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여행자의 영국 여행기>
캔터베리 투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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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도시 곳곳에 노숙자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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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시내
2층, 3층으로 올라가면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1층 보행자 통로 확보를 애주고, 2층, 3층은 조금씩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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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전쟁 기념탑
영국은 전쟁기념탑이 많이 있다.
전몰자에 대한 예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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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대성당 입장 시간이 되지 않아서 입구가 열리지 않는 바람에
성당을 중앙에 두고 한바퀴를 돌았지만,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성당 주위 한바퀴 도는데 1km가 넘는다. 한바퀴를 돌고 나서 입구가 보이질 않아서
포기할려고 하는데
직원들이 드나들던 곳에 문이 열리고 티켓판매소가 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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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성당 입구에 있는 전몰기념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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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찾아서 한바퀴 돌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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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가 옆에 있는 작은 성토마스 천주교 성당도 들어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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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초가 있고, 감실이 있고, 제대가 소박하게 차려져 있으면, 또는 단색으로 제대포가 덮여져 있으면 가톨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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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성당 주위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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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한바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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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어 성당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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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안에는 특이한 장식이 걸려있다.
일반 전시용인지, 상시 장식되어 있는 것이 의도는 모르겠지만,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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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똑같은 양식의 대성당의 모습
캔터베리 대성당은 영국 국교회의 총본산이지만, 그 유구한 역사는 결코 평탄치 않았다. 처음 대성당이 세워진 때는 601년 로마 교황의 명령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창건된 색슨 양식의 성당이 그 원형이다. 이 성당은 거의 400년에 걸쳐 존속했으나, 1067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1080년에 노르만 대주교 랜프랭크가 재건했으나 이 역시 두 번의 화재로 소실된다. 한편 그리스도교의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국가 대립은 날로 심해졌고, 그 최고조에 이른 사건이 1170년에 일어난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겟의 암살이었다.
헨리 2세의 뜻을 받든 기사에 의한 이 암살은 여론의 반발을 초래하였고, 베켓의 사후 기적을 믿는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방문하게되어 켄터베리는 왕의 의도와는 달리 더욱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같은 번영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대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헨리 8세에 의한 종교개혁이다. 로마 교황 대립해 국교회를 발전시킨 헨리 8세는 1538년에 캔터베리에 있는 모든 사원과 수도원을 파괴되었다.
베켓은 반역자의 낙인 찍혔고, 성당안의 트리니티 채플에 있넌 베켓을 모시던 제단도 파괴되었다. 그리고 1642년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자 이번에 광신적인 청교도들에 의해 성당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현재의 고딕 양식의 건물은 그 후에 복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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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있는 대성당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가톨릭으로 부터 약탈한 재산들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양식은 다 파괴해버리고, 대도시들의 성당 구조를 획일한 시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박물관은 약탈유물의 전시장이라는 다 아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