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여름이 시작되면서 첫번째 맛을 본다.
해수욕장에 가면 해수욕을 하면서 바닷물에 햇사과를 바닷물에 씻어서 먹으면
바닷물의 짭찔함이 사과의 달콤함을 배가 시켜 준다.
지금도 한 여름에 나오는 사과가 있는데, 그것일 것이다.
이렇게 한해 첫사과 맛을 본 후로는 겨울에 되어서야 제대로 된 사과맛을 볼수가 있었다.
우리 어릴때는 홍옥이 최고 였는데
어느때인가 후지라는 이름으로 사과 품목이 나오다가
결국 홍옥은 거의 없어지고, 요즘 다양한 사과 품종이 나오고 있는데
어릴 적 먹었던 빨간 홍옥의 아삭함과
처음으로 나왔던 후지의 단맛이 요즘 사과는 따라 가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요즘 단맛에 길들여져서 과일이 아무리 달아도 그것을 달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과에 대한 가장 맛있는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어릴 적(초1 정도)에 과수원에 직접 가서,
거의 다 따고 남은 사과 나무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과를 직접 따서 먹은 그 사과맛을 잊지를 못한다.
어떤 일로 과수원에 갖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나가다가 과수원에 들러서 지나가다가 과수원에 들렀던 것 같다.
복숭아는 어릴 적에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복숭아 밭이 있었다.
특히 대광사 절 아래, 지금 시민회관근처로 복숭아 밭이 있었다.
여름에 곰절 아래 계곡으로 동네 아이들과 산수욕을 같다가 내려오면서
당연히 복숭아 밭은 우리의 서리 대상이 되고 하였다.
몇번은 성공하였지만,
결국 주인에게 걸려서 학교, 반, 이름을 적어주고서야 풀려나는데,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과수원 주인이 우리를 겁줄려고
그랬던 것 같았다.
물론 그 이후로 그 근처의 복숭아는 절대 서리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국민학교시절 풋 복숭아(나무에서 일찍 떨어진 복숭아를 사카린 물에 담아서 단 맛을 낸것)을
학교앞에서 아이들에게 판다. 물론 그것은 불량식품이다. 나무에서 낙과된 복숭아이기도 하고
단맛을 내기위해서 사카린 물에 불렸다가 파는 것이기 때문에.
불량 식품은 철저하게 사먹지 말라는 모친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도 사먹지 못했는데
그당시에 그 풋 복숭아를 사먹고 많은 아이들이 배탈이 났었고,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사실 풋 복숭아일 수도 있고 살구일수도 있었던 것이다.
풋 복숭아나 살구의 독성이 배탈을 유발 했을 것이다.
지금은 국무총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지만,
국민학교 고학년 시절 부터 부처 장관의 이름까지 다 꿰고 있을 정도로
신문을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므로....
복숭아는 기억으로는 백도가 먼저 나오고, 황도가 뒤이어서 출하가 되는 것으로 안다.
늦게 나오는 황도를 가지고
모친은 통조림을 만든다.
그 황도 통조림은 해를 걸러 부활절날 먹는 귀한 디저트가 되곤 하였다.
토마토이야기
어릴적 마당 텃밭에는 다양한 것이 재배되었다.
가끔 토마토도 재배가 되곤 하였는데,
토마토의 향기가 가장 강한 것은 끝물에 뿌리채 뽑아 놓은 토마토 줄기에서
가르 늦게 익은 토마토이다.
그 강한 토마토의 향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항상 토마토를 먹을 때는 그 토마토 특유의 향으로 판가름 한다.
요즘은 노지 재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토마토 특유의 향을 맛 볼 수 는 없다.
올해 성당 마당에 누가 방울 토마토를 심어 놓았는데
노지에서 익은 방울 토마토에서
어릴적 노지에 심었던 그 토마토의 향을 맛볼 수가 있었다.
지금도 노지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면 그 토마토의 향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토마토는 소금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고 하지만,
한번도 그것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지 않는다.
토마토를 설탕뿌려 먹으면 영양가가 떨어진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도 토마토에는 설탕 조금 뿌려서 먹는 것이 옛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은까
요즘은 토마토에 꿀을 조금 넣어서 먹는데, 토마토와 꿀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익혀서 요리를 하면 토마토의 효능이 더 좋아진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토마토는 과일이기 때문에
그냥 후식으로 썰어서 꿀뿌려 먹는 것이 아직은 최고다.
감이야기
어릴 적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장 맛없는 과일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어떤 과일일까
할 때 1번이 감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단감이라는 것도 생소했고,
기껏 해야 홍시이었는데, 주변에 나오는 홍시가 그렇게 맛있었다는 기억은 없다.
그냥 물컹물컹한 과일이라서 별로 였다는 생각이 든다.
곶감도 있었겠지만, 어릴적에는 곶감은 귀한 음식이어서 명절때 제사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과일이었다.
감은 고성 영오면에서 나오는 감이 최고이다.
고성에 있을 때 사람들이 "도오감"이라고 해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일본식 이름이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어원을 추적해 본 결과 경상도 사투리로 "항아리"를 "동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일상에서 부를 때는 "도오"로 발음이 된다.
그래서 그 감이 항아리 처럼 생겼다고 해서 "항아리감" "동이감"에서
경상도식 발음으로 "도오감"이 된 것이다.
청도 반시도 맛이 괜찮고,
항아리감은 고성 영오에서 나오는 것도 괜찮은데
진동에서는 신자 집에 있는 감나무에서 따다준 "항아리감"이 올해는 최고였다.
배이야기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당시 배는 제삿상에 오르는 과일이었기 때문에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흔해서 사과보다 싸진 과일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당시에는 귀한 과일이었다.
메론이야기과 바나나이야기
우리나라에서도 80년도에는 바나나를 온실 재배한 적이 있다.
요즘 다시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다고 하는데,
진주 장재지역에서 바나나를 온실 재배를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바나나, 즉 우리나라 바나나를 먹은 기억이 있는데
수입산 바나나에서 맛볼 수 없는 바나나 향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메론도 역시 그당시 진주 장재 지역에는 많이 재배를 하였다.
머스크 메론, 백설 메론, 개구리메론 등등 다양한 메론도 맛보았던 때도 있었다.
진주 장재지역은 본당 역사가 100년이 넘는 오래된 성당이다. 그래서 구 교우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성경말씀처럼 농산물의 첫 수확물은 꼭 본당 신부에게 가져온다.
그덕분에 그당시에 엄청나게 희귀하고 고가인 바나나, 메론등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바나나로 돌아가서
우리나라에 바나나를 수입하지 않을 때,
옆집사람이 미 고문단에 근무를 하였는데, 가끔 바나나를 가져와서 그집아이들이 먹곤 하였는데
그때 기억이 푸른 바나나가 아니라, 요즘 냉장고에 두면 짙은 갈색으로 변해버려서 물러터진
바나나였다.
바나나는 그 당시에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동경과 일치하는 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