 대단히 쉬웠다. 루터가 말하는 신앙이란 신뢰심에 불과하다. 이런 신뢰심만으로 구령할 수 있으므로 굳이 어려운 계명, 고백 성사, 혼인의 불가해소성 등을 지킬 의무가 없으니 군주들이 그를 따라 간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결정적으로 종교개혁에 나서게 된 것은 1524년부터 1525년까지의 농민 전쟁 때였다. 루터가 처음에는 지방 주교들과 지주들의 특권 폐지를 부르짖으면서 지방 주교들과 지주들의 특권 폐지를 부르짖으면서 농민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농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 그들이 모든 것을 공산주의 식으로 처리하여 루터 자신의 개혁 운동에 지장이 있을 것을 예지하고 돌연 자기 태도를 바꾸어 군주들의 편이 되어 농민들을 사정없이 죽이도록 권고하였다. 그리하여 1525년 5월 15일에는 군주들이 농민 5만 명을 학살하고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때부터 군주들이 루터의 종교 개혁을 본격적으로 원조하고 또 루터도 군주들의 힘을 빌려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군주들이 루터의 편이 되어서 그를 원조한 것은 가톨릭 교회의 재산이 탐이 나서 그를 몰수하고 자기들의 정치 및 경제적 세력을 증가시키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던 것이다. 루터는 로마 교황청에 반대하여 분기하였다고 하지만 결국 그는 군주들의 세력에 구속되어 그들의 정치적 앞잡이 노릇을 하고 만 것이다.
루터를 원조한 군주들은 모두 가톨릭교의 신앙을 배반한 자들이거나 혹은 조당이 있어 교회에서 파문을 받은 자들이었다.가령 헤세 필립공은 배교하고 첩을 둔 사람이었으므로 루터를 적극 지지하였다.
1525년 6월 13일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신부로서 동정의 서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에서 나온 가타리나 보라와 결혼을 하고 비텐 베르크의 수도원을 점령하여 자기의 본거지로 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북독에 있는 비가톨릭 군주들은 단결하여 독일의 황제 카를로 5세와 가톨릭 군주들을 거슬러 1531년 반란을 일으켰다. 비가톨릭 군주들은 정치적으로 독립을 획득하고 또 종교를 마음대로 간섭하였다. 이미 1525년부터 그들이 다스리는 지방의 종교를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즉 군주가 교회 재산을 관리하며 교역자를 임명하며 국교, 즉 신교를 믿지 않는 이를 처벌하였다.
루터는 그의 말년에 있어 더욱 로마 교황청을 욕하다가1546년 2월 18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가 죽은 다음에 1555년에 가톨릭 군주들과 비가톨릭 군주들이 싸움을 중지하고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평화조약을 맺음으로 신교와 구교가 완전히 갈리게 되었다. 즉 프로테스탄트 파에서 가톨릭교와 동등한 권리를 독일 나라에서 인정받음으로 소위 종교개혁은 완성된 것이다.
신교와 구교의 나누임. 번역의 과정에서 개혁이라는 말이 교과서에 쓰이고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종교반동, 재 구성의 의미를 띠고 있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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