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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월요일은자유인 2013. 11. 26. 06:57

 

꼭 알아야 할 '연평도 파문' 박창신 신부의 삶 (2013-11-24)

집권세력에 의해 40년 열정의 사제는 종북이 되어야 하는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첫 미사. 집권세력은 숨을 죽였고, 언론은 귀를 세웠다. 어느 새 은퇴 사제 박창신 신부의 강론이 이어졌다. 사제 생활 40년 동안 민주화를 위해 온 몸을 불사른 원로 사제는 말을 가리지 않았다. 이해가 얽혀 있는 종북논란, 천안함, 연평도 그리고 NLL 등에 대해서도 거침 없이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그 발언의 후폭풍은 참으로 크다.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독도에서 훈련하면 우리 어떻게 해야 돼요, 대통령이? 쏴버려야죠. 안 쏘면 대통령 문제 있어요. 그러면 NLL(서해북방한계선),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이 연평도 포격 사건이에요.”

 

“NLL은 유엔군 사령관이 우리 쪽에서 북한으로 가지 못하게 잠시 그어놓은 거예요. 북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휴전 협정에도 없는 거예요.” 박창신 신부 강론 중

 

국가기관 대선개입으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 첫 미사라는 의미는 퇴색되어졌다. 정치적 후각이 남달리 잘 발달된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이 날 미사를 토요일 1면 헤드라인 기사로 실었다. 제목은 박 대통령 사퇴 촉구가 아니었다. <NLL 문제 있는 땅한미 훈련 계속 북한이 어떻게 해야겠어요, 쏴야죠>였다.

 

박 신부의 연평도 발언을 1면 헤드라인으로 게재한 조선일보, 11월 23일자

 

박근혜의 복심이라 불리는 이정현 홍보수석도 오랜만에 주말 브리핑에 나섰다. 미사 직전에도 브리핑 자리에 섰던 이 수석은 기도라는 것은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 아니겠느냐.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 되라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라며 상대가 종교계인 점 등을 고려한 듯 점잖게 말했다.

 

그러나 박창신 신부 강론 이야기, 특히 NLL과 연평도 발언이 뉴스에 크게 보도되자 23일 토요일 다시 브리핑에 나섰다. 국가적 현안이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주말 브리핑에 선 것도 이례적이지만, 그 발언의 내용은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수석은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 흔들리는 지반 위에서는 집이 바로 서 있을 수 없는 법이라고 말하며 사제단을 강력히 비판했다.

 

박 신부의 발언이 전해진 뒤, 이정현 홍보수석은 주말 브리핑을 자처해 '그 사람들 조국'을 물었다. (출처 : 조선닷컴)

 

명민하다는 평을 듣는 이 수석의 짦은 표현에는 주목할만한 단어가 2개 등장한다. ‘그 사람들이 하나이고, ‘조국이 다른 하나이다. ‘그 사람들이란 표현에서 청와대는 사제단을 종교인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을 의도적으로 표현했다.

 

이 수석의 그 사람들표현을 이어받아 더욱 강공을 편 이는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부대표이다. 그는 사제복 뒤에 숨어 대한민국 정부를 끌어내리려는 반국가적 행위를 벌이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살아서 활동하는 시대에 집권여당의 원내부대표 입에서 반국가적이란 용어가 나온 것은 의미 심장하다.

 

냉정하게 살펴 본 박 신부의 NLL 발언

 

집권세력과 보수언론에서는 연평도 포격사건에 집중하며, 의도적으로 연평도 포격사건 3주년과 묶어서 논란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지만, 박 신부가 강조한 대목은 연평도 포격이 아니다. 본질적인 대목은‘NLL 문제 있는 땅이었다. 이어진 ‘NLL은 유엔군 사령관이 우리 쪽에서 북한으로 가지 못하게 잠시 그어놓은 선. 북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휴전 협정에도 없는 것이라는 발언을 봐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대목이 연평도가 아니라, NLL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평도 포격사건만을 놓고 보면 이미 정의구현사제단은 북한의 책임임을 분명히 선언한 바 있다. 지난 2010 11 29‘4대강 사업관련 시국미사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은 연평도 포격사건의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북쪽이 짊어져야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제 냉정하게 박 신부의 NLL 발언을 생각해 보자. NLL1953년 주한미군사령관인 클라크가 임의로 그은 선이다. 임의로 그었다는 뜻은 휴전협정과 같이 상대방인 북한과 합의해 그어진 선이 아니란 의미다.

 

대북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 바다에 선 긋기 (Drawing a Line in the Water, 2010 12 12)”에서 ‘(NLL로 인해 발생하는)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서해의 긴장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리고 해답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미국이 NLL로 불리는 해상 경계선을 남쪽으로 내려서 다시 그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NLL을 다시 긋는 주체로 미국을 언급한 이유는 최초 NLL을 선포한 인물인 美클라크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대북전문가 해리슨의 NLL과 관련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 (뉴욕타임즈 웹)

 

보스턴대 정치학과 교수인 월터 클레멘스 주니어 역시 같은 신문에 기고한 칼럼 악의 축에 귀 기울이기 (Listening to the Axis of Evil, 2011 11 4)’에서 ‘1953년 휴전협정 체결 후에 유엔에 의해 공포된 NLL에 대해 북한은 절대 동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많은 법률 전문가들은 NLL이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왜냐하면 NLL (직선이 아닌) 북한 해안을 따라 북측으로 상향하는 선인데, 그 때문에 (연평도 등) 5개의 섬이 남한 영토로 편입되었고,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 역시 남측에 귀속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가유공자인 박창신 신부, 종북이 될 수 있을까?

 

이 엄청난 사태를 맞아 가톨릭 전주교구사제단이 긴급회의를 열고 전두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유인물과 항의성명서를 발표하고 주일 미사 때 모든 신자들에게 이를 알리기로 결정한 것은 선을 행하도록명령받은 사제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사명이다.

 

이 사명에 충실했던 한 사제, 당시 여산본당을 맡고 있던 박창신 신부가 무자비한 테러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저는 수난을 당하고도 민주주의인간해방에 대한 용기와 정열을 더욱 깊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은 많은 사람들이 외경스럽게 여기는 바이다. – <한겨레> 사설. 1988 10 2일 자 중

 

박창신 신부 테러사건을 사설로 게재한 한겨레신문 (1988년 10월 2일)

 

25년 전 한겨레신문에 등장하는 박창신 신부는 23일 이정현 수석과 윤상현 의원이 그 사람들, 반국가적운운하며 비판한 그 박 신부와 동일인이다. 박 신부가 문제의 테러를 당한 때는 1980 6 25일 성당의 사제관에서였다. 목숨을 건 광주 진상알리기 활동을 하던 중 괴한들이 난입해 그에게 칼과 쇠파이프를 휘둘렸다. 6군데 자상, 늑골 골절 등 중상을 입었다. 후유증으로 1년 뒤 하반신 마비가 왔고 지체장애로 살아야 했다. 이것이 그가 국가유공자가 된 내용이다.

 

  

 

박 신부는 2012 8월에 은퇴했다. 73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니 39년 동안 사제로 살았다. 퇴임 자리에서 신자들은 그의 삶을 영상으로 담아 헌정했다. <박창신 베드로 신부님 퇴임 회고영상>이 그것이다. 8 26초 영상에는 어린 박창신 신학생이, 군대를 제대하고, 부제가 되고, 사제가 되고, 수십 년 동안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 무심히 흘러간다. 그리고 백발이 되어 그 사제는 은퇴를 했다.

 

다시 22일 박 신부 문제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2010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군인 2,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북한에 대한 생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 “NLL(서해북방한계선),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이 연평도 포격 사건이에요.”는 말에는 분명 찬성과 반대의 대립이 극명하게 대립할 것이다. 지금 SNS 상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윗분에 대한 사퇴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사제의 대표에 해당하는 박 신부를 이정현 수석,, 윤상현 의원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어떻게든 비판하려 할 것이다. 그 비판은 사제단의 한 명으로서 사퇴 촉구 미사를 계획하는 순간부터 감수할 영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와 서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육체적 고통까지도 감수한 어느 원로 사제의 발언 하나만을 가지고 그를 종북, 반국가적 인사로 모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 사제가 가장 민감한 순간에 가장 예민한 이슈에 대해 거침없이 말했다. 그 말 한 마디에 집권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애국선동에 나서고 있다. 2013 11월 어느 날, 한국 정치의 현주소이다