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 다음날이 사월 초파일이면서 공휴일이었습니다.
삼천포 성당 50주년 행사가 있다고 해서 달랑 초대장 한장 오고
전임 본당이기에 가봐야 하는 곳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이유 때문에 가고 싶질 않았습니다.
떠난 본당 뒤도 쳐다 보지 말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약속한 수녀원 미사와도 겹치기도 해서
가지마라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엉뚱한 해석을 하고
오전에 신자들과 함께 적삼목 침대 제작을 하고
오후에 수녀원에 미사하러 갔습니다.
(우스게 소리로)평일에 미사 두번 하면 지옥가는데 그것도 월요일에....
수녀원에 피정오는 신자들을 위해서 미사를 갑니다.
멀리서 오는데 그것도 신자들이 피정하러 떼지어 오는데
그 본당 신부는 따라 오질 않고 신자들만 오는가 봅니다.
대도시 성당 일수록 신자들만 옵니다.
그래서 너무(타) 본당 신부가 미사를 해줍니다.
수녀님들이 저를 부르시는 이유는 강론이 짧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피정하고, 손님 신부와서 강론을 한시간 정도 하면....
저는 강론 하라고 하면 말 주변이 없고, 준비가 되질 않으면 못하기에
간단하게 3분 정도 하고 미사 시간 전체가 30분안에 마쳐 주길 때문에
피정 파견 미사에 저를 초대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날도 전에 했던 짧은 강론을 리바이블 할 수는 없고
성령 강림축일에 본당 신자들에게 했던 강론을 조금 양념쳐서 대신 해 주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죄를 모르기에 어떤 면에서는 화해와 용서가 빠르다.
우리 신자들은 죄를 알기에 화해와 용서를 계산적으로 한다.
세상사람들은 사랑을 모르기에 사랑을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한다.
우리신자들은 사랑을 알기에 사랑역시 계산적으로 한다.
사랑을 주어야 할 사람, 주지 말아야 할 사람,
사랑을 어느 정도 주어야 하는지 까지 계량을 하고 나서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죄와 사랑을 머리로써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피정을 통해서 또 다른 죄와 사랑에 관한 지식을 쌓아서는 안된다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으면 들을 수록 그것을 가슴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세분화 시켜서 죄와 사랑을 계량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것이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라고...
좋은 말씀, 좋은 피정을 통해서 회개도 가슴으로 하고, 사랑도 가슴으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고...
생면 부지의 타본당 신자들에게 주절거리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